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65
65.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다영이와 함께 서포트 하겠습니다.”
나의 검을 본 송민호는 염려를 그 얼굴에서 지우고, 그렇게 말했다.
생각보다 간단히 수긍한 것이었다.
그가 성화라고도 불렸던, 이 백염의 힘을 알고 있지는 않을 텐데.
아마 생긴 것만 보고 어련히 태워 죽이겠거니 판단한 건가.
뭐, 그렇다 해도 틀린 판단은 아니었다.
빛과 화염의 속성이 결합된 이 성화는 단순한 불이 아니었으니까.
“그럼 그쪽은 부탁합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하진주에게 달려갔다.
몸에 새겨진 아라한의 전승을 개방하고, 바닥을 박찬다.
“키이-”
그러자 하진주의 고개가 꺾여 나를 바라보았다.
붉게 물든 눈동자에, 기괴하게 꺾인 목까지.
어딘지 모르게 구울을 닮은 모습이었다.
“커어어···”
또한 내 움직임에는 장쇠도 반응했다.
역시 허 씨를 지키려는 건지, 장쇠의 몸이 나를 향했다.
하지만 약속대로 김다영은 놈을 그냥 놔두지 않았다.
촤악!
김다영의 참격이 장쇠의 하나 밖에 없는 다리를 베었다.
비록 잘라내지는 못했지만, 그 때문에 놈은 움직임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장쇠가 맷집이 좋더라도 김다영의 공격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으니.
그래서일까.
타다다닥!
산만한 발걸음과 함께 움직인 것은 하진주의 하체였다.
상체도 없이 시뻘건 절단면을 그대로 노출한 그 하체는 기괴할 정도로 빠르게 나를 향해 돌격해왔다.
“기분 나쁘게···”
하체 밖에 없는 언데드는 나조차 처음이었기에, 묘한 불쾌감이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마침 잘 된 일이었다.
성화는 성수처럼 빛 속성에 약한 것들을 특히 잘 태우는 화염이다.
그래서 원래라면 타지 않을 영체조차 태울 수 있는 불꽃.
그러니 하진주에게 깃든 저 허 씨라는 원령은 이 검에 베이면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저 하체는 그 질문에 대한 훌륭한 실험 대상이었다.
타닥!
내 눈앞까지 쇄도한 두 다리는 괴상하게 꺾이며 나를 공격해왔다.
인간의 관절으로는 있을 수 없는, 예측하기 힘든 궤도.
하지만 나는 그걸 어렵지 않게 회피했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결코 사람처럼 공격해오지 않는 것은 언데드 몬스터의 특기였다.
저 정도의 페이크는 지 대가리를 뽑아 집어던지는 데스 나이트에 비하면 귀여울 정도다.
“키익!”
내가 여유롭게 하체의 공격을 피하자, 멀리서 보고 있던 상체가 그런 소리를 냈다.
그렇다면···내가 이 하체를 태우면 저놈이 소리를 지른다는 걸까.
나는 그런 의문과 함께 검에 영력을 쏟아부었다
검을 감싸던 하얀 불꽃이 폭발하듯 타올랐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스킬까지 동원해, 그대로 허리의 절단면을 향해 내리 꽂았다.
“수호자의 일격!”
검은 그대로 그 하반신에 깊숙하게 박혔고.
그 상태로 안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성화는 순식간에 그 두 다리 전체로 옮겨붙었다.
그러자,
“키아아아아아아!”
예상대로 멀리 떨어진 그 상체가 발광을 하며 괴로운 비명 소리를 토해냈다.
또한 하체는 성화를 결코 오래 버티지 못했다.
채 몇 초가 지나기도 전에 그 하체가 전부 재로 변해 사라져가고 있었다.
과연.
내가 사용했지만, 터무니없이 확실한 효과였다.
하기야 따져보면 그럴 만도 한가.
빛과 화염이라는 언데드에게는 쥐약이나 다름없는 속성에, 혼령에 추가 데미지를 주는 제사장 세트의 특성.
거기에 방어 무시하는 액티브 스킬까지 더해진 공격이 아니던가.
