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26
26.
26.
기약 없는 대기 상태가 이어진 지 4일 째 되는 날.
이수연의 호출에 교관실로 간 나는 의외의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저보고 추가 조사를 하라고요?”
“예. 그렇게 됐습니다.”
전후사정은 이수연에게 어느 정도 전해 들었다.
내가 발견한 흔적이 오래 전부터 경찰이 쫓고 있는 마인의 것이란다.
그리고 그 조사를 나에게 맡기는 이유는 마인이 추적을 눈치채는 것을 염려해서라나 뭐라나.
“그럼 이것도 실습으로 들어가는 건가요?”
혹시 공짜로 부려먹을 겁니까? 라고 묻는 내 질문에 이수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건 경찰 측의 정식 협조 요청입니다. 물론 강진우 씨가 싫다면 거부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별로 추천은 하지 않으시는군요.”
“맞습니다. 향후 진로를 경찰로 생각하고 있으시다면, 설령 마인의 검거에 실패하더라도 얻어가실 게 많으실 겁니다.”
그거야 그렇겠지.
이는 분명 경찰의 윗선이 제시한 걸 테니, 굳이 거부해봐야 손해만 막심할 것이다.
게다가 나에게는 퀘스트도 있지 않던가.
어차피 퀘스트 목표를 봤을 때부터 내가 직접 움직여야 한다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협조하죠. 그럼 뭐부터 하면 됩니까?”
“저희 쪽에서 선별해둔 사건이 둘 있습니다. 우선 그쪽의 현장 조사를 봐주시면 됩니다. 그게 뭐냐면···”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이수연은 기다렸다는 듯 사건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하나는 지방 도시 외곽의 한 폐건물에서 일어나는 실종 사건.
또 다른 하나는 바닷가에서 일어난 익사 사건이었다.
“이 중에 우선 처리하셔야 할 건, 익사 사건 쪽입니다.”
“뭐든 상관 없긴 한데, 이유가 있나요?”
“예. 사실, 이쪽은 현재 연수원의 교육생이 추적 중인 사건입니다. 현장 실습의 과제로 배당되었죠.”
그쪽에도 교육생이 얽혀있는 건가.
그렇다면 먼저 처리해달라고 할 만 했다.
“또한 상부에서는 마인이 해당 교육생을 식별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교육생을 배제하는 것은 마인의 의심을 살 수 있어, 강진우 씨와 함께 조사를 돕게 하려고 합니다만···”
잠깐 말을 망설인 이수연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해당 인원이 C반 소속입니다.”
C반이라.
이런 식으로 그들과 연관될 줄은 몰랐는데.
이어서 이수연은 태블릿으로 그 C반 인원의 신상 정보를 보여주었다.
정은미라는 이름의 여성이었다.
사진 속의 그녀는 텅 빈 시선으로 허공을 응시할 뿐.
표정 하나 없다.
그런데 이 얼굴···교육 시간에 본 기억이 있는 얼굴이었다.
외모는, 단적으로 말해 추하지 않다.
눈매는 날카롭게 올라가 인상을 도도하게 만들었고, 거기에 뚜렷한 이목구비는 고혹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그 사진 아래에는 그녀가 저지른 범죄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총 12명.
그녀는 12명의 사람을 죽인, 연쇄살인범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이수연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말했다.
내가 거부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하지만 나는 딱히 C반 인원에게 거부감이 있지는 않았다.
따지고 보자면 나 역시 C반에 들어가 있었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12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이 뭐 어떻다는 건가.
내 손에 죽은 사람은 세는 것이 어리석을 정도로 많았는데.
“괜찮아요, 그런 건.”
“물론 보호 차원에서 감시조가 따라 붙을 겁니다. 연수원장님이 안전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 없으시다고 보증하셨으니, 상당히 뛰어나신 분일 겁니다.”
