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87
87.
“백합관이라…”
나는 백합관의 3층 창문을 올려다 보았다
아직 입구에서는 유리창에 옅게 반사되는 달빛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외관 역시 겉에서 보기에는 낮과 별로 차이가 없다.
하지만…어째서일까.
내 눈에 보이는 백합관의 분위기는 분명 일변해 있었다.
마치 마역의 숨겨진 입구를 보는 것만 같은 위화감.
그래서 나는 내 옆에 선 최은영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쪽부터 가자. 건물 앞에서 소환수를 불러줘.”
최은영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의 스케치북을 꺼냈다.
그리고 내 명령대로 건물 입구에 선 최은영은 소환수를 불러냈다.
그녀가 부른 것은 이미 몇 번인가 보았던 샐러맨더.
하지만 이번에 샐러맨더를 부른 것은 전투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건물 안을 비춰.”
최은영의 말에 샐러맨더는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곧바로 건물 내부가 환하게 밝아지며 어둠이 벗겨졌고.
우리는 이내 백합관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경감님…이건…”
최은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백합관은 더 이상 낡은 목제 건물이 아니었다.
세월의 흔적이 잔뜩 묻은 채 그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던 벽과 천장은 훨씬 깨끗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천장에 걸려 있던, 골동품이나 다름이 없었던 샹들리에도 마치 새것처럼 반짝인다.
이 백합관의 내부만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모습.
“과거를 재현하고 있는 건가.”
나는 참고 자료에서 보았던 내용을 떠올렸다.
지박령이 그 생전의 환경을 투영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박령이 잠식한, 소위 저주받은 집은 아무리 물리적으로 무너뜨린다 한들 소용이 없다.
그곳에 새로운 건물이 있으면 있는 대로, 설령 없더라도 지박령이 다시 나타나는 순간 저주받은 공간이 재구축되기에.
“지박령이 있는 건가요?”
“역시 그렇겠지.”
최은영의 물음에 나는 그렇게 답했다.
경찰은 지박령의 존재를 약 30년 전, 이곳에서 자살한 일가족으로 지목했다.
그리고 지금 백합관의 모습은, 그 말대로 30년 전의 백합관이라고 생각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결국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말.
이에 나는 무기를 꺼내 들고 계단을 올랐다.
화살표는 위쪽을 가리키고 있었고, 설령 화살표가 없다고 해도 어차피 지박령이 머무를 곳은 한곳밖에 없었다.
바로 3층의 가장 끝 방.
장미관에 주인이 살게 된 이후, 거울 현상으로 인해 그 방에 지박령이 깃든 것이리라.
“바로 들어간다.”
“네!”
나는 곧바로 3층 문을 열어젖혔다.
그곳 역시 낮에 봤을 때와는 아주 다르게 변해 있었다.
그저 방치되었던 삭막한 방이 아닌, 각종 가구와 옷들로 생활감이 느껴지는 풍경.
그리고 그런 방 한가운데에는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 교복을 입은 채 뒤돌아 서 있었다.
그 정체는 당연히, 인간이 아니었다.
혼령 감지 스킬은 이미 한참 전부터 저것을 감지하고 있었으니.
“아…아…”
지박령은 그런 소리와 함께 고개를 이쪽으로 돌렸다.
몸은 그대로 선 상태로, 얼굴만 180도가 돌아가서 이쪽을 향하는 괴기스러운 광경.
“아아아아아악!”
이어서 지박령은 귀곡을 내뱉었고.
나는 곧바로 빛의 검 스킬을 발동했다.
령의 레벨은 32.
하지만 저것은 자신의 영역 안에 있는 지박령이니만큼 레벨보다도 훨씬 강력한 힘을 갖고 있으리라.
그렇게 판단한 나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령에게 돌진했다.
그 직후.
“위험해요!”
최은영의 목소리와 함께, 내 사방에서 밧줄이 튀어나왔다.
끝에 단단한 교수형 매듭이 만들어진 줄들이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내 목을 부러뜨리기 위해 날아온다.
이에 나는 별운검을 화염으로 감싸고, 주위에 그 성화를 흩뿌렸다.
그러자 내 주변을 포위했던 밧줄들은 폭죽의 심지처럼 순식간에 타들어 가 자취를 감춘다.
“아아악!”
눈 깜짝할 사이에 공격을 파훼 당한 지박령은 불현듯 그 손톱을 세웠다.
