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Champion Too Good at Exorcism RAW novel - Chapter 97
97.
“저기에요!”
나가는 사원을 둘러싸고 있는 호수 건너편에 있었다.
상체만 물 밖으로 드러내고 있는 검은 나가.
사나운 코브라의 얼굴을 한 그것은 앙코르 와트의 사원들처럼 변색되어 있어, 마치 호수 위에 선 석상처럼 보였다.
어딘지 모르게 위화감이 드는 모습.
하지만 그 위화감의 정체를 깊이 추리할 틈은 없었다.
지금 그 나가 앞에는 하필이면 사람 하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기에…!”
이를 발견한 김민아가 말끝을 흐렸다.
그건 현지 경찰이었다. 레벨 표시가 보이지 않는 걸 보니, 퇴마사도 아닌 일반 경찰.
그는 거대한 나가를 보자마자 등을 돌렸지만, 이미 도망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나 역시 그를 돕기에는 너무 멀었다.
결국 희생자가 더 나오는 건가 싶은 그때, 나가는 그에게서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그렇게 일반 경찰이 무사히 도망간 사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나가는 곧 우리를 발견했다.
“샤아아아아!”
하지만 이쪽에 시선을 둔 나가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맹렬히 적대감이 깃든 울음소리를 내는 것은 물론, 곧바로 놈은 호수를 가로질러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전투를 준비하며 놈의 머리 위를 확인했다.
“물러서 계세요. 만만한 놈이 아닙니다.”
나는 김민아에게 말했다.
나가의 레벨은 62.
결코 낮은 레벨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 말을 들은 김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현지 퇴마사들한테 상황을 전파하고 올게요. 그럼 조심하세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퇴마사들이 지키고 있던 방향으로 뛰어갔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 건지, 적절한 대응이었다.
“거, 기분 나쁘게도 생겼네.”
이국의 뱀신을 보며 한성민이 중얼거렸다.
인간의 상체에 머리만 코브라 형상을 한 그것은 과연 괴기스러운 모습이긴 했다.
그런 나가는 호수 한가운데에 멈춰 서서 이쪽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 입이 크게 벌어졌다.
“설마 저거…!”
한성민의 말과 동시에 나가의 입에서 검은 물이 쏘아졌다.
콰드득!
그 물줄기는 수십 미터의 거리를 일직선으로 날아와, 땅을 파헤치고 나무를 부수고 바위를 녹였다.
터무니없이 강대한 수압에 강산성까지.
이에 한성민은 화들짝 놀라며 물줄기를 피하기 위해 움직였고 나 역시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가는 그런 우리를 보면서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리가 호수를 건널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물론 그건 사실이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그야 호수를 건너게 해줄 스킬은 내가 아니라 저 나가가 갖고 있을 테니.
“쯧…!”
쏟아지는 물줄기를 피하며 나는 나가를 향해 을 발동했다.
그러자 나가가 가진 스킬들이 리스트에 표시되며, 놈이 갖춘 능력이 빠짐없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그중에는 예상대로 물에서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스킬인 도 있었다.
다만…
“귀곡?”
나가가 령들이나 갖고 있는 귀곡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다.
나가 자체가 령의 특성을 보유하고 있는 건가?
비록 나가와의 거리가 멀어 혼령 감지 스킬이 발동하고 있지는 않지만, 스킬을 보니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었다.
역시 평범한 나가는 아니었나.
나는 곧바로 스킬을 강탈하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러자 스킬을 잃은 나가는 잠깐 균형을 잃는 듯 삐걱거렸지만, 이내 다시 제 모습을 되찾았다.
나가가 보유한, 물에서의 이동을 보조하는 스킬이 한두 개가 아니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스킬 하나를 강탈하는 걸로 놈을 수장시킬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놈에게 접근하기 위해 필요한 스킬이었으니.
나는 그대로 호수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 사납게 파도치는 수면을 밟고, 나가를 향해 뛰어갔다.
“어? 뭐여, 저건?”
물 위를 뛰어가는 내 등 뒤에서 한성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기술은 또 어디서 배웠냐는 듯한 물음.
