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67
67.
– 제사장(무명)의 영혼으로 신의 그릇을 주조하기
* 개방 조건
1. 고고한 제사장의 신기 세트 모두 착용
2. 제사장 계열 영혼과 접촉
“서브 퀘스트?”
일반적인 게임에서는 굉장히 흔한 퀘스트 종류.
하지만 나에게 주어지는 퀘스트 중에 서브 퀘스트라 이름 붙여진 것은 이게 처음이었다.
메인이나 캐릭터 퀘스트가 아니라면, 달랑 난이도 표시 하나 쓰여 있는 게 다였으니까.
그렇다면···서브라는 건 메인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중요한 퀘스트라는 건가?
거기다 개방 조건이라는 부분도 눈에 띄었다.
특정한 조건을 채우면 서브 퀘스트가 개방되는 모양이었다.
다만,
“흠···”
여전히 퀘스트의 내용은 불친절했다.
제사장의 영혼으로 뭘 하라고?
신의 그릇을 주조하라니.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다.
일단 아는 것만 따져보자면, 역시 영혼은 이걸 말하는 거겠지?
나는 강조 표시된 영혼을 바라보았다.
서브 퀘스트는 저 영혼을 목격한 순간 생성되었다.
그건 퀘스트 하단에 나와있는 개방 조건과도 딱 맞아 떨어진다.
제사장 세트의 신기야 이미 모두 착용하고 있는 상태니까.
그래서 나는 우선 영혼의 아이템 설명 창을 호출했다.
희귀 영혼 아이템
희귀급이라서일까.
강령이 불가능하기에 아이템 설명은 저 두 줄이 전부였다.
또한 퀘스트에 나온 대로 제사장의 영혼이란다.
그런데 이걸···어떻게 그릇으로 만들어야 하는 걸까.
“···아니지.”
생각해보니 그건 내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퀘스트의 네비게이션 기능은 단순히 내가 가야 할 방향만 알려주는 게 아니니까.
나는 곧바로 네비게이션 기능을 사용했다.
그러자 저절로 매직 큐브의 제작 창이 떠오르며, 내가 가진 신기가 전부 그 슬롯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런 도움말이 출력되었다.
그 말은···
신기를 재료로 삼아, 영혼을 그릇으로 제작하라는 건가?
“······”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퀘스트를 진행하고는 싶었지만, 따져보면 좀 위험한 모험이었다.
만약 제작했다가 재료인 신기가 몽땅 날아간다면?
그건 아무리 그래도 손해가 막심했다.
제사장 신기 세트 효과에는 혼령 탐지와 강령 기능이 포함되어 있으니.
물론 퀘스트에서 재료를 강제하고 있기에 진짜 날아갈 가능성은 낮을 수도 있겠지만.
앞날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약간의 고민 후 곧바로 입을 열었다.
“이걸로 하겠습니다.”
나는 제사장의 영혼이 담긴 위패를 가리키며 주선아에게 말했다.
그냥 퀘스트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 이유는 서브 퀘스트라는 명함 때문이었다.
캐릭터 퀘스트만 해도, 그 보상은 일반 퀘스트보다 훨씬 유용한 편이 아니었던가.
따라서 이제 처음 등장한 서브 퀘스트의 보상을 확인도 안하고 그냥 놓치기는 너무 아까웠다.
물론 신기가 전부 날아간다면 좀 뼈 아프긴 하겠지만.
결국 합성에 쓰인 신기가 다 날아가 버린다는 것도 결국 나의 가정일 뿐이 아닌가.
막상 해보면 다 남아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강령은 힘들 것 같은데?”
한편 주선아는 내가 고른 영혼을 보며 표정을 흐렸다.
역시 이게 레어급 영혼이라는 걸 꿰뚫어 본 모양이었다.
“그래도 시도는 한 번 해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그래?”
주선아는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허락이 떨어졌고, 제사장의 영혼은 무사히 내 손에 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그걸 지체 없이 매직 큐브의 슬롯에 넣고, 제작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그런 로그와 함께 큐브가 환하게 빛났다.
***
잠시 후.
LB 아카데미의 이사장, 주선아는 이사장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조금 멍한 얼굴로, 항상 집무를 보던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조금 전의 일을 조용히 회상했다.
강진우 경감.
처음부터 주선아는 그가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명실 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무당이라고 할 수 있는 그녀의 눈은 인간의 외견뿐만 아니라 그 영혼의 격을 본다.
그래서 웬만한 강자는 보기만 해도 그 힘을 가늠할 수 있고, 심지어는 인간의 선악조차도 구분해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강진우에게서 보이는 영혼의 격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먼저 그 영혼은 찬란했다.
후광이 비추는 것처럼 밝게 빛나는 빛이 그 영혼에 깃들어 있었고 그것은 분명 세상을 밝히는 빛이었다.
최소한 한 시대를 구원하는 구원자나 난세의 영웅이나 가질 법한 광명.
