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77
77.
퇴근 후, 나는 바로 법당의 차서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법당에 찾아가도 되는지, 그 확인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네? 지금…말씀이십니까?”
내가 다음 전승을 전수받고 싶다는 말에 차서현은 다소 망설이는 반응을 보였다.
역시 당일에 연락하는 건 너무 갑작스러웠나.
“혹시 다른 일정이 있으신가요?”
“그게…아니, 아닙니다. 바로 오셔도 됩니다.”
차서현은 그렇게 답했다.
왜인지, 나 때문에 그 일정을 취소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하지만 정말 그렇다 해도, 나 역시 불도를 전수 받는 것은 오늘이 아니면 곤란했다.
당장 내일부터 심상치 않은 사건에 투입될 듯 보였으니.
그래서 나는 조금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네, 그럼 조금 있다 뵐게요.”
그 이후 나는 곧바로 법당을 찾았다.
그러자 입구에는 여느 때처럼 차서현이 나와 있었다.
“오셨습니까. 바로 들어가시죠.”
차서현은 묘하게 서두르는 기색을 보이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절들이 여러 개 들어찬 드넓은 부지.
우리는 그중에서 항상 이용하던 수련장 방향으로 이동했다.
주변에 깔린 길에는 가로등이 환하게 켜져서, 다른 퇴마사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런데 왜일까.
오늘따라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았다.
물론 승복을 입은 저들에 비해, 경찰복을 입은 내가 눈에 띄기는 하지만.
평소라면 이 정도로 의식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습니까?”
그래서 나는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차서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게…실은 최근에 도둑이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도둑이요?”
“예. 하지만 강진우 경감님이 신경 쓰실 일은 아닙니다.”
그렇게 선을 그으며, 차서현은 말했다.
그런데…도둑 이야기를 하면서 경찰에게 신경 쓰지 말라는 건 좀 그러지 않나?
그때, 우리를 바라보던 퇴마사 중 한 명이 이쪽으로 접근해왔다.
그건 모르는 얼굴이 아니었다.
이소월.
나와 함께 어떤 학교의 마역 사건을 해결했던 여자였다.
“오늘도 전수 받으러 온 거냐?”
이소월은 내가 법당에 올 때마다 간단히 인사만 나눴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그리 물었다.
“예.”
“전에 봤을 때 마후라가를 배웠다면서. 근데…이제 몇 달밖에 안 지났잖냐. 벌써 그걸 다 익혔다고?”
“그렇게 됐습니다.”
“하…!”
이소월은 헛웃음을 짓더니, 잠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럼 나랑 잠깐만 이야기 좀 하자. 몇 분이면 되니까.”
“……”
할 말이라니.
왜 그렇게 빨리 익혔는지 따지려고 그러나.
하지만 이소월에게서는 딱히 부정적인 기색은 엿보이지 않았다.
워낙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니, 속마음을 숨기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차서현은 먼저 수련실로 향했고, 나는 이소월과 함께 가로등 밑에 놓인 작은 벤치로 향했다.
이소월은 자신이 먼저 벤치에 털썩 주저앉고는, 곧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네게 부탁할 게 있다.”
“부탁이요?”
“그래. 좀 전에 들었잖냐. 도둑에 대한 거.”
차서현과의 대화를 듣고 있었던 건지, 이소월은 그렇게 말했다.
“예.”
“그놈을 잡아줄 수 없겠냐?”
“지금 말입니까?”
“그래, 지금.”
“하지만 벌써 시간이…”
시간은 벌써 오후 7시였다.
그럼 겨우 한두 시간 만에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건데.
물론 나에게는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네가 수사를 그렇게 잘한다며. 뭐, 나도 내 눈앞에서 본 적도 있으니 네 실력은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맨입으로 해달라는 것도 아니야.”
대가가 있다는 말.
그래서 나는 조용히 이소월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내가 팔부신중의 전수를 도와주마.”
그런데 그 대가가 조금 애매했다.
그걸 굳이 이소월에게 받을 이유가 있을까?