아무리 허 씨라는 강력한 악령이라도 이걸 버텨내기는 결코 쉽지 않으리라.
“그럼···”
나는 곧바로 상체를 향해 달렸다.
효과를 확인한 참이었으니 이제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키이-”
허 씨의 눈동자가 나와 마주쳤다.
그 안에 서린 것은 광기에 이른 분노.
그리고···두려움이었다.
허 씨가 품속에서 부적을 꺼내 내던진다.
그러자 부적에서는 령이 튀어나와 나와 허 씨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저 지경이 되어서도 그 잔재가 남아있는 건지, 하진주가 쓰던 기술이었다.
“귀찮게···”
나는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지금의 나에게 저 정도의 령들은 상대도 안 되지만.
그래도 나를 상대로 가림막 수준의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공격의 범위가 그리 크지 않은 나는 저것들을 하나 하나 베어야 했기에.
게다가 화염 속성을 추가해주는 은 지속 시간이 달랑 10분 밖에 안 되는 소모품이다.
그러니 만약 이대로 허 씨가 령들을 내던지고 도주를 선택한다면, 나에게는 곤란한 이야기.
그러나 다행히도 그런 나의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천추의 별.”
송민호의 짧은 목소리와 함께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마지막 방울이 깨졌다.
그와 동시에,
콰과광!
눈앞을 가로막던 령들이 마치 폭발에 휩쓸린 것처럼 일제히 터져나갔다.
온갖 버프로 떡칠된 김다영의 참격만큼이나 강렬한 일격이었다.
이게 그가 마지막까지 아껴두고 있던 힘인가.
단순히 강화 술사인 줄만 알았더니.
베테랑 퇴마사답게, 나름대로 비수를 숨기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럼-”
송민호의 도움으로 뻥 뚫린 길을 일직선으로 달려갔다.
한계까지 끌어올린 각력이 귓가에 바람 소리를 만들어냈고, 허 씨는 아무런 방벽도 없이 나를 맞았다.
그리고,
콰득-하는 소리와 함께 내 검은 그녀의 가슴에 박혔다.
허 씨, 하진주의 눈동자에서 두려움이 한껏 커진다.
이어서 맹렬한 백염이 그녀의 몸을 통째로 삼켰고 이내 그 눈동자는 두려움과 함께 불에 타 사라졌다.
* * *
그리고 잠시 후.
허 씨, 즉 하진주를 쓰러뜨린 우리는 나머지 역천도당들도 무사히 정리하고 마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물론 안타깝게도 피해가 없지는 않았다.
독침에 맞고 쓰러진 퇴마사 셋 중 하나가 도중에 사망한 것이었다.
때문에 아직 독에 중독된 둘과, 죽은 한 명의 시체를 다른 퇴마사들이 서둘러 병원으로 옮겼고.
겨우 상황을 정리하고 나니, 남은 것은 송민호와 나, 그리고 김다영 뿐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상황을 지휘하던 송민호가 겨우 한숨을 쉬며 나를 돌아보았다.
“송민호 씨도 수고하셨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어요!”
나와 김다영이 그의 말에 답했다.
하지만 송민호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는 다시 한번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일은 저희가 강 경감님에게 너무 폐를 끼친 것 같군요.”
“에이, 폐라고 할 것까지 있습니까.”
“아닙니다.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허 씨는 저희 쪽에서 처리했어야 했습니다. 이거야···귀한 손님을 불러 놓고 밥상을 차리게 한 것과 다름이 없군요.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그러더니 그는 곧장 나에게 허리를 숙였다.
그의 행동에 김다영 역시 눈치를 보더니, 그의 옆에서 나에게 고개를 숙인다.
이 와중에 뭐 이럴 거까지 있나 싶지만.
생각해보면 그럴 만한 일이기도 했다.
이번 일은 LB 아카데미 쪽의 공식적인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요청에 따르면, 그들이 나에게 요구한 것은 신기의 탐색.
그렇기에 LB 아카데미에게는 내가 그 탐색을 할 수 있도록 제대로 서포트 해야 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하고 내가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또한 그것도 모자라 적의 가장 핵심 전력인 허 씨를 내 손으로 퇴마하게 했으니.
