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54
54.
54.
서인나와 다른 세 명이 부두의 입구를 향해 움직였다.
나는 권태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럼 저희도 가죠.”
“음, 그러지.”
벽을 따라서 부두 반대쪽으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걸었다.
지도상으로는 도보로 10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그러던 중 권태수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보니 자네하고 현장에 나온 건 또 처음이구먼.”
“그렇네요.”
늑대 인간을 잡은 이후로도 일주일 간 몇 개의 사건을 처리했지만, 그동안 권태수와 함께 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서로 인사만 했던 사이지만, 이제야 서로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뭐 찾는 걸 잘한다지? 유용한 능력이긴 하네만, 싸우는 건 잘 하는가?”
“대충 한 순경이랑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겁니다.”
“호오, 그놈이랑? 좀 치는가 보구만.”
내 말에 권태수는 그렇게 답했다.
근데 지금 내 걱정을 할 때인가.
나는 권태수의 몸을 노려보았다.
그의 몸집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몸 여기저기에는 오랜 세월 신체를 단련해온 흔적이 명확했다.
왕년에는 혼자서 폭력 조직을 무너뜨릴 정도였다고 하니, 아마 그 영향일 것이다.
분명 평범한 노인의 신체는 아니긴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딱 그뿐이었다.
“그러는 영감님은 잘 싸우세요? 은퇴할 나이가 한참은 지난 것 같은데.”
“나? 나야 두말 할 것도 없지. 원래 노인이 더 무서운 법이여. 무협지에서 노인과 여자, 아이를 조심하라는 말도 못 들어봤나?”
아쉽게도 내가 있던 이세계는 그쪽이 아니었다.
“그야 여기는 무림이 아니니까요.”
“퇴마사잖나. 이 업계도 무림이랑 다를 것 하나 없어. 오래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강하다는 증거지.”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긴 했다.
그가 퇴마사가 된 것은 거의 20년 전이라고 했던가.
“그럼 영감님은 능력이 뭡니까?”
“나? 직접 보여주지. 이걸 보게.”
권태수는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살짝 손짓을 하자, 거기에는 원래 없던 트럼프 카드가 들려 있었다.
“오, 마술도 할 줄 아세요?”
“마술이 아니라 환상이다, 이놈아. 척 보면 모르겠나?”
“아무리 봐도 마술인데요.”
“에잉···쯧. 그럼 이건 어떤가.”
그는 혀를 차며, 이번에는 트럼프가 아닌 다른 걸 보여주었다.
순식간에 그의 모습이 둘로 나뉘었다.
권태수가 둘이 되어 서로 쌍둥이처럼 걷는다.
그의 말 그대로, 환상이었다.
“진작 이런 걸 보여주시지.”
“아까 건 일부러 마술처럼 보인 거다. 내 손녀가 그런 걸 좋아해서.”
손녀라는 건 아마 그가 조직에게서 구했다는 그 소녀일 것이다.
소녀였던 게 20년 전이니, 아마도 지금은 최소한 나와 비슷한 나이대겠지만.
“손녀 분은 퇴마사가 아닌가 봐요?”
“당연히 아니지! 좋은 일도 많은데 굳이 이딴 짓을 뭐하러 시키겠는가?”
하긴 그건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방을 가리켰다.
어느새 우리가 대기해야 할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여기서 일단 대기입니다.”
“알고 있네. 근데, 언제 들어가면 되는가?”
들어가는 건 팀장 일행이 돌입한 직후로 정했다.
그리고 그 타이밍에 대해서, 서인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알 거라고 하시던데요?”
“뭬야?”
대답이 탐탁지 않다는 듯 권태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순간.
쿠우우웅!
멀리서, 굉음이 들려왔다.
어두워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거대한 쇳덩이, 아마도 컨테이너 중 하나가 박살이 나는 듯한 소리였다.
“흥, 이제 알 것 같구먼.”
“그럼 갑시다.”
우리는 지체 없이 부두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가장 먼저 넓고 높게 쌓아 올려진 컨테이너들이 시야를 가렸다.
5층, 6층으로 쌓인 컨테이너는 딱 그만한 층수의 건물만 한 높이.
하지만 메인 퀘스트의 진행을 인도하는 화살표는 그 너머를 가리켰다.
바닷가와 인접해 있는 커다란 창고들이 있는 장소였다.
“창고 쪽입니다. 컨테이너를 뚫고 가야겠네요.”
“알겠네. 길을 잘 찾는다더니, 그 말대로군.”
내 말에 권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주시했다.
그러더니 곧 표정을 조금 굳혔다.
“조심하게.”
“왜, 기척이라도 느꼈어요?”
“그건 아니네만···딱 봐도 덮치기 좋은 곳이 아닌가.”
그건 그랬다.
우리는 지금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절벽의 골짜기를 지나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서인나의 작전은 의미가 있었다.
지금도 간간히 들려오는 굉음은 우리의 귀에만 들리는 게 아닐테니.
“있어봐야 소수일 겁니다. 그리고 그 정도는···저희도 감당해야죠.”