“그건 잘 됐네요. 그럼 안심하고 갔다 오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답하며 조사에 협조를 약속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나는 곧바로 사건 현장인 포항으로 이동했다.
“······”
도착해보니 현장은 방파제가 넓게 깔린 해안가였다.
이곳에서 최근 익사 사고가 연쇄적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듯 했다.
원래 이 방파제 근방은 낚시터로 유명했다.
그래서 단순히 실족사일 수도 있지만, 마와의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된 근거는 역시 사건의 빈도였다.
기껏해야 1년에 한두 번씩 사고가 발생했던 것이, 최근 두 달 사이에만 10명이 넘게 죽었다.
분명 이상하리만치 높은 수치였다.
“넓긴 넓구만.”
해안가라서 그런가.
경찰에 의해 인원이 통제되고 있는 지역의 넓이는, 며칠 전 갔던 산속 도로에 비해 수십 배도 더 넓어보였다.
즉 나는 여기에서 그 십자가 같은 걸 또 찾아야 한다는 말이었지만.
그다지 답답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사건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퀘스트 창이 번쩍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창을 열어보니 역시나.
이번에도 네비게이션 기능을 사용할 수 있었다.
또 화살표만 따라가면 된다는 뜻.
맨날 이렇게 간단히 해결해도 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안녕? 네가 강진우야?”
옅은 미소와 함께 나에게 말을 건 것은 정은미였다.
그녀는 마치 오래 된 친구에게 인사하듯 말했다.
그래서 나 역시 초등학교 졸업 후 처음 만난 동창을 만난 듯 반응했다.
“혹시 정은미?”
“역시 맞았구나. 만나서 반가워.”
정은미는 나에게 장난스러운 얼굴로 악수를 청했다.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에 나는 그 손을 맞잡았다.
조금 의외였다.
멀리서 정은미를 바라봤을 때, 그리고 그녀의 사진을 봤을 때.
나는 그녀가 이런 성격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그토록 텅 빈 눈동자였다.
아무 것도 없는 허무를 직시하고, 그 허무 밖에 담아내지 못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리고 내가 봐 온 그런 녀석들의 공통점은, 성격 역시 그 시선처럼 하나 같이 벽돌 같다는 것이었는데.
“어, 악수 받아주는 거야? 제법 담력이 있네?”
킥킥거리며 정은미가 웃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플라스틱처럼 무미건조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의 태도는 거짓 하나 없이 활기차면서도 당당했다.
마치 어렸을 때부터 고생 한번 하지 않고 자란 귀족 영애를 보는 것처럼.
보고 있으면 위화감을 도저히 떨쳐낼 수 없을 정도의 모순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런 평가를 그대로 입에 담았다.
“너야말로 꽤 특이하네. 이런 성격일 줄은 몰랐어.”
“특이해? 내가? 그야 연쇄살인범이니, 특이하긴 하지.”
정은미는 농담이라도 하듯 그렇게 말했다.
자신의 범죄를 숨기려는 느낌도, 그렇다고 과시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타입의 인간은 나조차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다만.
이런 타입의 마족은, 잘 알고 있었다.
“혹시 뱀파이어라고 아냐?”
“뱀파이어? 흡혈귀 말하는 거야?”
“응. 너, 걔네들이랑 닮았다.”
뱀파이어의 수명은 길다.
그래서 그들은 삶의 권태와 지루함을 뼈저리게 이해하고 있었다.
때문에 놈들의 시선은 항상 허무를 가리켰고.
매일 마치 삶에 의욕이 없는 놈들인양 굴었다.
허나, 동시에 놈들은 마족 특유의 광기를 품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들은 인간을 죽일 때만큼은 없던 삶의 의미를 찾았다는 듯 움직였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정은미라는 여자는 뱀파이어와 많이 닮아 있었다.
무심결에 정말 뱀파이어가 아닐까, 시험해보고 싶을 정도로.
“그런 말은 또 처음 듣는데···?”
하지만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걸까.
