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82
82.
“쯧…”
나는 검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감각에 혀를 찼다.
바짝 마른 시체를 자르는 이 느낌은 익숙했지만, 결코 기분 좋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승복을 입은 시체가 조각나며,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전투가 벌어진 지는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전장은 이미 시산혈해를 이루고 있다.
그만큼 절에 숨어있던 좀비의 숫자가 상당히 많았던 탓이었다.
“숫자 하나는 엄청나네. 천 마리는 되겠어.”
서인나는 질렸다는 기색도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발사된 그녀의 화살은, 5장의 부적과 함께 시체 승려 무리의 한가운데서 폭발했다.
그러자 이내 거대한 화염이 그것들을 감쌌고, 그대로 재로 만들어 버렸다.
하나하나 검으로 처리해야 하는 나보다 훨씬 편해 보이는 방식.
나도 저런 기술을 배워뒀어야 했나.
생각해보면 지금 내가 가진 스킬들은 대량 학살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이 수많은 좀비 중 내가 직접 처리하는 것은 극히 일부였다.
하지만 그 대신.
“무우우우!”
크게 활약하고 있는 것은 최은영의 소환수인 미노타우르스였다.
강력한 힘과 단단한 가죽을 갖춘 그 소머리 괴물은 시체 승려들을 상대로는 그야말로 전차 그 자체였다.
도끼를 한번 휘두를 때마다 10마리가 넘는 좀비가 찌그러지듯 쓸려나갔고.
일반 좀비들의 공격은 미노타우르스의 가죽조차 뚫지 못했다.
그나마 버티는 것은…시체 승려들 중 전투력을 갖추고 있는 창을 든 승병이나 철퇴를 든 거구 정도.
하지만 그것들에게는 따로 상대가 있었다.
“키이이이!”
미노타우르스의 도끼를 받아낸 거구의 시체가 그 앞을 막아섰다.
그러자 곧바로 튀어나온 것은 한성민의 야구 방망이.
그건 거구의 머리통을 사정없이 깨부수며 검은 체액을 사방으로 튀겼다.
“아이고, 늙은이 코 떨어지겠네.”
“그러게요. 뭔 냄새가 이렇답니까?”
한성민과 권태수가 쓰러지는 시체 승려를 보며 불만을 내뱉었다.
그 둘은 미노타우르스의 옆에 붙어 길을 뚫는 것을 보조하고 있었다.
거기에 나하정은 후방에서 권총을 난사하며 쉴 새도 없이 좀비들의 머리를 터뜨리고 있었기에.
“……”
다행히도 내가 할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 옆에 선 서인나의 중얼거림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이상하네.”
“뭐가요?”
“응? 아니, 별건 아니야. 그냥 저 상징이 마음에 걸려서.”
서인나는 석궁에 화살을 걸며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계속해서 그것을 전방을 향해 조준했다.
“상징이요?”
“그래. 저 안에, 보여?”
그녀가 가리킨 것은 바로 옆에 있던 작은 건물.
시체들이 튀어나오며 부서진 문 안쪽으로 불상이 보였다.
다만 몸에 이상한 문양이 새겨진 불상은 사천왕상처럼 머리 부분이 잘린 상태였다.
“불상의 목이 없네요.”
“그렇지. 하지만 그건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야. 절의 형태를 빌린 사교의 신전이니만큼, 그 원본이 되는 신을 모독하려 한 거겠지. 문제는 거기에 새겨진 저 문양이야.”
서인나는 설명을 이어가며, 아무렇지 않게 석궁을 발사했다.
그렇게 또 한 무리의 시체 승려가 재로 변하는 걸 보며 그녀는 말을 이었다.
“저런 형식은 본 적이 없어. 분명 신을 상징하는 것일 테니 관련된 전승이 있을 텐데, 비슷한 것도 본 기억이 없단 말이지.”
서인나가 말한 문양은 입구 부근의 비석에 새겨져 있던, 그것이었다.
하지만 서인나도 알지 못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알려지지 않은 신인 모양이었다.
“뭐, 가다 보면 알게 되겠죠.”
