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81
81.
“타란툴라 계열인가.”
늪에 관한 전승은 늪이 존재하는 세계 전역에 퍼져 있다.
그만큼 늪은 위험하면서도 일반적이지 않은, 불길한 지형지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각 지역의 전승 속, 늪이 등장하는 빈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한국에도 늪에 관한 전승은 있지만, 그리 흔하지는 않다.
그만큼 늪을 보기 힘들고, 늪이 있다고 해도 그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늪에 관한 전승의 빈도가 높은 것은…대규모의 늪이 깔린 미국의 인디언 설화나 영국, 혹은 아프리카 쪽.
그중에서도 타란툴라를 늪과 연결할 만한 가능성이 높은 것은, 역시 아프리카였다.
“이런 건 또 어떻게 가져온 거야.”
서인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부적을 꺼내 들었다.
아프리카의 늪 거미가 스스로 이곳까지 걸어왔을 리는 없다.
그 말은 누군가 이걸 거기서부터 여기까지 가져다 풀어놨다는 이야기.
이전의 불여우도 그렇고, 사교에는 괴이를 다루는 놈이 있는 걸까.
서인나는 그런 의문과 함께 부적을 던졌다.
총 5개의 부적은 그녀의 앞에 오각형을 그리듯 반듯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그 오각형 안으로 서인나는 자신의 석궁을 조준했다.
“샤아아아!”
그 순간.
늪 거미가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서인나 일행을 향해 뛰어올랐다.
이에 최은영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지만, 서인나는 차분하게 뛰어오른 놈의 배를 조준했다.
지금 서인나가 펼친 5개의 부적은 음양오행설을 이용한 주술의 일종이었다.
음양오행설은 우주와 인간을 불과 물, 나무와 금속, 그리고 흙의 다섯 속성으로 나타내는 사상.
이에 따라 늪 거미의 속성을 판단한다면.
늪은 물과 나무의 이중속성, 그리고 곤충은 흙과 나무의 이중속성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이를 파훼하기에 가장 어울리는 속성은…
각각의 상성을 찌르는 금속과 화염.
서인나가 그렇게 판단하자, 5각형을 이루던 부적에 화와 금 자가 새겨지며 각각 2개, 3개로 나뉘어 겹쳐졌다.
그와 동시에 화살이 발사되었고, 부적은 줄이 달린 것처럼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그것이 거미의 배에 명중한 순간.
콰아아앙!
요란한 폭음과 함께 늪 거미의 몸 안에서 화염을 두른 거대한 철 가시가 수십 갈래로 튀어나와 그 신체를 찢었다.
“……”
화살과 부적에 담긴 주술이 영력과 함께 폭발하며, 불과 금속을 한순간 구현한 것이었다.
이내 철 가시와 화염은 환상처럼 사라졌지만.
그로 인해 순식간에 걸레 짝처럼 변한 늪 거미는 조각조각 난 채 다시 늪 아래로 가라앉았다.
“와…”
그걸 보며 최은영은 감탄을 내뱉었다.
서인나는 더이상 늪에 움직임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계속 가자.”
“흠, 이런 게 더 있지는 않겠나?”
“무리를 지어 사는 놈은 아닌 것 같으니, 괜찮을 거예요.”
“그렇구만.”
권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그들은 금세 조용해진 잠잠한 늪을 건넜고.
서인나의 말대로 늪에 살던 괴이는 늪 거미뿐이었다.
곧 반대편 절벽에 도착한 그들은 절벽에 난 틈새를 발견했다.
거대한 절벽이 양쪽으로 쪼개져, 사람 한둘은 충분히 지나다닐 만한 공간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건…”
그리고 그 내부에는 계단이 있었다.
절벽 안쪽으로 계단이 이어지며, 위쪽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허, 그 고생을 해서 내려왔더니 다시 올라가라는 겐가?”
권태수가 표정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길은 이 계단뿐.
“어쩔 수 없죠. 가보는 수밖에는.”
그렇게 말하며 서인나는 그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를 뒤따르는 최은영은 가늠이 되지 않는 계단의 길이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지하국대적을 쓰러뜨린 우리는 놈이 지키고 있던 문으로 다가갔다.
양반집 대문이 흙에 파묻혀 있는 듯한 커다란 나무문.
나는 그 손잡이를 잡고 그대로 잡아당겼다.
잠금장치는 따로 없었는지, 그것은 끼이이-하는 음산한 소리와 함께 내부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보이는 풍경은, 예사롭지 않은 것이었다.
“절…?”
그건 거대한 절이었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입구의 양옆을 지키는, 목 없는 사천왕상이었다.
그 안쪽에는 각각 울타리가 쳐진 건물들이 있었는데, 그 숫자는 수십이 넘었다.
마치 드워프들이 세운 지하 국가처럼, 땅을 파내 만든 드넓은 공간 위에 건물을 세운 것이었다.
또한 절은 산의 비탈을 따라 세워진 것처럼,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일정한 경사를 따라 지어졌는데 내가 들어온 입구는 그 중간에 있었다.
