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66
66.
잠시 후.
김다영에 의해 LB 아카데미의 중심부로 안내받은 나는 이사장실의 문을 두드렸다.
이사장실이 있는 건물은 의외로 소박한 한옥이었다.
주변에 널린 기라성 같은 건물과는 달리 딱 1층짜리에, 마당은 있지만 크지 않았다.
그대로 서울 한복판에 갖다 놔도 위화감이 별로 없을 정도.
그래서 왜인지, 안에는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살고 있을 것 같았지만.
“어머, 벌써 왔네?”
의외로 문을 연 사람의 나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30대···정도일까.
짙은 눈 화장 때문에 나이 판별이 쉽지는 않았지만, 대충 그 정도로 보였다.
“반가워요. 강진우 경감이죠?”
“예, 맞습니다. 이사장님이신가요?”
“주선아라고 해요.”
그렇게 말한 여성, 주선아는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아카데미 제복을 입고 있는 그녀의 인상은 매우 날카로웠다.
길게 올라간 눈꼬리에, 도도해 보이는 이목구비까지.
뭐랄까.
아름답다면 아름다운 외모였지만 사나운 무당 하면 떠올릴 법한, 딱 그런 인상이었다.
하지만 나와 악수를 하는 그녀의 표정은 평범하게 부드러웠다.
“그럼 들어와요. 다영이도 차 한 잔 하고 갈래?”
주선아는 나를 안내한 김다영에게 그렇게 물었다.
“아니요! 저는 괜찮아요.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하지만 김다영은 그렇게 말하고는, 그대로 떠나갔다.
짐짓 쾌활해 보이는 인사였지만, 도망 가는 발걸음을 보면 이 자리가 부담되는 것이 틀림 없었다.
그야 그럴 테지.
나로 치면 경찰청장이 심심하면 차나 한 잔 하자고 하는 게 아닌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이사장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호호호, 역시 젊어서 그런가. 활기찬 친구예요. 그죠?”
묘하게 푼수 끼가 있는 아줌마 같은 말투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머리 위로 보이는 레벨은···96.
과연, 정식 기관의 기관장이라고 할 만한 수치였다.
인천경찰청장과 외인 기관 킬러의 기관장에 이어 세 번째로 보는 90 레벨 대의 퇴마사.
“자, 그럼 이쪽으로.”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안쪽의 테이블로 데려갔다.
나무 의자에 둘러싸인 작은 테이블 위에는 소소한 다과가 놓여 있었다.
“이리 와서 앉아요.”
“아, 예. 그리고 말씀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어머, 그래도 되나? 미안한데.”
“괜찮습니다.”
나는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평소라면 굳이 하지 않을 말이었지만, 오늘은 내가 그녀에게 받고 싶은 게 있었다.
게다가 상대는 정식 기관의 기관장이 아니던가.
서로 친해져서 손해 볼 일은 없는 사람이었다.
“······”
그런데 뭐 때문인지, 자리에 앉은 주선아의 시선이 나에게 박힌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뭔가 신기한 걸 바라보는 것처럼 나를 뚫어져라 주시했다.
그렇게 몇 초나 지났을까.
“뭔가 문제 있습니까?”
내가 먼저 질문을 꺼냈다.
그러자 주선아는 그제야 시선을 떼고 고개를 저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너무 빤히 바라봤지? 미안해요. 이건 그러니까···확인할 게 있어서.”
“확인이요?”
“혹시 들었나 모르겠네. 우리 이사회에서 강 경감을 부른 이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송민호의 말에 의하면 내가 사용한 하얀 불꽃, 즉 성화에 관심을 가졌다고 했던 것 같은데.
“성화에 관심이 있으시다고.”
“성화···그걸 성화라고 불러? 역시 우리 쪽 전승은 모르나 봐.”
“전승이요?”
성화에 대한 전승이라니.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송민호 역시 그에 대한 전승이 있다는 걸 아는 눈치는 아니었는데.