하지만 동시에 그 영혼은 더없이 깊고 어두웠다.
그렇게나 밝은 광명의 이면에는 광명조차 비추지 못하는 끔찍한 어둠이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모순.
하지만 주선아는 그 모순에 상당한 흥미를 느꼈다.
그의 내면을 들여다 본 순간, 자신도 모르게 한참이나 집중했을 정도로.
그래서 그녀는 강진우에게 그 귀하다는 위령을 선뜻 건네주기로 마음 먹었고.
그가 어떤 영혼과 어떤 식으로 강령을 행할지 무척이나 기대했다.
그러나 정작 강진우는 주선아의 기대를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비틀었다.
“······”
강진우는 그녀의 앞에서 고대의 제사장이 남긴 혼백을 선택했다.
사실 그건 조금 실망스러운 선택이었다.
그 혼백은 다른 영혼들보다 역사가 조금 깊을 뿐.
강령에 필수적인 요소인 전승을 품고 있는 위령이 아니었다.
당대에는 제법 활약을 했기에 혼백이 되어 남았으나.
후대에는 미처 그 이름을 새기지 못한 무명의 제사장.
한데 강진우가 그 제사장의 혼백을 선택하자마자, 이변이 일어났다.
아무 전승도, 이름도 없는 그 혼백이 갑자기 위령으로 변한 것이었다.
“어떻게···”
다시 곱씹어 봐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위령은 위인의 존재와 같다.
후대에 남긴 업적이 없다면, 그것은 결코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강진우는 그걸 가능케했을까.
게다가 그 위령의 정체는 영혼 그 자체를 보는 주선아조차 알 수 없었다.
그것은 그저 텅 비어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전승도, 위업도, 이름조차도 남기지 못한 위령이었으니.
그래서 주선아는 강진우에게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건지, 그 자리에서 직접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뻔뻔하기 그지 없었다.
“그냥 되던데요?”
그 여섯 글자가 전부였다.
더 캐물으려 하니, 영업 비밀이란다.
어이가 없다 못해 황당한 대답.
그러나 주선아는 그 이상 묻지 않았다.
그가 품은 영혼의 격도 그렇고, 그가 숨기고 있는 힘도 그렇고.
주선아는 그 순간, 눈치를 챈 것이었다.
강진우라는 퇴마사가 품은 잠재력을.
“10년···아니, 어쩌면 5년 후에는 청장님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주선아는 허공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 말처럼 된다면 파격적이라는 말도 모자랄 승진이다.
하지만 주선아의 눈으로는 충분히 그럴 미래가 보였다.
무당이 괜히 무당이겠는가.
천기누설이라고 불리는 미래 예지는, 어찌 보면 무당의 기본 소양이 아닌가.
“후후···”
그런 의미에서 주선아가 오늘 강진우를 만난 것은 행운이자 필연.
더군다나 미래의 경찰청장에게 영혼 하나를 내어준 것으로 인연을 만들었다.
그녀에게 있어서도, LB 아카데미에게 있어서도, 나쁘지 않은 투자였다.
그렇게 결론을 지은 주선아는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
“후···”
무사히 숙소의 방으로 돌아온 나는 받아온 영혼을 바라보았다.
제작 결과, 레어에서 에픽 등급으로 상승한 그것은 원래 허 씨의 원혼이 담겨 있던 팔찌에 서려 이제 내 손목에 걸려 있었다.
에픽 영혼 아이템
– 빈 슬롯(4)
설명은 그게 전부였다.
신의 그릇이라며 빈 슬롯만 표시될 뿐.
때문에 강령 슬롯에 넣어 봐도, 강령이 성공했다는 로그만 출력될 뿐.
아직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그나마 제작에 들어간 신기가 그대로 반환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결국 강령 기능을 써보겠다고 영혼까지 찾으러 다녔지만, 당장 변한 건 없는 셈.
그래서 여기까지만 생각한다면 뭔가 큰 손해를 본 것 같지만.
당연하게도 추가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 주작의 시험을 통과하세요.
보상 : 주작의 분령
이와 같은 식으로 현무, 백호, 청룡까지.
신의 그릇을 제작하고 나서는 서브 퀘스트가 한번에 4개가 추가되었다.
거기다 시험을 하나 통과할 때마다 사방신의 분령을 준단다.
그리고 그건 분명 저 신의 그릇에 들어갈 테지.
빈 슬롯도 딱 4개가 아닌가.
“분령이 4개라···”
보통 강령은 하나의 영혼만 가능하다.
그런데 신의 그릇에는 평범한 영혼도 아닌 신의 분령을, 4개나 넣을 수 있다는 말.
설령 신의 분령이기에, 신령 그 자체는 아닐지라도 엄청난 효과였다.
시험을 통과하라는 게 좀 고생일 것 같긴 하지만, 그럴 가치가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잠시 스마트폰을 들어 날짜를 확인했다.
