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80
80.
나하정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맹렬한 전투를 경악과 함께 바라보고 있었다.
쾅!
지하국대적의 대검이 땅을 내리찍었다.
그것만으로 땅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리며, 그 위에 선 나하정의 몸을 잡고 늘어져 그 균형을 무너뜨리려 했다.
그 때문에 그녀가 쥐고 있던 총구마저 크게 요동쳤지만.
그 속에서도 지하국대적의 검을 피해낸 강진우는 아무렇지 않게 그 발을 옮기고 있었다.
“……”
분명 나하정이 보기에 지하국대적이라는 괴이는 강력했다.
특히 놈이 가진 완력과 내구성은 실로 독보적이었다.
그 칼질 한번 한번에 담긴 운동량은 이미 폭발이라고 칭해도 될 정도였고.
놈의 가죽은 총알로도 쉽게 뚫을 수 없었으며, 겨우 날려버린 머리는 순식간에 회복할 정도로 재생력이 뛰어났다.
잘 상처 입지도, 죽지도 않는, 파멸적인 괴력의 거인.
그야말로 까다롭기 그지없는 괴이였지만, 나하정에게 그것 자체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다.
원래 괴이라는 것들은 전승 속의 비현실적인 공포와 악을 재현하는 괴물이다.
그렇기에 괴이는 대부분 터무니없이 위험했고, 공격과 방어에 있어 있을 수 없는 위력을 뽐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다름 아닌 강진우의 활약이었다.
깡! 까강! 쾅!
바위를 부수고 땅을 찢는 거인의 쌍검이 강진우의 검에 튕겨져 나갔다.
떨어지는 바위를 작은 이쑤시개가 막아서는 듯한, 눈으로 보고 있어도 믿기지 않는 광경.
“허…강 경감님이 원래 저리 잘 싸웠슴까?”
어느새 나하정의 옆까지 다가온 한성민이 그런 소리를 냈다.
거인과 강진우의 사이에서 수많은 파열음이 겹쳤고 바람이 휘몰아쳤다.
튕겨져 나간 대검이 지면을 부수고, 뒤로 물러선 거인의 발이 땅에 박힌다.
근접전에 있어서는 스페셜 리스트인 한성민조차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격전.
거인과 강진우, 그 둘 간에 있어 맞서는 힘의 균형은 분명 길항이었다.
어느 쪽도 완벽히 앞선다고도 뒤처진다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언제부터 그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
나하정은 침묵 속에서 강진우를 관찰했다.
그는 자신을 향해 쏟아져 내리는 거인의 맹공 앞에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검을 튕겨내더라도 그 충격이 순식간에 그가 선 지면을 통째로 파괴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서걱!
섬뜩한 소리와 함께 베어지는 것은 거인의 한쪽 손이었다.
“크아아아악!”
분노에 찬 거인의 비명이 공동을 울렸다.
지하국대적은 잘린 손을 붙이려 했지만, 붙지 않았다.
강진우의 검에 깃들어 있다는 재생을 막는 힘 때문이었다.
그래서 거인은 재생을 포기하고 아예 손만을 허공에 둥실둥실 띄워, 다시 공격을 시도했다.
남은 한 손에 들린 대검과, 잘린 손에 들린 대검이 동시에 강진우를 노렸다.
그 두 대검의 궤도를 보며 나하정은 표정을 흐렸다.
“검술…?”
거인은 단순히 힘만 믿고 뻗대는 괴이가 아니었다.
놈의 대검이 만들어내는 궤적은 분명 효율적이고 정확했다.
지하국대적의 전승대로였다.
설화 속에서도 놈의 무기는 대검이었다.
즉 거인이면서도 검사의 면모를 갖고 있는 괴물.
그렇기에 거인의 검술은 그저 본능만 믿고 검을 휘두르는 게 아닌.
분명히 전략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었고, 이를 이용해 놈은 공방 일체의 투로를 찾아내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하정의 눈에는 강진우를 향해 날아오는 앞뒤와 양옆에 동시에 드리운 놈의 검격을 피할 길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어째서일까.
