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8
8.
8.
“끼아아아아아아!”
마가 내뱉은 처참한 비명 소리에 이수연의 눈빛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움직이려 해도 폐는 쥐어짜인듯 숨이 쉬어지지 않았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귀곡.
령이 내뱉는, 원한이 녹아내린 인간의 심신을 굳게하는 비명.
원래라면 이 정도의 귀곡은 이수연을 비롯한 조교들의 움직임을 묶을 수 없다.
이는 그들이 가진 영력을 끌어올리는 것만으로도 방어가 가능한 정도.
하지만 영력을 끌어올리기도 전에 기습을 당한 것이 문제였다.
“크윽···!”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수연은 신음을 흘렸다.
어느새 실습을 위해 꺼내놓았던 한이 령이 되어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을 스스로 업을 쌓아야지만 령이 될 수 있다.
헌데 이 강당 한복판에서 어떻게 업을 쌓을 수가 있다는 건가.
“죽어어어어어어!”
령이 다시 한번 귀곡을 내뱉었다.
령이 되며 지성을 얻은 그것은 이미 사람의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령이 움직였다.
령의 손이 거대한 낫처럼 변한다.
더 이상 매개체에 묶일 필요가 없는 령은 곧바로 가장 가까이 있던 인간, 강진우를 향했다.
이수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귀곡으로 인한 마비 증상은 어차피 몇 초 후면 풀릴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의 시간이면, 똑같이 굳어 있을 강진우가 령에게 살해당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그녀가 강진우의 죽음을 예견한 순간.
그녀의 귀에 불현듯 쌍욕이 들려왔다.
“아니, 씨발!”
어째서인지, 강진우는 굳어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령을 보며 화들짝 놀라고 있었다.
“이거 움직이잖아! 안 움직인다면서요!”
그는 불만을 내뱉으며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령의 손을 스패너로 쳐냈다.
반응 속도는 빠르다고 할 수 없었지만, 쳐낸 각도가 교묘했다.
아슬아슬하게 령의 손이 강진우의 목을 스친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저 운이 좋은 것처럼 보였지만.
이수연에게는 그것이 철저히 계산된 동작으로 보였다.
그래서 이수연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능성이 스쳤다.
어쩌면.
강진우는 이대로 저 령을 퇴마해 버리는 것일까.
그렇다면 엄청난 일이었다.
경험 한번 없는 연수원 교육생이 령을 퇴치하다니.
이제까지 그 정도의 잠재력을 가진 퇴마사가 있었던가.
그러나 그런 이수연의 예상을, 강진우는 다시 한번 배신했다.
“으악, 씨발! 가만히 있지 말고 이것 좀 어떻게 해봐요!”
령의 공격을 한번 쳐낸 그는 순식간에 등을 돌려 도망쳤다.
그것도 조교들이 있는 방향으로.
조교들이 굳어 있다는 걸 모르는 걸까.
만에 하나라도 알고 있다면, 얼마나 뻔뻔스러운 행태인가.
“아···!”
이수연과 조교들이 비로소 귀곡으로 인한 마비가 풀린 것은 그때였다.
이수연은 멈춰져 있던 호흡조차 가다듬지 않고, 곧바로 움직였다.
그녀는 품속에 숨기고 있던 단도를 꺼내, 순식간에 령을 베어 갈랐다.
“주···죽···”
이 령은 이제 막 생겨난 백령.
때문에 그것이 쌓은 업은 아직 미미했고, 베테랑 퇴마사인 이수연의 일격조차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령은 그대로 반으로 갈라져 소멸했다.
“······”
령의 소멸을 확인한 이수연은 착잡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교육생들은 물론 조교까지 당황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진우는···어느새 출구 바로 앞까지 도망가서 이쪽으로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된 후.
오후 교육은 거기서 그대로 종료되었다.
어차피 내가 실습의 마지막 순서였고, 더 이상 교육을 진행하기도 애매했기에 당연한 조치였다.
나는 어느새 같이 붙어 다니게 된 김다영, 이현석과 함께 강당을 나섰다.
“큰일날 뻔 했네요. 괜찮으세요?”
“예, 뭐···”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 비명 소리···귀곡이라고 했죠? 엄청 기분 나쁜 데다 갑자기 꼼짝도 못 하겠더라고요.”
“저도 그랬습니다. 소름이 끼치더군요.”
김다영과 이현석은 서로 조금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떠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대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레벨을 볼 수 있었던 나의 능력.
거기에 변화가 있었다.
HP통과 함께 게임 화면처럼 보이게 했던 프레임.
그 일부분이었던 반투명한 사각형 박스에 처음으로 어떤 문장이 주르륵 떠 있었던 것이다.
뭔가 했더니, 게임의 로그 같은 것이었다.
게다가 그 내용은 스킬과 퀘스트가 개방되었다는 것.
“하···!”
