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27
27.
27.
“아윽···다리야.”
떨어진 충격에 삐끗한 다리를 풀며 중얼거렸다.
다행히 생각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체감상으로는 기껏해야 1,2미터 정도.
하지만 그런 느낌과는 반대로, 주변의 풍경은 완전히 일변해 있었다.
“이게 뭐야? 신기해.”
분명 처음 겪는 일일 텐데, 정은미는 놀라는 기색조차 없이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그저 지금 상황이 즐거워 보였다.
“여긴···”
나와 정은미가 난데 없이 떨어진 곳은 어떤 방 안이었다.
작지만 세밀하게 만들어진 전통 목제 가구들과 창호문.
그리고 방 한쪽을 채우고 있는 병풍까지.
마치 조선 시대에나 있을 법한 한옥이었다.
한편 우리가 떨어졌을 천장은 구멍 하나 없이 막혀 있었다.
“······”
그 꽉 막힌 천장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전만 해도 등대에 있었는데, 갑자기 한옥 건물이라니.
근처에는 한옥과 비슷한 건물조차 없었다.
역시 평범한 추락이 아니었다는 말.
게다가 떨어지기 직전에 본 28이라는 레벨 표시는 이것이 마와 관련된 일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그럼 이곳은 혈랑 때 봤던 호텔과 비슷한 종류인가?
그렇다는 건···
“귀찮네···”
그 말대로 귀찮은 느낌이 풀풀 풍겼다.
이런 짓을 벌일 만한 것은 딱 둘.
첫 번째는 역십자에 속박되어 있어야 할 마였다.
거기에 묶여 있던 마가 뭔지는 모르지만.
놈이 풀려났다면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도 이해가 갔다.
떨어지며 본 레벨 표시는 분명 그놈의 것이겠지.
그리고 나머지 가능성 하나는, 바로 경찰이 쫓는다는 마인이었다.
어쩌면 그놈이 우리가 오는 걸 눈치채고 속박하고 있던 마를 해방해버렸거나.
혹은 이것 자체가 그놈이 준비한 함정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마인이 눈치챌 가능성이 있으니 외부로부터의 도움은 받기 곤란하다는 이야기.
결국 알아서 빠져나오는 수밖에는 없는 건가.
“저기, 이것도 마라는 거야?”
한편 병풍을 쿡쿡 찔러보던 정은미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 셈이지.”
“정확히 뭐야? 나갈 수는 있는 거야?”
“마역이라는 거, 들어는 봤지?”
그건 내가 혈랑을 잡은 다음날, 이수연이 한 이론 교육 내용이었다.
정은미도 모르고 있을 리는 없을 터.
그러자 그녀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가짜 공간이라고.”
미묘하게 실망한 얼굴이었다.
나는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대충 알 것 같았기에 곧바로 그녀를 재촉했다.
“그보다 무기 들고 나가자. 여기 있어봐야 달라지는 건 없어.”
나는 창호문을 눈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정은미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바깥으로는 비슷한 분위기의 방과 복도가 이어졌다.
넓이는 꽤 넓었다.
토굴과는 달리, 내부에서 전투가 벌어져도 답답하지 않을 정도.
하지만 대부분이 벽과 창호문으로 막혀 있어, 평범한 한옥과는 달리 굉장히 폐쇄적인 구조였다.
또한 간간히 있는 창문을 열어보면 바깥이 보였지만, 이를 통해 나갈 수는 없었다.
주변은 어디가 어디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으스스한 숲인데다.
짙은 안개가 껴 있었고, 그런 숲에 떡하니 선 건물은 지상에서 5층 전후의 높이였기 때문이다.
“분위기 좋네.”
정은미는 자신의 무기인 활을 꺼내들고 시위에 화살을 건 채로 걸어갔다.
산책이라도 나온 듯, 가벼운 발걸음.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갑자기 혼령 감지 스킬이 반응했다.
위치는 복도 너머, 창호문 뒤쪽.
게다가 그 마는 엄청난 속도로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놈이 이미 우리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저쪽에서 온다. 준비해!”
곧바로 정은미에게 소리쳤다.
워낙 여유 있게 움직이고 있던 탓에 내 말에 반응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녀는 곧바로 움직였다.
새하얀 손가락이 활시위를 당긴다.
동시에 시위에 걸린 화살이 옅게 빛나며 정은미의 이능을 실었고.
이어서 그 조준점이 창호문을 향하고, 멈췄다.
그 뒤에 올 목표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겨우 1초 남짓.
마치 훈련된 궁병과도 같은 속도였다.
그리고,
“끼아아아아!”
마가 창호문을 찢어발기며 튀어나온 것과 화살이 발사된 것은 거의 동시였다.
인간과 닮은 그 머리를 화살은 사정 없이 꿰뚫었고.
놈은 그대로 뒤로 넘어가 바닥에 처박혔다.
그 레벨이 이제야 보였다.
레벨 17.
의외로 높지 않은 레벨이었다.
령이라면, 백령에 해당하는 레벨.
허나 놈은 백령이 아니었다.