“이미 차서현 씨에게 전수 받고 있는데요?”
“지금은 그렇겠지. 그런데 그게 언제까지 갈 것 같냐?”
“왜요? 그분 어디 가십니까?”
내 말에 이소월은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네가 오늘 전수받는 건 ‘긴나라’. 그리고 차서현은 지금 그다음 단계인 ‘가루라’를 수행 중이다. 물론 거의 마무리 단계라 가루라까지는 걔가 알아서 가르칠 테지. 그런데 그다음은? 너 또 몇 달 있으면 다 배웠다고 냉큼 달려올 거잖냐. 근데 차서현이 그런 네 속도에 따라올 수 있겠냐?”
그건…확실히 그랬다.
지금이야 차서현이 자신이 익힌 불도의 전승을 나에게 알려준다지만.
내가 전승을 익히는 속도는 그녀에 비해 현저하게 빠르다.
그러니 얼마 안 가서 나는 차서현을 따라잡겠지.
“불도의 전승은 은혜를 입은 놈이 직접 전수해 주는 게 원칙이다. 그러니 이대로는 가루라 다음인 아수라부터는 네가 차서현이 수행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지. 그래도 괜찮겠냐?”
이소월의 말은 이해했다.
내가 차서현의 성장을 앞서더라도, 이소월이 직접 이어서 가르쳐주겠다는 말.
“그래서 그 부분을 도와주신다는 거군요.”
“그래. 나도 너에게는 도움받은 일이 있으니까. 그리고 꼭 사건을 해결할 필요도 없다. 다만 잠깐이라도 조사만 해주면 돼.”
그 정도라면야, 거절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내가 이소월의 요청을 수락하자, 역시 퀘스트가 생성되었다.
평소처럼 이렇다 할 보상은 없는 F급 퀘스트.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어차피 퀘스트 보상을 바란 것은 아니었으니.
나에게는 그것이 보여주는 화살표만 있으면 됐다.
“그런데…”
나는 이소월을 바라보았다.
이 사건은 결국 그냥 법당에 도둑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왜 이소월은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움직이려는 걸까.
그 이유는…어느 정도 짐작이 가긴 했다.
“혹시 이소월 씨도 도둑에게 당하셨습니까?”
“…내가 아니라 서현이가 당했다. 상당히 소중한 물건이라 오늘도 그걸 찾고 있었는데, 네가 온다고 데리러 가더군. 하여간 착해 빠져가지고.”
어쩐지 아까부터 태도가 이상하더라니.
소중한 물건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잃어버린 상태였던 건가.
하지만 차서현이 사건의 피해자라면, 마침 잘 된 일이었다.
“그럼 일단 서현 씨를 다시 불러야겠네요.”
“걔는 왜?”
“범행의 피해자 아닙니까. 수사는 거기서부터 시작해야죠.”
“하, 무슨 형사처럼 말하네.”
“그야 형사니까요.”
잠시 후, 우리의 연락을 받은 차서현과 다시 만났다.
그녀는 이소월에게서 이야기를 듣고는 다소 표정을 굳혔다.
“하지만 그건…강 경감님에게 너무 폐를 끼치는 것 아닙니까?”
“폐는 무슨.”
“제 은인이신 분에게 물건까지 찾아달라고 할 수는-”
“시끄럽다. 도둑에 대한 이야기나 자세히 해 봐.”
이소월의 말에 차서현은 잠시 망설이다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저도 알려 드릴 게 별로 없습니다.”
차서현의 말대로 그녀의 이야기에서는 참고할 게 별로 없었다.
그냥 자고 일어났더니 물건이 없어졌다.
그게 증언의 전부였으니.
“그럼 얘 방을 조사해보는 건 어떠냐?”
“제…제 방을 말입니까?”
“자고 일어났더니 없어졌다며. 그러니 방에는 흔적이 남아있겠지.”
차서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저었지만.
이소월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역시…증거가 있다면 거기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나는 눈앞에 나타난 화살표를 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 그게 어느 쪽입니까?”