정은미는 처음으로 난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니, 뭐.
그야 당연히 이해하지 못했겠지.
그러나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었기에, 나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보다 수사는 어디까지 진행됐냐?”
내가 독촉하듯 말했다.
그러자 정은미는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당당하게 말했다.
“아무 것도.”
“······”
“아, 그렇다고 놀았다는 건 아니야? 벌써 며칠이나 저어-기부터 여기까지 마의 흔적을 뒤졌거든. 열심히 노력했지만 아무런 수확이 없었을 뿐이라구.”
그래, 그랬겠지.
괜히 현장 실습에 한달이라는 기간이 주어진 것이 아닐 테니.
그래서 나는 정은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네비게이션 기능을 켰다.
내가 가야할 방향이 눈에 보였다.
“내 능력은 알지?”
“그럼. 너 유명하잖아. 영력 감지, 맞지?”
유명이라.
다른 때 같았으면 기분이라도 좋았을 텐데.
연쇄살인범의 입으로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정확히 무슨 의미로 유명하다는 건지, 묻고 싶어졌다.
“부럽네. 나도 그런 능력이 있었으면.”
“네 능력도 나름 쓸만 하더만.”
나는 이미 정은미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
이수연이 알려준 신상 정보에 그 내용이 철저히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은미의 능력은 ‘기생충’.
대상에게 벌레의 알을 주입하여 그 몸을 갉아먹고 끝내 죽이기까지 하는 다소 끔찍한 이능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독특한 형태의 활을 사용했다.
그녀의 벌레 알은 화살에도 실을 수 있기에.
또한 활의 생김새는 양궁에서 쓰는 활처럼 생겼다.
하지만 정가운데의 그립을 기준으로 그 위쪽은 칼날이, 그 아래쪽 끝에는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활로 쏘다가 여차하면 검으로 쓰라는 의도였다.
이세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형태였지만, 현대 과학 기술은 이를 가능케 했나보다.
“하지만 나는 마음에 안 드는 걸. 기왕이면 화려한 게 좋은데.”
“그 정도면 화려한 거지. 난 그냥 보는 게 다라고.”
“그래도···기왕이면 빔 같은 게 나가는 게 멋있잖아. 나도 A반의 그 여자처럼 총도 쏴보고 싶어. 내 알들은 총알에서도 버틸 수 있는데.”
정은미가 말하는 A반 여자의 능력은 마비독.
무기에 능력을 실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정은미와 크게 다른 능력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은미가 총을 받지 못한 건, 아마도 그녀가 C반이기 때문이리라.
“됐다. 일이나 시작하자.”
“좋아, 그럼 어디부터 갈까?”
나는 그렇게 말하는 정은미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레벨은 19.
모니카와 김다영이 미쳐 날뛰어서 그렇지.
저 정도면 평균 17레벨 수준인 교육생 중에는 나름대로 상위권에 속하는 레벨이었다.
전력으로는 나쁘지 않다는 뜻.
그보다···
“······”
나는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슬쩍 보았다.
화살표는 방파제의 한쪽 귀퉁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허나 방파제 안쪽만 보면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그러나 좀 더 시야를 넓혀 방파제 너머를 주시하면···바다를 사이에 두고 삐쭉 튀어나온 등대가 보인다.
ㄴ 자로 꺾인 해안선인지라, 등대의 위치는 묘하게 방파제와 가까웠다.
정말로 마인이 머리를 잘 썼다면 방파제에 영향을 미치는 무언가를 숨기기에는 딱 좋은 위치.
그렇다면 역시 저 등대에 뭐가 있는 건가.
대충 목적지를 설정한 나는, 전혀 엉뚱한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선 이 부근을 조사해보자.”
아무리 목적지를 정했다고 해도 곧바로 그곳으로 향할 수는 없었다.
일단은 뭔가 조사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저쪽으로 시선을 두도록 유도해야지.
