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rcist and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74
274
#2년 후 (2)
태수는 흥수 역할에 장웅인을 캐스팅했다.
평생 설녀요괴를 잡으려고 설원을 헤맨 집념의 사냥꾼인 흥수는, 비록 비중은 많지 않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 주는 매력이 있는 캐릭터였다.
태수는 아무리 고민을 해 봐도 사냥꾼 흥수의 집념 어린 눈빛을 장웅인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 태수는 비중이 적은 역할을 부탁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역할을 맡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겠다는 말을 함께 전하며 시나리오를 건넸다.
태수가 시나리오를 보낸 지 반나절도 되지 않아서 장웅인이 전화를 걸어왔다.
-장 감독, 기억나? 예전에 모텔 파라다이스 촬영 마지막 날 모텔 앞에서 우리 둘이 새벽까지 얘기 나눴던 거.
태수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네, 기억나요.”
당시 의 시나리오를 태수가 각색해서 재촬영에 들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촬영이 모두 끝나서 크랭크업을 하던 날 태수가 잠이 오지 않아서 새벽에 혼자 밖으로 나갔는데 마침 장웅인도 모텔 밖으로 나왔다.
당시 처음으로 영화라는 걸 접한 태수에게 장웅인은 편하게 대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유명 연예인이었다. 그런 장웅인이 태수에게 이런저런 속마음을 털어놓았고 그 기억은 이후로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었다.
장웅인이 말했다.
-그때 내가 했던 말 기억나?
태수가 이번에도 혼자 빙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제가 그때 선배님이 했던 얘기 기억해서 시나리오 보내드린 거예요. 선배님이 그러셨잖아요, 배우는 잊히는 게 제일 무섭다고. 그래서 분량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대중이 오랫동안 선배님을 기억할 수 있는 작품을 남기고 싶다고.”
갑자기 휴대폰 너머에서 호탕한 웃음이 들려왔다.
-정말로 기억하고 있었네. 맞아, 난 분량이 적든 많든 대중에게 기억될 수 있는 작품을 남기고 싶어. 설녀의 흥수가 내겐 딱 그런 캐릭터야. 이 작품 하고 싶어.
장웅인은 그렇게 에 합류하게 됐다.
흥수가 설원을 헤치고 가서 보면 피가 흥건한 눈 속에 김찬이 눈을 부릅뜬 채 죽어 있다. 설녀요괴가 내장을 파먹어서 김찬의 복부가 찢어져서 열려 있는 모습이 보인다.
흥수가 눈을 들어 설녀요괴가 날아간 설원을 가만히 노려본다. 설원 위에 설녀요괴가 총에 맞은 듯 붉은 핏방울이 흩뿌려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장웅인은 오랜 세월 설녀를 쫓아다닌 사냥꾼 흥수의 집념을 파르르 떨리는 눈빛으로 표현했다. 흥수는 설녀요괴가 자신이 쏜 총에 맞아 부상을 당했다는 걸 직감한 것이다.
흥수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설녀요괴가 흘린 핏방울을 따라서 뒤를 쫓기 시작한다.
핏방울을 쫓아서 드넓은 설원을 달리는 흥수를 드론이 부감으로 촬영했다. 추후 영화가 개봉하면 이 장면에서 타이틀이 뜰 예정이다.
흥수가 달려간 설원 위에 붉은 글자로 ‘설녀’라는 타이틀이 피처럼 눈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컷, 오케이!”
첫날은 오프닝 촬영만으로 하루가 다 갔다.
다음 날 다시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됐다.
영수 역할의 강동운이 등산복과 배낭을 둘러맨 차림으로 등장하자 여자 스태프들 사이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강동운은 화면 속에서도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촬영장에서도 별로 말이 없어서 화면 속 이미지와 비슷했다.
강동운에 이어 송현주가 눈처럼 하얀 패딩을 입고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등장하자 이번에는 남자 스태프들 사이에서 소리 없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물론 태수와 송현주가 사귀는 사이라는 걸 아는 스태프는 아무도 없었다.
송현주가 태수 옆으로 살짝 다가와서 속삭이듯 말했다.
“어제 오빠한테 전화하고 싶은 마음 겨우 참았어요.”
“전화하지 그랬어, 어제 나도 계속 혼자 있었는데.”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그리고 잡념 생겨서 촬영에 방해될 수도 있고. 그래도 이렇게 좋은 곳에 와서 오빠랑 촬영한다고 생각하면 행복해요.”