“영혼을 태우는 하얀 불꽃은 도교에서 삶과 죽음을 주관하는 동악대제의 힘. 죽었지만 이승을 배회하는 귀신을 태우는 화염이라고 하는데. 들어본 적 없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담담히 주선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럴 수 있어. 사실 그 힘은 오래전 소실되어 지금 그 전승은 기록으로만 남아있거든. 그래서 그 존재조차 지금은 나이 많은 이사회 소속의 퇴마사 몇 명만이 알고 있지.”
“아, 그래서 저를 부르신 겁니까?”
“맞아요. 하지만 직접 보니 알겠네. 강 경감의 그 힘은 동악대제의 전승에 의한 게 아니지?”
당연한 소리였다.
난 아직도 그 동악대제가 뭔지도 모르겠으니까.
그런데 그 말은···혹시 내가 일방적으로 의심을 받았다는 건가.
“물론 아닙니다. 그런데 혹시 그 전승이 맞았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셨습니까?”
그래서 나는 그렇게 물었다.
다른 단체, 특히 교회는 자신들의 전승을 담은 신기를 꽁꽁 숨기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게 밖으로 유출되는 것을 굉장한 금기로 여기고, 이를 회수하는데 열을 올린다.
만약 LB 아카데미 역시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다면, 이들은 나를 일방적으로 신문한 셈이 되는 것.
그러나 주선아는 전혀 다른 대답을 내뱉었다.
“당연히 배우려고 했겠지.”
“배워요?”
“그야 소실된 전승을 전수받을 수 있는 기회니까.”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너무 상식적이라 예상 밖이었다.
“저는 훔쳐간 걸 돌려받으려 할 줄 알았는데요?”
“에이, 설마. 강 경감은 우리 아카데미를 잘 모르는구나? 다른 기관과는 다르게 우리는 온전히 우리 것이 별로 없어서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요?”
“토속 신앙이란 게 그렇잖아. 도교에서 조금, 불교에서 조금 가져오고, 거기에 각종 민담과 신화가 섞여있고. 그래서 우리 아카데미에서 모시는 신 중에는 심지어 힌두교에서 온 신도 있어. 근데 우리가 다른 기관처럼 전승의 고유함을 주장할 수가 있겠어?”
들어보니 그건 그랬다.
여긴 좀 근본이 없다고 해야 하나.
온갖 종교와 전승, 심지어는 과학 기술까지 뒤섞인 LB 아카데미의 퇴마술은 다채로울지언정 고유하다고는 할 수 없었으니.
“그래서 말인데, 혹시 그 하얀 불꽃에 대해 우리에게 가르쳐 줄 수 있나? 동악대제의 전승이 아니라도 괜찮아요. 물론 보상은 제공할게.”
주선아가 말했다.
보상까지 준다고 하니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불행하게도 그건 그럴 수 있는 기술이 아니었다.
애초에 소비 아이템을 사용한 거라 나조차 다시 사용할 수는 없는 상태가 아니던가.
“그건 불가능합니다. 능력이랑 신기를 활용한 거라서요.”
“아, 역시 그랬구나. 그건 아쉽네.”
주선아가 잠깐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고친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럼 다음 주제로 넘어가지, 뭐. 우리 쪽에 원하는 게 있다고 들었어. 강령에 필요한 위령을 얻고 싶다고?”
곧바로 주선아는 본론을 꺼냈다.
그 시원한 태도에 나도 돌려 말하지 않고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신가요?”
“가능이야 하지. 강 경감은 모르지만, 나는 강 경감이 마음에 들거든. 퇴마사로써 미래도 기대되고. 그래서 줄 수 있는 건 주고 싶어요.”
주선아가 묘한 눈웃음과 함께 말했다.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야 내가 허 씨를 처단하는 과정을 상세히 보고 받았을 테니, 재능 있는 퇴마사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즉 이쪽에서도 나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다만 주선아의 말은 이어졌다.
“근데 강령이라는 게, 술법은 쉬워도 재능이 필요하거든. 아쉽지만 재능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내어줄 수가 없어. 그래서도 안 되고.”
재능이라.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나에게 강령은 단순한 기능일 뿐이다.
위령만 있다면, 그냥 슬롯에 넣는 것만으로도 기능이 실행되겠지.
