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46
46.
46.
막대한 신성이 대기를 누르고, 명왕이라는 존재감이 마역 전체를 뒤덮었다.
언월도를 든 이소월의 등 뒤로 여섯 개의 손과 그 위에 들린 여섯 무기가 안개처럼 보였다.
또한 본래 다섯 개의 눈을 갖고 있다는 금강야차명왕의 눈이 그대로 어둑시니의 본질을 꿰뚫었다.
그리고,
콰과광!
그 주변으로 별안간 벼락이 휘몰아쳤다.
빛이 일순간 어둠을 지우고, 어둑시니의 실체가 드러난다.
이에 거대한 구름 같던 어둠은 그대로 쪼그라들어, 작은 아이처럼 변했다.
그 초라한 행색이 그대로 번개 앞에 노출되었다.
“······”
그 기세에 소리 없이 다가오던 어둠, 어둑시니가 그 자리에 못이 박힌 것처럼 멈춰 섰다.
단지 이소월에게서 터져나오는 광명이 두려운 것만은 아니었다.
금강야차명왕.
절대 부서지지 않기에 금강이라는 칭호가 붙었고, 한때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이었으나 이제는 마를 잡아먹는 명왕이 되었기에 그렇게 불린다.
또한 그가 가진, 모든 방패를 관통한다는 그 성스러운 번개의 전승은 어둑시니에게는 결코 반길 만한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사후세계를 지배하는 존재의 전승은 마에게 더욱 치명적이다.
심판과 지옥을 상징하는 그 힘은 마를 배척하기에 앞서, 마를 지배한다.
때문에 괴이에게 있어서는 퇴마사의 영력과 자신의 업 사이.
그 팽팽한 줄다리기에서 지는 순간, 모든 게 끝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전투조차 필요 없었다.
남은 것은 명계의 왕이 행하는 지엄한 심판 뿐이니.
“······”
하지만 넘쳐흐르는 신성 사이에서 엿보이는 이소월의 격은 결코 낮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보다 조금 위.
그래서 어둑시니는 곧바로 어둠을 거둬들였다.
이대로 도망가려는 속셈이었다.
어둠 그 자체인 어둑시니는 빛이 없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숨을 수 있고, 이동도 가능하다.
더군다나 이곳은 현실이 아닌 마역.
어둑시니에게 도주는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어둑시니가 다음 어둠으로 이동하려는 순간.
“······!”
그것은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발에서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발이라니.
그저 어둠인 자신에게 그런 신체 기관이 어디 있다는 건가.
정신을 차린 어둑시니는 그제야 이상을 파악했다.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자신이 서 있는 곳은 더 이상 학교를 닮은 마역이 아니었다.
“······”
어둑시니는 침묵 속에 경악했다.
어느새 그가 숨을 수 있는 어둠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사방에 날카로운 검이 거꾸로 박혀 있었다.
그 숫자는 셀 수도 없었고, 그 넓이는 산을 넘어 거대한 산맥을 이루었다.
어둑시니가 선 곳은 그 산맥의 한가운데.
거꾸로 솟은 검이 어둠을 찔렀다.
소름 끼치는 고통에 어둠은 몸부림쳤다.
“아아아악!”
갑자기 튀어나온 자신의 비명에 어둑시니는 놀랐다.
어둠은 원래 제 목소리도 갖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어느새 제 목소리로 울부짖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것은 앞으로 발을 내딛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러면 이미 걸레짝처럼 변해버린 어둠이 더더욱 잘게 찢겨져 나갈 테니.
“아아아아아악!”
그 모순 속에서 놈은 그저 고통을 느꼈다.
느낄 리 없는 고통을 느끼며, 지를 리 없는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곳은 지옥이었다.
도산지옥.
악이 가게 되는 10 가지 지옥 중 하나.
지고한 명왕의 전승은 지옥을 통째로 어둑시니 앞에 현현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 앞에 선 금강야차명왕, 이소월의 언월도가 위로 들려졌다.
“이곳에서 네 업을 깨달아라.”
그 언월도의 날이 번뜩였다.
그것은 어둑시니의 목을 치는 대신, 밟고 선 바닥을 내리쳤다.
그러자 검들이 무너져 내렸다.
온통 칼날 밖에 보이지 않는 은빛 구덩이 속.
어둑시니는 그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영원히, 올라오지 못했다.
***
“···저게 뭡니까?”
나는 이소월의 퇴마를 보며, 남태수에게 물었다.
그만큼 그녀가 보인 불도의 전승은 내 예상과 다른, 이질적인 힘이었다.
51 레벨의 어둑시니가 전투 한 번 해보지 못하고 그대로 소멸했다.
그것도 주변의 풍경을 장악한, 검의 산에 파묻혀서.
그 지옥의 풍경은 나에게는 환상에 불과했지만, 어둑시니에게는 실체를 갖고 있다는 듯 놈을 찔러 죽인 것이었다.