그러자 그 핏빛을 머금은 손톱은 50cm 가까이 튀어나와, 금세 훌륭한 무기가 되었다.
의외로 근접전의 소양도 있는 령인가.
이어서 령은 고양이처럼 움직이며 땅을 박차고, 벽을 탔다.
그러면서도 그 꺾인 목에 있는 핏발 선 눈동자는 나에게 박힌 채 움직이지 않는다.
뜻 모를 원한과 회한이 섞인 시선.
이윽고 령은 먹잇감에 달려드는 맹수처럼 손톱을 들어 나를 덮쳐왔다.
하지만 이는 내가 기다리고 있던 기회였다.
아무리 제 영역에 있는 지박령이라고 해도.
나에게 근접전을 시도하는 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으니.
“키아-”
새하얀 검의 일섬이 령을 양단한다.
지박령의 단말마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검이 품은 성화는 놈을 집어삼켰고.
떨어지는 잿가루 하나 없이, 령은 그대로 공중에서 소멸했다.
“역시…!”
최은영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내 별운검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 부담스러운 시선에 나는 빛의 검 스킬을 해제하고, 검을 집어넣었다.
한편, 령의 소멸과 동시에 백합관을 감싸고 있던 환상이 무너져 내렸다.
30년 전의 풍경을 재현하고 있던 그것은 서서히 옅어져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끝난 건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변을 확인했다.
혼령 감지 스킬은 조용했고, 시야에도 특별히 레벨 표시는 보이지 않았다.
지박령은 완전히 퇴마되었다는 뜻.
나는 이대로 사건이 종료되나 싶었지만.
“음?”
어째서인지 지박령이 사라진 방의 한쪽에는 강조 표시가 된 작은 서랍이 있었다.
이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 작은 서랍은 이 방에 방치되어 있던, 몇 가지의 소소한 가구 중 하나다.
그래서 낮에는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았는데…이 안에 뭔가 있다는 건가?
그런 생각과 함께 나는 몇 개 되지 않는 서랍장을 뒤졌다.
그러자 그중 가장 아래 칸의 서랍에서 작은 이름표가 달린 열쇠가 발견되었다.
그 이름표에 적힌 것은, 지하실이라는 글자.
“지하실 열쇠?”
분명 사건 자료에 실려있던 별장의 구조도에서, 지하실을 본 기억이 있었다.
다만 지박령과는 크게 상관이 없을 거라는 판단에 굳이 가보지는 않았을 뿐.
그러나 지금 퀘스트의 진행을 안내하는 화살표는 분명 아래를 가리키고 있었다.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며, 저 지하실 안에 다음 단서가 있다는 말이었다.
“강 경감님?”
지하실 열쇠를 들고 선 나를 보며 최은영이 물었다.
할 일도 다 끝났는데 거기 서서 뭐하냐는 듯한 물음.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다음 할 일을 알려주었다.
“아무래도 지하실로 가봐야 할 것 같아.”
“지하실…이요?”
“그렇게 됐으니, 움직이자고.”
지하실에 왜 가라는 지도, 거기에 뭐가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히도 최은영은 그 이유를 묻지 않았고, 곧장 내 말에 따랐다.
그렇게 우리는 지하실의 입구를 향해 움직였다.
지하실의 입구는 백합관과 장미관에 하나씩 존재했다.
그리고 지하실은 두 건물과 가운데에 낀 정원 아래로 뚫려 있어서.
장미관과 백합관을 연결하는 통로의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나는 백합관 1층에서 지하로 통하는 문을 확인했다.
거기에는 자물쇠가 걸려 있었고, 내가 가진 지하실 열쇠는 거기에 딱 들어맞았다.
그래서 우리는 자물쇠를 열고 지하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
심상치 않은 냄새가 가장 먼저 코를 찔렀다.
그것은…피와 시체가 썩는 고약한 냄새.
이에 나는 다시 검을 뽑아 들었다. 최은영 역시 스케치북을 들고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변했다.
우리는 먼저 샐러맨더를 앞세웠다.
그러자 샐러맨더의 불꽃에 의해 지하실의 풍경이 드러났다.
그곳에는 오랜 기간 방치되어 있던 잡동사니가 널려 있었다.
“……”
우리는 그런 지하실을 천천히 전진했다.
백합관에서 장미관으로 다가갈수록 피와 시체의 냄새는 점점 선명해졌다.
그리고 거의 장미관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냄새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거기에 있는 것은 썩어가는 시체였다.