그렇게 시체 승려들을 박살 내며 우리는 절의 꼭대기로 향했다.
처음에는 밀려 들어오는 시체들의 숫자가 전혀 줄어들지 않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많았지만.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놈들의 위세는 눈에 띄게 줄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절의 꼭대기에 있는 대웅전 앞에 도달할 쯤에는.
절은 어느새 깊은 지하 공간에 어울리는 고요함을 되찾은 상태였다.
“……”
시염사의 대웅전은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유독 높았다.
그 때문에 절 아래쪽에서도 대웅전의 지붕만큼은 똑똑히 보일 정도.
일반적인 절과는 사뭇 다른 그 오만한 구조의 대웅전 앞에는 넓은 마당이 펼쳐져 있었는데.
그 한가운데에, 누군가 서 있었다.
“어서 오시오. 내가 이 시염사의 주지, 법명 망현이라 하오.”
그렇게 말한 것은 승려복을 입고 있는 마인이었다.
그 피부는 썩은 시체처럼 검었다. 또한 눈에는 흰자위가 없어, 뻥 뚫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외견으로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에게서 멀어진 모습.
저게 진정한 의미의 마인인가.
그저 죄를 지은 퇴마사가 아니라, 자신이 지닌 한계를 넘어서까지 마를 추구한 자들의 말로.
마법을 추구하다가 리치가 되어 버린, 어리석은 마법사들과 같은 꼴이었다.
“망현이라…들은 적이 있어. 10년도 전에 법당을 배교한 파계승. 자신의 업을 위해 동료를 죽인 망나니라며? 그동안 어디에 있나 했더니, 사교를 만들고 있었구나.”
망현은 서인나의 말에 그 새파랗게 질린 입술을 비틀었다.
“허허허, 속세에 아직도 소승을 기억해주는 중생이 있을 줄은.”
“기억뿐이겠니? 법당에서는 지금도 네 이름만 들으면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렇게 말하며 서인나는 내 쪽으로 잠시 눈을 돌렸다.
혹시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적이 있는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내 눈에도 다른 레벨 표시는 보이지 않았고, 혼령 감지 스킬도 반응하지 않았다.
이에 내가 고개를 젓자, 오히려 서인나의 얼굴에는 의문이 깃들었다.
“왜 소승이 이곳에 있는지 궁금한 모양이신가 보오?”
서인나의 의문을 읽어낸 망현은 그렇게 말했다.
놈의 레벨은…무려 70.
령으로 치면 흑령 직전에 도달한 적령에 해당하는 수준이지만, 그렇다고 이길 수 없는 적은 아니었다.
서인나의 레벨만 해도 67이었으니.
그래서 서인나의 의문은 쉽게 짐작이 갔다.
아무리 망현이 강자라 해도 지원 2팀 전체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한데 망현은 어째서 도주를 선택하지 않은 걸까.
그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우리를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한 거겠지.”
“실은 그렇다오. 새로 생긴 붕우가 재미있는 재주를 갖고 있어서 말이지.”
그가 품속에서 구슬 세 개를 꺼내 들었다.
각각 보라색 빛을 머금은 신기였다.
그것을 주시하며 서인나는 입을 열었다.
“그럴 거면 진작 싸웠어야지. 이미 네 절은 망가졌고, 시체들도 잃었어. 이곳이 사교의 사원으로 기능할 일은 이제 없을 텐데?”
“아니, 이 절은 그대들이 온 이상 이미 그 가치를 잃었지. 존재가 드러난 이상, 지금 무너지지 않아도 얼마 안 가 무너지게 될 모래성에 불과할 테니. 그러나…당신은 아니오.”
“나…?”
“가장 앞서 설쳐대던 개를 죽여 없애면, 그 어리석은 주인 놈들에게도 경고가 될 테지. 게다가…”
거기서 불현듯 놈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요즘에는 새로운 강아지도 들였다는 소문이 자자하던데.”
망현은 나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즉 이놈은 자신들에게 까다로운 상대인 서인나와 나를 제거하기 위해 이곳에 남아 있었다는 말이었다.
나에게는…부담스러울 정도의 극찬이었다.
