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79
79.
“……”
나는 동굴 입구에 세워진 비석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곳에 새겨진 것은 처음 보는 문양이었다.
한자와 아랍어를 섞어 놓은 듯한 모습으로, 당연히 그 뜻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이런 게 놓여 있다는 건, 역시 이곳이 사교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이라는 걸까.
“…이상한 곳이네요.”
“그러게나 말임다.”
나하정과 한성민이 그렇게 말했다.
그들의 말대로 동굴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물론 외견만 본다면, 평범한 동굴에 지나지 않았다.
그저 흙과 바위로 이루어진 벽과 천장, 그리고 거친 바닥까지.
또한 광원이라고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보이는 것은 동굴을 따라 늘어선 작은 석등뿐이지만.
그 석등 안에도 불빛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동굴 내부는 밝았다.
발밑의 돌부리를 어렵지 않게 보고 피해 갈 정도였다.
마치 무언가를 경고하듯, 그저 허공이 빛나며 우리를 안쪽으로 인도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사교들의 은신처가 이쪽이었던 걸까요?”
“아마 그렇겠죠.”
나하정의 물음에 나는 그렇게 답했다.
이 동굴은 일직선으로 곧게, 안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거기에 불까지 켜놓은 걸로 봐서는 이곳이 사교들이 사용하던 통로일 가능성이 높았다.
무엇보다 화살표 역시 이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역시 저 안쪽에 무언가 있긴 있는 모양인데.
“……”
그래서 나는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아직 눈에 보이는 것은 없다.
절벽에서는 그렇게나 괴이들이 설쳐대더니.
정작, 이 안쪽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또한, 함정 역시 보이지 않아, 우리는 그저 경계를 유지한 채 앞으로 걸어나갈 뿐이었다.
내 경험상, 보통 이럴 때는 보스 같은 게 나오던데.
“저기, 뭔가가 있슴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나의 예상은 딱 맞아떨어졌다.
짧은 동굴이 끝나고 넓은 공동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 공동의 한가운데.
거대한 무언가가 있었다.
우리는 동굴 안에서 몸을 숨긴 채, 그쪽을 바라보았다.
“…오거?”
그건 그렇게밖에는 보이지 않는 거인이었다.
바닥에 앉은키만 2미터가 넘는다.
그러니 아마 전체 신장은 5미터에 육박하리라.
거기에 한쪽에는 그 키에 어울리는 거대한 대검이 두 개나 보였다.
검을 쓰는 오거라.
상대해 본 적은 있지만, 그리 만만한 적은 아니었다.
“오거요? 그건 아니지 않겠슴까?”
“오거는 유럽 쪽의 전승을 가진 존재니까요.”
내 말에 한성민과 나하정이 반응했다.
다행히 이세계의 오거가 아니라 실존하는 전승, 그 속의 오거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그럼 저게 뭐라고 보십니까, 다들?”
“제가 그걸 어떻게 알겠슴까.”
그다지 기대도 하지 않았던 한성민은 역시 그 기대대로 아는 게 없었다.
다만 나하정만이 거인을 빤히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지하국대적이 아닐까요?”
“그게 뭡니까?”
내 질문에 그녀는 그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지하국대적은 민간 설화에 등장하는, 지하에 사는 머리 아홉 개 달린 거인으로, 설화에서는 강력한 악역으로 등장하는 괴이였다.
설화에서 지하국대적은 종종 지상 세계로 모습을 드러내 여자들을 납치하는데.
그렇게 아내를 지하국대적에게 뺏긴 남편은 아내를 구하기 위해 지하 세계로 내려간다.
그러나 정작 아내는 거인에게 넘어가 남편이 아닌 거인을 돕고, 남편은 납치당한 또 다른 여성의 도움으로 거인을 물리친다는 이야기.
“지하국대적은 전승에 의하면 기본적으로 강한 괴이에요. 힘은 물론 신통력을 가졌다고도 하고, 강력한 재생력까지 갖췄답니다.”
나하정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건 몰라도 기본적으로 강한 괴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내 눈에 보이는 지하국대적의 레벨은 60.
이곳에 있는 그 누구의 레벨보다도 높은 수준이었다.
