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 Rank Supporting Role’s Replay in a Prestigious School RAW novel - Chapter 1142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142)
[ 고대하던 잔치 (1) >황지호는 ‘성대한 잔치를 열되, 손님은 소수로 엄선하겠다’라고 선언했었다.
황명 타워 한 층을 전부 사용 중인 덕에 이동도 편하고 한산해 보이지만, 도착한 손님들을 보면 딱히 숫자가 적어 보이진 않았다.
일단 나도 손님인데, 호랑이들이 준비한 옷을 입는 바람에 주최 측으로 보였다.
‘드레스코드가 정해져 있지 않지만, 호족 쪽은 다 한복을 입어서 눈에 띄어. 게다가 나도 붉은 비단 장식품을 착용한 바람에 더 그래.’
오늘 회장은 물론이고 방문 답례품으로 마련된 나전칠기 자개 보석함 안도 붉은 비단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김신록의 진짜 이름인 제호의 붉은 비단 제(緹)에서 따와 잔치를 준비하다 보니 그렇게 된 듯했다.
그래도 붉은 비단으로 된 옷은 주인공인 김신록과 그 부모만 입기로 암묵적인 결정을 내린 건지 다른 호족들은 붉은 옷을 피했다.
그 대신 붉은 비단이 들어간 장식품을 하나씩 착용했는데, 어쩌다 보니 나도 그걸 걸치게 되었다.
안동포로 만든 저고리에 회장 곳곳을 장식한 것과 같은 디자인의 붉은 비단에 매듭을 이은 술띠를 착용하고 있으니 나도 그냥 호족의 일원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학생의 정장은 교복이니 지금이라도 교복으로 갈아입는 편이 좋지 않을까?
“조의신.”
그러나 결단을 내리기도 전에 내 머릿속을 실시간으로 읽는 호랑이에게 붙잡혔다.
주변에는 사수로 묶이는 청룡, 현무가 있었는데,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둘이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흰 호랑이 하나면 그냥 모르는 척할 수도 있겠지만, 저 둘이 있으니 그럴 수 없었다.
포기하고 인사했다.
“겨우 용족의 은인과 대화할 수 있게 되었군. 인사할 이들이 그리도 많더냐.”
“이 아이를 아끼는 이들이 많고, 본인도 몹시 예의가 바르다 보니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이렇게 오지 않았느냐.”
“인사가 늦어서 죄송해요.”
“청룡의 말은 신경 쓰지 말거라. 같이 온 용족의 후예가 염방열과 인사를 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게 섭섭해서 기분이 상했을 뿐이니까.”
나는 인사를 하면서도 회장을 서빙하며 돌아다니는 오토매틱 메이드를 호출해 흰 호랑이에게 먹일 음료수를 건넸다.
방문객에게는 낮은 도수의 곶감 와인이나 무알코올 샴페인, 곶감 치즈 플래터 등 전부 곶감이 들어간 음식이 제공되었기에 뭘 먹이든 흰 호랑이에게 고통을 줄 수 있었다.
“주작은 이번에도 또 오지 않았군. 백호, 주작에게선 아무 연락도 없었나?”
“불참 의사를 밝히는 메시지와 함께 선물을 보냈다.”
백호군이 회장 입구 주변에 산처럼 쌓인 선물 더미를 턱짓하며 말했다.
지나가면서 봤을 때, 주췌 콘체른의 로고가 박힌 상자가 있었는데, 그게 주작이 보낸 선물 같았다.
주작은 이 자리에 초대받을 만큼 호족과 친분이 있었으나 결국 불참한 것 같았다.
청룡은 아쉬워하다가 다시 대화를 이어 갔으나 현무는 오래도록 선물 더미 쪽을 응시했다.
‘루보원의 피영극에서 등장한 사수들은 아주 사이가 좋아 보였어. 특히 주작이 사수를 많이 아꼈지.’
내 생각에 딱히 틀리지 않은 듯 흰 호랑이가 눈치를 주지 않았다.
“현무, 언제까지 한반도에 머무를 예정이지? 상위 존재를 불렀다던 중국 청소년 대표팀은 이미 귀국하지 않았나.”
“그중 같이 온 아이와 함께 조금만 더 머무를 예정이야.”
피영극 공연 마지막 날, 내가 용궁에 방문한 사이 호연관에 상위 존재가 힘을 드리웠다.
그 상위 존재의 정체는 복희.
야오러치의 연주와 루보원의 그림자극을 몹시 마음에 들어 한 건지, 커튼콜을 위해 등장한 둘의 머리 위로 복희가 빛을 내렸다.
힘을 나눠 받았긴 했으나 삼황오제 중 하나인 데다 중국의 창세신으로도 꼽히는 복희가 한국에서 그런 힘을 발휘했다는 건 큰 화제가 되었다.