그래서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위령을 받게 되면, 직접 강령을 시연해 보이면 될까요?”
“그럴 수 있어? 벌써 술법을 알고 있는 거야?”
“예, 뭐. 그런 셈이죠.”
내 말에 주선아는 흥미롭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위령은 빌려줄게. 단, 어떤 위령을 선택할지는 강 경감이 해야 되는 거야. 그것도 다 재능이니까.”
위령은 알아서 고르라는 말.
오히려 나에게는 잘된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따라와요.”
이어서 주선아는 나를 다른 건물로 데리고 갔다.
들어보니 강령과에서 사용하는 창고라는 듯했다.
이사장의 행차에 강령과의 교수 하나가 나와서 직접 우리를 안내했다.
그리고 그 교수는 창고 문 앞까지 와서야 동행을 멈췄다.
“편히 둘러보십시오.”
교수, 즉 60대를 넘어선 그가 주선아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그러자 주선아 역시 허리를 숙이고, 우리는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사장님은 상당히 젊으시네요.”
“어머, 강 경감. 지금 아부하는 거야?”
“그런 게 아니라···이사회의 교수들은 전부 60대 이상이라서, 이사장님도 꽤 나이가 있으실 줄 알았거든요.”
이어진 내 말에도 주선아는 젊다고 들은 게 기분이 좋다는 듯 호호호-하는 웃음소리를 냈다.
“그랬구나. 근데 그거야 기본 규칙이 그렇다는 거지, 반드시 지켜지는 건 아니야. 퇴마사 중에는 50대나 60대에 개안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나처럼 젊어도 모시는 신이 너무 높은 경우도 있거든.”
“모시는 신이 높아요?”
“원시천존이라고, 알려나 모르겠네.”
“그 정도는 압니다.”
나도 LB 아카데미에 대해 대충은 조사를 하고 왔다.
그 적당한 조사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원시천존의 위계는 높았다.
도교의 최고신이자 창세신.
말 그대로 도교가 기반이 된 토속 신앙에서는, 원시천존보다 높은 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LB 아카데미의 이사장으로써는, 썩 어울리는 신격이었다.
“위령이 모셔진 곳은 이 안이야.”
그렇게 말하며 주선아는 넓은 창고 내부에 따로 만들어진 방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위패가 가득했는데, 그 숫자는 50여 개에 이르렀다.
“여기 모신 위령들은 나름대로 엄선한 영혼들이거든. 그럼 한번 골라봐요.”
그렇게 말하며 주선아는 방 안쪽으로 손짓했다.
나는 그녀의 옆을 지나쳐, 위패가 늘어선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동시에 능력을 개방했다.
그러자 형형색색의 빛깔들이 위패에서 쏟아져 내렸다.
“흠···”
과연, 하나 같이 붉은색의 에픽 등급.
즉 위령에 해당하는 영혼들이었다.
하지만 그 위의 황금색인 레전더리 등급은 보이지 않는다.
레전더리급 영혼은 없는 건가?
그래서 나는 주선아에게 슬쩍 물었다.
“혹시 위령보다 급이 높은 영혼은 뭔가요?”
“위인보다 높은 성인의 반열, 혹은 신의 자리에 있는 신령들인데, 왜?”
“아무것도 아닙니다.”
레전더리는 신이란다.
그럼 여기 있을 리는 없겠군.
그래서 나는 곧바로 미련을 접고, 가장 가까운 영혼부터 아이템 설명 창을 이용해 확인했다.
에픽 영혼 아이템
모든 능력치 +5
– 신필 스킬 추가
······
아이템 설명 창의 설명은 무척 길었다.
대충 보니 강령에 의한 효과는 스탯이 올라가는 건 물론.
위령이 갖고 있는 일종의 능력을, 스킬을 통해 익힐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근데···한석봉의 혼백이라고?
위령이라더니, 정말 말 그대로 위인의 영혼이었다.
다만 한석봉은 글자를 잘 썼던 걸로 유명했던 위인이 아니던가.
스킬 이름만 봐도 퇴마하는 데 있어서는 그다지 시너지 효과가 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음으로 넘어갔다.