게다가 그 전체 규모는 내가 가봤던 중생총본의 서울 지부 부지만큼이나 넓었다.
“아니, 뭐 땅 밑에 이런 게 있답니까?”
이에 한성민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나하정 역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꽤 놀라는 듯했다.
나와는 달리 저들은 이와 비슷한 것조차 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저기, 누가 있어요.”
나하정이 말했다.
그 넓은 절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에서 분명한 인기척이 느껴졌고.
위쪽으로 보이는 건물에서는 아예 승복을 입은 몇 개의 인영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가까운 건물 안에서는 염불을 외는 소리까지 들려온다.
“일단 이쪽으로.”
나는 입구를 지나 울타리 뒤에 숨었다.
염불 소리가 들리는 건물 근처였다.
나는 그곳에서 건물 안을 노려보았다.
그 안에는 몇 개의 레벨 표시가 보였는데, 전부 10에서 20 정도였다.
숫자가 좀 있다고 해도, 결코 위협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수준.
“음…?”
그때, 때마침 건물의 문을 열고 승려 하나가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 승려의 외견은…사람이 아니었다.
“저거, 시체 아님까?”
한성민의 말대로였다.
문을 열고 나온 것은 바싹 말라서 검게 변색된 쭈글쭈글한 시체였다.
그리고 그 열린 문 안으로 보인 승려들의 상태는 다 비슷했다.
이미 죽은 자들이 승복을 입고, 염불을 외우고 있던 것이었다.
“……”
그 괴이한 광경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그 의도를 추리해 보려고 해도, 쉽게 알 수는 없었다.
분명 시체를 움직여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이 아니라, 전승과 관련되거나 주술적인 의미가 깊은 것일 테니.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나하정의 물음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절의 구조로 볼 때,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저 꼭대기에 뭔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주변에 깔린 시체 승려들은 그리 강하지 않으니, 올라가는 것 자체는 그리 힘든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그건 그리 현명한 판단은 아니었다.
이 절의 주인은 조금 전에 만났던 지하국대적을 문지기로 두고 있는 놈이다.
버프용 소모품을 사용하고 나서야 정면승부가 가능했던 강적.
그러니 저 꼭대기에 그놈보다 강한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특별히 운이 좋지 않은 이상, 쉽게 승리를 장담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그냥 다른 출구를 찾아 철수하는 것이 맞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전투 때문에 잠시 시야에서 없앴던 퀘스트의 화살표를 다시 띄웠다.
그런데…언제부터였을까.
“음?”
어느새 화살표가 두 개로 나뉘어 있었다.
적색의 화살표는 절의 꼭대기를.
그리고 녹색의 화살표는 그 반대인 아래 방향을 가리켰다.
지난번, 마역과 공명한 학교에서도 이런 식이었는데.
당시에는 적색의 화살표는 적군을, 녹색은 아군을 의미했다.
그때는 아군을 구출하라는 의미였지만, 이곳에 있을 만한 아군은 서인나뿐.
그러니 이 경우에는 구출이 아닌 합류를 뜻하고 있을 터였다.
“일단 출구를 찾죠.”
그래서 나는 팀원들에게는 그렇게 말했다.
“출구요? 철수하는 검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정말 철수할 생각은 없었다.
서인나는 67 레벨의 강력한 전력이다.
그러니 서인나 일행과 합류가 가능하다면, 저 꼭대기에 있는 놈도 충분히 사냥할 만했으니.
하지만 일단 서인나를 찾으려면 출구를 찾는 척을 해야 했다.
“그래야지. 예상보다 적이 너무 강하잖아.”
“그건 그렇슴다. 아까 그놈, 내 공격은 통하지도 않던디.”
“……”
내 말에 한성민은 동의를 표했고, 나하정조차 쉽게 반기를 들지 못했다.
그녀 역시 지하국대적의 힘을 직접 체감했으니, 마음에 들지 않아도 철수를 반대할 수는 없으리라.
“그럼 갑시다. 저것들, 그리 강하지는 않지만 건드리지는 말고.”
내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앞장서서 일행을 이끌었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시체 승려들은 절 안에서만 활동했다.
가끔 30 레벨 전후의 창을 든 승병이나 거구의 철퇴를 든 놈들이 주변을 순찰했지만.
레벨 표시가 보이는 나에게 그것들을 피해 가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절의 가장 밑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절의 정문이 있었다.
우리가 들어왔던 쪽문보다 훨씬 커다란 문짝이 눈에 들어왔다.
“출구가 있긴 있네.”
그 정문 너머에는 절을 빠져나와 아래로 향하는 길이 있었다.
정문은 두 시체 승려가 지키고 있었기에, 우리는 옆쪽의 담장을 넘어 그 길로 향했다.
“시염사…?”
그때 나하정이 정문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뒤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정문에는 이 절의 이름이 걸려 있었다.
주검 시, 생각 염 자를 쓴 시염사.
과연, 시체 승려가 넘쳐나는 절 그대로의 이름이었다.
“이쪽에 계단이 있- 우왁!”
그사이 길 아래를 내다보던 한성민이 비명을 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쪽을 바라보니.
