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92
92.
날카로운 파열음이 대기를 찢었다.
나와 사브리나는 서로 물러서지 않고 공세를 이어 나갔다.
쉴새 없이 터져 나오는 금속음.
그 때문에 몇 분 되지도 않는 잠깐 사이, 산속의 공터는 어느새 폐허에 가깝게 변해가고 있었다.
쌔액!
날카로운 바람 소리에 나는 직감적으로 몸을 틀었다.
그러자 나를 스친 사브리나의 손톱이 땅을 갈랐다.
순간적으로 길어진 칠흑의 손톱은 그 자국을 지면에 새기며, 마치 케이크를 자른 것처럼 깊숙하게 그 흔적을 남긴다.
“쯧…”
까앙!
이어지는 연격을 검으로 튕겨낸 나는 혀를 찼다.
사브리나의 두 손에는 붉은빛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저 손톱 역시 귀물이라는 뜻이었다.
그래서인지 손톱은 자유자재로 늘어났고 그 간격을 읽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그녀와 맞부딪힐 때마다 그런 로그가 시야 한구석에서 나타났다.
나에게야 아무 효과도 없지만, 닿는 것만으로도 늑대 인간의 저주를 걸고 있다는 말.
“……”
휘몰아치는 늑대의 공세를 밀어내며 나는 눈썹을 들어 올렸다.
대부분의 퇴마사들이 저주에는 손을 못 쓰는 경우가 많다.
90 레벨이 넘는 인천경찰청장인 그 아저씨도, 한때는 저주에 고생했을 정도였으니.
그런데 사브리나는 그런 저주를, 닿는 것만으로 퍼뜨리고 있었다.
이게 국제 수배 중인 마인인가.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서, 사브리나는 그 존재 자체가 위험했다.
이런 게 갑자기 도시에 나타나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늑대 인간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그건 대규모 생화학 테러와 다를 게 없었으니.
화륵!
나는 주변으로 백염을 흩뿌리며 뒤로 물러섰다.
불현듯 생겨난 불길에 사브리나 역시 움찔거리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렇게 화염의 벽을 친 나는 그 사이 사브리나의 몸을 살폈다.
“도대체 신기를 몇 개나 몸에 달고 다니는 거야.”
그녀의 온몸에서는 신기와 귀물을 의미하는 빛깔이 여기저기서 넘실거리고 있었다.
손톱은 물론이고 발과 발목, 그리고 목과 허리.
마지막으로 늑대의 턱을 형상화한 것 같은 요란한 디자인의 흉갑까지.
그중에서도 역시 내가 가장 주시해야 할 것은 바로 그 흉갑이었다.
에픽 아이템
– 상세 내용 확인 불가
미완성 딱지가 붙어 있음에도 에픽 등급을 가진 신기였다.
만약 완성된다면 레전더리가 되는 건가.
게다가 그 정확한 능력치는 내 눈에도 보이지 않았다.
상세 내용 확인 불가라니.
이런 적이 처음은 아니었다.
모니카의 창을 처음 봤을 때도 계약자 이외에는 그 능력치를 확인할 수 없다고 나와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은…저 흉갑이 모니카의 창만큼이나 대단한 물건이라는 건가?
그나마 미완성이라는 글자가 붙은 게 다행이었다.
한편 그 흉갑 안쪽에는 미미하지만, 검은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바로 내가 찾는 미트라 교의 금서였다.
사브리나는 그 금서를 자신의 흉갑 안쪽에 숨겨, 등 뒤에 메고 있었다.
책가방이라도 되는 건가.
기왕이면 전투 중에 빼내 볼까 했는데, 하필이면 회수하기도 까다로운 부위였다.
그렇게 내가 미간을 찌푸리는 사이.
“크르르르!”
그 잠깐의 공백을 참지 못한 늑대 인간이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무모하게도 그녀는 내가 만든 성화의 벽을 뛰어넘으려고 했다.
하지만 내 의지가 깃든 그 불꽃이 그걸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그 화염은 곧바로 해일처럼 솟아올라, 공중에 뜬 사브리나를 덮쳤다.
“크아아아아!”
성화에 휩싸인 사브리나가 고통에 울부짖었다.
그냥 불이라면 모를까.
성화에 실린 빛의 힘은 분명 늑대 인간과는 상극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대로 사브리나가 쓰러질 거라 생각했지만.
“이걸 버텨?”
“크으으으으-”
사브리나는 신음을 흘리면서도 절대 무너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성화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성스러운 불꽃은 지금도 그녀의 몸을 사정없이 불태우고 있었으니.
다만 사브리나가 가진 초월적인 재생력이 그 데미지를 완벽하게 상쇄하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은이 아니면 안 된다, 이건가.”
라이칸스로프가 가진 전승대로였다.
은으로 만든 무기가 아니면 죽일 수 없다.
그 전승은 늑대 인간에게 확실한 약점을 만들어주는 대신.
그 이외의 경우에는 불사신에 가까운 내성을 보유하게 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브리나에게 달려갔다.
그 제한적인 불사를 깰 수 있는 것이 바로 내 검이었다.