그러나 나는 눈앞에서 날아오는 물줄기를 쳐내며 답을 대신했다.
그렇게 나가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역시, 혼령 감지가 발동했고.
“샤아아아!”
나가에게서는 귀곡이 터져 나왔다.
이어서 놈은 자신의 손을 호수 안으로 넣어, 그 무기를 꺼내 들었다.
호수 속에서 뽑아낸 그것의 정체는 거대한 몽둥이.
전봇대로 착각할 정도로 크다는 것을 빼면 아무 특징도 없는, 나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둔기였다.
그리고 그 둔기는 이내 나를 노렸다.
후우웅!
낮은 바람 소리가 검은 전봇대를 감싸며 내 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나는 그걸 보면서도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방어했다.
크기로 따지자면 놈의 몽둥이와 내 검은 통나무와 이쑤시개만큼이나 차이가 났지만.
쾅!
내 인검은 그 거대한 몽둥이를 쳐내고도 말짱했다.
게다가.
“이정도면…”
놈의 몽둥이에 실린 힘은 그리 강하지 않았다.
60 레벨의 괴이라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
이는 내가 아라한의 전승과 아이템의 보조를 받은 것도 있지만, 스킬의 영향 역시 컸다.
바로 청룡이 보유한 고유 기술인 .
즉 뱀과 이무기 특성을 가진 모든 적의 능력을 삭감하는 스킬 덕분이었다.
“시이이이-”
이에 나가가 분한 듯 그런 소리를 냈다.
놈에게서 두려움의 기색은 없었다.
비록 뱀이긴 해도, 청룡 이상의 신격을 보유하는 나가이기에 청룡에게 복속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나가는 입에서 검은 물을 쏘고, 몽둥이를 난잡하게 휘두르며 발악하기 시작했다.
몽둥이는 괜찮지만…저 검은 물은 수압에 의한 절삭을 제외하더라도 접근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야 저건 산성 용액이나 다름없는 독액이다. 설령 독은 통하지 않는다 해도, 산성을 방어하는 수단은 나에게 없었다.
그래서 나는 살짝 뒤로 물러났다.
이어서 내가 사용한 스킬은 벼락 부름.
시전 시간이 좀 길긴 해도, 지금은 이만한 게 없었다.
그러자 비를 관장하는 청룡의 힘이 구름을 불러모았고.
건기를 맞아 쨍하게 빛나던 해는 곧 자취를 감췄다.
그렇게 소나기가 쏟아지기 직전의 하늘 아래에서, 마침내 빛이 번쩍인다.
콰르르릉!
요란한 천둥소리와 함께 한 줄기의 번개가 나가에게 내리꽂힌다.
“카아아아…!”
그 섬뜩한 고압 전류가 검은 나가의 몸을 지나 호수 아래로 퍼져 나갔다.
이에 나가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해냈지만, 그럼에도 절대 쓰러지지는 않았다.
탁한 연기가 새어나오는 탄내 나는 몸.
놈은 그런 몸을 휘청거리면서도 다시 독액을 뿜기 위해 그 입을 벌렸다.
그 눈에는 원인 모를, 광기에 가까운 원한이 새겨져 있었다.
포기할 생각은 없어 보이는 듯하니, 한 방 더 쏴야 하나.
벼락 부름은 구름을 불러오는 처음 한 번이 오래 걸리지, 그다음부터는 시전 시간이 거의 없다.
다만 부담스러운 영력이 들어가는 건 변함이 없었기에, 그 대응을 고민하던 찰나.
“음…?”
갑자기 나가가 행동을 멈췄다.
또한 놈의 시선은 내가 아닌 사원 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그곳에는 어느새 돌아온 김민아와 캄보디아의 퇴마사가 있었다.
상황을 보러 온 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나가의 상태가 변했다.
칠흑 같은 그 몸이 액체처럼 변했고 이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설마 도주하려는 건가.
그걸 가만히 놔둘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검에 전격을 휘감고 놈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단번에 그 목을 쳤다.
도주하려 했기 때문인지 이렇다 할 반항도 못해본 나가의 코브라 머리가 호수의 수면으로 떨어진다.
