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rcist and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75
275
#2년 후 (3)
대피소.
서예인과 정욱이 돌아오지 않자 초조하게 대피소 안을 서성거리는 김희순. 영수도 왠지 불안한 마음에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참다못한 영수가 대피소를 나가려는데 마침 서예인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서예인이 비틀거리며 들어오는데 패딩에 피가 잔뜩 묻어 있다.
영수가 놀라서 묻는다.
“거봐요. 상처가 더 심해졌잖아요.”
서예인이 평상에 앉으며 괜찮다고 하면 김희순이 날카로운 눈으로 묻는다.
“정욱인? 정욱인 어디 갔어?”
서예인이 무슨 소리냐는 듯 묻는다.
“그 아저씨…… 먼저 들어오지 않았나요?”
김희순이 서예인을 노려보다가 대피소 문을 박차고 나간다.
대피소 밖.
김희순이 화장실을 비롯해서 대피소 주변을 다니며 정욱을 찾는다. 김희순이 사납게 휘몰아치는 폭설을 노려보다가 소리친다.
“박정욱! 박정욱 어딨어?”
폭설 속에서 사람의 목소리 같은 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온다.
김희순이 품에서 칼을 꺼내더니 폭설 속으로 걸어간다. 계속 걸어가다 보면 바닥에 피가 흥건하고, 그 피를 따라가다 보면 배가 열린 채 내장이 뜯어 먹힌 정욱의 모습이 보인다.
대피소.
영수가 구급상자를 가져온다.
“어디 상처 좀 봐요. 이 정도로 피를 많이 흘린 걸 보면…….”
“괜찮아요. 전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게 말이 돼요?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감염이 돼서 큰일난다고요. 여기서 언제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어디 좀 봐요.”
괜찮다는 서예인의 손을 뿌리치고 옆구리를 살피던 영수의 표정이 변한다. 총알이 스쳐 지나갔던 상처가 어느새 거의 다 아물어 있었던 것이다.
“어? 이게…….”
영수가 놀란 표정으로 서예인을 보는데 김희순이 대피소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흥분한 표정의 김희순이 서예인에게 다가가서 다그친다.
“어떻게 된 거야? 대체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김희순이 평상 위에 놓여 있던 서예인의 피투성이 패딩을 집어 들고 보더니 다짜고짜 서예인의 멱살을 잡고서 다그친다.
“이 피! 이거 어디서 묻은 거야? 어디서 묻은 거냐고!”
서예인이 가만히 바라보면서 대답을 하지 않으면 멱살을 잡고 끌고 나간다.
“따라와!”
지켜보던 영수가 끼어들어서 말린다.
“이 여자가 뭘 어쨌다고 그래요? 이거 놓고 말해요.”
영수가 팔을 잡으면 김희순이 주먹을 휘두르고, 주먹에 맞은 영수가 쓰러지면 김희순이 발로 걷어찬다. 영수가 웅크리며 비명을 지른다.
김희순이 서예인을 끌고 대피소를 나간다.
쓰러졌던 영수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김희순에게 맞아서 입술에서 피가 흐른다.
영수가 구석에 있던 쇠막대기를 집어 들고 비틀거리며 대피소를 나간다.
대피소 밖.
대피소 주변을 살펴본 영수가 폭설이 쏟아지는 눈을 향해 소리친다.
“예인 씨! 예인 씨 어디 있어요?”
그때 폭설 속에서 요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키이이이익~!
영수가 쇠막대기를 움켜쥐고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걸어간다. 다가갈수록 요괴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진다.
이윽고 폭설 속에서 뭔가를 먹고 있는 요괴의 모습이 흐릿하게 나타난다. 가만히 보면 바닥에 희순이 쓰러져 있고 희순의 복부에 머리를 처박은 채 내장을 먹고 있는 설녀요괴가 보인다.
영수가 그 모습을 보고 부들부들 떠는데 설녀요괴가 영수를 향해 고개를 휙 돌린다. 입 주위가 피투성이인 설녀요괴의 얼굴이 다름 아닌 서예인이다.
두 사람의 눈빛이 묘하게 교차가 되고.
공포에 질린 영수가 뒷걸음질을 치다가 돌아서서 달아난다.
대피소.
영수, 대피소 안으로 들어와서 문을 닫아걸고 평상 위에 웅크린 채 몸을 부들부들 떤다.