마침 극도 끝난 덕에 중국 대표팀은 서둘러 귀국하기로 했고, 루보원과 야오러치는 힘을 안정시킬 겸 황하를 따라 복희와 연이 깊은 지역을 돌며 피영극을 상연할 예정이라고 한다.
‘렌조인 카렌의 말대로 삼황오제가 또 대리인을 세웠구나. 그리고 염농 신제의 대리인인 리웨이와 현무는 아직 한반도에 남아 있어.’
현무는 양족의 수장을 만나는 데에 도움을 주기로 했으므로 중국으로 돌아가면 곤란했다.
일단 12지 동맹의 일원이라는 이유로 황지호는 각 동맹의 수장을 초대했으나 양족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그래도 양족의 수장은 선물을 보내긴 했다.
12지 동맹 회담에 꼬박꼬박 출석하는 것도 그렇고, 악몽에 관한 경고도 해 주는 걸 보니 양족의 수장은 최저한의 인사치레는 하는 것 같다.
한편, 출석은 했으나 인사치레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수장도 있었다.
“흐어어엉! 흑호, 잊어 먹어서 미안해!”
“토연아! 흐윽······ 보고 싶었어! 흐으으······.”
옥토연은 인사고 뭐고 오자마자 은호의 후예들하고 노닥거리다가 황지호가 흑호와 청호를 데리고 인사를 다니는 걸 발견했다.
그러자 갑자기 흑호를 붙잡고 엉엉 울고, 흑호도 덩달아 울기 시작했다.
황지호는 잔칫날에 복 떨어진다는 이유로 옥토연을 쫓아내고 싶어 했으나 운다는 이유로 그런 짓을 하면 흑호도 같이 내보내야 해서 참았다.
“좋은 날이니 적당히 울고 진정하도록.”
“바로 쫓아낼 줄 알았는데, 잘 참는구나. 고마워, 둘은 내가 잘 달랠 테니까 넌 가 봐.”
“옥토윤, 지금 이 몸에게 흑호를 두고 가라는 건가?”
황지호와 옥토윤이 호랑이와 토끼의 신경전에 끼인 청호가 쓴웃음을 지었다.
기껏 좋은 날, 좋은 잔치가 열리는데 호랑이와 토끼 외에도 기분이 상한 진족이 또 있었다.
“왜 까마귀가 여기에? 이거 그 마왕의 권속 아니야?”
나한테 인사를 받을 땐 지나치게 기분이 좋아 보이던 서돌이 까마귀를 발견하자 얼굴을 구겼다.
오늘 시델렌티움이 직접 참석하진 않았으나 초대장을 받았고, 까마귀 권속은 초대장을 물고 당당하게 회장에 들어왔다.
까마귀 권속은 회장 전체가 가장 잘 보이도록 천장에 설치된 대형 샹들리에 사이에 자리 잡았고, 눈썰미 좋은 진족들은 이를 금방 찾아내었다.
저 권속도 일단 호족의 손님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으므로 딱히 이를 두고 뭐라 하는 이는 없었으나 서돌은 달랐다.
“까마귀 마왕은 호족에게 이런 자리에 초대받을 만큼 깊은 교류가 없었어. 그렇다는 건 그만한 일을 했다는 건데 마침 호족에게는 큰일이 있었고······.”
서돌은 불쾌감을 숨기지 않고 까마귀를 노려보며 거의 사실에 가까운 추리를 해내고 있었다.
흑마의 표현을 빌리자면, 서돌은 ‘관음증에 걸린 쥐새끼’이므로 시델렌티움에게 동족 혐오를 느끼고 저렇게 집요하게 구는 듯했다.
“서족의 수장에게도 인사하고 싶었는데, 어렵겠네.”
“관음증에 걸린 쥐새끼는 내버려 둬.”
생각하고 있던 말이 그대로 귀에 들려서 조금 놀랐다.
최근 돈족의 정식 수장이 된 굴린부르스티와 흑마가 있었다.
오늘 얼굴만 비추고 퇴장한 사족의 수장에게 인사를 할 때, 마침 근처에 있던 굴린부르스티와도 인사를 했었다.
굴린부르스티 입장에서 보면 나는 그냥 호족과 연이 있는 인간 고등학생일 뿐일 텐데도 붙임성도 좋고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굴린부르스티가 정식 수장이 된다면 좀 더 제대로 된 12지 동맹 회담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다들 많이도 왔군. 12지 동맹의 수장들이 이렇게 많이 모인 건 결계를 만든 이후 처음 아닌가?”
이 말을 한 건 황금의 긴고아와 안대를 착용한 미후왕(美猴王), 제천대성이었다.
