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68
68.
“어우···”
신역에 발을 디딘 나는 갑자기 느껴진 열기에 미간을 찌푸렸다.
화염의 지배자 스킬 덕분에 피해를 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찐득한 열을 한껏 머금은 공기는 마치 한여름에 부는 바람처럼 불쾌했다.
또한 어느새 주변의 풍경은 완전히 일변해 있었다.
“이건···”
분명 나는 동굴로 들어왔을 터임에도 머리 위로는 붉은 하늘이 보였다.
또한 바닥에 깔린 것은 백색의 모래.
그리고 그런 모래 양옆으로는 시뻘건 용암이 강물처럼 흘렀다.
결코 산 밑에 있는 동굴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다.
아니, 그 이전에 이 지구상에서는 볼 수 없는 경치.
하지만 나는 이런 비슷한 곳에 와본 적이 있었다.
바로 불의 정령이 사는 정령계.
그곳의 풍경은 이와 비슷했다.
다만 그쪽은 순수한 화산 지대에 하늘에서는 화염이 떨어지는 정신 사나운 곳인지라.
그에 비해 이 주작의 신역은 조금이나마 더 차분하고, 용암과 대비되는 흰색의 모래사장이 묘한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었다.
“······”
나는 탐색을 끝내고 걸음을 옮겼다.
퀘스트를 인도하는 화살표도 있었지만, 그게 없었더라도 나아갈 길은 명백했다.
마치 바다를 가르고 나타난 길처럼, 용암 바다 위에 난 하얀 모래 길은 딱 한 갈래 밖에 없었으니까.
“용암을 건너는 건···무리인가.”
나는 시험 삼아 용암 근처로 다가갔다.
하지만 그 열기는 역시 나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즉 설령 내가 용암에 잠수하더라도 타죽지는 않는다는 말.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 용암에 들어가자니, 그 깊이가 문제였다.
그냥 보기만 해서는 얼마나 깊은지 알 수도 없고, 물보다 점도가 훨씬 강한 용암에서는 수영도 불가능하다.
그러니 화염에 면역이라고 저기에 다이빙 같은 걸 했다가는, 용암에서 익사하는 참사가 생길 수도 있는 일.
그래서 나는 굳이 허튼짓을 하지 않기로 하고, 얌전히 그 길을 따라갔다.
주변에 레벨 표시는 보이지 않는다.
주작의 신역이니만큼 잡스러운 마가 존재할 리는 없다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음?”
내가 나아가야 할 하얀 모래길 위에 변화가 있었다.
길 자체는 변함이 없었지만, 그 길을 따라서 화염이 솟구치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여러 갈래의 화염이 길을 막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길을 덮치는 화염의 움직임은 규칙적이었다.
마치 장애물을 피해 목적지로 향하는 액션 게임처럼.
화염을 보고 좌로 뛰고 우로 구르며 꼴사나운 댄스를 연출하다 보면 겨우 지나갈 수 있게 설계된 것이었다.
이게 주작의 시험이라는 건가?
“···꽤 어렵게 만들어두긴 했네.”
이 화염의 길은 지금의 나조차 뚫고 가기 쉽지 않을 정도로 치밀했다.
아라한의 전승을 동원한다 해도 점프력이나 반응 속도 등, 저 화염을 뚫고 가기 위한 기초 능력이 아직은 모자랐다.
레벨로 치면···20 정도?
이 수준이라면 과연, 주작의 시험이라 불릴 만도 했다.
물론···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지만.
“그럼···”
나는 가볍게 발목을 풀었다.
어느 정도 할만하면 피하는 척이라도 해볼까 싶었는데.
이건 심심풀이로 해보기에는 너무 어려워 보여서,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이어서 옷과 신기를 예리코의 방벽으로 보호했다.
혹시라도 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다음은,
탓!
그저 질주였다.
곧바로 사방에서 사나운 화염이 나를 덮쳐왔지만.
그것들은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하고 환상처럼 그대로 나를 지나쳐 갔다.
