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90
90.
“……”
이현아의 브리핑을 들으며, 나는 내 감정이 표정에 드러나지 않도록 애를 써야 했다.
나는 그저 사브리나의 정보만 있으면 됐는데.
밀수란다.
그것도 신기의 밀수.
신기는 법적으로 대량 살상 병기와 같은 취급을 받기에, 이를 밀수하는 죄는 매우 엄중하게 처리된다.
한데 그걸 왜, 이 여자는 경찰인 내 앞에서 신나게 발표하고 있는 건가.
그것도 저렇게 자료까지 예쁘게 만들어서.
처음에는 이현아가 미친 줄 알았다.
그러나 브리핑이 이어지고, 현재 화랑과 화인 그룹이 처한 상황까지 알게 되자 겨우 앞뒤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가 지휘하는 외인 기관인 화랑은 사브리나와 접촉해 밀수를 시도하다 거래가 틀어져, 역으로 공격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밀수 시도가 발각될까 경찰에 신고도 하지 못하고, 그저 필사적으로 피해 사실만을 은폐하고 있는 상황.
그런데 그때, 경찰 신분인 내가 경찰복까지 차려입고 직접 화인 그룹의 본사로 찾아온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걸 이현아는 어떻게 생각할까.
거기에 조금 전 이현아와의 대화를 떠올려 본다면.
“……”
타이밍이 좋아도 너무 좋았다.
조금 전 만해도 명함 하나로 나를 정말 만나주는 건가 싶었는데.
이들에게는 도저히 만나주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여기까지입니다. 어떠셨나요?”
브리핑을 마친 이현아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귀티가 줄줄 흐르는 도도한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이에 나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한번 까딱였다.
마치 처음부터 전부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러자 곧바로 이현아는 입가를 부드럽게 들어 올렸다.
“그럼 저희 쪽의 정보를 모두 건네 드렸으니, 이제는 강진우 경감님의 계획을 알고 싶어요.”
“계획이요?”
내 말에 이현아는 모르는 척하지 말라는 듯 빙긋 웃었다.
하지만 당연히 나에게 그런 건 없었다.
그냥 마인 하나 때려잡고, 금서나 얻으려고 온 게 전부였는데.
“……”
그러나 이것도 기회라면 기회다.
굳이 굴러들어온 호박을 발로 찰 필요는 없지.
그래서 나는 짧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우선, 사브리나는 제가 맡겠습니다.”
“그녀를 직접 처리하시겠다는 건가요?”
“예. 물론 화랑 쪽에서도 협조는 해주셔야죠.”
이현아가 밝힌 정보에 따르면 사브리나는 10명 남짓한 마인 집단을 이끌고 있었다.
엄청난 규모는 아니지만, 충분히 위협이 될 만한 숫자였다.
그러니 아무리 나에게 화살표가 있다고 해도, 혼자서 놈들에게 정면으로 들이받는 것은 무모한 일.
그래서 나는 어차피 화랑도 얽혀 있는 건이니, 그들의 전력을 이용하기로 했다.
“사브리나는 위협을 감지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요. 이를 회피하실 방법이 있으신지?”
“아니요. 저는 반대로 그 능력을 이용하고 싶은데요.”
나는 그녀의 브리핑을 들으며 떠올린 작전을 이현아에게 설명했다.
현재 사브리나가 숨어 있는 지역으로 추정되는 것은 대전 일대였다.
그래서 나는 우선 혼자 움직여, 도시 안에서 사브리나의 위치를 확실하게 특정하고.
그 후 화랑의 퇴마사들이 멀리서부터 포위망을 구축해 그곳을 급습하자고 말했다.
“가능성은 있어 보이네요. 하지만 확실히 말해서, 성공률은 높지 않아요.”
내 설명에 이현아는 그렇게 말했다.
그 정도로는 사브리나의 위기 감지 능력과 도주 능력을 감당할 수 없다고 여긴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이 작전의 포인트였다.