“차서현 방? 얘는 여기 있는 요사채에 사니까, 저쪽이다.”
“요사채가 뭡니까?”
“기숙사 같은 거로 생각해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소월이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과 비슷했다.
그래서 나는 우선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요사채는 넓은 중생총본의 부지에서도 가장 구석에 있었다.
“여기인가요?”
나는 3층짜리 건물로 이뤄진 작은 단지를 보며 말했다.
건물의 양식은 한옥이지만 같은 구조의 방과 건물이 늘어서 있어, 이소월의 말대로 아파트나 기숙사의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 따라와라.”
“잠시,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그중 하나의 건물로 막 들어가려는 우리의 앞을 차서현이 가로막았다.
그녀는 다소 붉게 물든 얼굴로 입을 열었다.
“먼저 가서 방 정리를 하고 오겠습니다. 10분…아니, 5분이면 됩니다.”
“뭐? 굳이 그럴 필요가-”
“아닙니다. 그렇게 하시죠.”
내 말에 차서현은 고개를 숙이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걸 보며 이소월은 혀를 찼다.
“하여간 쓸데없는 것만 신경 쓰긴.”
“저는 외부인 아닙니까. 차서현 씨도 저에게 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는 좀 불편하겠죠.”
“그러냐? 나는 상관없을 것 같다만.”
그야…당신이라면 그렇겠지.
나는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겨우 다시 삼켰고.
별말 없이 차서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후 그녀는 헐레벌떡 이쪽으로 뛰어왔다.
“다…다 됐습니다. 이쪽입니다…”
차서현의 방은 요사채 건물에서도 3층 가운데였다.
그리고 오면서 화살표의 방향을 확인해 보니, 분명 그녀의 방을 가리키고 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 나는 부담 없이 차서현의 방으로 들어갔다.
“오…”
기숙사 건물이 한옥에, 여기가 절이라서일까.
당연히 내부도 비슷할 줄 알았는데, 방안은 꽤 화사한 분위기였다.
깨끗한 분홍색의 벽지와 비슷한 느낌의 침대, 그 위에 놓인 곰돌이 인형까지.
“어, 어떻…습니까?”
차서현이 새빨갛게 물든 얼굴로 물었다.
어떻냐니.
방에 대한 감상이라도 묻는 건가?
“귀여운 방이네요.”
“귀, 귀엽…! 아니, 그게 아니라…뭔가 수상한 게 있으십니까?”
아, 그 소리였구만.
나는 방에서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그런데…그쪽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빈 벽만이 있었다.
나는 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흠…”
분명 화살표는 벽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런데 벽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설마…벽 뒤에 있나?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벽을 가리키던 화살표가 작아지더니 그 아랫부분을 정확히 가리켰다.
내가 알아채지 못했던 게 답답하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진작에 그리 알려주지.
“이건…”
화살표가 향한 벽의 아래에는 자세히 봐야 겨우 느낄 수 있는 아주 작은 위화감이 있었다.
그것도 일반적인 것이 아닌, 마에 의한 위화감이었다.
연수원 실습 당시, 어떤 호텔에서 본 단절과 비슷한 느낌.
그래서 나는 별운검을 뽑았다.
“강 경감님…?”
갑자기 무기를 뽑은 나를 보며 차서현이 당황했다.
나는 별것 아니라는 뜻으로 손짓하고, 칼끝으로 위화감이 드는 부분을 쿡 찔렀다.
그러자 그 위를 덮고 있던 얇은 마의 장막이 걷히며, 작은 구멍 하나가 드러났다.
“뭐야, 이게?”
쥐구멍인가?
아무리 봐도 그렇게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구멍을 빙 둘러서 금색의 가루가 뿌려져 있다는 것 정도.
아마 저게 이 구멍을 숨기고 있던 마의 정체이리라.
“잠시 비켜봐라.”
그때 이소월이 나를 밀어내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뭔가를 알고 있다는 듯, 그 앞에서 부적을 꺼내 들었다.