“신통력이 정확히 뭡니까?”
“정확한 건 저도 몰라요. 다만 설화 속에서는 잘린 머리가 스스로 움직이고, 이를 목에 붙여 재생한다고 해요. 또 다른 설화에서는 홍길동과 전투를 벌였다고도 했으니 주술을 사용할 가능성도 있어요.”
마법 같은 건가.
그럼 결국 쌍검을 쓰는, 머리 아홉 개 달린 마법 쓰는 오거라고?
끔찍한 혼종이 따로 없구만.
“그런데…머리가 9개 달린 거 같지는 않은데요.”
거인은 우리를 등지고 앉아 있는 상태다.
비록 거리는 좀 떨어져 있지만, 머리가 그렇게나 많이 달렸다면 그걸 이쪽에서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히드라를 100미터 밖에서 본다고 그게 그냥 코브라로 보이겠는가.
“이건 현대에 와서 밝혀진 거지만 머리가 9개라는 건, 일종의 비유에요.”
“비유?”
“9개의 머리는 인간의 신체를 9개로 나눈 상태. 즉 머리와 양손과 가슴, 하복부, 두 허벅지와 양발을 의미하죠.”
그런데 그게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며, 잘라도 재생한다는 설화를 갖고 있다고?
“그러니까…토막 나도 죽지 않는다는 겁니까?”
“그런 셈이에요.”
과연, 까다로운 적이었다.
물론 나에게는 재생을 막을 수단이 있어 다행이지만, 신체를 염동력 같은 걸로 제어할 수 있다는 점과 신통력이라는 부분이 걸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놈은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 같은데.
그냥 긴나라의 전승을 사용해서, 소리를 죽인 채 돌아가 볼까.
내가 그런 생각을 떠올린 순간이었다.
“킁!”
거인 쪽에서 반응이 있었다.
놈은 잠에서 깬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좌우로 두리번거렸다.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그리고 그 시선은 이내 우리가 숨어 있는 동굴로 향한다.
“벌써 이쪽을 알아챈 것 같슴다.”
한성민의 말대로였다.
어느새 놈은 이미 우리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어어어!”
지하국대적이 괴성을 내지르며 자신의 대검을 들어 올려, 땅을 내리쳤다.
그러자 우리가 있던 동굴이 입구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그럼 이것도 신통력의 일부일까.
“일단 밖으로!”
그래서 우리는 곧바로 거인이 선 공동으로 뛰쳐나왔다.
그와 동시에 동굴은 완전히 무너져 출구가 사라진다.
빠져나갈 문은…거인의 뒤쪽.
그곳에는 더욱 안쪽으로 향하는 작은 철문이 있었다.
그렇다는 건 애초부터 놈은 이곳에서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뜻.
“크하하하하!”
한편 우리와 같은 공간에 서게 된 지하국대적은 뭐가 그리 좋은지 크게 웃었다.
아무래도 전투는 피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에 나는 검에 불을 붙였고, 나하정과 한성민 역시 전투태세로 들어갔다.
전투의 시작은 나하정이었다.
그녀는 평소 사용하던 권총 대신, 등에 메고 있던 소총을 꺼내 들었다.
그 상당히 낯이 익은 생김새에 나도 모르게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건 K-2.
나하정은 그것을 교본처럼 완벽한 자세로 견착한 뒤, 방아쇠를 당겼다.
요란한 총성과 함께 5.56mm의 탄환 세례가 거인의 머리를 덮친다.
“크아!”
하지만 지하국대적의 방어력은 만만치 않았다.
정확히 미간을 향한 초탄은 그 안으로 박혔지만, 관통은 바랄 수 없었다.
무엇보다 거인의 몸집에서 오는 크기의 차이가 컸다.
인간에게는 치명적인 총알이라도, 달려오는 코끼리의 두개골을 뚫어내기는 힘든 것과 같은 이치.
그래서 나하정의 총격은 거인의 분노만 돋굴 뿐이었다.
“으아아아!”
놈이 괴성을 지르며 돌격해왔다.
그 앞을 한성민과 내가 가로막는다.
먼저 한성민이 거인에게 닿았다.