“시이이이이…”
힘 없는 비명과 함께 검은 나가의 머리는 서서히 호수 아래로 가라앉았고.
이내 머리와 몸은 그 자리에서 허무하게 흩어졌다.
액체로 변하던 몸이 연기처럼 사라진 것이었다.
“……”
그 모습에 나는 찜찜함을 느꼈다.
도주를 허용한 것은 아니었다.
분명 나는 놈을 베었고, 그로 인해 놈은 죽었다.
그런데 놈의 목을 친 순간에 검에 느껴진 감각.
그것이 거슬렸다.
그건 제대로 된 괴물이 아닌, 다 썩어가는 고깃덩이를 벤 감각이었기에.
하지만 그 위화감의 정체는 얼마 안 가 알 수 있었다.
나가를 처리하고 다시 김민아와 합류한 이후.
“화신이요?”
내 의문에 그녀는 그렇게 답했다.
정확히는 내 의문을 현지의 퇴마사에게 통역했고, 그 퇴마사의 답변을 다시 나에게 해석해 준 것이었다.
“네. 인도 신화에서 화신, 특히 신의 화신은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죠. 단순히 신의 분신 정도로 사용될 때도 있지만, 아예 화신 자체가 주인공인 신화가 있을 정도로요.”
“그럼 조금 전에 그게 나가의 화신이라고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하시네요. 아무래도 진짜 나가를 사냥했다면 저렇게 시체도 안 남기고 사라지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야 나가는 괴이다.
그러니 괴이가 죽었다면 그 시체도 남는 게 당연한 일.
저런 식으로 온몸이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건, 보통 영체에게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캄보디아의 퇴마사가 한 이야기는 분명 일리가 있었다.
안 그래도 그 나가는 혼령의 기색을 갖고 있었으니.
“그럼…본체는 어디 있다는 거야?”
내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퀘스트 화살표가 꺾이며 목적지를 표시했다.
그 방향은 남쪽.
그리고 동시에,
“캥!”
나가의 등장으로 잠시 들어가 있던 여우가 나와 주술을 발현했다.
스마트 폰의 지도는 어느새 목적지가 표시되어 있었다.
그건 앙코르 와트에서 남쪽으로 도시를 지나 있는 거대한 호수.
톤레삽 호수였다.
* * *
“톤레삽 호수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커다란 호수에요.”
그렇게 호수로 향하는 길.
김민아는 이번에도 여행사 가이드처럼 호수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해외에는 특히 호수 위에 사는 수상 가옥들이 유명하죠. 3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 위에서 살고 있거든요. 또 주변에는 맹그로브 나무숲도 있어서-”
그렇게 일반적인 상식 수준의 설명은 이내 퇴마와 관련된 지식으로 발전해갔다.
“하지만 드넓은 호수, 게다가 사람도 많이 오고 가는 만큼 괴이들도 종종 목격되고 있어요. 그중에 가장 주의해야 할 건 괴어와 물귀신들이죠. 특히 괴어 중에는 몸길이가 10미터가 넘는 어마어마하게 큰놈도 있다고 해요. 물론 강 경감님 정도 되면 문제는 없겠지만요.”
내가 싸우는 걸 본 직후라서인지, 김민아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속에는 정작 나가에 관한 이야기가 없었다.
“그럼 나가는요?”
“호수와 관련된 나가 설화가 있긴 해요. 하지만 대부분 어부를 도와줬다거나 하는 소소한 이야기 정도죠. 그리고 최근에 호수에서 나가를 봤다는 목격자는 한명도 없고요.”
“흠…”
호수에 얽힌, 화신을 만들어 낼 만한 나가의 전승은 없다는 이야기.
그렇게 그녀의 설명을 듣는 사이, 호수에 도착한 우리는 택시에서 내려 땅을 밟았다.
그녀의 말대로 톤레삽 호수는 수평선이 보일 정도로 넓었다.
그런데 문제는 화살표도 여우가 찍어준 표시도 그 호수 안쪽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배를 타야겠는데요?”
“그건 어렵지 않아요. 이 주변에 빌릴만한 보트는 많거든요.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렇게 말하며 김민아는 보트를 빌리기 위해 어딘가로 달려갔다.