그다음에는 바닥이 터지며 용암이 솟구쳤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온몸으로 뒤집어쓰면서 그냥 앞으로 나아갔다.
“음···”
왜인지, 순간적으로 온천에 들어갔다 온 기분.
다만 옷을 입은 상태로 들어간 것 같아 그다지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이어서 화염의 소나기가 시야를 덮었고, 좌우에서는 화염 방사기 같은 맹화가 내뿜어졌다.
나는 그걸 옷이 탈까 조심하며 적당히 피했다.
그렇게 나는 일직선으로 모든 방해를 뚫고 달렸고, 꽤 길었던 화염의 길은 순식간에 끝났다.
“후···”
3분 가량을 쉬지 않고 달려온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주작의 시험을 고른 건 정답이었다.
화염 면역을 달고 있으니, 이렇게 쉬울 줄이야.
어느새 내 눈앞에는 문이 있었다.
하얀 모래길 끝에는 모래로 만들어진 높은 벽에 거대한 철문이 나 있었다.
또한 그 문은 척 보기에도 시뻘겋게 달아오른 상태.
설마 이걸 여는 것도 시험인가?
그렇게 생각한 나는 그냥 그 문을 맨손으로 열었다.
좀 무겁긴 하지만 못 열 정도는 아니었다.
끼이이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얀 모래가 평야처럼 펼쳐진 공간.
그 한가운데에 거대한 불새, 주작이 있었다.
“저게···”
주작은 땅 위에 두 발로 서 있었지만 그 머리 높이는 3미터에 달했다.
거기에 깃털과 같은 화염이 온 몸을 덮고 있었고, 세 갈래로 뻗어나간 꼬리 끝에는 눈동자와 같은 무늬가 있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이세계에서 봤던 불사조, 피닉스와 비슷한 모습.
피닉스 역시 꽤 위계가 높은 불의 정령이었는데, 저건 어떨까.
그런 생각과 함께 그 레벨을 확인했다.
60 레벨.
령으로 치면 적령에 해당하는 레벨로, 상당히 높았다.
하지만 그건 나에 비해 높을 뿐.
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애매한 레벨이었다.
그렇다면 역시 분신 같은 건가.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끼에에에엑!”
나를 인식한 주작이 사납게 울며 날개를 펼치고, 화염을 뿜어낸다.
누가 보더라도 위협적인 모습.
장애물을 지나는 게 전부일 줄 알았는데.
역시 저거랑 싸워 이기는 것까지가 주작의 시험인가 보다.
하지만···가능할까?
나는 차분히 주작을 관찰했다.
60 레벨이면 내 레벨의 2배다.
아무리 신기와 전승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 차이는 너무 크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불새 형태의 몬스터를 상대해 본 경험이 있다는 점.
그 공격 패턴은 아마 한두 번 보는 것만으로도 익숙해지리라.
“일단은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나.”
나는 하는 수 없이 검을 뽑았다.
화염은 나에게 통하지 않으니, 어차피 놈의 공격을 방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 방어적으로 움직이며 반격을 꽂아볼 속셈이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주작이 하늘로 날았다.
그리고,
“쿠어어어-”
놈은 그 입에서 화염을 토해냈다.
화룡의 브레스와 같은 화염.
나에게는 훈풍이나 다름 없는 화염이 지면을 지나친다.
“내려와, 새끼야.”
나는 일부러 그 브레스를 피하지도 않고 그 속에서 놈을 도발했다.
놈이 날고 있는 동안은 어쩔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놈은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화염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직감한 건지.
먹이를 낚아채는 독수리처럼 나에게 두 발톱을 내밀며 하강했다.
깡!
주작의 발톱과 내 검이 부딪혔다.
일부러 충격을 흘리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충격이 두 손에 전해졌다.
“쯧···!”
나는 곧바로 뒤로 물러나 자세를 정비했다.
그저 난폭한 발길질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그걸 막아낸 손이 얼얼했다.
“끼에에엑!”
주작은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가, 나를 향해 급강하했다.