그는 손에 든 야구 배트로 거인의 대검을 받아치려 했지만.
“우악!”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뒤로 크게 날아갔다.
다행히 몸을 강철처럼 변화시킬 수 있는 한성민이기에 부상이 심하지는 않겠지만, 그 사이의 힘 차이가 꽤 컸다.
아라한의 전승을 사용하고도 저 정도인가.
한성민의 완력은 나와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근접전이 그리 녹록지는 않다는 뜻.
하지만 오래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한성민이 날아간 직후.
쾅쾅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거인의 쌍검이 눈앞에 쇄도했다.
쳐내는 것은 불가능.
그렇다면, 피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훙-
거대한 강철 검이 귓가를 스쳐 지나간다.
엑스자 형태로 덮쳐오는 검의 궤도를 읽고 그 사이로 회피한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거인의 아래쪽으로 파고들었고,
“수호자의 일격!”
스킬을 이용해 검으로 그 발목을 베어냈다.
그러자,
“크아아악!”
거인은 비명을 토해내며 돌진을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바닥을 물들인 거인의 검은 피.
공격은 성공적으로 들어간 셈이었지만, 나는 검을 쥔 손을 바라보았다.
손이 얼얼했다.
지하국대적의 가죽이 상상 이상으로 단단했기 때문이었다.
방어력을 일정 부분 무시하는 스킬을 사용했는데도 이 정도라니.
검만으로는 놈을 쓰러뜨릴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화염이라는 선택지도 있긴 하지만.
“……”
마를 태우는 하얀 불꽃은 분명 놈에게 효과가 있었다.
지금도 놈은 자신의 발목을 태우는 화염에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으니.
그러나 문제는 지하국대적의 크기가 너무 크다는 점이었다.
주작의 불꽃은 강하지만 결국 내 영력을 태워 만들어지는 화염이다.
그러니 평범한 사람 정도라면 모를까.
저렇게 큰놈을 통째로 태우기 위해서는 영력의 소모가 너무 심했다.
지금 내가 가진 영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로.
그렇기에 답은 역시 하나밖에 없었다.
“…독인가.”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어차피 조금 전의 공격으로 인해 놈의 시선은 나에게 집중될 터였다.
내가 가장 위협적인 적이라는 걸 분명히 각인시켰을 테니까.
그러니 거인이 나와 공방을 주고받는 사이에 한성민은 근거리에서, 나하정은 원거리에서 놈을 교란.
거인에게 혼란을 불러일으켜 몇 번이라도 내 칼이 닿는다면, 충분히 가능한 작전이었다.
그러나.
그런 내 생각은 그 직후 부정되었다.
“크아아아아아아아!”
갑자기 커다란 괴성을 내뱉은 놈은 나를 내버려 두고 나하정에게로 달려갔기 때문이었다.
심지어는 발목에 붙은 화염조차 끄지 않고, 놈은 그 너덜거리는 발목을 억지로 움직여 달렸다.
이에 아직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던 나하정의 시선에 미약한 곤혹이 깃들었다.
“아니, 뭔…”
나하정은 처음 총격 이후 이제 막 탄창을 갈아 끼웠을 뿐이었다.
아직 지하국대적을 자극시킬만 한 일은 하지 않았던 셈.
그런데 어째서 저렇게 미친 듯이 나하정을 공격하려 하는 걸까.
“전승 때문인가.”
나는 이내 나하정에게서 들은 전승을 떠올렸다.
전승 속에서 지하국대적을 도왔던 아내는 거인의 잘린 머리를 거인에게 던져주었고, 그러면 그 머리가 다시 거인에게로 붙었다고 한다.
그리고 반대로 남편을 도왔던 여성은 잘린 거인의 머리에 재를 뿌려 거인에게 붙지 못하게 했다.
이 전승은 지하국대적의 재생력과 신통력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전투에서의 향방을 가른 데에 두 여인의 역할이 컸다는 걸 의미했다.
그렇기에 지하국대적은 지금 내 검의 효과에 의해 상처를 재생하지 못하고, 오히려 불타고 있는 그 원인을 내가 아닌 나하정에게서 찾은 것이었다.
