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 Rank Supporting Role’s Replay in a Prestigious School RAW novel - Chapter 1143
명문고 EX급 조연의 리플레이 (1143)
[ 고대하던 잔치 (2) >김신록은 붉은 머리카락과 눈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몹시 낯설게 느껴졌다.
평소 위장한 모습이 아니라서 그렇게 느낀 건 아니었다.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 전혀 달라.’
나는 그동안 여러 상황에서 김신록을 보았다.
어두운 체육관 구석에서 죽어 갈 때, 지익회를 담당하는 교사로서 나타났을 때, 호족의 고문 전문가로서 만났을 때 등등.
다양한 면모를 봤는데도 지금의 김신록은 낯설었다.
분명 같은 존재인데 지금 김신록을 보면 도저히 예전 모습이 떠오르지 않았다.
‘왼눈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달라지나?’
어떤 모습을 하든 김신록은 항상 웅녀와 닮은 왼눈을 가렸다.
하지만 지금 김신록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단정하고 반듯한 이마와 눈을 드러내고 있었다.
김신록이 기쁠 때에도, 힘들 때에도 그를 붙잡고 있었던 죄의식이 정말 많이 가벼워진 것 같았다.
“호족의 후예가 장성했군. 원족에게도 후예가 하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응? 저 후예는 이미 몇천 년 전에 장성했다고 들었는데?”
“잘 보니 괜찮네요. 눈을 가린 게 마음에 안 들었는데, 넘기니까 보기 좋아요. 붉은 비단옷도 잘 어울리고, 그동안 살아온 생의 굴곡도 내 취향이에요.”
“아, 또 쥐새끼가 존댓말 쓴다.”
김신록의 등장을 두고 12지 동맹의 수장들이 떠들었다.
백일잔치의 목적 중의 하나가 김신록을 피로하여 호족 내에서 어떻게 입지가 달라졌는지 널리 알리는 것이지만, 성가신 진족에게 찍히게 생겼다.
회장이 넓고 손님이 많아 황지호의 분신을 여럿 배치했는데, 나와 비슷한 디자인의 한복에 특별히 황금색의 장식이 더해진 붉은색의 술띠를 착용한 고등학생의 모습을 한 분신이 서돌의 헛소리를 듣고 눈을 사납게 떴다.
“우리의 후예에게 허튼 짓거리를 할 생각은 삼가도록. 이 몸은 물론이고 웅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아, 이젠 호족 말고도 웅녀도 상대해야 하는군요. 번거롭네.”
서돌 말만 들으면 호족보다 웅녀를 상대하기 더 번거로워하는 눈치였다.
웅녀가 적호의 부상을 어떤 식으로 되갚는지 어렴풋이 아는 입장에선 납득이 가는 사고방식이긴 했다.
하여튼 서돌이 저렇게 눈독을 들일 만큼 오늘 김신록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에 가까웠다.
‘오늘 김신록이 입은 한복은 비단 옷감부터 웅녀가 직접 고르고 지었다고 했지.’
어떻게 구한 건지 김신록의 이능파 색과 거의 똑같은 빛깔의 붉은 비단은 그와 아주 잘 어울렸다.
실내 온도는 쾌적하게 유지되고 있지만, 어쨌든 계절은 여름이었기에 붉은 비단으로 지은 한복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하지만 나는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결국 패션은 입은 자에 의해 완성되므로 계절감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는 김신록 외에도 적호, 웅녀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적호가 말씨만 괜찮은 게 아니라 옷도 잘 입었지. 웅녀가 돌아오니까 더 괜찮게 입네.”
“말뼈다귀치고는 보는 눈이 있군요.”
“쥐새끼한테 인정받아 봤자 기쁘지 않아.”
서돌과 흑마는 영국에서 한 번 치고받은 후 사이가 더욱 나빠진 것 같았다.
동맹을 맺은 수장끼리 사이가 나쁜 건 애석한 일이지만, 오늘은 잔칫날이니 안 보이게 나가서 싸워 줬으면 좋겠다.
황지호가 둘을 가만히 바라보며 책을 잡고 쫓아낼 타이밍을 잡기 위해 지켜보자 눈치가 귀신 같은 둘은 입을 다물었다.
“김신록 선생님, 진짜 부모님이랑 닮으셨다! 딱 반을 섞어 둔 느낌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직 웅녀 님과 대화한 적이 없는데 얼른 같이 선생님 이야기를 하고 싶어.”