송현주가 활짝 웃으면서 분장을 위해 멀어졌다.
씬 2-1
이 씬에서는 눈 속에서 조난을 당한 영수가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는 서예인을 발견하는 장면이다.
송현주는 이 씬에서 처음으로 화면에 등장하게 된다.
강동운은 길을 잃고 눈 속을 헤매다가 지친 영수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촬영 전부터 눈 속에서 계속 뜀박질을 했다.
“레디…… 액션!”
슛사인이 떨어지자 카메라 앵글 안으로 헉헉거리며 눈 속을 걷고 있는 강동운이 들어왔다.
촬영 전부터 열심히 뜀박질을 한 덕분에 호흡은 가빴고 입에서는 쉴새 없이 입김이 뿜어져 나와, 길을 잃고 눈 속을 헤맨 영수의 상황이 저절로 그려졌다.
영수가 눈을 밟으며 힘겹게 나아가는데 앞쪽에 하얀 패딩을 입고 잠든 것처럼 나무에 기대앉아 있는 송현주, 즉 서예인이 보인다.
송현주는 평소의 모습과 달리 화면 속에서는 서늘한 느낌을 주는 귀신의 이미지가 유독 잘 어울린다. 눈 속에 앉아 있는 송현주를 보고 있으면 어떤 남자라도 홀린다는 요괴 서예인의 미모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영수가 하얀 눈 속에 앉아 있는 서예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말을 건다.
“저기요…….”
하지만 서예인은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영수가 손을 뻗어서 서예인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다시 말한다.
“저기요…….”
순간 서예인이 눈을 번쩍 뜨고는 ‘악!’ 비명을 지르며 영수의 손을 뿌리친다. 눈처럼 하얗게 질린 표정의 서예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눈 속으로 달아나기 시작한다.
영수가 그런 서예인을 쫓아가며 소리친다.
“저기요, 잠깐만요! 이봐요!”
서예인이 비틀거리며 달아나다가 갑자기 눈 위에 푹 쓰러진다.
영수가 얼른 달려가서 보면 서예인이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잘 일어나지 못한다.
“가만있어요, 제가 도와줄게요.”
영수가 패딩을 붙잡아서 서예인을 돌려 눕힌다.
서예인이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영수를 올려다보는데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영수가 아름다움에 잠시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보다가 서예인의 옆구리를 보고는 놀란다.
서예인의 옆구리 부근 옷이 피로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어떡하다가 이렇게……?”
서예인이 영수를 바라보며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그대로 정신을 잃는다.
“저기요, 이봐요!”
하지만 서예인은 미동도 않고.
영수가 난감하게 서예인을 보다가 배낭에서 필요한 물품들만 꺼내서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서예인을 들춰 업고 눈 속을 걷기 시작한다.
“컷, 오케이!”
다음 촬영은 대피소에서의 밤 씬이라서 일단 촬영을 접고 숙소로 이동했다.
일본에는 한국과 같은 밥차가 없기에 식사 때는 도시락이나 식당을 예약해 놓고 끼니를 해결해야만 해서 불편했다.
반면에 숙소에는 노천탕이 있어서 눈 속에서 촬영하느라 꽁꽁 언 몸을 뜨거운 온천물에 담그고 녹일 수가 있어서 너무 좋았다.
김이 뽀얗게 피어오르는 노천탕 바로 앞으로는 하얀 설원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나중에 송현주와 단둘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해가 지자마자 밤 씬을 촬영하기 위해 다들 대피소로 이동했다. 촬영은 다이세쓰 국립공원 인근에 있는 산장을 빌린 후 미술 팀이 대피소처럼 꾸며서 촬영을 진행했다.
“레디…… 액션!”
달빛이 비쳐 반짝거리는 밤의 설원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런 컴컴한 설원 위를 기진맥진한 영수가 서예인을 업고 걷다 보면 앞쪽에 대피소가 보인다.
영수, 쓰러질 것처럼 걸어가서 대피소 앞에 주저앉은 후 서예인을 옆으로 눕힌다.
대피소 앞쪽에 흐릿하게 외등이 하나 밝혀져 있다.
영수, 일어나서 대피소 출입문 손잡이를 잡고 열어 보지만 안에서 잠겨 있는 듯 열리지 않는다.
영수가 쾅쾅 문을 두드리며 힘겹게 소리친다.
“저기요…… 문 좀 열어 주세요…… 저기요……!”