경찰과 정식 기관 사이의 체면을 생각한다면, 그의 진중한 사과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이번 일에 대해서는 향후 정식으로 사죄하겠습니다.”
이어서 송민호는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사죄 해준다고 뭐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나는 슬쩍 그의 눈치를 보았다.
안 그래도 LB 아카데미 쪽에는 나도 원하는 게 있었으니까.
지금까지는 일단 사건을 해결하고 나서 접근해보자는 생각이었으나.
오히려 내 예상보다 일이 더 잘 풀렸으니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그보다 저 개인적으로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예, 얼마든지 말씀해보시죠.”
송민호는 의아하다는 얼굴이었지만, 정중히 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강령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나의 물음을 들은 송민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강령은 분명 저희 LB 아카데미에서 계승하고 있고, 또 지금도 연구 중인 분야입니다. 그쪽에 관심이 있으신 겁니까?”
“네, 그런 셈이죠. 그런데 강령이 정확히 뭡니까? 빙의 같은 건가요?”
“비슷한 개념이긴 합니다. 다만 빙의는 령이 인간에게 씌이는 것. 그래서 주도권이 령에게 있습니다. 그에 반해 강령은 퇴마사가 행하는 술법 중 하나입니다. 소재가 되는 영혼이 가진 전승의 일부를 구현하는 거죠. 넓게 보면 법당이나 교회가 구현하는 전승과 다를 게 없습니다.”
법당과 교회는 그들의 신이나, 혹은 신도가 가진 전승을 구현한다.
강령은 그와 비슷하지만, 그 매개가 신앙이 아닌 영혼이라는 뜻.
어떻게 본다면 종교와 관련이 없는 영혼의 전승을 구현한다는 의미였다.
“그럼 강령은 배울 수 있는 겁니까?”
“가능은 합니다. 아니, 오히려 강령은 그리 어려운 술법이 아닙니다. 어려운 건 그 영혼을 구하는 거죠.”
송민호의 말뜻을 나는 이내 이해했다.
그는 강령이 영혼이 가진 전승을 구현한다고 했다.
그 말은 전승을 가질 정도로 유명한 영혼이 내 손에 있어야 한다는 뜻.
“그럼 아무 영혼이나 되는 게 아니라···”
“예. 최소한 위령급의 영혼은 되어야 합니다.”
위령급.
즉, 위인의 반열에 오른 인간의 영혼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어쩐지 강령에는 에픽 등급 이상의 영혼이 있어야 한다 어쩐다 하더니.
그게 이 소리였나.
“······”
이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어디서 그런 걸 구할지, 전혀 감도 잡히지도 않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다시 송민호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물어보는 것 뿐인데.
여기서는 뻔뻔하게 나가도 되겠지.
“그럼 혹시 위령급 영혼을 구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보통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송민호는 딱 잘라 부정했다.
그러나 그의 말은 거기서 끝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강진우 경감님이라면 또 모르겠군요.”
“모르다니요?”
“실은 강령에 필요한 건 위령만 있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그 위령이 서릴 수 있는 신기가 따로 필요한데, 그게 위령만큼이나 구하기가 힘들 거든요. 그런데 우연히도 그게 지금 강진우 경감님 손에 있지 않습니까?”
그는 내가 든 신기를 바라보았다.
그건 원래 허 씨의 원혼이 봉인되어 있던 신기였다.
하지만 그 원혼이 성화에 불타 소멸하며 지금은 그 안이 텅 비어 있었다.
팔찌 형태의 신기.
“아마 저희 아카데미의 강령과에서 보관 중인 위령이 몇 있기는 할 겁니다. 이를 신기에 서리게 한다면···가능은 한 일이죠.”
송민호의 말은 이 안에 원혼이 아닌 위령을 서리게 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근데···그래도 되나?
그럼 아카데미는 나에게 이 신기도 주고, 위령까지 찾아준다는 말인데.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카데미 쪽의 출혈이 너무 컸다.
“아카데미 측에서 그렇게까지 해주실 수가 있나요?”