그렇게나 완벽해 보였던 거인의 두 참격은 강진우의 검 앞에서 처절하게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크아-”
또 다시 한쪽 허벅지가 베인 거인이 비명을 내질렀다.
강진우의 움직임은 나하정의 눈에도 제대로 포착되지 않았다.
그저 그의 일섬이 거인의 쌍검을 모조리 쳐냈고, 그다음 순간 거인이 비명을 내질렀을 뿐이었다.
“어떻게…”
거인의 검술은 나하정이 보기에도 훌륭했다.
그러나 강진우의 검술은…나하정이 읽어내지 못할 정도로 초월적인 것이었다.
빈틈이 없다고 생각한 공격을 반격해, 억지로 틈을 만들어 양옆으로 찢어발기는 듯한 기예.
그리고 서로의 힘이 비등한 상태에서 그 현격한 기술의 차이는 곧 치명적인 결과로 다가왔다.
화륵!
잠잠하던 강진우의 백염이 검에서 다시 타올랐다.
그것은 혼자 떠다니던 거인의 손을 세로로 베어내더니, 순식간에 그것을 태워 없앴다.
저래서야 지하국대적에게 아무리 잘린 신체를 움직일 수 있다는 신통력이 있다 한들, 양손에 검을 쥘 수는 없었다.
그리고 한쪽 칼밖에 남지 않은 거인 쌍검사는, 결코 강진우의 적이 되지 못한다.
“크아아아아아!”
자신의 유리함을 인지한 강진우의 공세는 매서웠다.
검광이 한번 번뜩이자 거인의 다리가 잘렸고, 그다음 섬광에서는 나머지 팔이 달아났다.
지하국대적은 그제야 위기감을 느끼고 물러나려 했지만.
강진우의 맹공은 놈을 쉽게 놔주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십수 번의 참격이 거인의 몸을 스친다.
몸을 9개로 나뉘고도 살아있을 수 있다는 지하국대적.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몸은 스무 개의 조각으로 나뉘고 있었다.
“그르르륵…”
게다가 무슨 조화일까.
나하정은 언제부터였는지, 거인이 그 입에 녹색의 거품을 물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 때문인지 거인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도 않았다.
“아주 깍둑썰기를 하네. 저거, 저래도 살아납니까?”
한성민의 물음에도 나하정은 쉽게 답할 수 없었다.
분명 저 괴이는 몸이 조각나도 살 수 있고, 그 몸을 움직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지금도 조각난 지하국대적의 몸은 허공에 떠서,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는, 당연히 나하정도 알지 못했다.
그 답을 알고 싶은 걸까.
강진우의 검이 다시 번뜩였다.
눈으로 따라갈 수도 없는 초속.
20개의 조각은 곧 40개를 넘게 찢어지고, 이내 다 셀 수도 없을 정도로 쪼개졌다.
어디까지 잘라내도 안 죽는지 보자고 말하는 듯한 연격.
“아무리 그래도 저건…”
나하정이 그런 목소리를 흘렸다.
그녀의 머리로도, 저래서는 아무리 지하국대적이라고 해도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예상대로.
투두두두둑!
마지막 단말마를 내지를 성대조차 조각난 거인의 고깃덩이가 어느 순간 일제히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마치 시체의 비가 내리는 듯한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나하정은 할 말을 잃었다.
지하국대적의, 자신의 몸을 조작하는 신통력이 이 순간 사라졌다는 말이었다.
“워메…”
한성민의 탄성이 한숨처럼 흘러나왔다.
지하국대적의 살점은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 순간.
아무리 토막 내도 죽지 않는다는 괴이는, 분명 토막 나 죽은 것이었다.
* * *
“음…”
눈앞에 보이던 지하국대적의 레벨 표시가 사라졌다.
겨우 놈이 죽었다는 뜻.
나는 그걸 보며 뻐근해진 팔을 풀었다.
오랜만에 열심히 검을 휘둘렀다.
최대한 이 거인의 몸을 잘게 쪼개놔야 했으니.
이 정도로 검을 쓴 건 아마 이세계 시절 이후로는 처음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왜인지 찝찝한 기분이 먼저 들었다.
“괜찮아요?”
어느새 다가온 나하정은 그렇게 물었다.