브레스와는 달리 발톱 공격은 나에게 유효하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건 나를 너무 우습게 본 것이었다.
한 번이라면 모를까.
똑같은 방식의 공격을 두 번이나 허용할 정도로 내 검술은 멍청하지 않았다.
쉬익!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발톱이 내 머리를 향해 쇄도했다.
나는 그것을 막지 않고, 몸을 한껏 낮춰 앞으로 전진하며 피했다.
그렇게 놈의 뒤쪽으로 위치한 나는 곧바로 검을 들어, 눈앞에서 살랑거리는 세 가닥의 꼬리를 베었다.
그런데,
카각!
검 끝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마치 쇳덩이에 검을 부딪히는 듯한 소음.
“키에에에-”
곧바로 주작은 다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내가 벤 주작의 꼬리에는 약간의 흠집만 있을 뿐.
그 얇은 꼬리가 잘려나가지도 않은 상태였다.
“뭐가 저리 단단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하강하는 주작을 향해 검을 들었다.
그렇게 몇 번.
나는 놈의 공격을 회피하며 그 빈틈에 반격을 꽂아 넣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검에는 바위를 내리치는 것 같은 충격이 전해졌다.
역시 레벨 차이가 너무 심한가.
주작에게는 내 검격이 제대로 먹히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힘이나 체력, 혹은 방어력 따위의 기본 스탯 차이가 심하기 때문이리라.
게임을 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 고렙존에 와버린 기분.
그나마 방어를 일정 비율 무시하는 수호자의 일격을 써야, 겨우 데미지가 들어가는 상황이었다.
“이건 곤란한데···”
다시 하늘로 날아오른 주작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대로 수호자의 일격을 퍼부으면 데미지야 들어가겠다만.
아쉽게도 그 스킬은 사용 횟수에 제한이 있었다.
한번 쓸 때마다 영력을 퍼먹는 탓에 지금 있는 모든 영력과 영력을 회복하는 마후라가의 전승을 동원하더라도 그 횟수는 10번이 안 된다.
하지만 저 주작은 방어력도 높지만, 체력도 많다.
말 그대로 지금의 내가 상대하기에는 너무 고레벨의 몬스터인 것.
“······”
이대로는 안 되겠는데.
그렇게 생각한 나는 스킬과 아이템 창을 바라보았다.
뭔가 쓸만한 게 있을까 해서였다.
그리고 다행히도 내 눈에 띈 아이템이 하나 있었다.
강화가 되지 않은 장비를 세 단계 강화시킵니다.
그건 예전에 보이스 피싱 사건을 해결하고 받은 퀘스트 보상이었다.
어느 장비에 쓸지 몰라 계속 가지고만 있었던 아이템.
하지만 지금은 그 용도가 너무나도 명확했다.
바로 무기 강화.
지금 당장 안 그래도 부족한 공격력을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아이템이 아닌가.
또한 아이템을 강화하면 3강마다 랜덤으로 특성이 붙는다.
그렇기에 강화하는 것만으로도 주작에게 효과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는 특성.
예를 들면 무기에 수속성을 부여한다던가, 짐승에게 추가 데미지를 준다던가 하는 특성을 노려볼 수도 있었다.
물론 운이 좋다면 말이지만.
“끼에에엑!”
나는 주작의 발톱을 피하며, 곧바로 매직 큐브의 강화 창에서 멸랑의 별운검을 강화했다.
그러자, 한순간 번쩍인 멸랑의 별운검에는 강화 수치가 추가되어 있었다.
에픽 아이템
공격력 60-90 -> 75-105
힘 +15
민첩 +15
상처 효과 부여
특성 [왕의 수호자] 획득
특성 [양날의 맹독] 획득 (신규 추가)
– 착용자에게 항상 중독 Lv.3 부여
– 공격 시 상대의 중독 수치 증가 Lv.3
– 중독 상태의 적을 공격 시 5초간 중독의 상태 이상 데미지가 모든 내성 수치를 무시
환도 계열
역시 공격력이 올랐다.