잠시 후 안에서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문이 열리고 그 앞에 정욱 역할의 안연수가 서 있다.
무명의 연극배우로 활동하던 안연수는 태수의 단편 에 캐스팅된 후 드라마와 영화 쪽에서 조금씩 두각을 나타냈다.
그리고 태수의 단편 에서 퇴마하는 신부 역할로 다시 캐스팅된 후 700만 관객을 동원한 스릴러 영화 에서 조연으로 출연하며 관객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안연수는 사실상 태수가 배우의 길을 열어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태수의 작품에 출연하는 것도 이번이 벌써 세 번째고.
따라서 누구보다 영화감독 장태수의 의중을 잘 파악하는 배우라고 할 수가 있었다.
이번 설녀에서는 감옥에서 만난 선배인 희순과 함께 살인을 저지르고 산으로 도망왔다가, 폭설 때문에 대피소에 갇히는 정욱의 역할을 맡았다.
정욱의 감옥 선배로 출연하는 희순은 신호철의 영화 에 출연해서 열연을 보여 준 인연으로 이번에도 캐스팅됐다.
태수는 김희순이라는 이름이 극중 인물의 이미지와 잘 맞는 것 같아서 극중 인물과 배우의 이름을 같은 김희순으로 정했다.
대피소 문이 열리자 영수가 안도하며 말했다.
“후…… 정말 다행이네요. 눈 속에서 죽는 줄 알았는데…… 고맙습니다.”
정욱은 사람을 죽인 살인범이기에 영수를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훑어보며 물었다.
“혼자요?”
“아뇨, 저기…….”
영수가 고개를 돌리면 빛이 없는 구석에 쓰러져 있는 서예인이 보인다. 천천히 다가가서 서예인을 살피는 정욱.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아름다운 서예인의 얼굴까지 가릴 수는 없다.
정욱의 표정에 욕망이 드러나고 말투도 살짝 거칠게 변한다.
“뭐야, 죽은 거야?”
“아뇨, 좀 다쳤어요.”
안연수는 정욱이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야생성을 드러내 보이며 관객에게 앞으로 전개될 사건에 대한 불안감을 안겨 주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덕분에 관객들은 이 장면 하나로 영수와 설희가 함께 위험해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영수가 서예인을 부축하려고 하면 정욱이 먼저 나서서 서예인을 번쩍 안고 대피소로 들어간다.
대피소.
흐릿하게 보이는 대피소 안의 모습.
천장에 매달린 희미한 백열등과 군대 내무반을 연상시키는 텅 빈 평상이 양편으로 늘어서 있다. 평상의 한쪽은 비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둥그스름하게 이불이 놓여 있는 게 보인다.
백열등 불빛이 미치는 공간을 제외한 주변부는 너무 어두워서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어둠 속에서 파카 차림의 김희순이 나타난다.
“뭐야?”
정욱이 서예인을 평상 위에 눕히고는 상처를 살피며 말한다.
“여잔데, 다쳤습니다.”
희순이 옆으로 다가오더니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서예인을 내려다본다.
서예인의 아름다운 모습에 정욱과 의미심장한 미소를 주고받던 희순이 학교의 모범생 같은 영수를 힐끗 바라본다.
영수가 걱정스럽게 서예인의 상처를 살피고 있으면 희순이 툭 던지듯 묻는다.
“이 여자하고 관계가 어떻게 돼? 애인이야?”
영수는 희순이 다짜고짜 반말을 하자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희순의 험악한 표정을 보고는 이내 고분고분하게 대답한다.
“아뇨, 산속에서 헤매다가 눈에 쓰러져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혹시 여기 구급약 없나요?”
정욱이 대피소 구석에서 구급약을 가져다준다.
영수, 구급함을 열어서 보고는 자신의 파카를 벗은 후 서예인의 파카도 벗긴다.
영수가 피 묻은 서예인의 셔츠를 걷어 올리면 옆구리에 총알이 스친 것 같은 상처가 보인다.
영수가 뚫어지게 보는 정욱과 희순를 보며 말한다.
“치료할 동안 잠시 저쪽으로 좀 가 계시죠.”
그러자 희순이 험악하게 말한다.
“그냥 해.”
“예?”
“그냥 하라고 새끼야. 너도 어차피 모르는 여자라며? 너는 봐도 되고 우린 보면 안 되냐?”
정욱도 험악한 표정으로 묻는다.
“너 뭐야? 의사야?”