잠시 후 누군가가 대피소 문을 두드린다.
쿵쿵쿵!
영수, 쇠막대기를 집어 들고 대피소 문을 노려본다. 문밖에서 서예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영수 씨…… 나예요, 문 좀 열어 줘요.
영수, 쇠막대기를 들고 고개를 흔들며 혼자 중얼거린다.
“열면 안 돼, 분명히 그 여자 얼굴이었어. 그 여자가 괴물이었다고.”
쿵쿵쿵!
-영수 씨…… 왜 그래요? 나 지금 너무 추워요. 제발 문 좀 열어 줘요.
영수, 갈등하다가 문 앞으로 다가가서 문을 열기 위해 팔을 뻗다가 다시 뒤로 물러나서는 스스로에게 중얼거린다.
“열면 안 돼.”
문밖에서 더욱 애틋하게 들려오는 서예인의 목소리.
-영수 씨……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전 영수 씨는 믿었어요. 대체 나한테 왜 이래요?
영수가 어쩔 수 없이 소리친다.
“이유는 당신이 더 잘 알지 않나요? 더 이상 아무 얘기도 하지 말고 그냥 다른 곳으로 가요, 제발!”
영수, 벽에 기댄 채 눈을 감는다.
잠시 후 서예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알았어요. 영수 씨가 저한테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정 그렇다면 다른 곳으로 갈게요. 그래도 전 영수 씨를 원망하지 않아요. 영수 씨가 아니었다면 전 이렇게 살아 있지 못했을 테니까. 영수 씨를 알게 돼서 좋았어요.
영수, 벽에 등을 기댄 채 갈등하다가 눈을 번쩍 뜨고는 문을 열고 나간다.
대피소 밖.
영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면 폭설 속으로 걸어가고 있는 서예인의 뒷모습이 보인다.
“저기요…… 가지 말아요!”
서예인이 돌아보면 영수가 한 번 더 소리친다.
“가지 말아요. 이렇게 폭설이 쏟아지는데 어디로 가겠다는 거예요? 가지 말고 그냥 나하고 같이 있어요.”
서예인이 웃으면서 영수를 향해 걸어온다.
영수가 서예인의 옷에 잔뜩 묻어 있는 피를 보며 흠칫 뒤로 물러난다.
서예인이 영수에게 얼굴을 바싹 들이대면 흠칫 놀라며 물러서는 영수.
서예인이 짓궂은 표정으로 속삭이듯 묻는다.
“제가…… 무서워요?”
“예? 아, 아뇨. 내가 왜?”
서예인이 영수가 들고 있는 쇠막대기를 내려다보면…… 영수, 놀라서 쇠막대기를 버린다. 서예인이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면 뒤따라 들어가는 영수.
대피소.
서예인이 평상에 앉아 있으면 눈치를 보며 멀찌감치 떨어져 앉는 영수.
이 장면에서 서예인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강동운을 바라보며 호감을 나타낸다.
송현주와 강동운 두 사람의 케미도 의외로 좋아서 마치 공포가 아닌 순수한 성인 동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전체적인 분위기가 따스했다.
서예인이 재미있다는 듯 그런 영수를 바라보며 말한다.
“지금까지 제가 만나 본 사람들은 모두 나쁜 사람들뿐이었는데, 영수 씨는 착한 사람 같아요.”
“…..”
“남자와 여자는 사랑이란 걸 하잖아요. 사랑하면 항상 같이 있고 싶고 보고 싶고 그렇다고 하던데…… 영수 씨도 사랑을 해 봤어요?”
“아뇨, 아직.”
서예인이 흥미롭게 바라보며 묻는다.
“정말요? 사람들이 모두 다 사랑을 하는 건 아닌가 봐요?”
영수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쪽은 마치 사람이 아닌 것처럼 말을 하네요.”
서예인의 표정이 순간 싸늘한 표정으로 노려보자 영수가 흠칫 놀라며 시선을 피한다.
서예인이 혼자서 가만히 노래를 흥얼거린다.
노래는 영화 첨밀밀의 주제곡으로 사용된 ‘월량대표아적심’으로, 노래의 제목은 ‘저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네요.’라는 의미이다.
서예인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이 장면은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설녀의 마음을 보여 주기 위해 시나리오에 집어넣었다.