“압니다. 이렇게 해도 사브리나는 포위망을 빠져나가겠죠. 오히려 그걸 노린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사브리나는 혼자 남게 될 테니까.”
“그 말씀은…”
“그렇게 사브리나만 남게 되면 그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화랑에서는 나머지 마인들의 도주만 확실히 차단해주시면 돼요.”
사브리나가 위기를 감지하고, 도주에 능한 것은 그녀가 가진 라이칸스로프의 전승 때문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그러니 화랑의 퇴마사들이 포위망을 형성해 숫자로 밀어붙인다면.
사브리나 본인은 도망을 갈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동료들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다음은 내가 사브리나의 뒤를 쫓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나에게는 사브리나를 추격할 수 있는 확실한 수단이 있으니까.
“직접 사브리나를 쫓아가서, 그녀를 처벌하시겠다고요?”
“예.”
이에 이현아는 아주 잠깐, 의심의 시선을 나에게 비췄다.
나에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 건가.
하지만 곧 이현아에게서 의심의 기색은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사라졌다.
“알겠습니다. 하지만…그렇게 된다면 저희도 공개적으로 움직여야 해요. 화랑의 퇴마사 거의 전부를 동원해야 할 테니까요.”
“그건 그렇겠죠.”
사브리나가 어디에 있든, 도시 한가운데에서 포위망을 형성할 정도라면 최소 백 명에 이르는 퇴마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정도 숫자의 퇴마사가 대도시에서 일제히 움직인다면.
경찰에서도 그 움직임을 곧바로 파악할 수밖에는 없었다.
“경찰에서는 저희에게 그 의도를 물어볼 거예요. 그럼 사브리나의 정체가 드러날 텐데, 대책이 있으신가요?”
“대책이 필요합니까?”
이현아는 의문스러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답은 간단했다.
“그냥 있는 대로 말하면 됩니다. 사브리나가 화랑을 습격했고, 지금 반격하고 있다고요.”
“그럼 밀수 건은…”
“어차피 죽은 마인은 말이 없죠.”
그다음은 속도전이었다.
사브리나를 포함한 마인 집단을 다른 경찰들이 접촉하기 전에 괴멸.
그저 국제 수배자의 최후로 장식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나머지는 거래의 다른 축이었던 화랑밖에 남지 않는다.
그 내부 입단속이야…당연히 알아서 하셔야지.
“……”
이에 이현아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한동안 곰곰이 생각에 잠긴 그녀는 곧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게 저희에게 어느 정도의 도박인지, 알고는 계시죠?”
이현아의 말대로였다.
말이야 쉽지.
그게 그리 간단한 일이었다면 화랑이 나에게 의지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알아서 사브리나를 제거하고 밀수 건을 어둠 속에 파묻으면 되는 일이니.
하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은, 만에 하나라도 사브리나를 놓치게 된다면 화랑 입장에서는 최악의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현아는 이 일을 도박이라고 칭했다.
그만큼 실패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나야 아쉬울 건 없다.
도박이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는 일.
“뭐, 강요는 안 합니다.”
“너무하시네요. 거절하지 못한다는 거 아시면서.”
내 말에 이현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강 경감님은 괜찮으신가요?”
“저요?”
“경찰에서는 이 작전을 화랑의 자기방위로 이해할 거예요. 그런데 정작 마인을 처리한 게 강 경감님이라면…쓸 데 없는 의심을 사게 될 텐데요.”
원래 외인 기관인 화랑은 경찰에서 배당한 사건, 그리고 자기 보호 목적 이외에는 멋대로 퇴마사를 운용할 수 없다.
다만 그것이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상황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마인에 대한 자기방위다.
즉 지금처럼 마인 집단에게 일방적으로 공격을 받았을 때, 놈들의 은신처에 그 반격을 취할 수 있다는 말.
그런데 지금은 거기에 괜히 내가 끼어있는 셈이었다.
제3자의 입장에서는 이상하다고 생각할 만한 일.
“아,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핑계 역시 준비되어 있었다.