내 존재가 벌써 그렇게 알려진 건가.
그야 전에는 TV에도 나왔고, 퇴마 경찰로도 꽤 굵직한 사건들을 여럿 해결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제 내세에서나 만날 사이. 부디 키우는 재미가 있으셨길 바라지.”
그렇게 말하며 망현은 들고 있던 구슬 세 개를 바닥으로 던졌다.
그러자 구슬 세 개가 산산조각이 나며 바닥에 거대한 그림자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 그림자 속에서 올라온 것은,
“괴이?”
세 마리의 괴이였다.
하나는 푸른 털을 가진 거대한 늑대. 몸 크기가 코끼리만큼 큰 그것은 이상할 정도로 비대한 입에서 침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라미아처럼 인간의 몸을 가진 뱀이었다.
다만 라미아와는 달리, 뱀의 얼굴은 푹 젖은 검고 긴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었고 두 팔이 없었다.
마지막은 온몸에 금빛 가시가 박힌, 거대한 이족 보행형 멧돼지였다.
또한 놈들의 레벨은 하나같이 50이 넘었다.
순식간에 비등해진 전력.
이에 서인나와 팀원들은 긴장감에 표정을 굳혔다.
하지만 이어지는 서인나의 판단은 빨랐다.
“하정이랑 성민이는 저 푸른 개, 도견을 맡아. 그리고 강 경감은 뱀인 이소온나를, 나머지 둘은 금돼지를 상대해.”
한눈에 괴이들의 정체를 꿰뚫어 본 그녀는 금방 팀을 셋으로 나눴다.
또한 우연인지 필연인지, 나에게는 가장 유리해 보이는 상대가 붙었다.
라미아를 닮은 뱀 요괴의 이름이 이소온나란다.
이름만 봐서는 일본 쪽 괴이인가?
정확히 저게 어떤 괴이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뱀이라면 독이 주무기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나에게는 독이 통하지는 않으니, 결코 어려운 상대는 아니리라.
“망현은 내가 맡는다.”
서인나의 그 말과 함께 괴이들이 움직였다.
우리는 각각 맡은 상대에게로 돌격했다.
“아아아아아아!”
내가 다가서자, 이소온나는 여성의 목소리와 똑같은 비명을 내질렀다.
의식을 뒤흔드는 섬뜩한 비명소리.
그 기세가 심상치 않아, 나는 곧바로 긴나라의 전승을 발동했다.
그러자 스피커의 전원을 내린 것처럼 주변의 공간이 일제히 침묵했고.
그 사이 나는 이소온나의 지근 거리까지 접근했다.
“우선은-”
나는 빛의 검을 발동했다.
화염의 힘은 굳이 쓰지 않았다.
이소온나의 겉모습만 봐도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게, 화염 속성을 더하는 게 그리 효율이 높아 보이지는 않았기에.
곧바로 빛나는 검이 이소온나의 목을 노리고 쏘아졌다.
팔도 없는 괴이.
그래서 나는 그대로 그 목을 떨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쯧!”
사방에서 덮쳐오는 검은 무언가를 감지한 나는 곧바로 칼을 거두고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내가 있던 공간은 이소온나의 머리카락으로 순식간에 침식되었다.
팔이 없는 대신, 머리카락을 무기로 쓰는 건가.
“……”
이소온나가 나를 향해 사납게 울부짖었다.
긴나라의 전승 덕분에 뭐라고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조금 전의 기회를 놓친 것이 어지간히 분한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는 이소온나가 먼저 움직였다.
뱀의 육체를 이용한, 빠르면서도 이질적인 돌격.
하지만 그 움직임 자체는 라미아와 다를 게 없었기에, 거기에 내가 현혹될 일은 없었다.
신경 쓸 건 저 머리카락 정도인가.
나는 이쪽으로 쇄도해오는 검은 물결을 보며 검을 고쳐잡았다.
빛을 머금은 검이 그 불길한 머리카락을 갈랐다.
* * *
세 괴이를 팀원들에게 맡겨놓고 서인나는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는 망현을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서인나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만큼 망현이 불러낸 괴이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걱정되는 것은 강진우에게 맡긴 이소온나.