“이건 또 뭐야.”
언뜻 보면 그저 한복 저고리를 입은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명확한 차이가 있었으니···그건 놈의 얼굴이었다.
그 밋밋한 얼굴에는 이목구비가 하나도 없었다.
흔히 말하는 달걀 귀신.
내 기억이 맞다면 령이 아닌, 괴이의 일종이었다.
흠···혼령 감지 스킬에는 괴이가 안 잡히는 줄 알았는데.
이건 괴이면서 혼령으로 분류되는 건가.
하기야 달걀 귀신이라면 그럴 법도 했다.
“끼이이-”
놈은 머리에 화살이 박힌 채 다시 움직였다.
그러나 채 몇 걸음 움직이지 못하고, 그 몸은 경련을 일으키며 다시 쓰러진다.
정은미의 능력이었다.
자세히 보니 밋밋한 얼굴 가죽 안쪽으로 무언가가 기어다니는 것이 보였다.
역시 기분 나쁜 능력이구만.
달걀 귀신은 그렇게 경련을 일으키다가 소멸했다.
“나 이거 알아. 달걀 귀신이지?”
“잘 아냐?”
“수업 시간에 배웠잖아?”
그랬나?
괴이에 대한 자료를 혼자 살펴보다 본 기억은 있어도, 교육 받은 기억은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졸고 있던 사이에 지나간 모양이었다.
“기억 안 나는데. 아는 것 좀 설명해 봐.”
“음···뭐라고 했더라?”
정은미는 기억하는 내용을 드문드문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래. 괴이지만, 단체 행동을 좋아한다고 했어.”
“단체 행동?”
“모체를 중심으로 자신들만의 둥지를 만들고 그 안에서 서식하려는 경향이 있대.”
둥지?
그 말은 우리가 지금 달걀 귀신의 둥지에 들어왔다는 건가.
“약점은?”
“머리. 달걀이라 잘 깨지나 봐.”
그것 참 생각해내기 어려운 약점이었다.
그야 뚝배기를 깨면 인간이든 달걀 귀신이든 뒤지겠지.
“그럼 이제 이것들이 떼로 몰려올지도 모른다는···”
말을 내뱉기 무섭게 스킬 범위에 마의 존재가 인식되었다.
그 숫자는 넷.
그것도 우리의 앞뒤를 포위하는 형태였다.
“이런 씨발.”
나는 별운검을 꺼내 뒤를 노렸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정은미는 앞을 향해 활을 겨눈다.
그리고 그 직후.
다시 전투가 벌어졌다.
***
“이런 쓰벌.”
최덕철은 등대의 이상을 감지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그는 방파제 근처 상가 건물에 숨어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부적과 새끼줄에 묶인 정체 불명의 불상들이 가득했다.
전부 그의 기척을 숨기는 주술의 일종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사역마, 즉 식신을 부리며 강진우와 정은미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이 등대에 들어가자마자 일이 발생했다.
그곳에 도사리고 있던 ‘공충’이 그들을 집어 삼킨 것이었다.
공충이란 마에 속한 괴이다.
놈의 능력은 공간의 틈새에 숨어있다가 집어삼킨 대상을 단절과 같이 마의 힘으로 이루어진 공간, 즉 ‘마역’으로 이동시키는 것.
그렇기에 아마 강진우 일행은 그런 마역의 한복판에 떨어졌을 것이었다.
“으으음···”
최덕철의 미간에 주름이 잔뜩 잡혔다.
당장이라도 그가 움직인다면 구해낼 수는 있었다.
이미 공충은 제 몸을 숨겼지만, 그라면 그 자취를 추적해 새로운 문을 여는 것도 가능했다.
허나.
그는 지금 이 시점에 공충이 나온 이유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이건 테스트인가···”
이건 그가 쫓는 마인, 거짓 선지자의 함정이자 테스트였다.
자신의 상징인 역십자가 발견되어, 부서졌다.
그게 경찰의 소행 임은 이미 놈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곳에 함정을 설치했다.
만약 최덕철, 네가 지켜보고 있다면 빨리 튀어나와서 이들을 구해보라는 이야기였다.
“······”
물론 최덕철도 강진우 일행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작전을 진행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사람을 지키기 위해 마인을 잡는 것인데.
정작 사람을 희생시켜 놈을 구속하려 한다면 본말 전도가 아닌가.
하지만 최덕철은 자신이 펼쳐 놓은 주술 영역에서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공충에 의해 마역으로 가는 길이 열린 잠깐 사이.
흘러나온 마가, 그리 강하지는 않았던 탓이었다.
“하긴 공충, 그 벌레 새끼한테는 한계가 있지.”
공충으로 인한 마역으로의 이동은, 정확히 그 강함에 한계가 있다.
기본적으로 공충은 자신보다 업을 많이 쌓은 마의 마역으로는 침입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공충 자체가 그리 업을 많이 쌓을 수 없는 괴이다보니, 베테랑 퇴마사만 되어도 공충에 의한 마역 소환을 겁내지 않는다.