“사브리나가 찾는 귀물이 라이칸스로프의 송곳니라고 하셨죠? 그거, 사실 제가 갖고 있었습니다.”
“예…?”
이현아의 눈동자가 놀라움으로 번뜩였다.
이에 나는 과거에 확인했던 귀물의 정보를 떠올렸다.
최초의 늑대 인간이 남긴 22개의 이빨 중 가장 날카로운 송곳니.
인간에게 늑대 인간의 저주를 부여한다.
그 송곳니는 과거 화랑을 배신했던 늑대 인간 퇴마사가 사용하던 물건이자.
지금은 멸랑의 별운검 재료로 사라져 버린 귀물이었다.
라이칸스로프의 전승과 관련된 신기와 귀물을 모은다는 사브리나라면, 분명 관심을 가질 만했다.
“그래서 저는 왜 사브리나가 화랑에 거래를 요청했는지도, 대충 알고 있습니다.”
즉 사브리나가 화랑과 얽힌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아마 그 마인은 나름대로 송곳니의 뒤를 추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마지막으로 사용한 것이 화랑의 퇴마사였던 자이며.
그자가 화랑에 의해 격퇴되었다고 파악했겠지.
그래서 사브리나는 화랑에게 대가를 지불할 테니 귀물을 넘기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정작 화랑은 그 대가에 혹해, 귀물이 없으면서도 거래에 응했고.
이후 정작 필요한 귀물을 내놓지 않자 그 태도에 사브리나는 격노한 것이었다.
“그걸 어떻게…”
하지만 그런 내막은 이현아가 파악할 수 없었다.
그야 라이칸스로프의 송곳니를 회수했을 때, 내가 이를 화랑에 알려주지 않았으니.
그래서 이현아는 말끝을 흐리며 커다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제가 회수한 귀물 중 하나거든요. 여기에 대해서는 경찰에서 정식으로 보고가 올라갔고, 폐기된 사실도 모두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사브리나가 저를 적대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화랑에서는 그냥 자리만 마련해주시죠.”
그 당시에는 쓸 데 없는 서류를 몇 개나 만든다고 불평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 서류들은 사브리나와 나를 이어주는 동기가 되고 있었다.
“자리라면…?”
“바로 경찰에 협조 요청을 하되, 작전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고 그냥 저를 지목하십시오. 사브리나가 강진우 경감의 소재를 요구하고 있다는 식으로. 그러면 어떻게 해서든 곧 저에게 연락이 올 겁니다. 저는 바로 협조에 응한다고 할테니, 저희는 그때 처음 뵙는 걸로 하죠.”
“……”
내 말에 이현아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잠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무언가를 생각하던 그녀는 갈색의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말로는 하기 힘든, 묘한 기색이 담겨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이런 일을 계획하신 건가요?”
사실 그런 건 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막 나가기로 했다.
“처음부터요.”
내 말에 이현아는 굳은 얼굴로 숨을 삼켰다.
하지만 이내 냉정을 되찾은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강 경감님 말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아, 그리고…수행원을 하나 붙여 드려도 되겠습니까?”
“수행원이요?”
“작전을 위해서는 저희 쪽과 지속적인 연락이 필요하실 텐데, 직접 하시는 것은 번거로우실 테니까요.”
그건…그렇군.
물론 나를 감시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겠지만, 나 역시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니 상관없었다.
내가 승낙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이현아는 밖에서 자신의 비서를 호출했다.
“진유나라고 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자로 대고 자른 것 같은 날카로운 단발머리에 정장을 차려입은 여성이 고개를 숙였다.
나이는 이현아와 비슷한 20대에, 딱딱한 인상의 퇴마사.
레벨은…32로 그리 높지는 않았다.
“그리 강력한 퇴마사는 아니니, 사브리나의 위험 감지에도 걸리지 않을 거예요. 그럼 잘 부탁 드립니다.”
이야기는 거기까지였다.
