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89
89.
“여기서 뭘 어쩌라는 거지?”
나는 화인 그룹의 본사 건물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화살표는 이곳에 금서 퀘스트의 단서가 있다고 하는데.
여기는 아무리 경찰이라고 해도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화인 그룹은 일반 기업도 아닌 한국의 3대 기업 중 하나인 대기업인데다, 따로 퇴마사 집단까지 소유하고 있는 곳이었으니.
그렇다면…뭔가 방법이 없을까?
잠시 머리를 굴리던 나는 곧 그 방법을 떠올렸다.
“아, 그 명함.”
화인 그룹은 늑대인간 사건 당시 잠시 접촉했던 외인 기관인 화랑의 소유주다.
그리고 나는 그때 화랑을 배신한 퇴마사, 즉 늑대인간을 성공적으로 토벌했고.
당시 나를 눈여겨본 경영진 중 하나가 나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넸었다.
“분명 여기 어디에 뒀는데.”
나는 지갑을 뒤져 이내 그 명함을 찾아냈다.
거기에 적힌 이름은, 화인 그룹의 이현아 상무.
이 명함 하나로 정말 본사 내부에 들어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크고 깨끗한 유리문을 넘어 본사 내부로 들어갔다.
입구 바로 앞에 있는 로비는 한국의 3대 기업이라는 위명에 걸맞게 화려하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런 로비에 들어서자, 주변을 지나던 직원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몰렸다.
경찰관의 등장이 눈길을 끄는 것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상복을 입고 오는 건데.
그렇게 뒤늦은 후회를 하며 나는 로비의 안내 데스크 쪽으로 걸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그러자 데스크 직원이 반갑게 미소 지으며 나를 맞았다.
나는 별말 없이 그녀에게 내가 가진 명함을 내밀었다.
“아, 상무님의 손님이셨군요. 누구라고 소개해 드릴까요?”
그러자 직원은 익숙한 듯 그렇게 말했다.
이현아가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리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이름을 댈 수도 없었기에 나는 내 신분을 밝혔다.
“강진우 경감이라고 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그렇게 말한 직원은 잠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30초도 안 되는 짧은 통화 후 그녀는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상무님은 현재 회의 중이십니다. 회의는 20분 전후로 끝날 예정입니다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기다리죠.”
20분이라.
다행히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다.
기다려도 안 만나줄 가능성도 있기야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
그래서 나는 로비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 * *
화인 그룹의 본사 30층에 있는 회의실.
그곳에서는 벌써 한 시간 째, 무거운 분위기가 회의실 내부를 짓누르고 있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시나요?”
그렇게 말한 것은 가장 상석에 앉은 이현아 상무였다.
그녀는 지목된 화랑의 퇴마사 중 하나를 사납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자 퇴마사는 잔뜩 주눅이 든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 상무님. 저는 단지 그 거래가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줄 거라고…”
“헛소리는 됐어요. 그보다, 왜 거래 물품도 없이 그 요청을 수락한 거죠?”
“어차피 가치 없는 귀물을 요구했으니, 적당히 돈을 쥐어 주기만 해도 만족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의 말에 이현아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
무능한 데다 멍청하기까지 한 인간이라니.
이현아는 이 순간, 그 퇴마사에게 짙은 혐오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퇴마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거 내 눈앞에서 치우세요.”
“상무님! 잠시만 제 이야기를-”
필사적으로 변명을 이어가려던 그는 곧바로 보안요원에 의해 회의실 바깥으로 끌려나갔다.
이현아는 그가 끌려나간 문쪽으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여전히 냉담한 눈빛으로 회의 석상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대책은?”
“그냥 경찰에 알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회의실에 앉은 화랑의 간부 하나가 그렇게 제안했다.
그러나 이현아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돼요.”
“벌써 세 곳의 지사가 습격을 당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외부에 이 사실을 은폐하고 있지만, 곧 경찰이 알아챌 겁니다.”
“……”
“그리고 지금까지의 피해만 해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이대로 피해가 늘어나면 회장님께서도 그냥 보고만 계시지는-”
이어지던 남자의 말을 이현아는 손짓만으로 막아섰다.
그녀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래서…최 부장의 말은 화랑의 퇴마사가 수배 중인 마인과 거래를 하려고 했고, 그게 틀어져서 습격을 받고 있으니 경찰에게 한 번만 도와달라고 요청하라는 건가요?”
회의실의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실제로 최근, 화랑의 퇴마사는 마인 사브리나와 거래를 시도했다.
사브리나 측에서 먼저 화랑에게 접근.
자신이 보유 중인 값비싼 신기들을 대가로 가치 없는 귀물 하나를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사브리나는 그냥 마인도 아니죠. 국제 수배 중인 중범죄자예요. 그런 마인을 상대로 신기를 밀수하려고 했는데, 그걸 경찰이 두고 볼 거 같나 봐요?”
마인과의 거래, 그것도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는 신기와 귀물에 대한 밀수는 그것만으로도 심각한 범죄다.