그 말인 즉 거짓 선지자는 자신을 방해한 것이 교육생의 소행임을 알아챘고.
이 시험은 그 수준에 맞춰 준비된 것이라는 뜻.
“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최덕철은 씩 웃음을 지었다.
지난 번, 백민성과 그가 혈랑의 일로 부른 것은 강진우 만이 아니었다.
당연히 그와 함께 있었던 모니카도 불러 따로 이야기를 해봤다.
만약 혈랑과의 전투에서 보여주었던 강진우의 무위가 그녀의 말대로라면.
그는 결코 일반적인 교육생의 수준에 머무는 인재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어쩌면.
아니, 확실히.
강진우는 놈의 함정을 깨부수고 나올 수 있었다.
“그럼 믿고 기다려 볼까.”
잠시 일어나 있던 그는 다시 철푸덕 바닥에 앉았다.
그는 식신의 눈으로 조용히 등대를 주시했다.
***
“몇 번째야, 이거.”
달걀 귀신의 뚝배기를 깨며 중얼거렸다.
잠깐 사이, 말 그대로 수십 마리에 이르는 달걀 귀신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왔다.
한옥이라서 그런가.
색동 저고리부터 갓을 쓴 선비까지.
전부 조선 시대에나 볼 법한 옷차림의 달걀 귀신들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전부 다 레벨이 10대 중후반인 탓에 상대하기 어렵지는 않았다는 것 뿐.
“혹시 또 와?”
정은미가 물었다.
달걀 귀신의 밋밋한 얼굴이 순식간에 지겨워진 건지.
나보다도 불쾌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아니, 그래도 조심해. 저쪽에 뭐가 있을 것 같으니까.”
나는 아무 방향이나 가리키며 말했다.
정은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쪽을 주시했고.
나는 이 잠깐의 공백을 최대한 활용하려 했다.
왜냐하면 이제 곧 총공세가 예상되었기 때문이었다.
“······”
이 역시 용사 시절 겪었던 경험이었다.
하급 고블린이나 오크 등.
항상 미묘한 지능을 가진, 단체 생활을 하는 몬스터들이 그랬다.
처음에는 적을 발견하고 마구잡이로 덤비다가, 그 적이 강해서 선발대가 전멸하고 나면 놈들은 그제서야 계획이라는 걸 세운다.
물론 그 계획은 한꺼번에 모여서 공격하자는 단순무식한 계획이지만.
숫자의 우위는 그것만으로도 파격적인 힘을 갖고 있다.
지금만 해도 갑자기 달걀 귀신 수백마리가 몰려온다면···아무리 나라도 힘들겠지.
그래서 나는 먼저 퀘스트 창을 확인했다.
조금 전에 잡은 수십 마리의 달걀 귀신.
그건 쉽게 말해 나에게는 경험치 이벤트였으며 정체되어 있던 레벨이 드디어 올랐다.
레벨 15 달성 퀘스트가 그 보상을 뱉었다.
보상은 예고 되어 있던 대로 직업 스킬을 배우는 것이었지만, 나는 큰 기대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레벨이 오르며 저절로 배워지는 스킬, 그것도 그 중에 처음 얻는 스킬이었다.
이 게임 시스템이 나에게 그리 친절한 것도 아니고.
여기서 너무 좋은 걸 바라는 것은 욕심이겠지.
그렇게 확인한 직업 스킬은···
신성한 용사는 언제나 빛으로 어둠을 물리칩니다.
3분 간 무기에 빛-신성 속성을 부여합니다.
영력 소모 : 5
굉장히 간단한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무기에 빛-신성 속성 부여라니.
이세계에서도 다른 몬스터를 잡을 때는 그리 필요치 않았지만, 언데드에게는 데미지가 2배까지 늘어나는 스킬이었다.
즉 달걀 귀신 같은 놈들에게는 더없이 치명적이라는 말.
거기다 천만다행하게도 마력 대신 영력이 소모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직업 스킬이라면 최소한 쓸 수는 있게 해주겠다는 건가.
지극히 당연한 배려였다.
“좋았어. 다음은···”
기세를 탄 나는 큐브 박스까지 사용하려 했다.
퀘스트 보상으로 개방된 합성 기능을 이제야 사용하려는 것이었다.
그 재료는 당연히 A급 특성이지만, 쓸 데가 없는 마나의 가호.
그리고 지난 번에 주웠던 주박의 방울이었다.
주박의 방울은 이미 깃든 힘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아이템 판정을 받고 있었다.
말 그대로 쓰레기 아이템.
딱 합성하기 좋은 소재가 아닌가.
“일단···”
큐브 박스의 합성창을 열었다.
그러자 네모반듯하게 무언가를 넣는 칸이 9개가 보였다.
최대 9 종류를 합성할 수 있다는 건가.
뭐가 되었든, 나는 일단 합성하려는 2개의 재료를 넣었다.
그리고 합성.
그러자 친절하게도 확인 창까지 떴다.
나는 거침 없이 ‘예’를 선택했고.
큐브 박스가 닫히는 모션과 함께 큐브가 빛났다.
황금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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