나는 진유나와 함께 사브리나가 있다는 대전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 * *
그렇게 몇 시간 후.
나는 진유나가 운전하는 경찰차를 타고, 대전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청주의 한 건물로 들어서고 있었다.
“여기입니다.”
그 건물은 며칠 전 사브리나에게 습격당했다고 하는 청주의 화랑 지사였다.
원래는 곧바로 대전으로 가려고 했지만, 퀘스트의 화살표가 대전이 아닌 이곳을 가리키고 있던 탓이었다.
“흠…”
하지만 화살표가 가리키고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그래서 나는 먼저 건물 내부를 살폈다.
밖으로 보이는 외벽에는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해 보였지만.
그 안에는 거대한 짐승이 할퀴고 지나간 듯한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있었다.
나는 그 주변을 관찰하듯 두리번거렸다.
“……”
하지만 한동안 찾아봐도 강조 표시가 되어 있는 단서는 어디에도 없었다.
도대체 뭘 하라는 건지 싶은 찰나.
“음…?”
어느새 작은 화살표가 내 코트의 안주머니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주머니라니.
거기에 있는 거라고 해봐야 여우구슬이 전부인데.
“여우라…”
그제야 나는 퀘스트가 말하려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나는 곧바로 여우구슬을 이용해 여우를 불렀다.
“켕!”
그러자 꼬리 두 개 달린 하얀 여우가 구슬에서 흘러나왔다.
구미호를 포함한 여우 계열의 괴이는 그 천적인 늑대의 냄새에 민감하다.
거기다 이 하얀 여우는 정찰과 추적에 특화된 영물.
어쩌면 단순히 냄새를 추적하는 것 이상의 능력이 있는 게 아닐까.
“여기 남은 늑대 인간의 냄새를 추적할 수 있겠어?”
“켕!”
내 질문에 여우가 답했다.
이어서 여우는 잠시 건물을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았고.
“……”
그 모습을 나는 물론, 나를 이곳으로 안내한 진유나 역시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군인처럼 뒷짐을 선 자세로 그녀의 눈동자는 여우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내가 건물을 돌아다닐 때는 그냥 정면만 바라본 채로 동상처럼 서 있었던 것 같은데.
심지어 여우가 방안으로 들어가자, 진유나는 슬쩍 자리를 옮겼다.
여우가 보이는 방향이었다.
동물을 좋아하는 성격인가.
“만져보실래요?”
“예? 아니, 아닙니다.”
내가 괜한 말을 한 건지,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
“켕켕!”
일이 끝났다는 건지, 여우가 방안에서 그런 소리를 냈다.
그럼…이제 여우를 따라가야 하는 건가?
냄새를 맡고 이를 추적한다면 역시 그 방법밖에는 없다.
하지만 그래서야 화살표보다 불편한 것 같은데.
“켕켕!”
그런 생각을 하는데, 여우의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얼굴도 비추지 않고 울음소리만 내는 걸 보면…나를 부르는 건가.
이에 나는 여우가 들어간 방으로 걸어갔다.
거기는 일종의 작전실 같은 건지, 방 한쪽에 커다란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청주는 물론 대전 일대까지 그려져 있는 지도.
그런데 그때, 여우에게서 영력이 발현되었다.
“응?”
여우가 주술을 썼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주술의 결과로…지도에는 하얀 여우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그 발자국이 찍힌 곳은 대전 시청 근처의 한 호텔.
“여기에 늑대인간이 있다고?”
“켕!”
여우의 대답과 함께 화살표가 갱신되었다.
그 방향을 확인해보니 과연, 여우가 지정한 그 호텔 방향과 일치했다.
이 여우…냄새를 맡은 대상이라면 아예 그 위치를 지정할 수 있는 건가.
“더 편하긴 하네.”
나는 잘했다는 뜻으로 여우를 몇 번 쓰다듬었다.
그러자 여우는 기분 좋은 듯 켕켕거리며 손에 달라붙었다.
한편 옆에서는 진유나가 그런 나를 부럽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