“의사는 아니지만 응급처지는 할 줄 압니다.”
“그럼 어서 해.”
두 사람의 위세에 영수가 말을 못 하는데 정욱이 서예인의 브래지어가 드러나도록 셔츠를 위로 확 젖힌다. 덕분에 서예인의 하얀 살결과 브래지어가 드러난다.
정욱이 느끼하게 웃으면서 말한다.
“씨바, 기집애가 얼굴만 반반한 게 아니고 살결도 겁나 곱네. 안 그렇습니까, 형님?”
영수가 정욱을 노려보며 말한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뭐 하긴? 도와주고 있잖아.”
“옷 내리세요.”
영수가 서예인의 셔츠를 잡아서 내리려고 하면 정욱이 영수의 멱살을 잡고 으르렁거린다.
“이 새끼가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나한테 명령하지 마.”
영수의 표정에 두려움이 떠오르면 희순이 다가와 서예인의 상처를 살피며 말한다.
“이거 총에 맞은 상처 같은데?”
영수와 정욱이 놀라서 돌아본다.
그때 서예인이 신음과 함께 정신이 돌아오고 영수가 묻는다.
“이봐요, 괜찮아요?”
눈을 뜬 서예인이 영수와 정욱, 희순을 차례로 돌아본다.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서예인이 요괴라는 강한 확신을 가질 것이다. 왜냐하면 서예인이 세 사람을 바라보는 눈빛이 보통의 여자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태수는 시나리오에 서예인의 눈빛은 서늘한 신비감과 함께 색정적인 기운을 품고 있다고 지문으로 설명을 했다.
지금 송현주의 눈빛이 딱 그랬다. 낯선 남자를 앞에 두고도 서예인은 두려워하는 대신 도전적이고 색정적인 눈빛으로 세 사람을 바라봤고, 송현주는 그런 눈빛 연기를 너무도 잘 표현해 냈다.
태수는 평소에 송현주한테서 지금의 눈빛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단지 서클렌즈 하나 꼈을 뿐인데 눈빛 연기만으로 저렇게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서예인과 눈이 마주친 희순이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영수가 얼른 말한다.
“안심해요, 여긴 대피소예요. 그쪽이 눈 위에 쓰러져 있어서 제가 여기로 옮긴 거예요.”
서예인이 자신의 상처 난 옆구리를 보면 희순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보며 묻는다.
“그 상처 총에 맞은 거 아냐?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총에 맞은 거야?”
서예인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말한다.
“모르겠어요. 어디선가 총소리가 났고 전 정신을 잃었어요.”
서예인의 대답에 다들 묘한 표정으로 서예인을 바라보는데 태수가 소리쳤다.
“컷, 오케이!”
의 모든 촬영은 설원과 대피소에서 이루어졌다.
등장인물도 영수, 서예인, 흥수, 희순, 정욱까지 다섯 명이고 장소도 한정이 돼서, 예전 태수의 드라마와 구성은 비슷하지만 촬영이 일본에서 이루어지고 보이지 않는 가장 중요한 출연자가 한 명 더 있어서 제작비는 드라마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올라갔다.
보이지 않는 출연자는 나중에 CG로 만들어질 설녀요괴였다.
는 8회 차에 폭설이 쏟아져서 이틀을 쉰 것 말고는 큰 사고 없이 촬영이 잘 진행됐다. 서예인이 깨어나는 6회 차부터는 영화의 긴장감이 확실히 살아났다.
관객들은 이미 오프닝 장면을 봤기 때문에 서예인이 설녀요괴가 아닐까 의심을 하게 되고, 깨어난 서예인의 반응을 보고는 거의 확신을 하게 된다.
8회 차 촬영이 끝난 후에는 제작진 회식이 있었다.
열흘이 넘게 눈 속에서 힘든 촬영을 하느라 다들 지칠 시점이어서 휴식이 필요했다.
마침 숙소에 노래방 기기가 있어서 배우들 중에서는 강동운이 맨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강동운이 태수와 스태프를 바라보며 말했다.
“좋은 작품에 참여하게 해 주신 장태수 감독님한테 감사드리고 좋은 스태프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정말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강동운이 멋지게 노래를 끝낸 후 이번에는 배우들 중에 홍일점인 송현주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송현주는 예전 광란의 노래방 때의 모습하고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애잔한 발라드를 불러서 사람들의 환호성을 이끌어 냈다.