“당연한 소리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심 불안하긴 했다.
만약 적들이 컨테이너 위에서 매복을 하고 원거리 공격이라도 해온다면 이쪽에서는 손을 쓰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나 역시 사방을 주시하며 움직였다.
짙은 어둠에 그리 멀리 보이지는 않았지만,
“······”
얼마 안 가 나는 적의 존재를 확인했다.
선명한 붉은색을 띈 레벨 표시.
48 레벨의 무언가가 전방에 있었다.
“적입니다.”
“뭬야? 어디? 숫자는?”
나는 전방을 가리켰다.
놈은 매복 같은 수단조차 쓰지 않고, 컨테이너들 사이에 난 도로를 가로막고 있었다.
마치 그곳을 지키는 수문장처럼.
“한 명입니다. 수준은···한 순경과 비슷한 것 같네요.”
한성민의 레벨은 44.
또한 권태수의 레벨은 55로 48 레벨의 마인보다 높았지만.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지.”
그 말대로였다.
놈들이 사용하는 주술은 부두술.
이를 이용해 전투 시에만 순간적으로 자신이 가진 힘을 증폭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자네, 지금부터 아무 말도 말게.”
권태수는 나를 보며 말했다.
그 속내는 어렵지 않게 예측이 가능했다.
그의 능력은 환상.
이를 이용해 처음부터 내 존재를 숨길 작정이리라.
하지만.
“환상만으로는 오래 속이지 못할 텐데요?”
그의 능력은 단지 시각을 속일 뿐이었다.
하다 못해 발소리도 숨기지 못하니, 이곳에서는 그리 효율적인 은폐는 힘들 터인데.
그러나 권태수는 의기양양하게 입을 열었다.
“걱정 말게. 다른 것도 있으니.”
“다른 거요?”
“혹시 홍길동이라고 들어 보았는가?”
“한국에 홍길동 모르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내가 그 홍길동의 도술을 쓰는 사람일세.”
“···진짜요?”
처음 들어보는 술법이라서일까.
어째 도를 아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여기서 그의 능력을 의심할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계속해서 전진했다.
그러자 얼마 안 있어, 컨테이너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적의 실루엣이 서서히 진해졌다.
그리고 동시에 상대 역시 이쪽을 알아차린다.
“이야, 역시 보스의 말대로네.”
그렇게 말한 것은 거구의 사내였다.
키는 2미터에 가까웠고, 살집도 꽤나 있어 육중한 이미지였다.
“뒷문으로 미꾸라지가 기어들어올지도 모른다더니, 진짜 있잖아?”
아무래도 이 조직의 보스는 우리의 움직임을 대충 예측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리 난해한 작전을 짜고 들어온 건 아니니, 놀랄 일은 아니었지만.
저 마인이 알고 있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거, 지원 2팀에서 오셨다지?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으시네, 경찰 나으리.”
“날 아나?”
“우리라고 뭐, 모든 경찰 얼굴을 외우겠수? 근데 서인나인지 지랄인지 하는 년 면상은 잘 알거든. 그리고 영감님도. 워낙 오래 해먹으셨어야지.”
그렇게 말하며 홍만성은 컨테이너 옆을 벗어나, 도로 한복판으로 나왔다.
그러자 달빛이 그의 모습을 완전히 드러냈다.
얼굴은 그야말로 조직폭력배에 어울리는 험상궂은 면상.
분명 경찰에서 파악한 메신저의 조직원 신상 내역에 있던 인물이었다.
이름은 홍만성.
조직 내에서는 행동대장격 지위에 있다고 했던가.
또한 놈의 복장은 평범한 셔츠였지만, 그 위에 심상치 않은 장신구를 두르고 있었다.
그건 해골을 엮은 목걸이.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해골 세 개가 금목걸이에 꿰여, 남자의 가슴팍에서 흔들거리고 있었다.
“네놈···!”
그 목걸이를 발견한 권태수가 목소리를 내리 깔렸다.
누가 보더라도 어린 아이의 해골.
하지만 아쉽게도 그건 단순히 모조품이나 장식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저 해골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었으니.
부두술에 있어, 제물로 바쳐진 자의 해골은 일종의 어음이다.
저 해골을 부숨으로써, 술자는 정령인 로아에게 받아야 할 대가가 주어져야 하는 시기를 결정하는 것이다.
즉 저 해골 하나하나는 이미 예전에 죽임 당한 아이들의 것이자, 저놈의 도핑 물약이었다.
“천벌 받을 짓만 골라하는구나!”
권태수가 소리쳤다.
하지만 홍만성은 오히려 비웃을 뿐이었다.
“하! 뚫린 입이라고 막 내뱉으시네. 사형수 주제에 나한테 훈계라도 하시게? 영감님도 따지고 보면 나랑 똑같으시잖수.”
“똑같긴 개뿔이! 내 너 같은 놈만 수십을 쳐죽였다, 이 호랑말코 같은 놈아!”
“그러셨어? 거 참 대단한 일 하셨네.”