노래를 흥얼거리던 서예인이 문득 허공을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예전부터 여기 설산에는 설녀라는 요괴가 살았다는 전설이 있어요.”
“…….”
영수가 흠칫하며 서예인을 돌아본다.
“그 요괴는 춥고 차가운 눈 속에서 외롭게 혼자 사는 게 싫어서 항상 인간이 되고 싶어 했대요. 근데 요괴가 인간이 되려면 살인을 하면 안 돼요. 그래서 요괴는 살인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지만, 나쁜 인간 때문에 결국 살인을 하게 돼요.”
영수가 물었다.
“나쁜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꼭 살인할 필요는 없지 않아요?”
“설녀요괴는…… 인격이 두 개래요. 설녀와 요괴. 설녀는 인간이 되고 싶어 하지만 요괴는 그냥 계속 요괴로 살고 싶어 해요. 근데 설녀요괴를 화나게 하면 설녀의 인격은 사라지고 요괴의 인격이 나타나는 거예요. 설녀가 아무리 살인을 막으려고 해도 멈출 수가 없대요.”
영수가 돌아보면 서예인의 두 눈에 얼핏 물기가 고이는 게 보인다.
그때 대피소 문이 쾅하고 열리며 사냥꾼 흥수가 총을 겨누며 안으로 들어선다. 놀란 영수가 손을 들고 벌떡 일어나면 흥수가 대피소 안을 천천히 살핀다.
흥수, 평상에 앉아 있는 서예인에게 총을 겨눈다. 서예인이 가만히 흥수를 바라보면 흥수가 천천히 총을 내린다.
흥수가 영수를 돌아보고 묻는다.
“여기 요괴가 찾아오지 않았나?”
“요, 요괴요?”
“그래, 요괴.”
영수가 잠시 서예인을 바라보면서 갈등을 하고 서예인은 영수에게 애틋한 눈빛을 보낸다. 흥수가 영수에게 다시 총을 올려서 겨누며 소리친다.
“똑바로 말해. 요괴가 왔다가 갔지?”
영수가 다시 손을 번쩍 올리며 고개를 흔든다.
“아, 아뇨. 요괴 같은 거 오지 않았습니다.”
“그럼 밖에 있는 시체들은 뭐야? 분명히 설녀요괴가 얼마 전에 뜯어먹은 시첸데.”
“아무튼 요괴 같은 건 여기에 오지 않았어요. 만약 그랬다면 저도 죽었겠죠.”
흥수가 노려보다가 천천히 총을 내리고는 평상에 털썩 주저앉는다.
“요괴는 어쩌면……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났을지도 몰라. 요괴는 언제나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남자를 눈 속으로 유혹한 후에 잡아먹거든.”
흥수의 날카로운 시선이 다시 서예인을 향한다.
흥수가 서예인이 뒤쪽에 벗어 놓은 패딩을 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피가 잔뜩 묻은 패딩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서예인에게 다그치는 흥수.
“이거 네 옷이야?”
서예인이 고개를 끄덕이면 흥수, 총을 겨누며 명령한다.
“자리에서 일어나.”
서예인이 일어나고.
“셔츠 올려 봐.”
영수 숨을 죽인 채 바라보고 있고 서예인이 머뭇거리면 흥수가 총구를 더욱 바싹 갖다 대며 소리친다.
“어서 올리라고!”
서예인이 어쩔 수 없이 셔츠를 올리려는데 영수가 다급하게 총구 앞으로 끼어든다.
“잠깐만요.”
“너 뭐 하는 거야? 비켜!”
“당신이야말로 내 여자 친구한테 지금 뭐하는 짓입니까?”
“뭐? 여자 친구?”
서예인이 놀라서 돌아보면 영수가 단호하게 말한다.
“예인이는 제 여자 친구예요. 우린 함께 등산을 왔다가 폭설 때문에 길을 잃어서 여기 갇힌 겁니다.”
흥수가 가만히 서예인을 노려보며 묻는다.
“맞아?”
서예인이 영수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색하게 말한다.
“맞아요. 우린…… 사랑하는 사이예요.”
이번에는 영수가 놀라서 서예인을 돌아보고.
“그럼 옷에 묻은 피는 어떻게 된 거야?”
이번에도 영수가 대답한다.