사브리나가 그렇게 애타게 찾는, 첫 번째 송곳니로 강화된 별운검은 재생의 힘을 끊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니까.
“크륵!”
온몸이 타오르는 고통 속에서도 사브리나는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눈앞에 닥쳐오는 내 공격에 맞서 발톱을 들었다.
하지만 나와 부딪히기 직전.
쎄엑!
그녀의 뒤라는, 엉뚱한 방향에서 검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사브리나의 주의가 분산되며 옅은 당황이 그 눈빛에 떠오른다.
시각과 청각.
그녀는 한순간 어느 쪽을 믿어야 할지 고민했고, 뒤로 돌았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판단이었다.
그녀가 들은 소리는 단지 긴나라의 전승으로 만들어낸 허상이었으니.
“수호자의 일격!”
사브리나의 등 뒤를 노린 참격이 그 어깨에 닿았다.
그러자,
까드드득-
뼈가 뼈를 끊는 괴이한 소리와 함께 검날이 사브리나의 흉갑을 파고들었다.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늑대 인간의 선혈.
이에 사브리나가 고통의 신음을 내뱉으려는 그 순간.
갑자기 이변은 일어났다.
바로 코앞에서 붉은색으로 빛나는 흉갑이 황금색으로 빛났고.
“뭐-”
쾅-하는 충격파가 난데없이 나를 크게 밀어냈다.
거기에 몇 미터나 떠밀린 나는 가까스로 균형을 되찾아 땅을 밟고 섰다.
“설마 저거…”
나는 혀를 찼다.
그리고 사브리나 역시 그 노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보고 있었다.
그 표정에 머물고 있는 기색은 경악.
늑대의 얼굴을 하고 있음에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였다.
* * *
사브리나는 조금 전까지 이 남자에게 싸움을 걸었던 자신의 판단을 후회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끈질기게 따라붙는 날벌레를 치워버리려는 생각이었다.
그 정도로 그녀가 가진 위기 감지 능력은 남자의 수준을 높게 치지 않았다.
장난치며 놀더라도 기껏해야 1분도 버티지 못할 수준의 장난감.
하지만 남자와 초격을 나눈 순간, 그녀는 그것이 자신의 착각임을 깨달았다.
이 남자는 결코 약자가 아니었다.
아무리 공격을 퍼부어도 남자의 검은 그 앞을 완벽하게 막아섰다.
채챙!
지금까지 수많은 퇴마사들을 베어온, 자신의 저주가 담긴 손톱이 검광에 맞아 튕겨 나갔다.
그 검에 실린 힘은 무거웠고, 또 움직임은 신속했다.
또한 자신이 약간의 빈틈만 보여도 그 틈을 물어뜯기 위해 쇄도해오는 남자의 검은 마치 살모사를 보는 듯했다.
짐승의 본능으로 벼려진 사브리나의 직감보다도 날카롭게 선 전투 감각.
이에 사브리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힘과 기술, 그리고 센스.
그 어느 쪽을 보더라도 사브리나가 확실히 앞서는 부분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결국 특기인 근접전에서 남자를 압도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화륵!
새하얀 불길을 일으킨 남자는 그것을 마음대로 조종까지 하며 사브리나를 태웠다.
화염에는 강력한 내성을 가지고 있을 자신의 가죽조차 태워 없애는 그 화염에는 분명 알 수 없는 힘이 담겨 있었다.
이런 화염의 존재도.
그리고 그런 화염을 마치 제 손발처럼 다루는 저 능력도 사브리나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지식.
아마도 자신은 알지 못하는 극동의 전승이리라.
그래서 사브리나는 그 성화에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비록 그것은 사브리나를 죽이지는 못했지만, 끔찍한 고통만은 확실히 가져다주었다.
그래서 사브리나는 화염에 휩싸인 채 분노하면서도 동시에 후회했다.
이 남자는 무시하는 게 정답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도주를 선택해야 할까.
그녀에게 그런 망설임이 든 찰나.
이번에는 남자가 공격해왔다.
소리를 이용한 남자의 페이크에 속아 넘어간 사브리나는 결국 등 뒤의 일격을 허용했고, 그녀는 죽음을 직감했다.
검에 실린 재생을 끊는 힘을, 사브리나의 예리한 감각이 읽어낸 것이었다.
하지만 그 검이 흉갑을 뚫고 들어와 사브리나의 심장을 찌르려는 그 순간.
“-!”
이변이 일어났다.
그녀는 불현듯 밀려오는 감각에 눈을 크게 떴다.
고통보다 앞선 그 충만함.
그저 느낌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건 그렇게나 그녀가 찾아 헤매던 완전한 라이칸스로프의 힘이었다.
환희가 밀려왔다.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만능감이 그녀를 채웠다.
그러나 그 모든 희열은 바로 다음 순간.
이내 허상처럼 사라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을 공격했던 남자와 함께 멀리 날아가 있었다.
그리고 사브리나의 시선은 바로 그 검에 가서 박혔다.
“설마…”
그게 어떻게 된 것인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사브리나는 이미 직감하고 있었다.
