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85
85.
“이건…”
용궁의 중앙 궁궐은 웅장하면서도 고색창연한 고궁이었다.
멀리서 봤을 때도 건물의 규모는 익히 짐작이 갔지만, 눈앞에 두고 나니 그 위압감은 생각 이상이었다.
어디까지나 한옥 스타일의 목제 건물임에도 그 높이는 마치 현대화된 고층 건물처럼 무척이나 높았다.
또한 건물 외벽 중간에 떡 하니 나 있는 문이나 중간에 뚝 끊긴 복도 등.
지상에서는 있을 수 없는 구조 때문인지, 궁의 내부 모습은 쉽게 예측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먼저 눈앞에 보이는 입구로 들어가기로 했다.
단단히 닫힌 입구의 문을 양손으로 밀어 열어젖힌다.
그러자,
“……”
건물 안임에도 바닥에 고운 모래가 깔린 용궁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먼저 보인 것은 넓은 복도.
여기저기 화려한 디자인의 가구와 장식품이 늘어서 있는,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복도였다.
또한 복도는 일자로 용궁 안쪽으로 이어졌는데.
갈림길이나 다른 방으로 이어지는 문도 없어서, 길을 헤맬 일도 없이 나는 그 복도를 따라갔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기묘한 형태의 문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음?”
복도와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황금색의 문이었다.
또한 그런 문은 복도 전체를 막고 있어서, 이 문을 열지 않는 한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그런 문 한가운데에는 별 모양의 홈이 4개 파여 있었다.
이 홈은 뭘까 싶은 의문도 잠시.
그 아래에는 바로 이것이 답이라고 말하는 듯, 홈과 딱 맞는 크기의 붉은색의 불가사리 하나가 붙어 있었다.
“이걸 넣으라고?”
나는 그 불가사리를 들어서 홈에 넣었다.
그러자 바닥에 있던 불가사리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들리더니, 홈에는 딱 들어가서 빠지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 남은 홈은 세 개.
그래서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어렵지 않게 근처 벽에 붙어 있던 나머지 두 마리가 눈에 들어왔고.
복도에 세워진 작은 동상 뒤에 있던 한 놈도 금방 찾았다.
그리고 그렇게 불가사리들을 들고 와서 홈에 끼워 넣자,
쿠구구-
복도를 가로막고 있던 문은 스스로 열리며, 그 뒤에 숨기고 있던 계단을 드러냈다.
“게임 같네.”
나의 예측을 벗어난 궁궐의 형태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 그냥 청룡과의 일전을 예상하고 있었건만.
마치 RPG 게임에서 미니 게임을 하는 것처럼 청룡의 시험은 묘하게 귀찮은 형태였다.
그리고 그다음에 내 앞을 가로막은 것은 슬라이드 퍼즐이었다.
12 조각으로 이뤄진 퍼즐 조각을 이리저리 움직여 물고기 모양을 만드는 퍼즐.
하지만 그 정도야 장난감에 불과할 정도로 어렵지는 않았기에 나는 금방 퍼즐을 풀고 문을 열었고.
그렇게 시험은 이어졌다.
그 뒤로도 불가사리 찾기와 슬라이드 퍼즐을 포함한 온갖 종류의 미니 게임들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초반에는 그럭저럭 할 만했지만.
어느 정도 층수에 올라서니 그 미니 게임들은 점점 복잡해지기 시작했고, 거의 궁궐의 꼭대기에 이르렀을 쯤에는.
“에라이…”
색색깔의 면을 가진 정육면체 루빅 큐브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지럽게 섞인 채 문에 파인 홈에 놓인 걸 보면, 이걸 맞춰서 다시 홈에 끼우라는 거겠지.
분명 어디서 큐브를 쉽게 푸는 방법이 있다고는 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루빅 큐브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고 따라서 만져본 적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일까.
시간이 많이 걸리리라 판단한 나는 좀 더 생각의 시야를 넓혔다.
정말 이 퍼즐을 풀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렇게 두껍지는 않았는데.”