“옷의 피는 밖에서 죽은 사람을 안으로 데려오려다가 묻은 거예요. 밖에 있는 그 사람들 상처를 입었어도 얼마 전까지는 살아 있었거든요. 근데 갑자기 무서운 소리가 들려서 어쩔 수 없이 우리 둘만 대피소로 도망 온 겁니다. 그쪽 얘기를 듣고 보니까 그 소리가 요괴 소리였나 보네요.”
그러면서 영수가 서예인을 힐끗 보면 흥수가 비로소 총구를 내리고 평상에 주저앉는다.
(시간 경과 – 폭설이 쏟아지는 대피소 전경)
영수와 서예인이 나란히 평상에 앉아 있고 흥수는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서 총을 닦고 있다. 흥수가 총을 닦다가 두 사람을 힐끗 보며 말한다.
“둘이 사랑하는 사이라며?”
영수가 더듬거리며 대답한다.
“그, 그런대요?”
“사랑하는 사이라면서 싸운 사람들 같아 보이는데?”
“그래요? 우리가 원래 좀…….”
영수가 더듬거리며 대답을 하려는데 서예인이 영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온다. 영수가 살짝 당황하다가 이내 얼굴이 빨개진다.
흥수가 그런 영수를 보다가 피식 웃으며 계속 총을 닦으며 대사를 한다.
“사실은 내가 어제 그 설녀요괴를 거의 잡을 뻔했는데 놓쳐버렸어. 20년이 넘도록 설녀요괴를 잡으려고 설산을 돌아다녔지만 어제처럼 좋은 기회가 없었지. 아마 그 요괴…… 옆구리에 분명히 총을 맞은 흔적이 남아 있을 거야.”
흥수의 말에 영수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서예인이 평상으로 쿵 쓰러진다.
흥수가 의아하게 보면 영수가 서예인한테서 멀찌감치 떨어진다.
이 장면은 순진하면서도 겁이 많은 영수의 캐릭터를 보여 주는 장면이기도 하고 영화를 보던 관객들에게 작은 웃음을 줘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을 시간을 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서예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피소를 나가려고 하면 흥수가 묻는다.
“어디 가는 거야?”
“화장실요.”
서예인이 대피소를 나가려는데 그녀의 등에 대고 흥수가 말한다.
“그거 아나? 설녀요괴는 실내에 오래 머물지를 못하거든. 눈을 벗어나면 대략 1시간 이상을 버티지 못한다고.”
영수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서예인을 보면 흥수가 계속 말한다.
“둘이 정말로 연인 관계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난 좀 더 확실하게 확인을 해야겠어. 1시간 정도 화장실 가지 않는다고 큰일이 일어나진 않겠지? 거기에 그대로 앉아.”
서예인이 흥수를 노려보다가 말했다.
“좋아요, 그럼. 당신 말대로 옆구리에 상처가 없다면 요괴가 아닌 거죠?”
서예인이 스스로 셔츠를 들춰서 옆구리를 보여 준다. 놀랍게도 옆구리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어서 아무렇지도 않다.
갑자기 흥수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한다.
“확인해 줘서 고맙긴 한데 그것만으로는 요괴가 아니라는 증거가 되지 않아. 밖에 죽어 있는 두 명을 요괴가 먹어 치웠다면 그 정도의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었을 테니까.”
흥수가 총을 들고 겨누며 말한다.
“괜히 사람 피곤하게 하지 말고 자리에 앉아.”
서예인이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으면 흥수가 총을 들고 그런 서예인을 감시한다.
사실 흥수는 영수가 둘이 연인 사이라고 했을 때부터 확실하게 믿지를 않았다. 영수와 서예인의 모습이 연인 사이로 보이지도 않았고, 이 부분에 대한 흥수의 심리는 시나리오에도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
흥수는 처음부터 영수와 서예인이 연인 사이가 아니라는 걸 짐작하고 서예인을 계속 감시한다.라고.
(시간 경과)
서예인과 흥수, 영수 세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서예인보다 더 긴장한 사람은 오히려 영수다.
영수가 손톱을 물어뜯으며 초조하게 흥수와 서예인을 번갈아 보고 있다. 왠지 흥수의 말이 맞을 것 같아서 겁이 나는 것이다.
별다른 변화가 없이 앉아 있던 서예인의 얼굴에 마침내 식은땀이 흐르고 서예인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 서예인의 변화를 보면서 평상에 내려놓았던 사냥총으로 손을 가져가는 흥수.