김유리와 안다인의 대화를 들으니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
철없는 수장들과 달리 김신록의 제자는 정상적으로 스승의 백일잔치를 즐겼다.
김신록은 미묘하게 여기겠지만, 진족들의 철없는 소리보다는 제자들의 환호가 더 이 잔치에 어울렸다.
붉은 비단옷을 차려입은 가족은 환영을 받으며 회장 중심에 준비된 가족석으로 향했다.
평소에도 옷을 잘 입는다는 인상의 적호가 작정하고 차려입고, 밤하늘 아래에서 홀로 웃을 때보다 훨씬 아름답고 고혹적인 자태의 웅녀와 함께 걸으니 여기저기에서 감탄과 찬사가 쏟아졌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김신록 뒤를 걷는 둘의 모습을 보던 도원우가 유상희를 잠깐 응시하는 게 보였다.
적호와 웅녀 부부의 다정한 모습에 자신들을 겹쳐 본 것 같았다.
‘어, 눈이 마주쳤다.’
막 용족과 인사를 마친 김신록과 눈이 마주쳤다.
내 주변에는 10대 학생이 많은 탓일까, 김신록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저렇게 수치심으로 인해 혈기가 도는 얼굴을 보니 예전에 김신록에게 느꼈던 어두운 인상이 깨끗하게 지워졌다.
나와 김신록은 닮은 구석이 있었지만, 오늘 이후로 점점 유사점이 사라질 듯했다.
김신록을 중심으로 셋이 준비된 자리에 앉았을 때, 긴장감 없는 목소리가 음향 장비를 타고 울려 퍼졌다.
“다들 잘 왔어. 나는 제호의 백일잔치 사회를 맡은 용제건이야.”
오늘 용제건은 백일잔치의 사회를 맡았다.
친구가 결혼식의 사회를 맡는 건 흔한 일이지만, 친구의 백일잔치 사회를 맡는 건 처음 봤다.
대개 백일잔치를 하는 아이에게는 아직 친구가 없거나, 친구를 사귄다고 해도 보통 그 친구도 나이가 백일쯤일 것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그냥 단순한 사회자가 아니라 오늘의 주인공인 제호의 친구야. 부럽지?”
보통 사회자가 저런 소리를 하나?
사회자를 잘못 뽑은 거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진짜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긴 했다.
특히 은광고 출신들은 불만, 짜증, 질투 등등이 섞인 감정을 표출했다.
용제건이 사회를 한답시고 잡담을 해 대자 몇몇 용족이 이마를 짚었다.
“용제건······ 손님이 많으니 진지하게 하라고 몇 번이나 충고했거늘.”
“그래도 예상보다는 용제건 님이 자제하고 계시군요.”
“그건 동감한다.”
청룡과 염방열도 용제건이 정상적으로 사회를 볼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나 보다.
저게 용제건의 최선일지도 모른다.
친우의 백일잔치에서 특유의 유희 짓을 하지 않는 게 어디인가.
친구인 걸 자랑하는 선에서 그친 거면 다행이었다.
굳이 누군가를 탓하려면 용제건을 저 자리에 앉힌 누군가에게 해야 했다.
“나는 아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흰 호랑이가 멋대로 답했다.
이 중요한 날에도 내 머릿속이나 들여다보고 있다고 굳이 티를 내야 하나?
“그럼 사회자인 내 소개랑 식순 안내가 끝났으니 제호의 부모님께 인사를 들을게. 적호 씨, 웅녀 씨. 부탁해.”
김신록이 조명이 자신을 안 비출 때를 틈타 실실거리며 말하는 용제건을 째려봤지만 타격감이 전혀 없었다.
용제건은 김신록의 맨얼굴과 왼눈을 아주 마음에 들어 했기에 지금 상태로 무슨 표정을 하며 보든 유희계 용은 기뻐했다.
적호와 웅녀는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마이크 스탠드 앞에서 멈춰 선 두 사람은 잠시 마주 봤다.
눈이 부신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며 아련하게 서로를 응시한 두 사람은 상대에게 순서를 양보하려는 듯, 부드럽게 웃으며 마이크를 가리켰다.
적호와 웅녀는 손만 잡고 눈빛만 교환하고 있는데 봐서는 안 될 걸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적호랑 웅녀 진짜 사이가 좋다. 보니까 속이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어.”
“아이고, 흑호야. 눈 가려! 여기 서호랑 이호랑 재호랑 은인이랑 걔네 학교 애들도 있는데 자제를 좀······ 읍!”