15인가.
수치만 보면 그리 높지 않았지만.
최소 데미지를 기준으로 했을 때, 올라간 비율을 환산하면 25%로 그럭저럭 괜찮은 정도였다.
게다가,
“이건 당첨인데.”
랜덤으로 붙는다는 특성이 상당히 유용하게 나왔다.
중독이라니.
나에게는 처음 갖게 되는 상태 이상 계열의 특성이었다.
그래서인지 특성 설명 아래에는 작게 도움말이 출력되었다.
그런 시스템인가.
즉 중독 데미지는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닌, 중독 공격을 하면 할수록 점점 늘어난다는 말.
게다가 내가 얻은 특성은 공격자에게 중독이라는 페널티를 주는 대신, 상대에게는 내성을 무시한 중독 데미지를 주는 위험한 특성이었다.
양날의 맹독이라는 이름 그대로의 효과.
하지만 나에게는 모든 상태 이상을 무효화하는 빛의 심장 스킬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 페널티를 받지 않고, 이득만을 챙겨갈 수 있었다.
“끼에엑!”
이제는 완전히 땅에 내려온 주작이 날개를 펼쳐 나에게 휘둘렀다.
내 공격이 별로 위협적이지 않다는 걸 간파한 건지, 적극적으로 공세를 펼치려는 것이었다.
마침 나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특성이 적용된 검날에 녹색의 독액이 묻어 나왔다.
나는 검을 움켜쥐고 놈의 날개를 바라보았다.
나를 포함한, 주변의 공간 전체를 장악하는 공격.
그래서 나는 오히려 주작의 몸 쪽으로 파고들었다.
주작의 키는 상당히 크다.
그래서 날개를 사용한 공격은 오히려 몸에 가까울수록 피할 구석이 많았고.
촤좌좍!
동시에 공격할 틈도 많았다.
주작과 스쳐지나간 잠깐 사이, 내 검은 놈의 몸을 몇 번이나 베고 지나갔다.
“키이이!”
그러자 주작은 귀찮다는 듯 그런 소리를 내며 몸을 흔들었다.
강화를 했음에도 아직은 공격력이 부족하다는 뜻.
하지만 어느새 놈의 레벨 아래에는 못 보던 그래프가 있었다.
까만 막대의 절반 정도가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는 그래프.
아마도 저건···중독 수치를 표시하는 걸로 보였다.
즉 벌써 중독 수치의 절반이 쌓였다는 말.
“역시···”
그걸 보며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공격 시마다 중독 수치가 쌓인다는 설명에, 조금 전 힘을 담은 공격을 꽂는 대신 가벼운 공격을 여러 번 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나는 곧바로 공세로 전환했다.
땅을 딛고 선 놈에게 더욱 다가가, 그 날개와 발톱을 피하며 검격을 욱여넣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중독 그래프가 초록색으로 칠해졌고.
“게에에···”
주작은 기괴한 신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상태 이상이 발현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중독으로 둔해진 놈의 움직임을 틈타 지금까지보다 더한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자 뒤늦게 주작은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니, 정확히는 그러려고 했다.
그러나 중독 수치가 심각하게 쌓인 건지, 놈은 몸이 공중에 날아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땅으로 추락했다.
그리고···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죽은 건가?”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놈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가보니 주작은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불을 내뿜으며 기침을 하고 경련을 일으키는 게, 딱 병 걸려 죽어가고 있는 조류의 모습이었다.
이에 나는 그 모가지에 수호자의 일격을 박아 넣었고, 그대로 주작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그러자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전구 같은 주황색의 빛.
그건 이윽고 내가 낀 팔찌, 즉 신의 그릇이라는 영혼에게 흡수되듯 빨려 들어갔다.
이어서 로그 창에는 그런 글자들이 출력되었고, 동시에 신역의 기운이 크게 흔들렸다.
신비로운 분위기의 신역이 제 할 일은 끝났다는 듯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는 백록담 구석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