나는 아래층의 문들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문들은 전부 황금색의 금속으로 만들어졌고 그 구조 역시 동일했다.
내가 퍼즐을 풀면 문 가운데에 있는 잠금쇠가 풀리고, 양옆으로 열리는 구조.
그렇다면…
나는 조용히 별운검을 꺼내, 검의 한쪽 날에 최대 화력으로 화염을 만들었다.
그러자 바닷물은 부글거리며 순식간에 끓어올랐지만, 상관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검으로 잠금쇠가 있을 만한 부분을 조준했고,
“수호자의 일격!”
스킬까지 사용해서 그것을 베었다.
그러자 예상보다도 간단하게 검날은 금속 문을 통과했다.
생각보다 무른 금속인가.
스킬을 사용할 필요까지도 없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렇게 중앙이 베어져 나간 문을 그대로 열어보았다.
그러자 문은 힘없이 열리며, 마지못해 다음 통로를 개방했다.
다만 억지로 열었기 때문일까.
문에서는 파직거리는 스파크가 일어나며 사방으로 전류를 내뿜었지만, 그게 나에게 피해를 줄 리는 만무했다.
“진작 이럴걸.”
나는 묘한 만족감과 함께 다음 층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쳐다보기도 싫은 복잡한 퍼즐을 볼 때마다, 똑같은 방식으로 문을 열어 앞으로 나아갔다.
역시 몸이 안 좋으면 머리가 고생하는 법.
힘으로 문을 열지 못했다면, 저걸 하나하나 풀고 있어야 했겠지.
그렇게 나는 걸음을 멈추는 일 없이, 금방 용궁의 꼭대기 층에 다다랐다.
거기에는 지금까지 봤던 문과는 달리 훨씬 거대한 대문이 있었고.
그 위로 불가사리부터 온갖 종류의 퍼즐과 미니 게임들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문을 통째로 잘라냈다.
그러자 수십 개의 벼락이 한 번에 몰아치는 듯한 전격이 터져 나왔지만, 나는 그 전력을 뚫고 유유히 앞으로 걸어갔다.
문 뒤에 있던 것은 황금색으로 칠해진 작은 방.
그 한가운데에는,
“이건…”
화려하게 장식된 보물 상자가 있었다.
마치 던전의 보상처럼 곱게 놓인 그 보물 상자를 열어보니, 영롱하게 빛나는 구슬 하나가 들어있었다.
크기는 오렌지보다 조금 더 큰 정도에, 색깔은 진주와 비슷했다.
내가 그것을 손에 들자, 그것은 이내 연기처럼 신의 그릇이 담긴 내 팔찌 안으로 흡수되었다.
“끝났네.”
나는 로그 창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내 말대로 역할을 다한 청룡의 신역, 즉 용궁은 마치 허상처럼 투명하게 변해갔다.
그렇게 다음 순간.
나는 어느새 원래 있던 절벽 위에 서 있었다.
돌아오는 건 편해서 좋네.
하지만 시간을 확인해 보니, 나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육지로 돌아가는 뱃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던 탓이었다.
그래서 나는 서둘러 항구로 돌아가면서도, 청룡의 분령을 얻고 변화한 강령 기능을 살펴보았다.
에픽 영혼 아이템
1. 주작
2. 청룡
고유 기술
– 번개가 깃든 자 : 영력에 전격 속성을 부여
– 배로 기는 것들의 왕 : 뱀, 이무기 특성을 가진 모든 적의 능력치 삭감.
– 번개를 관장하는 용 : 시야 내의 모든 전격을 제어
– 벼락 부름 : 지정한 위치에 벼락을 떨어뜨린다. 영력 소모 20.
– 빈 슬롯(2)
“오…”
그러자 곧바로 벼락 부름이라는 기술이 눈에 띄었다.
다른 셋은 어찌 보면 예상대로였다.
주작이 가지고 있던 기술을 그대로 청룡에 적용한 것이었으니.
하지만 벼락 부름은 영력 소모나 기술의 효과를 봐도 분명 공격 기술이다.