“토연아, 조용히 해.”
안타깝게도 옥토윤이 조금 늦는 바람에 옥토연의 눈치 없는 큰 목소리가 아주 잘 울려 퍼졌다.
다른 진족들은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만 짓고 눈치 빠른 은광고 학생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웃었으나 김신록은 새빨개진 얼굴로 눈을 내렸다.
부모가 금슬이 좋은 건 자식 입장에선 기쁘지만 남들 앞에 보여 주는 것은 다소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결국 긴 눈빛 교환 끝에 웅녀가 마이크를 잡았다.
웅녀가 백일잔치를 여는 아이의 어머니로서 손님에게 인사말을 했다.
“우리 제호의 백일잔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귀중한 시간을 할애하여 이 자리를 빛내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웅녀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진심을 다해 감사를 표하자 용제건의 장난질 같은 사회로 엉망이 될 뻔한 분위기가 단번에 다잡혔다.
웅녀의 짧은 말로 인사를 간결하게 마쳤으나 김신록을 향한 애정과 손님에게 보내는 감사가 잘 느껴졌다.
부모가 보내는 환영 인사에 이어서 김신록의 제자들은 가장 기대하고, 김신록은 가장 고통스러워할 순간이 다가왔다.
바로 백일을 맞이한 아이 소개였다.
‘보통 백일잔치에서는 아이가 언제 태어났고, 백일 동안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소개하고 사진과 영상으로 이를 보여 주지. 그런데 김신록은 백일만 산 게 아니니까 양이 어마어마할 거야.’
김신록은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을 남길 수 없던 시절에도 살고 있었다.
그 시절의 기록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나 호족들에게는 돈과 힘이 넘쳤기에 그런 것쯤은 문제가 없었다.
“그럼 오늘의 주인공을 소개할게! 사진과 영상으로 남기지 못한 부분이 많아 이능으로 재현하여 영상을 찍고 편집하기도 했으니까 참고해.”
용제건이 실실 웃으며 간단한 설명을 마치자 주변이 어두워지고, 무대 위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김신록의 일대기가 전개되려 하고 있었다.
염준열의 생일에는 1년 치의 활약상이 담긴 영상물을 공개했는데, 김신록은 몇천 배 이상의 활약상이 담겨 있을 것이다.
물론 피와 눈물이 어린 편집 과정을 거쳐 영상의 길이는 한 시간이 넘어가지 않았지만, 그사이에 김신록이 너덜너덜해질 건 뻔했다.
용제건은 이 과정을 실시간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기 위해 곧바로 사회자석을 떠나 김신록 옆으로 이동해 얼굴을 들여다봤다.
곧 영상이 시작되었다.
‘풀피리 소리가 짧게 녹음되어 있어. 흑호도 영상 제작에 참가했구나.’
시작은 김신록이 태어났을 때를 모습을 구현한 동화 풍의 영상이었다.
데포르메된 호랑이들이 기뻐하는 모습도 있었다.
특히 오방색을 상징하는 호족들이 눈에 띄었다.
영상에는 괴로운 상황은 생략되어 있었으나 김신록이 적호와 웅녀 곁을 떠나 성장했다는 건 전해졌다.
‘이런 일도 있었구나.’
1시간 내에 담을 수 있는 영상은 한계가 있었기에 김신록의 청소년기는 그리 길게 묘사되지 않았다.
하지만 용제건과 장난을 치던 장면이 하나 들어가긴 했는데, 장난질의 수준만큼 김신록의 비범함이 느껴졌다.
지금의 모습에선 상상할 수 없는 사고뭉치다운 장난질이라 은광고인들을 놀라게 했다.
하긴, 저 정도는 되어야 유희계 용족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저 장난질 때문에 용족에서도 좀 난리가 났을 것 같은데······ 좀 과장된 건 아닌가?’
내 생각과 달리 저 엄청난 장난질이 과장이 아니었는지 청룡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리운 기억이로군. 황룡이 제때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면 용왕신이 놀라서 현세에 강림하실 뻔했지. 하지만 관대하신 용왕신께서는 제호를 탓하지 않으셨다. 그냥 강림해서 용제건의 친구 얼굴을 볼 걸 그랬다고 아쉬워하셨지.”
영상이 끝날 무렵에는 김신록이 앉아 있는데도 휘청거리고 힘이 없었다.
하지만 아직 백일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 (계속)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