뭐, 보트가 많아 보이긴 했다.
세 명만 앉아도 꽉 차는 작은 보트는 호숫가에 널려 있는 수준이었고.
심지어 그 사이로는 큰 대야에 타서 노를 젓고 가는 사람도 보일 정도였으니.
“설마 저런 걸 타고 괴이랑 싸우라는 거여?”
그래서인지 한성민은 굳은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왜, 어차피 조금 전에도 구경만 했잖아.”
“아니…그건 어쩔 수 없잖슴까. 그보다 강 경감님이야말로 물 위는 도대체 언제부터 걸어 다니기 시작한 건디? 혹시 교회 다니시나?”
“교회에 친구가 하나 있긴 하지.”
“아니, 진짜로?”
“그보다 한 순경은 김민아 경장이나 잘 챙겨줘. 호수 위에서는 숨을 곳도 없잖아.”
나는 한성민에게 그렇게 당부했다.
그야 물 위를 뛰어다닐 수 없는 그에게 호수에서 싸우라는 건 무모한 요구일 테니.
그나마 보트 위에서 비전투 전력인 김민아를 지키고 있는 게 그에게는 최선이었다.
“뭐, 알겄슴다.”
그걸 아는 건지 한성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김민아는 정말 보트를 빌려 왔다.
그것도 작은 통통배가 아니라, 관광 용도로 쓰이는 보트였다.
유람선…이라기에는 너무 작지만, 길게 의자가 늘어서 있어 10명 조금 넘는 인원이 탈 수 있도록 만들어진 보트가 천천히 호숫가를 따라 오고 있었다.
“저걸 통째로 빌려주나요?”
“돈만 주면 가능하죠. 이런 경비는 다 본청에서 처리해주거든요.”
그건 다행이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 바로 앞에 멈춰 선 보트를 확인했다.
낡긴 했어도 그럭저럭 물 위에 떠 있긴 할 것 같은 보트였다.
“실은 좀 더 큰 보트를 원했는데, 주변에서 남은 것들 중에는 저게 제일 큰 거라서요. 그럼 가시죠.”
그렇게 말하며 김민아는 보트의 운전석으로 향했다.
원래 그곳에 있던 현지인은 그녀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더니, 당연하다는 듯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어딘가로 가버렸다.
“보트 운전도 하세요?”
“동남아에서는 이런 거 운전할 기회가 많아서 배웠어요.”
“유능하시네요.”
“별말씀을요. 그럼 어느 쪽으로 가면 되나요?”
나는 김민아에게 내 스마트 폰을 보여주었다.
거기에 있는 지도에는 우리가 가야 할 위치가 여우 발자국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 특이한 표시에 김민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그 여우 식신이 한 건가요?”
“예. 일종의 추적 주술입니다.”
“이야, 그래서 여기로 오자고 하신 거군요. 알겠습니다. 그쪽으로 가볼게요.”
그렇게 우리는 보트를 타고 호수 안쪽으로 향했다.
한동안 수상 가옥이나 작은 수풀이 보이던 풍경은 이내 사라지고, 곧 사방에 물밖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끝내 우리가 왔던 땅의 모습조차 거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되었을 때쯤.
김민아가 입을 열었다.
“거의 다 왔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호수를 주시했다.
그러자 저 멀리, 레벨 표시가 보였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김민아의 말대로 이 호수에는 괴이가 살고 있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면서 몇 번, 괴이가 있는 것을 보았으니.
그런데.
“음…?”
그 레벨 표시와의 거리가 가까워지며 나는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눈에 보이는 레벨은 높지 않았다.
기껏해야 10 전후.
그런데 그런 레벨 표시가 수도 없이 많이 깔려있었다.
그 숫자는 최소 수백.
저 호수 바닥에, 최소한 수백에 이르는 사람의 죽음이 묻혀 있었다는 말이었다.
“……”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나는 이어서 수백에 이르는 한과 령 주변을 배회하는 거대한 그림자를 발견했다.
그 레벨은 무려 73.
바로 나에게 화신을 보낸, 나가의 본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