자신을 방해한 그 여인처럼, 나하정이 제 상처에 재를 뿌리고 있다 생각한 거겠지.
“멍청한 새끼.”
나는 나에게서 등을 돌린 지하국대적에게로 돌진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 텅 빈 발목을 향해 칼을 들이밀었다.
촤악!
그러자 이번에야말로 너덜거리던 놈의 발목은 내 검에 의해 완전히 잘려 바닥에 뒹굴었다.
하지만,
“크아아아아!”
지하국대적은 발목이 잘려나갔음에도 잠시 기우뚱했을 뿐.
곧 다시 균형을 잡고 나하정에게로 달려나갔다.
신체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는 놈의 신통력 때문이었다.
비록 잘린 발목은 내 화염에 완전히 불타, 거의 재가 되었지만.
거인은 마치 투명한 발목이 있는 것처럼 신통력으로 한쪽 다리를 지탱한 채 나하정에게 쇄도했다.
그 아래로는 검은 피가 쏟아져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세요!”
나하정이 소리쳤다.
그녀도 지하국대적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걸 인식하고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어느새 그녀의 K-2에는 유탄발사기가 달려있었다.
나하정은 뒤로 재빠르게 물러나며 수많은 총탄을 지하국대적의 머리에 박아넣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는 수류탄이 연속으로 발사되어 놈의 눈앞에서 연쇄적으로 폭발.
요란한 폭발음과 함께 끝내 그 머리를 날려버린다.
“……”
아무리 영력으로 강화되었다고 한들, 상당한 화력이었다.
내 검으로도 완전히 베어내지 못한 신체를 흔적도 없이 날려버리다니.
그러나.
그렇다 해도 나하정의 공격은 놈에게 효과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녀에게는 나처럼 재생을 막는 힘이 없었으니.
“그으으으으-”
머리가 날아간 목구멍에서 흘러나오는 기괴한 소음과 함께 날아갔던 놈의 머리가 서서히 재생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걸 두고 볼 나하정이 아니었지만, 괴물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나하정이 재무장하기 전에 끝내야 하는 걸 알고 있다는 듯, 놈은 재생이 끝나기도 전에 움직였다.
순식간에 나하정의 코앞까지 접근한 놈의 쌍검이 그녀에게 내리꽂힌다.
“어딜!”
그 앞을 막아선 것은 한성민이었다.
하지만 그의 야구 배트는 떨어지는 쌍검을 막아선 순간 크게 흔들렸다.
“워메…”
한성민이 인상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저 둘의 힘의 차이는 현격했다. 그렇기에 정면에서 들어오는 공격을 막기보다는 옆으로 흘려내야 했지만, 한성민에게 그 수준에 이른 무도의 소양은 없었다.
그래서 한성민은 이어지는 공격을 얻어맞고 또다시 날아갔다.
이제 거인 앞에 남은 것은 나하정 뿐.
그녀는 여전히 냉정한 표정으로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쉽지는 않겠지.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된 이상, 독을 이용해 잡는 것은 효율이 좋지 않았다.
이를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동안 저렇게 미친놈처럼 나하정을 노린다면.
나라고 해도 그녀를 온전히 보호해줄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아껴두려 했던 아이템을 쓰기로 했다.
매직 영혼 아이템
– 30분간 영력을 제외한 모든 스테이터스가 30 증가합니다.
– 힘이 영구적으로 5 오릅니다.
소모품
골리앗의 전승이 일부 담긴, 한 마인의 영혼이었다.
우연히도 둘 다 같은 거인의 전승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 정도의 능력치 보정이라면 더이상 저 지하국대적의 힘에도 밀리지는 않을 터.
그렇게 결정한 나는 곧바로 아이템을 사용했다.
한순간 터져 나온 막대한 힘이 온몸 구석구석에 깃들었다.
나는 곧바로 검을 들어 올려, 나하정을 노리는 놈의 검격 앞으로 다가가 그것을 정면에서 쳐냈다.
까앙!
그러자 호쾌한 소리가 터져 나오며 그 대검 두개가 크게 허공으로 들렸다.
“…!”
그 모습을 바라본 나하정은 내 옆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