다른 두 괴이인 도견과 금돼지는 각각 개와 돼지를 베이스로 삼은 괴이로, 따지자면 무투파에 가까운 놈들이었다.
그래서 설령 그 전승을 알지 못하더라도 그 전력을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편.
하지만 그에 비해 이소온나는 전승을 알고 있어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특성을 몇 개나 보유하고 있었다.
비명만으로 인간의 귀를 터뜨려 죽였다는 전승이 있어, 그 비명은 귀곡 이상으로 치명적인 공격이 되며.
머리카락으로 인간을 묶고 그 피를 빨았다는 전승 때문에 이소온나의 머리카락은 사람의 몸 따위는 우습게 꿰뚫는 무기가 된다.
그 외에도 이소온나에 대한 일본 전역에 퍼진 전승은 제각각 달라서, 저 이소온나가 그 전승 중 어디까지 사용할 수 있는지는 직접 겪어봐야 아는 상황.
그래서 서인나는 그나마 가장 믿을만한 강진우에게 이소온나를 맡겼다.
불안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를 믿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으니.
“여기가 좋겠구려.”
서인나가 망현을 따라 대웅전의 안으로 들어가자,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웅전 내부에는 역시 목 잘린 불상이 있을 뿐, 나머지 공간은 텅 비어있었다.
망현은 그런 불상 앞에 놓여 있던 석장을 이제 막 들어 올렸다.
“그럼 우리도 바로 시작하지.”
이어서 망현이 사용하는 것은, 다름 아닌 불도의 전승.
한때 팔부신중 전부를 익혔던 그는 지금도 그 전승을 사용하고 있었다.
“……”
그걸 본 서인나는 자세를 낮췄다.
불도의 전승은 기본적으로 근접전에 특화되어 있었기에.
“그리 신변잡기에 능하시다지? 한번 실력 좀 보겠소.”
망현이 서인나를 보며 말했고 그 순간.
그가 서인나를 향해 치고 들어왔다.
이에 서인나는 세 발의 화살을 연속으로 발사했다.
그러자 여느 때처럼 여러 장의 부적이 그 뒤로 따라붙었다.
그러나 망현은 그 화살을 막지도 않았다.
퍼퍽!
사나운 소리와 함께 화살이 그에게 박혀 들어가 폭발했다.
하지만 그 강력한 화력조차 망현의 돌진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는 마치 불에 타지 않는 돌처럼 서인나에게로 쇄도했다.
“설마…!”
그 예상 이상의 방어력에 서인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법당과 파계승이 사용하는 팔부신중의 전승은 같지만, 그 재현된 효과는 명백히 다르다.
그 이유는 팔부신중이 원래 인도 신화 속의 신들을 불교로 흡수하면서 생겨난 존재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들에 대한 불교의 전승은 주로 악인이 불교에 감화되어 선인으로 재탄생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는데.
그로 인해 팔부신중은 선한 전승과 악한 전승을 모두 보유하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그 이중적인 전승 중, 법당은 팔부신중의 선한 측면을.
파계승은 반대로 그 악한 측면의 전승을 부각시키며 각각 다른 효과를 불러오는 것.
그중에서도 가장 선악의 측면이 강력하게 대조되는 것이, 바로 귀신의 왕이라는 아수라.
법당에서의 아수라는 마를 베면 벨수록 그 힘을 집어삼켜, 자신의 신성을 강화하고.
반대로 파계승이 사용하는 아수라는 주변의 모든 죽음을 집어삼켜, 자신의 힘으로 만드는 효과를 갖는다.
그리고 지금 망현이 이용한 것이 바로 그것.
즉, 이 절을 채우고 있던 수많은 시체 승려들은 단지 신앙을 바치기 위한 존재만이 아니라, 동시에 그의 힘을 저장하고 있던 창고였다는 말이었다.
“처음부터 이럴 작정으로…”
“너무 늦게 눈치챘구려.”
서인나의 코앞까지 당도한 그가 말했다.
그의 석장이 서인나의 목젖을 노리고 날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