안 그래도 호위라는 명목 아래 강력한 퇴마사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게 누군지는 몰라도, 그 눈을 속이기 위해서는 조심히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최소한 하루나 이틀 정도는 뻘짓을 해줘야겠지.
“좋아. 그럼 난 이쪽을 맡을게.”
하지만 정은미는 이런 내 속도 모르고 싱긋 웃으며 제 할 일을 하기 위해 움직였다.
연쇄살인범이라 다루기 힘들까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측면에서는 원래 있던 멤버들보다도 편한 부분이 있었다.
“나도 시작해볼까···”
한숨을 푹 내쉬며 나도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고.
다시 다음날 정오가 되었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만에 내 인내심은 다 해버렸다.
“아, 씨. 못해먹겠네.”
엄청 천천히 진행했음에도 나는 하루 만에 이미 방파제 전부를 돌아본 상태였다.
이제 여기에는 근근히 남아있던 마의 찌끄러기조차 없다.
그야 한참 동안 감각을 집중해서 영력을 탐지해야 하는 평범한 퇴마사와는 달리.
나는 스킬이라는 이름의 레이더를 켜고 걸어다니는 셈이었으니 속도 차이가 확연했던 탓이었다.
어쨌든 이제는 내가 이곳에 있을 이유를 찾을래야 찾을 수도 없는 상황.
그래서 시간낭비는 그만하기로 하고, 등대로 향하기로 했다.
“야! 이리 와 봐.”
나는 정은미를 불렀다.
딱 하루 만에 정은미와 나 사이에는 격이 없었다.
그녀가 나를 친구처럼 대하기에, 나도 그녀를 막 대했던 탓이었다.
“왜 그래?”
“아무래도 방파제에는 아무 것도 없는 거 같아.”
“응? 벌써 다 돌아 본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는 눈을 살짝 치켜뜨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대단한데? 너, 꽤 능력 있는 남자였구나.”
“그보다, 이제 어떻게 할까가 문제다. 마가 방파제에 없으면 어디 있을 것 같냐?”
“음···글쎄?”
정은미의 시선이 주변을 훑었다.
그녀가 정답을 고르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저 자연스럽게 등대라는 존재를 꺼내기 위한 대화였다.
하지만,
“나는 저게 수상해.”
정은미는 내 예상과는 달리 바다 너머의 등대를 가리켰다.
반대쪽에는 작은 상가 건물도 몇 개가 있어서, 그쪽을 지적할 줄 알았건만.
“···왜?”
“내가 뭔가를 숨긴다면, 저기에 숨길 것 같거든.”
그녀는 묘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역시 범죄자끼리는 통하는 게 있는 건가.
꺼림칙한 공감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마침 등대로 향할 좋은 핑계가 생긴 셈이니까.
“그래, 그럼 그쪽으로 가보자.”
우리는 곧바로 등대로 향했다.
등대는 피처럼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우리는 그대로 등대 안쪽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자 좁은 등대 내부가 한눈에 보였고, 그곳에 있는 것은 계단 뿐이었다.
역시 뭐가 있다면, 이 위일 것이다.
“올라가자.”
나는 정은미를 앞세워 등대를 올라갔다.
사방이 유리벽으로 된 등대의 꼭대기.
예상대로 우리가 찾는 것은 그곳에 있었다.
검은 가시 나무에 휩싸인 역십자가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저거야?”
“저거긴 한데···”
그런데 정작 거기에 묶여 있어야 할 령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재빨리 주변을 훑었다.
그러나 령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어디 간 거지?
내가 의아함을 느낀, 그 순간이었다.
“어?”
아무 예고도 없이 땅이 꺼졌다.
소리조차 없었다.
마치 밟고 있던 계단이 공간 째로 갑자기 사라진 듯한 착각.
순간적인 부유감을 느끼며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난데없이 떠오른 레벨 표시가 있었다.
28 레벨?
하지만 나는 그걸 보고도 어쩌지도 못하고, 아래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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