남자가 들고 있는 저 검.
바로 저것이 자신을 완벽하게 만들어 줄 마지막 한 조각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사브리나의 머릿속에서 후회라는 단어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다.
후회라니.
오히려 지금 그녀는 확신했다.
저 남자를 만난 것은 자신에게 있어, 두 번 다시 없을 행운이었다.
“그거…!”
그러니 이렇게 허무하게 저 남자를 놓칠 수는 없었다.
여기서 저 남자를 보낸다면 그거야말로 자신이 평생토록 후회할 일이리라.
그와 자신 사이에 놓인 몇 미터의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사브리나의 눈동자에서 강렬한 욕망이 번뜩였다.
“내놔!”
한 마리의 늑대가 회색의 바람이 되어 날아갔다.
조금 전과는 다른 광기마저 실린 돌격.
이번에도 남자의 검은 그 앞을 막아섰지만, 사브리나는 그것이 반갑기만 했다.
그녀의 손톱이 검과 부딪혔다.
그건 마치 자신이 검과 손을 잡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사브리나는 자신의 손으로 그 검을 움켜쥐려 했다.
하지만 검은 그저 검격을 흩뿌리며 그녀의 팔을 갈랐다.
붉은 피가 공중에 흩뿌려지고, 고통이 엄습했다.
“크으윽…!”
재생되지 않는 깊숙한 검상이 손등에서부터 팔꿈치까지 이어졌다.
사브리나는 아픔에 표정을 일그러뜨리면서 고민했다.
저 남자는 예사롭지 않은 검사이면서도 훌륭한 난적이다.
그런 검사에서 검을 빼내는 것이 쉬운 일일 리가 없었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뺏으려 한다면, 다음번에는 자신의 목이 날아갈 수도 있다.
그렇다면…다른 방법은 없을까.
남자와 공방을 주고받으면서도, 사브리나의 머릿속은 온통 그 검을 뺏을 생각으로 복잡해졌다.
그렇게 아주 잠깐 그녀의 집중이 흐트러졌고.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사브리나가 읽어내지 못한 경로로 남자의 검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크악!”
결국 두 번째 일격을 허용해 버린 사브리나는 뒤로 물러났다.
등 뒤를 예리하게 베고 지나간 검격.
게다가 이번에는 사브리나를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흉갑은 건드리지 않은 상태였다.
단지 그 아래에서부터 살과 가죽을 꿰뚫고, 흉갑 안쪽을 베었다.
그 검이 노린 것은…다름 아닌 흉갑 안에 있던 금서였다.
“……”
어느새 남자의 손에 들린 금서를 보며 사브리나는 표정을 굳혔다.
물론 금서는 그녀에게 당장 필요한 물건은 아니다.
이미 금서에 적힌 주술과 그 사용법은 완전히 숙지한 상태.
따라서 잃어버린다고 해도 심각한 손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금서가 남자의 손에 녹아 없어지고 있는 신기한 광경을 바라보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입가를 들어 올렸다.
바로 지금.
그녀가 남자의 검을 탈취할 방법을 끝내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하…그래. 그런 방법이…”
방침을 결정한 사브리나의 움직임은 빨랐다.
피투성이의 몸으로 또다시 그녀는 남자와 근접전을 벌였다.
더 이상 재생되지 않는 상처에서는 사방으로 핏물을 흩날렸지만, 사브리나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이에 오히려 남자의 눈동자에 의문이 들어찼다.
고통에 둔해져야 할 사브리나의 공세가 전혀 무뎌지지 않은 탓이었다.
하지만 허공에서 손톱과 검날이 수없이 부딪히던 와중.
“카아아-”
갑자기 사브리나가 자신의 입을 벌렸다.
손톱만으로는 안 되겠는지, 그 거대한 주둥이로 남자의 목을 물어뜯으려 한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없었던 변칙적인 행동.
단 한 번뿐이긴 해도 그 의외성 때문에 반응이 늦어지는 걸 노린 것일까.
하지만 그건 남자를 당황하게 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했다.
남자는 그저 차분하게 검을 세워 그 크게 벌려진 아가리 안을 노렸다.
“-!”
그리고 곧장 그것은 화살처럼 앞으로 쏘아졌고,
쿠드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늑대 인간의 입안을 꿰뚫었다.
목구멍에서부터 뒤통수까지 뚫고 나온 치명적인 일격.
아무리 늑대 인간이라도 감당할 수 없는 부상이었다.
하지만,
“크흐흐흐-”
자신의 입속으로 들어온 검을 보며 사브리나는 웃고 있었다.
핏물을 토하며 웃고 있는 늑대 머리가 섬뜩하게 달빛을 반사한다.
이대로면 몇 초만 더 지나도 사브리나는 죽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공격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그래서 남자의 검이 그녀의 목을 꿰뚫을 것이라는 것도.
그 전부가 사브리나의 예상대로였다.
그래서 그녀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턱을 움직였다.
까드득!
미트라의 금서가 부여한 포식의 권능을 가진 그 입이 자신을 꿰뚫은 검을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