“저건 오대명왕의 전승이 가진 힘 중 하나입니다. 마를 지옥으로 불러들여 심판할 수 있죠.”
남태수가 말했다.
그건 얼핏 듣기로는 사기 기술처럼 들렸다.
“그럼 다 저렇게 퇴마를 할 수 있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살아있는 인간에게는 통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퇴마사의 격이 마를 어느 정도 앞설 때나 가능하죠. 만약 놈의 업이 조금만 더 높았어도 전투를 치러야 했을 겁니다.”
쉽게 말해 레벨이 높거나 비슷한 적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건가.
이소월과 어둑시니의 레벨 차이는 7.
적다면 적고, 크다면 큰 차이였지만.
냉정히 말해 그냥 싸웠어도 이소월이 유리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야말로···약자멸시의 기술이군.
“···대단하군요.”
하지만 그걸 무시할 수는 없었다.
자신보다 약한 적이라고 해도 전투에 의한 변수는 얼마든지 있다.
그렇기에 적당히 약한 마를 확실히 퇴마할 수 있는 방법은, 퇴마사에게는 강적에 대한 대비만큼이나 중요했다.
애초에 아군보다 강한 마와 전투를 벌이는 것은 퇴마사에게는 지양되는 일이었으니까.
“맞습니다. 비록 소월 누님은 오대명왕 중 금강야차명왕의 깨달음만 얻은 상태지만, 다섯 중 하나만으로도 이 정도의 퇴마가 가능한 셈이죠.”
어째서인지 자기가 우쭐해진 얼굴로 남태수가 말했다.
조금 전만 해도 적령 수준이라는 말에 큰일 났다는 듯 행동하더니.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데, 혹시 그 다음은 뭡니까?”
“오대명왕을 모두 깨우친 자는 보살이라 불립니다. 그리고 보살 중 뛰어난 일곱은 과거 칠불의 칭호를 얻고, 중생총본을 굽어보는 미륵불 님을 보좌하게 되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소월은 중간 간부 쯤 되는 셈인가.
레벨이 비슷하다 싶었더니, 조직 내의 위치도 서인나 팀장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누님.”
“수고하셨슴다!”
퇴마를 끝낸 이소월에게 구경만 하던 남태수와 한성민이 말했다.
“됐다. 그보다···”
하지만 이소월은 언월도를 한번 털어내면서, 그 둘이 아닌 나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묘한 눈초리였다.
뭐지?
그런 의문도 잠시.
이내 이소월은 나에게서 시선을 떼고 주변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에 한성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그러심까?”
“이놈이 마역의 주인이라고?”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럼 놈이 소멸했는데, 왜 마역이 멀쩡해 보이냐?”
“어···?”
듣고 보니 그랬다.
보통 마역의 주인이 퇴마되면, 마역은 급격히 붕괴되기 시작한다.
마역이 붕괴되면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현실의 공간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걱정할 건 없었지만.
정작 지금은 학교의 모습을 한 마역 어디서도 붕괴의 징후는 찾을 수 없었다.
그 말인 즉, 마역의 주인이 따로 있다는 뜻.
“그럴 수가···”
남태수가 할 말을 잃은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소월은 여전히 냉정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정신 차려라. 그렇다 해도 우리가 할 일은 변하지 않아.”
“하지만 누님, 이 정도의 괴이가 주인이 아니라는 건···”
마역의 주인은 기본적으로 마역의 다른 마보다 훨씬 강한 존재다.
레벨로 치면···적어도 10 레벨 정도의 차이.
그렇기에 조금 전 소멸한 어둑시니가 마역의 주인이 아니라면.
진짜 마역의 주인은 이소월조차 이기지 못할 정도로 강한 놈이라는 뜻이었다.
이에 이소월도 표정을 굳히며 침묵했지만, 그녀의 말대로 우리가 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일단 입구로 돌아가시죠. 그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건···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내 말에 우리는 다시 이동을 재개했다.
여전히 을씨년스럽기 그지 없는 마역의 학교.
하지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우리는 전투 한 번 없이, 무사히 입구로 돌아왔다.
우리는 곧바로 한성민에게 생존자 한 명과 차서현을 들려 보내고 입구 앞에 섰다.
“정말 가실 겁니까?”
“물론이다.”
이소월과 남태수.
여전히 두 사람의 의견은 갈리는 모양이었다.
조금 전이라면 이소월이 남태수의 의견을 찍어누르고 그를 끌고 가는 모양새였지만.
이번에는 그 둘의 시선이 동시에 나를 향했다.
“강 경감님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까?”
그리고는 나에게 의견을 구했다.
나야 물론 이럴 때는 빠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만, 그럴 수는 없었다.
“······”
내 눈에는 아직 퀘스트 진행을 요구하는 화살표가 보이고 있었다.
녹색에 이어 어둑시니가 퇴마된 이후에는 적색의 화살표도 사라진 상태.