그러자 곧 부적에서는 까맣고 얇은 뱀 하나가 흘러나와,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이게…이게 뭡니까?”
차서현은 자신의 방에 이런 게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이에 이소월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이건 금쥐의 구멍이다. 금쥐는 말 그대로 금색의 쥐처럼 생긴 괴이지.”
“괴, 괴이요?”
“그리 위험한 놈은 아니다. 그냥 작은 물건을 훔쳐 가는 성가신 쥐새끼지. 하지만 쥐구멍을 숨기는 특성이 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은데, 제법이군. 절간에 도둑이 드나든다는 것도 다 이놈 때문이었나.”
이소월은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하찮은 일에 말려들었다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 뱀은 뭡니까?”
나는 이소월의 부적을 가리키며 물었다.
부적의 형식이 법당보다는 LB 아카데미에 가까워 보였기에.
“이건 내 식신이다.”
“그런 것도 할 줄 아세요?”
“집안에서 배운 거다. 법당과는 거리가 먼 주술이지.”
그리고 보니 이소월 역시 퇴마사 가문 출신이라고 했지.
그래서 이게 금쥐라는 것도 첫눈에 보고 안 건가.
곧 그녀의 식신인 뱀이 돌아왔고 그것은 다시 부적으로 들어갔다.
“…됐다.”
“뭐가 됐어요?”
“금쥐는 자신이 훔친 걸 특정 장소에 보관한다. 그 장소를 찾았다는 거지. 따라와라.”
이어서 이소월이 향한 곳은 요사채의 1층 식당이었다.
이소월은 주방에 있던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곧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주방의 구석, 그곳의 타일 하나를 들추자-
“이건…!”
그곳에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보물상자처럼 차곡차곡 들어있었다.
이소월은 그걸 꺼내서 주방 바닥에 펼쳐놓았다.
그리고 차서현을 향해 물었다.
“여기 네 물건은 있냐?”
“그게…아, 있습니다!”
차서현이 가져간 것은 손가락만 한 막대기였다.
“저게 그 소중한 물건입니까?”
“그래.”
“저게 뭔데요?”
처음에 소중한 물건이라길래, 나는 뭔가 추억이 담긴 물건일 거라 생각했다.
반지라던가, 사진이라던가.
그런데 차서현이 대답한 그 소중함은, 의외로 굉장히 현실적인 것이었다.
“이건 제 인감도장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나쁜 사람의 손에 들어갈까 어찌나 고심했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 인감도장은 소중하지.
도장을 챙긴 차서현은 곧바로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강 경감님! 또 신세를 지는군요. 그리고 이소월 언니도, 고맙습니다.”
“됐다. 강 경감은 수고했고. 서현이 너는 가서 강 경감한테 불도나 전수해 줘라. 쥐새끼 뒤처리는 내가 하고 있을 테니까.”
이에 이소월이 새를 내쫓는 듯한 손짓을 하며 그렇게 말했다.
“아, 그 일로 오신 거였죠. 알겠습니다. 시간은…아직 그리 늦지는 않았네요. 다행입니다. 그럼 바로 가시죠.”
곧바로 차서현은 나를 수련장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이 팔부신중의 제7석, 긴나라의 전승을 전수해주었고 나는 금방 그것을 몸에 새겼다.
긴나라는 반인반조의 몸을 가진 불교의 음악과 춤의 신.
그리고 부처의 악사로 알려진 존재였다.
그렇기에 긴나라의 전승이 가진 힘은 소리를 통제하는 것.
이를 이용해 자신의 발소리를 완전히 숨길 수도 있고, 역으로 엉뚱한 방향에서 소리를 내 거나, 소리에 민감한 괴이에게는 그 약점을 공략할 수도 있다고 했다.
과연, 그리 나쁘지 않은 전승이었다.
청각을 혼란시킬 수 있는 능력은 상대의 오감 중 하나를 봉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
“그럼 살펴 가십시오.”
그리고 차서현은 오늘도 법당의 출구까지 나를 배웅했다.
나는 그녀의 인사를 받으며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