그런데 그 어처구니 없는 밀수 제안을 수락한 것이, 바로 조금 전 끌려나간 퇴마사였다.
게다가 그는 마인이 대가로 요구했던 귀물조차 없는 상태에서 이를 받아들였다.
마인이 찾는 귀물보다 많은 돈을 제시하면 그걸 받아들이겠거니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멍청하기 짝이 없는 판단이었다.
마인, 그것도 국제 수배 중이라는 화려한 경력을 가진 범죄자가 한국까지 들어와서 귀물을 찾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귀물이 아닌 돈을 준다고 얌전히 물러나겠는가.
그 때문에 오히려 사브리나는 화랑 쪽에서 귀물을 갖고 있음에도 판돈을 올리기 위해 간을 보고 있다고 판단했고.
이제는 당장 귀물을 내놓으라며 전국에 있는 화랑의 지사들을 습격해오고 있었다.
“그런 사실이 경찰의 귀에 들어갔다간 곧바로 화랑의 외인 기관 자격을 박탈당하겠죠. 여기 있는 전부, 실업자 되고 싶으세요?”
이현아의 말에 퇴마사들은 고개를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화랑의 외인 기관 자격 박탈이 현실화된다면,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것은 다름 아닌 화인 그룹이었다.
돈으로 움직이는 기업들이 괜히 외인 기관까지 따로 설립해서 퇴마사 양성에 힘을 쏟고 있겠는가.
비록 사회 전면에 나설 수는 없는 퇴마사들이지만, 기업 간의 알력 다툼은 원래 항상 사회의 뒤편에서 벌어진다.
그리고 그 뒤편에서 크게 활약할 수 있는 퇴마사의 존재는 그런 기업의 세력전에서 큰 힘이 되는 것.
그래서 만약 정말로 화랑의 자격 논란이 시작된다면, 그때는 이현아가 아니라 그룹의 회장인 이현아의 조부가 직접 움직여 이를 막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전개를, 이현아는 절대로 원하지 않았다.
20대라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여기까지 올라온 것은 퇴마사로서의 재능뿐만이 아니라.
경영자로서의 재능도 인정받고, 또 더욱 인정받기 위해서였으니까.
따라서 이번 일은 어떻게 해서든, 그녀 자신의 힘만으로 해결해야 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은 이현아는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사브리나를 말살하는 건 어렵나요?”
“전투력이 압도적인 적은 아닙니다만, 게릴라 전에 특화된 마인입니다. 그리고 위협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어서 함정을 파는 것도 힘듭니다. 안 그래도 몇몇 지사에 부장급 이상의 퇴마사들을 임시로 파견했습니다만, 사브리나는 그곳들을 교묘하게 피해 갔습니다.”
그 말에 이현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해하지 못할 답은 아니었다.
괜히 사브리나가 수배 중인 범죄자겠는가.
그건 그만큼 사브리나의 도주 능력이 뛰어나다는 방증이었다.
결국 한동안 이렇다 할 대책은 나오지 않았고.
그렇게 30분 동안 질질 끌리던 회의는 이현아에 의해 비로소 종료되었다.
“…내일까지 어떻게든 대책 마련해오세요.”
그렇게 말하며 이현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회의실을 빠져나가자, 뒤에서는 무거운 한숨 소리가 여럿 흘러나왔다.
한편 회의실 밖에서 이현아를 기다리고 있던 비서, 진유나가 회의실을 빠져나오는 이현아를 향해 다가왔다.
“상무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이현아는 미약한 짜증을 느끼며 답했다.
이제 막 머리 아픈 회의가, 그것도 찝찝함을 남긴 채 끝난 참이었다.
그래서 당장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으나.
찾아왔다는 사람의 이름을 들은 이현아는 눈을 크게 떴다.
“강진우 경감이라고?”
“예. 어느 정도 얼굴이 알려진 경찰이니, 거짓은 아닌 듯합니다.”
이현아 역시 강진우에 대한 것은 종종 보고를 받아 알고 있었다.
외인 기관인 화랑을 이끄는 이현아이기에.
경찰이나 정식 기관에서 활약하는 인재들의 정황은 만약을 위해 일정 기간을 두고 꾸준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알고 있는 강진우는 최근 경찰에서 활약하는 신성 중 하나다.
까다롭고 굵직한 사건들도 여럿 처리한 그의 수사 능력은 경찰 조직 전체로 따져도 최상위권에 이른다고 하던가.
“……”
그래서 이현아는 오히려 얼굴을 굳혔다.
그렇게나 뛰어난 수사 능력을 가진 경찰이 이 타이밍에 자신을 찾아오다니.
결코, 그것이 우연일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벌써 경찰 측에서 사브리나 건의 냄새를 맡았다는 걸까.
하지만 그럼 강진우 혼자 이곳에 찾아올 필요가 없다.
정식으로 영장을 발부받아 조사라도 하면 되는 일인데.
“상무님? 괜찮으십니까?”