아카데미로 온 지는 이제 3일째다.
정식 파견 기간은 최소 일주일이니, 아직 시간이 남은 셈.
물론 아카데미에서 이대로 파견 종료 통보를 한다면 나는 내일 다시 파출소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아, 예. 강진우 경감입니다.”
나는 송민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건은 끝났지만 파견 복귀 일자를 앞당기지는 말아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아카데미의 입장에서는 그리 어려운 부탁도 아니었기에, 송민호는 흔쾌히 내 부탁을 들어주었다.
시간을 번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나는 내일 곧바로 서브 퀘스트를 깨기 위해 움직일 작정이었다.
*
다음날.
나는 직접 차를 운전해 남쪽을 향하고 있었다.
사방신의 전승 퀘스트는 총 4개.
그중에서도 내가 첫 번째로 선택한 퀘스트는 주작의 시험이었다.
그 이유는 당연히 주작이 화염과 관련이 깊은 사방신이기 때문이다.
주작은 사방신 중 남쪽을 주관하는 신으로, 보통 화염과 여름에 관련된 전승을 가진 존재.
그렇기에 이와 관련된 주작의 시험이라면 필시 화염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화염이 통하지 않는 나에게는 가장 쉬운 시험이 되겠지.
다만,
“근데 이거 어디까지 가는 거야?”
서브 퀘스트 역시 퀘스트이기에, 내 눈에는 화살표가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화살표는 줄곧 남쪽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그걸 따라간 지가 벌써 4시간 째였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남해다.
그럼에도 화살표의 방향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
적당히 근처에 있을 줄 알았는데, 땅끝 마을에 있나?
뭐, 아무리 그래도 진짜 바다가 나오기 전까지는 무언가 단서가 있으리라.
“아니···”
하지만 그런 내 예상은 완전히 깨지고 말았다.
철썩-하는 파도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슬슬 가을로 접어드는 시기.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남해 바다 앞에서도 화살표는 아직도 남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거 도대체 어디야? 설마 바닷속에 있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이상했다.
현무나 청룡 아니고, 주작이 바닷속에 있을 리가.
하지만 그럼 도대체 어디에···
그렇게 고민하던 나는 곧 새로운 가능성을 떠올렸다.
꼭 이 앞에 바다만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제주도···!”
아무래도 비행기를 타야 할 것 같았다.
*
그로부터 또 다시 몇 시간 후.
“내가 하다하다 여기까지 다 오네.”
나는 황당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한라산의 백록담이었다.
화살표에 의하면 주작은 무려 이 근처에 둥지를 틀고 있는 모양이었다.
남쪽을 담당해서 제주도에, 거기에 주작이라고 해도 결국 새니까 높은 곳에 사는 건가?
이러다 북쪽 담당하는 현무는 북한 개마고원에 살고 있다고 하겠네.
“어휴···”
나는 고개를 흔들며 화살표를 따라갔다.
안 그래도 백록담은 등반 코스를 제외하면 통제 구역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잘 안 쓰는 경찰 신분증을 필사적으로 들이밀며, 공무 집행이라고 우긴 후에야 겨우 코스를 벗어나 움직일 수 있었다.
“···춥다.”
슬슬 해가 질 것만 같았다.
서두르지 않으면 여기에서 밤을 맞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빠른 걸음으로 화살표를 따라갔다.
그러자 백록담을 기준으로 등산로의 정반대 편에 위치한 절벽.
“음?”
그 한가운데에 까만 동굴이 나 있었다.
절벽은 그 높이만 수십 미터.
그냥 걸어서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위치였다.
물론 아라한의 전승을 개방한 나라면 못 갈 것도 없지만, 이게 없었으면 어쩌라고 저런데 동굴을 만들어 놓은 건지.
“······”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동굴을 관찰했다.
저게 평범한 동굴일 리는 없었다.
백록담 근처에 동굴이 나있다는 말은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으니.
그래서 나는 그 동굴을 주시했고, 금방 그 위화감을 간파할 수 있었다.
“진짜 동굴이 아닌가.”
그건 마치 마역과 비슷한 공간이었다.
실제하는 공간이 아닌, 마의 힘으로 구축된 아공간.
하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힘은 마역과는 사뭇 달랐다.
하기야 이걸 만든 건 아마도 주작일테니.
그렇다면 마역이 아니라, 신역이라고 불러야 하나.
“흠···”
신역이라.
새삼스럽지만, 퇴마사가 된 이후 신격을 가진 존재를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비록 창세신이나 유일신 등의 절대적인 신격의 존재들과 비교하자면 사방신은 격이 좀 떨어지긴 하지만.
항상 귀신이니 괴이니 하는 것과 비교하면 그 위계는 상당히 높다.
비록 완전히 적으로 만나는 건 아닐지라도, 만만히 볼 수는 없겠지.
“······”
그래서 나는 적당한 긴장감을 안고 그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뜨거운 공기가 확하고 나를 덮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