다행히도 아직 완전히 부패하지는 않아서 그 얼굴을 알아볼 정도는 됐다.
그건 최근 실종되었다는 이 별장의 주인.
30대 중반의 그 여성은 한쪽 안구가 함몰된 채, 지하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강 경감님, 저거…!”
“…멈춰.”
나는 그 시체 쪽으로 다가가려는 최은영을 막아섰다.
시체는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괴이가 있어.”
내가 가리킨 것은 죽은 시체에 안겨 있는 비스크돌이었다.
그 주인처럼 한쪽 눈구멍이 부서져 있는 그것의 머리 위에는 레벨 표시가 있었다.
그 레벨은 12.
보통 저주받은 인형이라 불리는 괴이였지만, 생각보다 무척 낮은 레벨이었다.
그 말은…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괴이라는 것일까.
그런데 그 괴이에게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바로 퀘스트의 단서를 표시하는 강조 표시가, 그 괴이에게 적용되어 있었던 것이다.
“죽이면 안 된다는 건가?”
내가 그렇게 중얼거린 사이, 옆에서 갑자기 무언가 날아왔다.
그건 지하실의 잡동사니 속에 섞여 있던 주먹만 한 돌덩이.
그리 빠르게 날아온 것도 아니라 나는 그걸 어렵지 않게 검을 쳐냈고.
그러자 이번에는 반대편에서 나뭇조각이 날아왔다.
폴터 가이스트.
저주받은 인형이 흔히 사용한다는 염력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레벨이 낮아서인지, 인형의 공격은 나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일반인이라면 위험했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그저 사람이 집어 던지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폴터 가이스트는 쳐내기도, 피하기도 쉬웠으니까.
하지만 이대로 맞고 있을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인형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러자 인형은 발악을 하듯 여러 개의 물건을 동시에 사출했다.
그러나 이 정도의 공격이 그저 숫자가 늘어났다고 위협이 될 리는 만무했으니.
화륵!
나는 화염을 일으켜 그것들을 단번에 태워버렸다.
그리고 시체의 품속에 있던 인형을 손으로 잡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비스크돌은 내 손에서 버둥거렸지만, 내가 검에 다시 화염의 기운을 서리게 하자 귀신같이 조용해졌다.
“…이상한데.”
그 모습에 시체와 인형을 번갈아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시체는 분명 별장의 주인이었다.
그런데…왜 별장 주인의 시체가 여기에 있는 걸까.
저 여자가 지박령에게 죽었다면 시체는 장미관 아래가 아니라, 백합관 아래에 있어야 했다.
지박령을 불러냈을 거울 효과는, 단지 불러내는 데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거울 바깥의 존재는 당연히 거울 안으로 넘어갈 수 없다.
따라서 거울 효과는 역으로 지박령이 백합관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결계의 역할도 겸하는 것이다.
그러니 별장의 주인이 이를 어기고 스스로 거울 너머로 걸어간 게 아니라면.
백합관, 그것도 지상 3층의 방을 매개로 하는 지박령이 장미관의 지하까지 와서 주인을 살해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가능성은…이 인형인가?
“……”
나는 그런 의문과 함께 주변을 돌아보았다.
저주받은 인형의 주력 무기는 폴터 가이스트.
그러니 그 주인을 죽였다면 주변에 흉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내 그 흉기로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그건 피가 덕지덕지 묻은 쇠파이프로, 시체의 뒤쪽 구석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음…?”
묘하게 그 쇠파이프의 모습이 묘하게 낯익었다.
딱 한 손으로 잡기 좋은 두께지만 파란색으로 칠해진 몸통에 더해 그 한쪽 끝에는 검은 고무가 달려 있었다.
마치 식탁의 한쪽 다리처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고 나서야, 나는 저 파이프의 정체를 깨달았다.
아까 전, 펜션의 바비큐 장비를 들고 있던 김창연.
그놈이 들고 있던 바비큐 그릴의 다리가 딱 저랬다.
“아하…”
그제야 나는 범인이 누군지를 직감했다.
어쩐지 놈이 갑자기 나를 적대하더라니.
나 때문에 자신의 범행이 들킬 거라 생각했던 건가.
그렇다면…
나는 조용히 장미관으로 통하는 입구를 눈으로 찾았다.
시체가 이곳에 있는 걸 뻔히 아는 놈이라면.
이곳을 조사하는 경찰을 가만 놔두지는 않으려 할 테니까.