내 주위에는 거인의 살점이 잔뜩 떨어져 있었지만, 그녀는 신경도 안 쓰는 눈치였다.
대신 나하정은 신기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 예. 괜찮습니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어요?”
“뭐가요?”
“그러니까 이 정도로 잘게 자르면, 지하국대적이 죽는다는 거요.”
“아, 그거. 알았다기보다는…당연한 거잖아요.”
원래 뭐에 안 죽는다는 놈들 특징이 대부분 그렇다.
그냥 거기에 어느 정도 저항이 있다는 거지.
완전 면역이 있다는 소리가 아니니까.
예를 들면 머리가 9개 달린 히드라는 모든 머리가 잘리기 전에는 끝없이 재생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그게 정말인지, 이세계에 있을 때 실험해본 적이 있었다.
놈의 머리를 하나만 남기고 재생할 때마다 다른 모가지는 전부 쳐내는 간단한 실험.
그런데 싱겁게도 히드라의 재생 능력은 채 하루도 가지 못했다.
한 12시간 동안은 열심히 재생했지만, 점점 그 속도가 떨어지더니 다음날쯤에는 하나 남은 머리마저 힘이 다해 죽더라.
그러니 지하국대적처럼 아무리 토막 내도 안 죽는다는 놈들도 사실 마찬가지였다.
아예 육체의 개념이 없는 정령이라면 모를까.
상식적으로 저 거인을 믹서기에 넣고 갈아서 액체로 만들어도 다시 살아나겠는가.
그건 슬라임도 뒤지는데.
그런 내 설명을 듣더니, 나하정은 할 말이 없다는 듯 조용해졌다.
“그보다 나 의경이야말로 괜찮아요?”
“네. 몸은 문제가 없어요. 다만…유탄 소모가 조금 심하네요.”
나하정은 자신의 가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절벽으로 향하는 만큼, 그리 많은 짐을 가져오지는 못했던 그녀였다.
그런데 한번에 유탄을 몇 개나 쏟아부었으니, 그 가방은 더욱 홀쭉해 보였다.
현대 화기를 사용하기에, 사전 준비가 자신의 전투력으로 직결되는 나하정에게는 적지 않은 손실이리라.
“그럼 한 순경은?”
그는 거인의 시체가 뿌려진 이 진창에 발을 들여놓기는 싫다는 듯, 멀리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문제 없슴다.”
분명 내가 아이템을 사용하기 직전.
그가 거인의 검에 맞아 날아간 걸 봤었음에도 정작 한성민은 멀쩡한 듯 그렇게 답했다.
“근데 이번에도 강 경감님이 다 했네. 이거, 제가 한 게 없어서 어쩝니까.”
한성민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모르겠지만.
이미 한성민은 나에게 훌륭한 전투력 측정기였다.
몸 하나는 튼튼해서 잘 다치지도 않고.
거기에 완력은 나와 비등할 정도로 강해서, 대충 붙여 두면 상대의 공격력을 파악할 수 있었으니.
바로 조금 전만 해도, 내가 지하국대적의 전투력을 파악하는 데 그의 공이 크지 않았던가.
“그런 말은 됐고. 그보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팀원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부상자는 없는 모양이었다.
다친 사람이 있었다면 철수를 고려해야 했을 텐데.
“그럼 조금만 쉬다가…계속 갈까요?”
“그래야죠.”
내 말에 나하정은 곧바로 답했다.
그녀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그리고 한성민은,
“어차피 돌아갈 길도 없지 않슴까.”
무너진 토굴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하긴, 출구가 사라졌었지.
어차피 답은 직진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잠시 태세를 정비하고, 거인이 지키고 있던 문 뒤로 향하기로 했다.
* * *
강 경감 일행이 문을 통과하기 조금 전.
서인나와 최은영, 그리고 권태수는 막 절벽의 바닥에 도달하려 하고 있었다.
“이, 이제 곧 절벽이 끝나요!”
최은영은 자신의 소환수, 와쳐가 보내온 정보를 다른 팀원에게 알렸다.
와쳐는 날개가 달려 날아다니는 주먹만 한 눈알로, 강진우가 그에게 알려준 정찰용 소환수 중 하나였다.