제천대성의 말대로 이 자리에는 수장들의 숫자가 아주 많았다.
‘십이지는 넷을 빼고 전원 출석했어. 백일잔치를 위해 여덟이나 모인 건 보통 일이 아니야.’
12지 동맹에 소속한 진족 중 결석한 것은 넷이다.
하나는 여전히 수장 자리가 비어 있고, 남아 있는 이들 사이에서 내전이 진행 중이라는 우족.
악몽 타령을 하면서 밖에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양족.
딱히 호족과 그리 친하지 않기에 선물만 보냈다는 계족.
호족과 돈독한 동맹 사이라는 걸 감추기 위해 일부러 결석한 듯한 견족.
그 외에는 전부 출석했다.
그만큼 지금 호족의 위상이 보통이 아니라는 뜻이다.
제천대성이 온 게 의외였는지 흑마가 물었다.
“원숭이, 너도 올 줄은 몰랐어. 아주 바빴잖아?”
무지기를 찾고, 크리스마스이브에 참전한 이후로 제천대성은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무지기를 치료해야 하기도 하고 그때 힘을 많이 소모한 데다가, 상위 존재들이 된 그의 친우들이 현세에 개입한 이후에 겪는 후유증을 완화하기 위해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수습에 힘썼다고 들었다.
그 바람에 비정기 오찬회가 열리는 빈도도 크게 떨어졌다고 한다.
참고로 이 말을 전한 건 도시후로, 제천대성과 꾸준히 연락하는 듯했다.
제천대성이 말했다.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다면, 나도 초대에 응해야 하지.”
“누굴 어디에 초대하게? 황호?”
“곧 경사가 있어서 말이다. 황호도 초대해야지. 그리고 중요한 자리이니 원족의 은인도.”
그 말과 동시에 제천대성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엿듣고 싶어서 들은 게 아니라 그냥 근처에서 이야기하고 있어서 들린 것뿐인데, 떨떠름해졌다.
흰 호랑이가 미간을 좁히며 제천대성의 시야를 가리듯 한발 움직였으나 안대를 착용할 정도로 신격이 올라간 제천대성의 눈을 그 정도로 피할 순 없을 것이다.
“뭐야, 너도야?”
“그래. 비슷한 처지인가 보군.”
흑마도 이쪽을 보기 시작했다.
왠지 이 주변에 더 있으면 귀찮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 일단 자리를 피하기로 했다.
저 둘에게는 미리 인사를 했으니 별로 예의에 어긋나진 않을 것이다.
나는 마음을 안정시킬 겸, 은광고인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오늘 자리엔 진족 외에도 인간도 꽤 초대했어. 아마 김신록이 제호라는 걸 밝히려는 밑 작업이겠지.’
이 자리에는 협회, 프로 플레이어 팀, 은광고와 관련된 인간도 꽤 있었다.
굳이 따지면 용족 측에 가깝겠지만 염방열도 왔고, 명예 교사이기도 한 권제인도 이 자리에 왔다.
플레이어 협회를 대표해 홍규빈도 초대했으나 일이 많은지 협회의 이름으로 인사말과 선물만을 보내긴 했다.
또 은광고 관계자도 상당히 많이 왔다.
‘그래도 교직원보다 학생이 많은 것 같은데.’
우선 천동하가 이 자리에 왔다.
표면상으로는 천동하가 황명 연구소의 객원 연구원이므로 부르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안다인과 그 가족도 여기에 왔다.
“상훈이도 부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워. 큰 대회를 앞두지 않았으면 불렀을 텐데.”
“음······ 상훈이는 작년 다인이네 반 부반장이었지. 다음엔 같이 오면 좋겠다.”
죽호와 동행한 김유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어느 방향으로 흘끗 고개를 돌렸다.
김유리는 알고 있을 것이다.
유상훈이 지금 이 자리에 왔다면 속이 뒤집혔을 거라는 걸.
‘유상희가 도원우의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등장한 모습을 보면 복장이 터지겠지.’
유상희도 호족과 연을 깊게 맺었다.
유상희는 김신록의 수업을 들은 적도 있었고, 그녀가 사용하는 치유 광림이 적호를 구한 적도 있으므로 이 자리에 오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제자 여럿이 백일잔치에 출석한 걸 보고 김신록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김신록은 은광고 제자가 많을수록 수치스러워하지 않을까?’
김신록이 나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냥 생일 파티도 민망해할 것 같은데, 백일잔치면 더 심각하게 느낄 것이다.
그래도 부모가 무슨 생각으로 백일잔치를 여는지 알기에 참는 중일 거다.
나라도 부모님이 지금 백일잔치를 열어 준다고 하면 아무리 부끄럽더라도 기꺼이 출석할 것이다.
은광고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드디어 백일잔치의 주인공이 등장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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