“물론 제 권한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역시나.
그리고 그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에 대한 보고가 올라가면 이사회 측에서 강진우 경감님에 대한 관심이 생길 겁니다. 저희의 잘못도 있는 데다, 워낙 큰 활약을 하셨으니까요. 그러니 그 사이에 제가 다리를 놔드릴 수는 있습니다.”
협상 테이블까지는 자기가 마련해주겠다는 건가.
결국 내가 이사회, 즉 아카데미의 상부와 만나 직접 결판을 지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다소 귀찮아 지는 게 사실이었지만.
강령 기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이야기 정도야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니, 응하는 게 이득인가.
“그럼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말했다.
송민호는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다시 아카데미로 돌아갔다.
* * *
다음날.
사건은 끝났지만, 어제 송민호가 제안한 아카데미 측과의 협상 때문에 나는 여전히 아카데미에 머물고 있었다.
그것도 어제 송민호에게서 들은 바로는 이사회 회의가 끝나는 오후 3시 이후에나 가능할 것 같다나.
그는 시간이 끌린다는 게 죄송하다는 태도였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수영장도 딸려 있는 호텔에서 오후까지 퍼질러 자고 있어도 된다는 뜻이었으니.
“으음···”
그리고 그 말을 그대로 실행한 나는 오후 3시가 넘을 때까지 침대에 누워있었다.
어차피 여기에는 나를 감독할 상사도 없고, 더 이상 업무를 쥐어줄 팀장도 없다.
거기다 창밖으로 내리쬐는 햇볕과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들.
그 와중에 푹신한 침대에서 눈을 감고 누워있자니, 파견이지만 마치 해외여행이라도 온 것 같은 해방감이 들었다.
“편하구만.”
이대로 한없이 빈둥거리고 싶었다.
하지만 약속 시간이 다가와서인지, 조용히 있던 내 스마트폰이 진동하며 연락이 왔음을 알려왔다.
송민호였다.
“예, 강진우 경감입니다.”
“아, 경감님. 안녕하십니까. 말씀하신 자리는 마련했습니다. 그런데···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요?”
생각보다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았던 건가.
그럴 수도 있는 일이기는 했다.
이사회에서 관심을 가질 거라는 건, 그저 송민호의 판단이었을 뿐이니.
“너무 무리하실 필요는 없었는데.”
그래서 나는 그렇게 말했다.
물론 예의상 한 말이었다.
하지만 송민호는 곧 그 말을 부정했다.
“그런 건 아닙니다. 오히려 이사회에서는 꽤 화제가 되었습니다. 강 경감님이 사용하셨던 그 하얀 불꽃이 상당히 이목을 끌었습니다.”
성화말인가.
그야 그럴 만도 했다.
아마 퇴마사, 그것도 경력이 길고 아는 게 많은 퇴마사일수록 그게 어떤 전승에서 기인하는 힘인지 알고 싶을 테니.
실은 전승과는 아무 관련 없는, 스킬과 아이템이 만든 것임에도 말이다.
“그래서 강 경감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분이 꽤 계시긴 했는데···거기에 저희 이사장님이 포함되어 계셨습니다.”
“이사장님이요?”
“예. 그래서 이사장님과의 자리를 마련하게 됐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이사장이라면 이 정식 기관인 LB 아카데미에서는 가장 높은 기관장이었다.
나도 그 직책을 말로만 들었을 뿐, 어떤 사람인지는 고사하고 그 얼굴조차 아는 게 없는 상태.
그런데 지금 그런 사람과 만나야 한다는 건가.
“······”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긴장 따위는 전혀 없었다.
할 필요도 없었고.
내가 생각하는 것은 단지 그 이사장이 갖고 있는 권한.
이사장이라면···위령 정도는 충분히 내어줄 수 있지 않을까?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은 당연한 예스였다.
LB 아카데미에서 가장 높은 게 그 사람인데, 줄 수 있는 것도 많겠지.
그래서 나는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어쩌면 나에게는 오히려 잘 된 일일지도 몰랐다.
“물론 괜찮습니다. 시간은 언제가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