영어로는 콜 라이트닝.
이세계에서도 분명 그런 이름의 마법을 썼었는데.
영력 소모가 심하다는 걸 빼면 의외의 수확이었다.
“나쁘지 않네.”
나는 그렇게 결론을 짓고 차에 올라탔다.
이제 남은 것은 집으로 돌아가는 일뿐이었다.
* * *
다음날.
일주일간의 휴가가 끝난 탓에 꺼림칙한 기분으로 파출소에 들어섰다.
그러자 가장 먼저 서인나 팀장의 모습이 보였다.
그 외에도 한성민을 제외하면 다른 팀원들이 나보다 빨리 와 있었다.
“어, 강 경감 왔어?”
내 인사에 서인나는 가볍게 손을 들어 답했다.
쇄골이 부러졌다고 들었는데, 서인나는 평소와 다를 게 없었다.
“몸은 괜찮으세요?”
“몸? 아, 그거. 그 정도야 뭐, 일주일이면 낫지.”
“뼈가 부러졌는데 일주일이요?”
“경찰 병원에 있는 의사 중에서 능력이 좋은 퇴마사가 있거든. 다 죽어가던 놈도 한 달이면 바로 현장 투입할 수 있게 만든다니깐.”
이어지는 그녀의 말을 들으니, 거기에 있는 의사 중 몇몇이 치유에 대한 전승을 사용해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신성한 존재가 병을 고치는 이야기는 차고 넘칠 정도로 많으니, 그런 의사가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보다 사교에 관한 이야기는 들었니?”
이어서 자연스럽게 서인나는 일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긴급 대응 본부가 만들어졌다고 하던데요.”
“그래. 본부에서는 이번에 발견된 사교의 규모가 상당히 크다고 판단했어. 뭐, 당연한 일이지.”
이어서 서인나는 지난번 시염사가 있던 절벽 아래에서 목격된 몇 가지 괴이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에게는 그냥 커다란 박쥐나 지네로 보였던 괴이에 대해서, 서인나는 그 이름은 물론 출신지나 관련 전승까지도 줄줄이 꿰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지식을 종합해 볼 때, 사교의 세력은 국내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이번 일로 나도 느낀 게 많아. 난 전승이니, 이론이니 하는 퇴마 관련 지식은 사건을 처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게 좋다고 생각했거든. 사실 우리가 상대하는 괴이나 마인들이 가진 전승이 다 거기서 거기였으니까. 그런데 이번에 나온 사교 놈들은…강 경감도 알겠지만 그게 아니었지?”
거기까지 말한 서인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망현과의 전투를 회상이라도 하듯이.
“세계 각국의 괴이를 모아놓은 것도 모자라서, 놈들은 자신들의 전승을 비틀어서 인접한 다른 신화와 연결하기까지 했어. 놈들이 그저 전승을 가져다 사용하는 게 아니라, 그 응용을 시작했다는 말이야.
“그렇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만 해도 나는 그저 지난 사건에 대한 피드백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의외의 말이 서인나에게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여기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서는 각종 전승에 대한 지식이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고 상부에서 결론지었어. 그래서 퇴마 경찰에 대한 기존 지침을 수정하기로 했고, 우리 팀이 그 시범 케이스로 뽑혔지.”
시범 케이스라.
지침이 효과적인지 아닌지, 우리를 통해 시험하겠다는 말이었다.
“시범 케이스라는 게 정확히 뭔가요?”
“앞으로 업무 방식이 좀 달라질 거야.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바뀌는 건…해외 출장을 갈지도 모른다는 거지.”
“해외 출장이요?”
경찰이 된 이후로는 그런 것과 인연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외국에 있을 사교 집단을 처단하기 위해서요?”
“아니, 출장은 어디까지나 교육 목적이야.”
서인나는 고개를 젓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앞으로는 배당되는 사건의 양이 적당히 조절될 거야. 아마 꽤 줄어들겠지. 그 대신 나머지 시간을 이론 교육 시간으로 채워야 해. 그리고 해외 출장은 배운 이론을 실제로 써먹는 실습이 될 거고.”