그리고 그 예상대로, 아직 열리지 않은 장미관의 문 뒤로 붉은 아우라가 넘실거렸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김창연은 저 뒤에 숨어 이곳을 염탐하고 있던 것이었다.
“저 새끼…”
나는 곧바로 화염을 쏘아내려다 멈칫했다.
저놈은 일반인이다.
또한 이 사건 역시 지박령과 괴이가 섞여 있긴 해도, 피해자와 가해자만 본다면 분명 마가 배제된 평범한 살인 사건.
그래서 나는 차분히 검을 집어넣고, 최은영에게도 소환수를 물리게 했다.
다시 어둠에 휩싸인 지하실에서 나는 스마트폰의 플래시만 켠 채 입을 열었다.
“문 뒤에 그만 숨어있고 나오세요. 김창연 씨.”
그러자 놈은 순순히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 얼굴은 낮에 봤던 것과 똑같이 부드럽게 웃고 있었지만, 그 한쪽 손에는 이번에도 쇠파이프가 들려 있었다.
“시체 찾으러 오셨나?”
사실 물어볼 것도 없었다.
그가 이곳에 있다는 게 가장 큰 증거였으니.
그래서인지 그는 숨기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이렇게 되어 버렸군요.”
“그러게. 시체는 다른 곳에 숨겼어야지.”
내가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자 김창연의 눈썹이 올라갔다.
“나도 그러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방해를 해서요. 도대체 그건 뭡니까?”
그는 인형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미 괴이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그의 말에 나는 표정을 굳혔다.
이거…일반인이 알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이게 방해를 했다고?”
“맞습니다. 그걸 치우기 위해서 매일 밤 수를 써봤는데, 도저히 안 되더군요. 오히려 큰 소란이 벌어져서 경찰 신고까지 들어갔죠.”
들어보니, 이 저주받은 인형은 괴이치고 꽤 기특한 일을 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나는 말을 이었다.
“최근에 발매된 경비 드론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경비 드론? 무슨 말도 안 되는…”
“경비 드론 맞습니다. 그리고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어차피 여기서 체포되면 감방에 가 계실 텐데. 이제 이거 살 기회도 없을걸?”
내 말에 그는 미묘하게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설마요.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기 위해 제가 여기에 온 거니까.”
김창연은 쇠파이프를 꼬나쥐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그래도 경찰인데, 저렇게 무식하게 나오다니.
어지간히 궁지에 몰린 건가.
아무래도 운동 좀 한 몸을 믿고 나대는 모양이었지만, 저건 내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
“최 순경, 기절만 시켜.”
내 말에 비로소 김창연의 시선이 나에게서 최은영에게로 옮겨갔다.
그는 겉으로는 연약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의아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컥!”
명치와 뒤통수에 주먹이 한 번씩 박히고는 그대로 땅바닥으로 엎어졌다.
최은영이 아무리 육체파 퇴마사가 아니라고는 해도, 퇴마사인 이상 일반인과는 능력치 자체가 달랐다.
그래서 나는 깔끔하게 기절한 김창연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인형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강조 표시가 되어 있는 인형.
나는 그걸 손에 든 채로 입을 열었다.
“너는 뭘 원하는 거냐?”
내 말에도 인형은 미동도 없었다.
살짝 짜증이 난 나는 반대쪽 손에 화염을 둘렀다.
“그럼 그냥 태운다.”
그제야 인형은 자신의 텅 빈 눈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뒤쪽에 쓰러진 주인의 함몰된 안구를, 마지막으로는 김창연을 가리켰다.
그 뜻은…한가지로 밖에는 해석되지 않았다.
“저놈 눈깔을 달라고?”
비스크돌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인형을 놔두고 검을 꺼내 김창연에게로 다가갔다.
“최 순경.”
“네…네?”
“이건 전투 중에 다친 거야. 알지?”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눈치챈 최은영은 잠시 숨을 삼켰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돌았다.
자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
그래, 그거면 됐지.
나는 김창연의 눈깔 하나를 도려냈다.
중간에 고통이 심한 건지 김창연이 의식을 차렸지만, 곧바로 다시 기절시켰다.
그리고 그것을, 나는 인형에게 건넸다.
“이러면 되나?”
그러자 인형은 남자의 눈알과 함께 그대로 빛 무리가 되어 소멸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 보이지 않는 진실을 꿰뚫어 보는 눈.
묘한 아이템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