비록 최은영은 그 생김새가 조금 징그럽다 생각했지만, 와쳐가 들고 온 정보는 그 사실을 잊을 만큼 충분히 희망적인 것이었다.
“아이고, 이제야 좀 살겠구나.”
이에 권태수가 반색했다.
반대쪽 절벽을 타고 내려온 강진우처럼, 이들 역시 위험천만한 벼랑길을 내려오며 수많은 괴이와 마주쳐 왔던 탓이었다.
“바닥 상태는 어떠니?”
하지만 지친 기색도 보이지 않는 지원 2팀의 팀장, 서인나는 담담하게 물었다.
이에 와쳐는 자신이 본 풍경을 한 장의 사진처럼 눈동자 위에 띄워, 최은영에게 보여주었다.
“음…물 같은 게 있어요.”
“뭬야? 그럼 여기에 계곡이라도 있다는 게냐?”
“그게, 그런 느낌은 아닌 것 같은데…”
최은영의 애매한 말투에 서인나는 금방 감을 잡고, 입을 열었다.
“늪이구나?”
“아, 맞아요. 딱 그런 느낌…”
최은영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곧 표정을 흐렸다.
절벽에 이어 늪이라니.
결코 편안한 길은 아니었으니까.
“쯧쯧, 더러운 놈들이 만든 곳이라 그런지 더러운 것밖에는 없구먼.”
“그럼…이제 어쩌죠? 늪을 지나갈 수 있을까요?”
“건너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을 거야. 그렇죠, 할아범?”
“물론 내가 발판은 만들어 줄 수 있지. 그런데 그 늪 속에 뭐라도 있지 않겠는가?”
늪은 그 특성상, 평범한 땅 위에 있더라도 마가 저절로 많이 꼬이는 곳이다.
그런데 하물며 이렇게 괴이가 들끓는 지역이라면, 그 안에 뭐가 도사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
그러나 서인나는 차분하게 답했다.
“그렇겠죠. 그건 내가 처리합니다.”
그녀의 말에 권태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인나의 실력이라면 의심할 필요가 없었으니.
이윽고 그들은 절벽의 바닥, 늪에 도착했다.
그 앞에 선 권태수가 최은영을 보았다.
“어느 쪽으로 가면 되나?”
“저쪽…이에요. 반대쪽 절벽에 안쪽으로 향하는 길이 나 있어요.”
고개를 끄덕인 권태수가 손짓하자, 청량한 바람과 함께 어디선가 낙엽이 날아왔다.
그리고 그것은 늪 위로 늘어서며 하나의 길을 만들었다.
권태수의 도술이었다.
“그럼 가지.”
세 사람은 나뭇잎 길을 걸어갔다.
반대편 절벽까지의 거리는 200미터가 넘었다.
지상에서 관측된 두 절벽 사이의 거리는 그 반의반도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절벽은 아래로 내려오면서 점점 넓어지는 구조였기에 그렇게나 멀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그들이 이제 막 늪의 한가운데에 도달했을 무렵, 이변이 감지되었다.
“음…?”
늪의 진동을 감지한 권태수가 눈썹을 들어 올렸다.
이윽고 그 진동은 늪을 눈에 보일 정도로 출렁이게 했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낸 것은 녹색의 이끼가 수북이 쌓인 거대한 8개의 다리.
그것은 곧바로 늪의 바닥에서 제 몸통을 들어 올렸고.
“히익!”
최은영의 비명과 함께 거대한 거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몸길이는 4미터에 이른다.
머리에는 까맣고 거대한 두 개의 눈동자 근처로 10개가 넘는 작은 눈동자가 박혀 있는 것이 보였고 그 앞에는 거대한 두 개의 이빨도 있었다.
그 징그러운 모습에 최은영은 물론 권태수도 미간을 찌푸렸지만.
서인나만은 냉정하게 거미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늪 거미라…”
그녀가 생각하는 것은 이 거미의 원전.
다른 두 사람은 이에 대해 추측조차 하지 못했지만, 서인나의 머릿속에는 금방 몇 개의 가능성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