그래서 지금은 그냥 흰색의 화살표만이 우리가 아직 가지 않았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적색이 아니라는 건···적이 없다는 건가?
물론 확실한 건 아니었다.
지금까지 흰색의 화살표였다고 해서 전투가 없었던 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머리를 굴렸다.
설령 퀘스트가 있다고 해도 말도 안 되는 적에게 도전하는 짓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적당한 중재안을 제시했다.
“일단 다시 들어가보죠. 최소한 마역의 주인을 확인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확인한 다음에는?”
“너무 강한 적이라면 전투는 피해야죠.”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일 거라 생각하냐?”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제 감지 능력과 이소월 님의 전투력이라면, 설령 들키더라도 도주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
내 말에 이소월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내가 가진 감지 능력을 체감했기 때문이었다.
잘만 하면 아예 마에게 들키지 않고 레벨만 확인하는 것도 가능할 테니.
그래서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 일단 확인은 하고,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판단되면 철수하시죠.”
“그 정도라면 저도 동의합니다.”
이소월이 반대할 거라 생각한 걸까.
남태수는 내 의견에 잽싸게 찬성했다.
그러자 이소월은 헛웃음을 터뜨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마역으로 들어갔다.
원래 갔던 방향과 반대로 걸으며 나는 내심 전투를 준비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한참을 걸어가도 주변은 너무나도 조용했다.
“어째 조용하네요.”
“그건 소월 누님 때문일 겁니다.”
내 말에 남태수가 답했다.
그는 이럴 걸 미리 알고 있었다는 눈치였다.
“왜요?”
“잠깐이긴 해도 명왕의 전승이 강림하고, 지옥으로의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까. 어설픈 잡귀들은 이미 다 도망가고도 남죠.”
“아하···”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리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가만히 앉아서 경험치를 올릴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게 다 도망가버렸다니.
현재 내 레벨은 24다.
조금 전 50 레벨이 넘는 어둑시니를 잡은 덕분에 금방 한 단계 더 레벨이 오른 것이었다.
즉 이제 1 레벨만 올라가면 새로운 직업 스킬을 얻을 수 있다는 말.
그래서 더더욱 아쉬웠다.
이래서야···차라리 마역의 주인이 좀 강하더라도 어떻게든 잡고 레벨 업을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마침내 길었던 복도의 끝이 등장했다.
“여기가 주실의 입구인 것 같은데···”
“조심해라, 전투의 흔적이다.”
복도 끝에 있는 것은 커다란 문이었다.
학교 정문에나 있을 법한, 강철로 만들어진 울타리 같은 문.
그런데 이소월의 말대로 그 문은 산산이 부서진 채였다.
또한 주실은 마역의 주인이 머무는 공간을 뜻했다.
즉 보스룸이라는 말.
그래서인지 두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 모였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 눈에도, 혼령 감지에도 걸리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근처에 마는 없습니다. 그와 비슷한 것도 안 보이고요.”
“···그럼 진입하지.”
우리는 조심스럽게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은 넓은 강당 같은 곳이었다.
여긴···체육관인가?
대충 보니 이 역시 학교에 있는 건물을 흉내 낸 듯 보였다.
그리고 그런 주실에는 역시 전투의 흔적이 역력했다.
붉게 문드러진 벽에는 거대한 야수가 할퀸 흔적이 있었고.
천장과 바닥은 거대한 화마가 휩쓸고 간 듯, 온통 잿더미가 널려 있었다.
거기에 사방에는 갖가지 무기가 지나간 자국도 보였다.
“···심상치 않군요.”
남태수가 표정을 굳힌 채 말했다.
그의 말대로 남은 흔적만 보더라도, 이곳에서 벌어진 것은 만만치 않은 규모의 전투였다.
하지만···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둘 중 하나는 마역의 주인이 남긴 흔적이라 쳐도, 나머지 하나는 뭘까.
이곳에 들어온 퇴마사는 차서현과 우리말고는 없을 터인데.
“이상하군.”
이소월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한 듯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한쪽 벽에 난 거대한 손톱 자국과 잿더미들을 가리켰다.
“저건 불여우의 흔적이다. 자국 크기를 보니 최소한 100년은 넘게 묵은 녀석이겠지.”
불여우.
괴이의 일종으로 오랜 시간 살아남아, 불을 다루는 신비를 깨우친 구미호를 뜻했다.
전제부터가 구미호가 진화한 것이나 다름이 없어, 그만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불여우가 이 마역의 주인이었다고 해도 이상할 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이소월의 말은 이어졌다.
“근데 다른 건 괴이나 령이 남긴 흔적이 아니야. 이건 같은 퇴마사의 흔적이다.”
“저희말고 먼저 온 놈들이 있다는 말입니까?”
“왔겠지. 그리고 그놈들은···”
“마인이겠네요.”
내 말에 이소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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