그렇게 복잡해지던 이현아의 사고는 진유나의 목소리에 잠시 멈췄다.
어느새 이현아는 자신이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걸 눈치채고는, 고개를 한번 흔들었다.
“괜찮아요.”
“그럼 강진우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늘은 거절할까요?”
지금은 그다지 만나고 싶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대로 자리를 피한다고 해서 그녀에게 좋을 건 없었다.
강진우는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나타난 변수.
그러니 이현아는 그가 가진 패를 반드시 확인해야만 했다.
“아니요. 바로 제 방으로 부르세요.”
그렇게 답한 이현아는 곧바로 상무실로 돌아가 강진우를 기다렸고.
“강진우 씨가 오셨습니다.”
“들어오세요.”
곧 그는 상무실의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왔다.
이현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소파를 가리켰다.
“앉으세요.”
“아, 예.”
그러면서 이현아는 강진우의 면면을 확인했다.
다소 무심한 인상에 어딘가 의욕이 없어 보이는 눈빛.
그래서인지 특별히 적의가 느껴지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있을까요?”
이에 이현아는 편하게 첫 질문을 던졌지만.
소파에 앉자마자 이어지는 강진우의 첫 마디는 그런 이현아를 당황하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게…혹시 사브리나라고 아십니까?”
그 질문에 이현아는 대답도 바로 하지 못하고 눈만 크게 떴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이렇게 대놓고 물어볼 줄은, 그녀도 예상치 못했기에.
그리고 그건 이현아에게 그리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강진우에게는 이현아를 떠볼 필요조차 없다는 뜻이었으니까.
즉 그는 이미 사브리나와 화랑의 거래와 이후 이어진 습격들을 알고 있고.
어쩌면 그 증거까지 확보한 이후일 수도 있었다.
이 자리에는 그저 최후의 확인과 통보만 하려고 온 거겠지.
그런 판단에 일순간 이현아의 머릿속에 절망이 들어찼다.
그런 거라면 이미 그녀에게는 경찰의 심판을 피할 방도가 없었으니.
그래서 그녀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질문을 되돌렸다.
“저를 찾으신 건 경찰의 입장이신가요? 아니면, 개인으로 오신 건가요?”
“…둘 다죠, 뭐.”
둘 다?
그 대답에 이현아의 눈빛이 되살아났다.
그건 분명 그에게 협상의 의지가 있다는 뜻이었다.
반전의 기회를 노리며 이현아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사브리나에 대해서는 어떤 정보를 원하시는지?”
“수사에 도움이 되는 정보라면 뭐든 상관없습니다.”
“그 정보를 이용해 무엇을 하려고 그러시나요?”
“마인을 처벌해야죠.”
강진우의 대답은 짧았다.
처벌하는 건 마인 뿐이라고?
잠깐 사이, 이현아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계산이 지나쳤다.
강진우의 말은 마치 얌전히 정보만 내뱉는다면 화랑에 대한 건은 그냥 넘어가 주겠다는 듯 들렸다.
하지만 그가 아무 이유도 없이 화랑에게 그런 친절을 베풀 리는 없다.
그래서 이현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희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신가요?”
이현아의 말에 강진우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그런 걸 묻느냐는 듯.
“지금은 정보만 주시면 됩니다.”
요구는 나중에 하겠다는 말이었다.
과연,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사브리나와의 신기 밀수는 화랑이라는 외인 기관을 해체시킬 수도 있는 중범죄다.
즉 강진우는 그것을 이용해 화랑과, 나아가서는 화랑의 모기업인 화인 그룹에게 빚을 지워두려는 속셈이었다.
이를 이용해 그가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일개 경찰이 대기업에 목줄을 채우려는 그의 시도는 과감하지만, 절대 무모하지는 않았다.
밀수 건에 대한 증거를 그가 쥐고 있는 한.
한동안은 아무리 이현아라고 해도 그의 요구에 맞춰줄 수밖에는 없을 테니.
“협조해 주실 겁니까?”
“어차피 거절하지도 못하지 않나요?”
이에 강진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비아냥거린 것처럼 들린 걸까.
그의 심기를 건드릴 생각은 없었기에, 이현아는 재빨리 답을 내놓았다.
“알겠어요. 폐사가 수집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겠습니다.”
시원한 패배 선언.
하지만 이현아는 분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시작부터 승부는 정해진 상태였다.
이에 강진우도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이현아는 바깥의 비서에게 누구의 접근도 허용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노트북을 켰다.
“다 아시는 내용이겠지만, 처음부터 설명해 드리죠.”
그렇게 이현아는 사브리나에 관한 정보를 강진우 앞에서 브리핑했다.
사브리나라는 마인에 대한 것은 물론.
그녀가 습격했던 화랑 지사들의 피해 상황과 대응 수단 등을 총망라한, 원래는 그녀의 부하 직원이 발표했던 30분에 이른 브리핑.
그것이 끝나자, 강진우의 얼굴은 미묘하게 굳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