이론에 실습이라.
어째 연수원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그리고 해외 출장은 강 경감이 가장 자주 가게 될 거야. 내가 자리를 비울 수는 없으니, 다른 팀원들을 데리고 갈 사람이 강 경감밖에 없거든.”
“팀장님은 안 가시는 겁니까?”
“안 그래도 나는 많이 갔다 왔어. 외국 중에는 우리나라처럼 퇴마 경찰 제도가 확립되지 않은 나라도 많아서 말이야. 일종의 외교 협력 같은 느낌으로 위험한 괴이나 령들을 퇴마시켜 주는 경우가 있거든. 그럴 때 종종 불려 갔었지.”
서인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해외 출장이라는 말에 잠깐 혹했지만.
그녀의 얼굴을 보니, 출장이라는 게 그리 녹록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저…”
옆을 보니, 어느새 내 옆에 온 최은영이 소심하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출장은 보통…어디로 가나요?”
어딘지 모르게 기대가 담긴 목소리였다.
하긴 그녀의 과거를 생각하면 출장은 고사하고 비행기도 못 타봤을 테니, 기대되는 건 당연한가.
“은영이는 어디로 가고 싶은데?”
“저, 저요?”
서인나의 질문에 최은영은 눈동자를 굴렸다.
“유, 유럽이면…좋을 것 같은데요.”
그 말에 서인나는 빙긋 웃었다.
그 차분한 미소를 보니, 알 수 있었다.
최소한 해외 출장으로 유럽을 갈 일은 없다는 걸.
“내가 가장 최근에 갔던 해외 출장이 어딘지 아니?”
“어디인데요?”
“남아공이었어.”
“나, 남아공이요…?”
“그래, 남아프리카공화국. 남아공은 6.25 때 UN 군 소속으로 참전한 전력이 있어서, 우리 정부에서는 그 인연으로 그쪽에 있는 악령 하나를 처리해주기로 했어. 그리고 내가 거기에 출장을 나가게 됐고.”
희망과는 다른 출장지에 최은영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인나의 말은 이어졌다.
“그리고 거기에 있다는 악령 특징이, 총을 쏜다는 거였어.”
“령이…총도 쏴요?”
“물론 진짜 쏘는 건 아니야. 아마 총에 맞고 죽은 희생자들의 한이 모인 탓에, 그 죽음의 순간을 끊임없이 재현하는 거겠지. 그런데 진짜 무서운 게 뭔지 아니?”
서인나의 묘한 미소가 한층 더 진해졌다.
“거기서는 총소리가 나면 그게 령이 쏜 건지, 사람이 쏜 건지를 모르겠다는 거야. 도시에 있는 멀쩡한 호텔에서도 해가 지면 멀리서 총소리가 들려오는 곳이거든.”
“……”
“유럽? 좋지. 갈 수만 있다면 말이야. 하지만 잘 사는 나라들은 그만큼 퇴마에 대해서도 대비가 잘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굳이 다른 나라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지. 그리고 우리는 보통 도움이 필요한 나라로 가고.”
서인나의 말대로라면 그리 치안이 좋다고 알려진 나라로는 웬만해서 가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니 더욱 해외 출장에 관한 관심이 사라졌지만.
의외로 최은영은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비행기는 탈 수 있는 거죠?”
“그 정도야 가능하지. 물론 당장 가는 건 아니야. 우선은 눈앞에 있는 사건을 처리해야지. 출장에 대한 건 세부 계획이 나오면 다시 알려줄게.”
거기까지 말한 서인나의 시선이 최은영에게서 나에게로 옮겨졌다.
그 익숙한 분위기에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그래서 말인데, 강 경감. 이번 주는 이것들을 맡아줬으면 좋겠어.”
서인나가 내미는 종이뭉치는 그 예감이 적중했음을 알려왔다.
그것들은 전부 해결해야 할 사건에 대한 자료였다.
“…알겠습니다.”
나는 그것들을 받아 챙겨,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중 첫 번째 사건에 대한 자료를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