송현주가 노래를 부른 후에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제가 진짜 노래를 듣고 싶은 분이 있습니다. 우리 장태수 감독님!”
태수의 노래는 좀처럼 들을 수가 없는 레어 템이라서 다들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고 태수가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까지 무사히 촬영이 잘 진행된 것 같아서 감사드립니다. 남은 촬영도 사고 없이 안전하게 잘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태수가 부른 노래는 의 OST인 ‘이번 생에 다시 만나서’였다.
[당신을 처음 본 순간 운명이라 생각했어요. 이생이 아니라면 다음 생에서……중략…… 이제 우린 어떡하나요…… 모든 게 내 잘못 같아요……중략…… 그 사람이 나라고 말할 수가 없네요~]애잔한 멜로디와 가사가 고음으로 올라갈수록 감정이 점점 더 고조됐고, 다들 태수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취해 행복한 감정에 빠져들었다. 특히 송현주의 두 눈에는 남모르게 눈물이 촉촉하게 고이고 있었다.
* * *
9회 차부터는 대피소에서 서예인에게 흑심을 품고 점점 분위기를 점점 험악하게 만들어가는 희순과 정욱의 도발과, 그런 두 사람 사이에서 서예인을 지키려는 영수의 상황이 영화의 긴장감을 높여 갔다.
“카메라 롤!”
“레디…… 액션!”
영수가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 정욱과 희순을 보고 있는 서예인에게 묻는다.
“이름이 뭐예요?”
“…… 서예인.”
“난 영수예요. 이영수.”
서예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신발을 신으면 영수가 놀라서 묻는다.
“어디 가려고요?”
“화장실요.”
“혼자서 괜찮겠어요?”
서예인이 고개를 끄덕이면 정욱이 일어나며 말한다.
“이렇게 험한 날씨에 다친 여자를 혼자 내보내면 안 되지. 내가 데리고 갔다 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아가씨. 갈까?”
“혼자 갈 수 있다잖아요. 그냥 혼자 가게…….”
영수가 도와주려는데 오히려 서예인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한다.
“괜찮아요. 절 생각해서 같이 가 주겠다는데.”
묘한 표정으로 웃는 서예인을 바라보며 영수가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반면에 정욱은 비릿하게 웃으며 대사를 한다.
“거봐. 우린 말이 통하는 사이라니까, 헤헤.”
두 사람, 대피소를 나간다.
대피소 밖.
바깥은 바람이 심해지면서 폭설이 휘몰아치고 있다. 밖으로 나와서 화장실로 가는 서예인을 뒤에서 와락 끌어안는 정욱.
“그쪽도 마음이 있나 본데 우리 서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무슨 말인지 알지?”
서예인이 웃으면서 정욱의 손을 살짝 풀더니 폭설이 쏟아지는 눈발 속으로 걸어 들어가서는 뒷걸음질 치면서 유혹하듯 말한다.
“내가 좋은 곳을 알고 있는데…….”
정욱이 그런 서예인을 따라 폭설 속으로 들어간다. 보일 듯 말 듯 폭설 속으로 앞장서서 걸어가는 서예인과 그녀를 쫓아가는 정욱.
“이봐! 어디까지 가는 거야?”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는 눈발에 서예인의 모습이 점점 흐릿해지다가 시야에서 사라진다.
정욱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어디가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때 눈 속에서 들려오는 야수의 소리.
크르르르르.
정욱이 놀라서 돌아보면 눈 속에서 붉은 눈알 두 개가 스윽 나타난다. 물론 이 장면 역시 CG로 만들어질 장면이다. 얼굴은 긴 머리의 여자 얼굴인데 몸은 곰 같은 하얀 요괴다.
그런데 요괴의 얼굴이 서예인을 닮아서 더욱 섬뜩하다.
요괴가 천천히 입을 벌리면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나고.
“으으으…… 으아악!”
정욱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면 설녀요괴가 뒤를 쫓는다.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눈 속을 헤매는 정욱.
그때 바로 등 뒤에서 요괴의 소리가 들려오면 정욱이 흠칫 멈춘다.
정욱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면 언제 다가왔는지 바로 곁에 설녀요괴가 이빨을 드러낸 채 노려보고 있다. 마치 서예인을 마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정욱이 비명을 지르는 순간 요괴가 덥석 목을 물고 흔들다가 폭설 속으로 집어 던진다. 폭설 속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정욱의 육신.
하얀 설원 위에 검붉은 피가 점점 넓게 퍼져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