나는 그걸 확인하고 허탈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 게임 화면이 떡 하니 떠 있는데 레벨만 보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능력을 얻고서 스킬창과 상태창을 수십 번 외쳐도 한번도 반응을 하지 않기에 그저 장식인줄 알았건만.
이게 레벨이 올라가야 개방되는 형식이었다니.
며칠 전의 추태가 떠오른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레벨을 보게 된 직후, 개인 훈련장에서 상태창을 외쳤던 일.
그때 나를 보던 이수연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저 평범한 병신을 넘어, 황천의 뒤틀린 또라이를 보는 듯한 시선.
그 날 밤에는 너무 쪽팔려서 잠도 제대로 못 잤었는데.
그게 단지 레벨이 낮아서였다니.
“아니, 그건 됐고···”
고개를 흔들며 아픈 기억을 잊었다.
나는 다시 게임 프레임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역시나, 프레임 아래 쪽에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글자가 있었다.
S와 Q.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스킬과 퀘스트를 뜻하는 아이콘이리라.
나는 먼저 S를 바라보았고, 말로 할 필요도 없이 곧바로 스킬창이 열렸다.
“흠···”
스킬창은 볼 게 별로 없었다.
있는 거라고는 딱 하나, 스매시 뿐.
스매시라.
배운 기억은 없었다.
다만 몽키 스패너의 아이템 설명에서 본 기억이 있다.
뭔가 했는데, 그게 단순한 스탯이 아니라 스킬이었나.
나는 스매시에 시선을 집중했다.
어떻게 사용하는지, 그 방법을 알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친절하게도 도움말이 출력되었다.
“······”
그러니까 나보고 귀신 앞에서 몽키 스패너를 든 채 스매—-시! 라고 외치라는 건가.
아무래도 아직 쪽팔릴 일은 남아있는 것 같군.
찜찜한 기분으로 스킬창을 닫은 뒤, 이번에는 퀘스트창을 열었다.
하지만 퀘스트창은 텅 비어있었다.
어떤 글자도 적혀 있지 않은 까만 화면.
하긴, 퀘스트라는 걸 받아본 적이 없으니 아무 것도 없는 게 당연한가.
“에잉···쯧.”
잔뜩 기대했는데, 소득은 별로 없었다.
아니, 퀘스트야 그렇다 쳐도 말이야.
스킬창을 열어 줬으면 스킬이라도 하나 줘야 정상이 아닌가.
하다 못해 파이어볼 같은 것만 줬어도 좋았을 텐데.
그렇게 속으로 불만을 내뱉던 도중, 이수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진우 씨. 잠시 시간이 되십니까?”
뒤를 돌아보자 이수연이 그곳에 있었다.
무슨 할 말이 남았나?
나는 같이 있던 두 사람을 기숙사로 보내고, 이수연에게 다가갔다.
“이번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가 부주의했습니다.”
그러자 이수연은 먼저 나에게 사과부터 했다.
하긴, 사과를 하는 게 먼저긴 하지.
까딱하면 죽을 뻔 했으니까.
“이에 대한 보상은 연수원장님과 상의한 후, 따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거기에 보상까지.
대처가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아이고, 아닙니다. 강사님들도 고생하셨는데, 뭘 그런 걸 다.”
“당연한 조치입니다. 그런데···이번 일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뭐, 그 정도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한이 갑자기 령이 되었는지, 짐작 가시는 부분이 있으십니까?”
짐작이라.
보나마나 갑자기 생겨난 레벨 1짜리 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레벨 9짜리 한이 그걸 집어 삼키더니 10이 됐고, 한이 령으로 진화한 거겠지.
안 봐도 뻔했다.
그래서 나는 그 이야기를 이수연에게 그대로 전해주었다.
“새로운 한이 생겨났다고요? 그럴 리가···”
그러나 이수연의 태도는 신중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저희가 알아채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갑니다. 갓 생겨난 한은 품고 있는 업도 적기에 감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바로 근처에 더 강한 마가 존재한다면 더욱 그렇지요. 하지만···”
이수연은 슬쩍 내 눈치를 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한은 아무런 이유 없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물론 강진우 씨의 증언을 믿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모든 마의 발생은 반드시 누군가의 죽음에 기인해야만 합니다.”
“그럼 뻔하네요.”
“뭐가 말입니까?”
“아까 그거 칼이었죠? 결국 거기에 찔린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리 아닙니까?”
“그건···”
내 말을 들은 이수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곧 짐작 가는 게 있었는지 입을 열었다.
“잠시 확인 좀 하고 오겠습니다.”
그리고는 어디로 전화를 하더니, 금방 돌아왔다.
조금 멍한 얼굴이었다.