그 순간 홍만성의 몸에서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그것은 시뻘건 가시.
손과 몸통, 그리고 머리 위까지 돋아난 그것은 그의 능력이었다.
저놈은 피부를 변형 시킨 저 단단한 가시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적을 공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가슴팍에 달린 해골 중 하나를 한 손으로 깨부쉈다.
그러자,
“우오오오오!”
웅혼한 소의 울음소리가 그곳에서 새어 나왔다.
나는 재빨리 조금 전까지 살펴보던 부두교 자료의 기억을 뒤졌다.
수많은 로아 중, 소와 관련된 로아는···보수(Bosou).
보수는 그것이 깃든 물소 떼가 인간의 마을을 습격하던 사자 떼를 들이받아, 그 전부를 거대한 뿔로 꿰뚫어 죽였다는 전승을 가진 로아로.
보수가 가진 능력은 주로 육체의 강화였다.
“그럼 시작해보자고!”
넘치는 힘 때문일까.
기세등등해진 홍만성이 이쪽으로 돌진해왔다.
그의 눈동자에는 오직 권태수만이 비치고 있었다.
***
“밟아주마!”
홍만성이 권태수를 보며 소리쳤다.
그의 온 몸에서 거대한 힘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땅이 울린다.
단단한 콘크리트 위로 마치 설원처럼 발자국이 남고.
그 발이 만들어내는 속도는 거구에 어울리지 않는 신속.
말 그대로 가시 돋친 포탄이 되어 홍만성은 권태수에게 날아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홍만성은 그대로 권태수의 정면에 몸통 박치기를 가했지만.
“또 잔재주를···!”
동시에 권태수의 몸이 연기처럼 사라지며, 그는 허공만을 갈랐다.
“쯧!”
공격이 허사로 돌아갔음에도 홍만성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경찰이 이들을 알고 있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조직에서도 퇴마 경찰에 대한 정보를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외부로 알려진 권태수의 능력은 환상.
따라서 이런 장난질 따위는 놀랄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다음 순간, 그를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역시 한 놈이 더 있는 것 같은데.”
육체 능력을 강화시키는 보수는 단지 완력에만 적용되는 개념이 아니다.
그 외에도 시각은 물론, 청각과 후각을 포함한 오감의 인식 능력 역시 크게 상승시킨다.
그래서 그는 권태수의 환상을 지나치는 순간, 또 다른 인간의 체취를 감지할 수 있었다.
즉 처음부터 이곳에 온 경찰은 둘이었고, 권태수는 그 중 하나를 환상을 통해 숨기고 있었다는 뜻.
“······”
그래서 홍만성은 자리에 멈춰 자신의 의식을 집중했다.
만약 권태수가 환상으로 한 놈을 감춰주고 있다 해도.
그놈이 숨을 쉬고, 단 한 걸음이라도 움직인다면 자신의 후각과 청각까지 속일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응···?”
그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코에서도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감지했던 체취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이에 그가 눈썹을 들어 올리자, 이번에는 권태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뭘 그리 멍하게 있는 게냐.”
권태수는 어느새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 홍만성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농락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홍만성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이 영감탱이가!”
홍만성은 자신의 가시 투성이의 주먹을 들어 올려, 권태수가 밟고 선 컨테이너를 때렸다.
콰광!
그러자 철이 찌그러지는 파열음과 함께 다섯 개나 쌓여있던 컨테이너가 기우뚱 넘어갔다.
그리고는 굉음과 함께 놀이용 블록처럼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권태수의 목소리는 끊어지지 않았다.
“거, 성질이 급한 놈이구나.”
이번에는 반대쪽 컨테이너 위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홍만성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권태수를 노려보았다.
“환상만 사용하는 게 아니구만, 영감.”
분명 권태수는 바로 조금 전까지 무너진 컨테이너 위에 서 있었다.
또한 그 모습은 환상이라 할 수 없었다.
홍만성의 시각뿐 아니라, 후각과 청각 역시 그가 그곳에 서 있다는 걸 증명하고 있었으니.
그럼에도 권태수는 컨테이너가 무너지는 그 순간, 자신의 위치를 바꿨다.
하지만 홍만성은 그가 이동하는 궤적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로아로 인해 강화된 인지 능력을 생각한다면, 단순한 움직임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그래서 홍만성은 권태수에게 자신이 모르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호오, 잘도 알아챘구먼.”
이에 권태수는 숨길 것도 없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홍만성은 혀를 찼다.
“쯧, 그새 뭘 또 배운 거야?”
“배우다니. 이 힘을 쓴 게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것을.”
“하! 20년? 그걸 우리가 몰랐을 리가 있나. 경찰 놈들 정보는 우리가 다 꿰고 있는데.”
“몰랐을 수도 있지. 이걸 본 놈들이···”
그 순간 컨테이너 위에서 권태수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이어진 것은,
“모조리 죽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바로 홍만성의 뒤였다.
뻐억!
곧바로 무언가에 얻어맞은 홍만성의 거구가 골프공처럼 날아, 컨테이너에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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