그의 앞에는 익숙한 모습의, 날개 달린 눈알이 있었다.
그건…최은영의 와쳐.
예상대로 서인나 일행과 조우한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우리는 곧바로 서인나 일행과 합류했고,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 부근에 숨어서 먼저 상황을 공유했다.
“지하국대적이 있었고, 그걸 잡았다고?”
내 보고를 들은 서인나는 언뜻 놀란 기색으로 그렇게 말했다.
지하국대적이 얼마나 강한지,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예. 꽤 강하더라고요.”
“그야…당연하지. 나한테도 만만치는 않은 놈인데. 그걸 도대체 어떻게 잡은 거야?”
“그게…”
“아니, 됐다.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지. 어쨌든 다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야.”
그렇게 말하며 서인나는 나와 다른 두 사람을 살폈다.
하지만 곧 전부 멀쩡하다는 걸 인지하는 그녀는 한숨과 함께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데…이러면 예상치를 너무 벗어났잖아.”
서인나는 반쯤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야 그전까지 절벽에서 날아다니던 박쥐와 지네 같은 괴이들이라면 모를까.
지하국대적의 존재는 명백히 경찰이 판단한 전력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었으니.
이 정도의 적이 있을 줄 알았다면, 경찰도 우리 팀만 보내서는 안 됐고.
서인나 역시 무리해서라도 팀을 쪼개는 판단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 철수하나요…?”
옆에 선 최은영이 말했다.
거기에 서인나는 고민을 하듯 잠시 망설였지만.
“저는 일단 조사는 계속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만에 하나라도 철수라는 결정을 두고 볼 수는 없었기에, 내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서인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강 경감.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의외로 그녀는 처음부터 철수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듯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말은 이어졌다.
“시염사라는 절의 이름, 그리고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시체 승려들. 이건 전투를 위한 게 아니야. 사교는 결국 신을 숭배하기 위한 집단이거든. 그리고 신의 존재는 신도의 신앙으로 더욱 강건해지지. 그 둘을 조합해 볼 때, 이건 일종의 신앙 생산 시설에 가까워. 자신들의 신을 강화하기 위한 공장이라고 생각하면 편해.”
신앙 생산 공장이라.
신을 강화하기 위해 시체들의 신앙을 모은다는 건가.
“그게 가능한 겁니까? 죽은 놈들인데도요?”
“물론 죽은 자들의 신앙은 절대 정상적인 신앙이 아니지. 신앙보다는 원한에 가깝고, 그만큼 비틀려 있을 테니. 하지만 놈들이 믿는 신 역시 그만큼 비틀려 있는 존재라면 상관이 없어.”
알 듯 모를 듯한 설명이 이어졌다.
나는 그녀의 말에 담담히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볼 때, 강 경감이 만났던 그 문지기는 공장의 경비원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하지만 그 경비원은 이미 쓰러졌고, 그럼 공장에는 힘없는 일반 직원밖에 남지 않지. 즉 이 절의 규모는 크지만, 남은 전력은 얼마 없다는 말이야. 아마 저 꼭대기에 있을 이 공장의 주인이 전부겠지.”
그 점에는 나도 동의했다.
절의 중간부터 아래로 내려오기까지, 강적이라고 할 놈은 단 하나도 보지 못했다.
대부분 그저 절 안에서 염불을 외우고 있을 뿐인 시체들이었고, 가끔 보이는 순찰조 역시 그리 강하지는 않았으니.
“그래서 이대로 조사는 속행하려고 하는데, 다들 의견은?”
서인나의 말에 반대는 나오지 않았다.
그야 두 조로 나뉘었을 때라면 모를까.
지원 2팀의 전체 전력은 웬만한 마인 집단은 통째로 때려잡을 정도로 강하다.
물러설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에 서인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쓸어버리자고.”
“그런데 저 시체 놈들은 어떻게 할 건감?”
“어차피 저들은 주술에 조종되고 있을 뿐이에요. 전부 해방해줘야죠.”
서인나의 말에 권태수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보이는 족족 다 때려잡으라는 말에 나하정은 벌써부터 권총을 꺼내 미소짓고 있었다.
“그럼 가자.”
우리는 곧바로 절의 정문으로 향했다.
더 이상 몸을 숨길 필요는 없었기에.
입구를 지키고 있던 두 시체 승려는 곧바로 나하정의 총알에 머리가 날아갔다.
그리고,
“우오오오오!”
최은영의 미노타우르스 역시 굉음을 내며 정문을 정면에서 깨부수며 돌진했다.
시염사의 간판이 땅에 떨어져 부서지고, 요란한 총성과 파열음이 고요하던 지하 절간을 울린다.
이에 건물 여기저기에서 시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건 마치 검게 물든 파도처럼 엄청난 숫자였다.
“키아아아아아!”
“키이이이!”
그것들은 그대로 이쪽으로 밀려 내려왔고, 우리는 곧 그 좀비 떼와 격돌했다.
시체의 비명 소리와 폭음, 그리고 썩은 살점이 터져나가는 소리가 귓가를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