“강진우 씨의 말씀이 맞았습니다. 그 칼은 반년 전, 강도 사건에 연루되었던 흉기입니다. 당시 사망자는 1명이었지만, 사실 피해자는 1명 더 있었습니다. 중상을 입고 최근까지 병원에서 치료 중이었죠. 그런데 피해자가 바로 조금 전에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럼···한이 생겨난 게 맞았네요.”
“예, 그렇습니다. 강진우 씨 덕분에 진실을 알 수가 있었군요.”
이수연의 시선이 차분히 나를 스쳤다.
“한 가지 질문이 더 있습니다. 강진우 씨는 어떻게 귀곡을 듣고도 움직일 수 있으셨던 겁니까?”
“그건···”
나는 잠깐 대답을 망설였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니 숨길 일도 아니었고, 이수연을 제외하면 들을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곧바로 말을 이었다.
“피어에는 워낙에 익숙해서요.”
“피어···요?”
“네. 용사일 때, 그렇게 힘이 담긴 울음 소리 같은 걸 피어라고 했거든요. 그때 엄청 지겹게 들었던 거라 아까 그 정도로는 안 통합니다. 드래곤 피어면 모를까.”
“······”
이수연은 미묘한 얼굴로 침묵했다.
의심하고 말고를 떠나서, 이해조차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건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솔직하게 말한 것 뿐이었으니까.
믿기 싫으면 믿지 말라지.
“더 질문할 거 있으세요?”
“아···아닙니다. 그럼 쉬십시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이수연과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나는 그대로 방으로 돌아갔다.
***
두 여성이 무거운 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바닥과 벽은 물론 천장까지 새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공간이 있었다.
깊은 지하라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공동.
게다가 그 공동을 채우고 있는 것은 수많은 무구였다.
그 숫자는 수천 개 이상.
그러나 그것들 중에는 단 하나도 똑같은 것이 없었다.
하나 하나가 양산품이 아닌, 각자 이야기와 전설을 품고 있는 보물들이기 때문이었다.
교회에서는 성물이라 불리는 신기들.
그리고 그 성물 중 하나의 앞에 한 여성이 섰다.
“······”
나이는 20대 초반.
비단 같은 금발의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내려왔다.
살짝 올라간 눈썹에서는 날카롭기 그지 없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모니카라는 세례명을 가진 그녀는 황금에 묶인 길게 뻗은 창 하나를 노려보더니, 곧바로 그것을 집어 들었다.
“이거에요.”
“그건···모세의 지팡이군요.”
그녀와 같이 온 또 다른 여성이 반색했다.
“아브라함 정도는 아니지만, 모세는 지도자 중에서도 그 위계가 높아요. 정말 그걸 감당할 수 있겠어요? 잘못했다간, 죽을 텐데?”
여성은 위압감을 담아 물었다.
하지만 모니카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할 필요 없어요. 이게 절 선택했으니까요.”
“자신만만하네요. 좋아요. 그럼 봉인을 해제하세요.”
여성의 말에 모니카는 창을 묶고 있던 금색의 끈을 끊어냈다.
그러자 모니카의 손에 들린 창에서 엄청난 영력이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채 몇 초도 지나지 않아서 서서히 잠잠해 지더니.
금세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해졌다.
그 모습에 여성은 박수를 보냈다.
“훌륭하군요, 모니카. 정말로 모세의 지팡이에게 선택을 받다니, 더없이 만족스러워요.”
“감사합니다, 지파장님.”
“이걸로 또 하나의 성물이 우리 지파로 들어왔군요.”
흐뭇한 얼굴로 여성이 말했다.
“그나저나, 한국에는 다음 주에 떠난다고 했죠? 너무 이른 거 아닌가요?”
“한국은 국가에서 운영하는 교육 과정을 수료해야 엑소시스트 자격이 주어집니다. 그 교육 때문에 예정이 당겨졌습니다.”
“그런 룰이 있었나요? 하여간 통제를 좋아하는 나라에요. 모니카도 참, 굳이 그런 나라에 발령을 보내달라고 하다니.”
여성은 등을 돌려 출구로 걸어갔다.
모니카 역시 그 뒤를 따랐다.
그러다 문 앞에서 여성은 모니카를 뒤돌아보았다.
“한국에 가는 이유는, 그 마인에게 복수하고 싶어서인가요?”
“예.”
“후후···여전히 솔직하네요, 모니카는.”
쓴웃음을 지은 여성은 문을 나섰다.
여성과 모니카가 성물 보관실을 나가자 두꺼운 철문은 스스로 닫혔다.
“하지만 조심하세요. 한국은 그 좁은 땅에서 20년 간 흑령이 세 번이나 나타났던 지역. 뿐만 아니라 마인과 괴이까지 설치고 다니죠. 그 덕에 교회도 세를 떨치고 있지만, 그만큼 마 역시 강대하답니다.”
“각오하고 있습니다.”
모니카는 깊게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여성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좋아요. 그럼 성과를 기대하겠어요, 모니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