에픽 영혼 아이템
힘 +10
체력 +15
– 고급 검술 스킬 추가
······
음···이름만 들어서는 모르겠는데.
그래서 나는 슬쩍 폰을 꺼내 검색했다.
찾아보니 임진왜란 때 활약했던 장수란다.
그리고 그 성능은 나름대로 괜찮았다.
“흠···”
무인이라서 그런가.
이 영혼의 경우에는 백병전과 관련된 스킬과 군대 지휘와 관련된 스킬.
그리고 임진왜란의 영향인지, 일본 출신의 괴이에게는 추가 데미지를 가하는 스킬까지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단점도 눈에 들어왔다.
“디버프도 붙어있네···”
임진왜란 당시의 장수였던 최호는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했다.
그 때문에 바다나 강 위에서는 전체적인 스탯이 떨어지고, 몇 개의 스킬이 봉인되는 패널티가 있었다.
영혼이 가진 강점만 뽑아내는 게 아니라, 약점까지도 공유하게 된다는 말.
강령을 쓴다고 해서, 마냥 좋은 건 아니라는 건가.
그런데.
“응?”
스킬 쪽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문제가 더 있었다.
고급 검술과 상급 창술 등의 많은 스킬이 회색 처리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름은 적혀 있는데, 대부분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뜻.
그래서 로그창을 확인했더니, 의외의 내용이 있었다.
상위 능력 보유로 인한 비활성화라.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보아하니 무술을 습득했던 위인의 경우, 스킬을 통해 그 위인이 가진 무술을 일정 부분 계승할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검술이나 창술, 심지어는 전투에 필요한 감각까지도.
하지만 문제는 내가 그런 방면으로 너무 강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활성화된 스킬은 겨우 두세 개 뿐.
이래서야 패널티까지 생각하면 쓰는 것이 오히려 손해였다.
“···너무 잘 나도 문제구만.”
나는 그렇게 잘난 척을 중얼거린 뒤, 다른 위령들도 차례차례 확인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대부분이 그와 비슷했다.
무인의 경우 스킬이 거의 다 비활성화 되었고.
반대로 학자로 이름이 높은 문인들의 스킬은 전투와 관련이 없었다.
이래서는 강령을 사용하는 의미가 없는 상황.
“꽤 고민이 기네?”
가만히 나를 지켜보던 주선아는 그렇게 말했다.
어차피 이곳에 내가 원하는 영혼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여기에는 제가 원하는 영혼이 없습니다.”
“그래? 꽤 위계가 높은 영혼이 많을 텐데.”
주선아의 말은 사실이었다.
한국 사람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위인들이 꽤 보였으니까.
하지만 나에게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건 그렇더라고요. 근데 저한테 안 맞습니다.”
“안 맞는다라···”
“그래서 그런데, 다른 영혼은 없습니까?”
“있기야 하지. 하지만 선별되지 않은 영혼은 격이 그리 높지 않을 텐데. 괜찮겠어?”
위령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모래 속에서 보물을 찾는 기분으로 위령을 찾아보는 수밖에.
“예.”
그러자 그녀는 방을 나와, 그 옆으로 나를 인도했다.
넓은 창고의 한구석.
투명한 유리장 안에 위패가 쭉 늘어서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그 숫자가 훨씬 많았다.
이 정도면 수백 개···는 되지 않나.
“여기인데, 찾을 수 있겠어? 너무 오래 걸리면 안 되는데.”
주선아는 걱정스럽게 말했지만, 능력을 사용한 나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이렇게 많은 위패라도, 그냥 쇼핑하듯 지나치면 충분하니까.
“10분이면 됩니다.”
그래서 나는 위패 사이로 걸어갔다.
대부분이 보라색인 레어, 혹은 그 아래 등급인 매직에 걸친 영혼들.
붉은색의 영혼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건···실패인가.
씁쓸함에 혀를 차는데, 저 앞에서 위패 하나가 강조 표시된 게 보였다.
하지만 그건···레어 등급의 영혼.
이게 왜 강조 표시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새로운 퀘스트가 내 눈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