마침내 서예인이 바닥에 쓰러져서 숨을 헐떡거리면 흥수가 총을 들고 겨눈다.
흥수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한다.
“설마 했는데…… 세상에. 내 눈앞에 설녀요괴가 있다니.”
바닥에 쓰러져 꺽꺽거리던 서예인이 흥수를 올려다보며 노려본다.
흥수가 그런 서예인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면서 말한다.
“이렇게 예쁜 여자로 변신해서 유혹을 하니까 멍청한 사내놈들이 안 넘어가고 배기나. 내 동생까지 포함해서 말이야.”
영수는 물론이고 서예인의 눈빛도 꿈틀하고 번뜩인다.
“물론 20년 전의 일이니까 넌 기억도 못 하겠지만. 아닌가? 눈빛을 보니까 기억을 하고 있는 모양인데? 어때? 내 얼굴을 잘 보면 기억이 날지도 몰라. 내 동생하고 난 일란성쌍둥이였거든.”
고통스럽게 몸을 뒤트는 서예인의 입에서 요괴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래, 그래야 요괴답지. 자그마치 20년이야. 20년 동안 쫓아다닌 우리 둘의 질긴 악연을 이제야 끊을 수가 있게 됐군.”
흥수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영수가 소리친다.
“그 여자가 아니에요!”
“뭐라고?”
“그 여자가 사람들을 죽인 게 아니라고요. 여자의 모습을 한 설녀는 인간이 되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살인을 원치 않았지만 인간들이 요괴를 화나게 하는 바람에…….”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야? 정신 똑바로 차리고 봐! 여기 있는 이 괴물은 여자가 아니라 사람을 잡아먹는 요괴라고, 요괴!”
흥수가 다시 서예인을 향해 총을 쏘려는 순간 영수가 앞으로 끼어든다.
“안 돼요!”
“비켜! 너도 죽고 싶지 않으면 어서 비켜!”
“저 여자가 아니라구요!”
그때 영수의 뒤에 가려져 있던 서예인이 비틀거리며 대피소 문을 향해 걸어가면 흥수가 총구를 돌려서 서예인을 겨냥한다.
영수, 그런 흥수에게 달려들어 총을 붙잡는 순간……
탕!
총이 발사되지만 총알이 빗나간다.
그사이 서예인이 비틀거리며 대피소 문을 열고 달아나면 흥수가 개머리판으로 영수의 턱을 올려친다.
영수, 그 자리에 쓰러지고 흥수가 총을 들고 밖으로 달려나간다.
대피소 밖.
흥수, 대피소에서 달려 나오면 멀리 폭설 속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서예인의 모습이 보인다. 흥수가 급하게 총을 들고 겨냥하는데 달려가는 서예인이 요괴로 변해 간다.
탕!
총을 쏘자마자 허공으로 솟구치는 설녀요괴.
흥수가 허공을 향해 계속 총을 쏜다.
탕! 탕! 탕! 탕!
대피소 안.
영수가 바닥에 쓰러져 있으면 밖에서 계속 총소리가 들려온다.
영수,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으면 대피소 문이 열리면서 흥수가 식식거리며 들어온다.
흥수, 영수를 향해 총을 겨누고는 다가와서 방아쇠를 당긴다.
철컥…… 철컥…… 철컥!
총에 총알이 없어서 철컥거리는 소리만 난다. 물론 흥수도 총알이 없다는 걸 알고 방아쇠를 당긴다는 부분이 지문으로 설명이 되어 있다.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가 천천히 팔을 내리고 흥수를 올려다보는 영수.
흥수가 총을 저만치 던지고는 평상에 허탈하게 털썩 주저앉으며 말한다.
“너는 방금 내 20년의 세월을 날려 버렸어.”
“…….”
“총알이 없으니 이제 우린 꼼짝 없이 여기에 갇힌 거야. 그나마 다행이라면 요괴는 눈이 없는 곳에서는 변신을 못하기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만 않으면 요괴한테 죽을 일은 없다는 거지.”
흥수가 피곤한 듯 평상 위에 드러누우면 영수도 눈을 감으면서 화면이 블랙으로 변한다.
블랙에서 자막이 뜬다.
‘1년 후.’
1년 후의 장면들은 모두 일본 촬영을 끝내고 서울로 넘어와서 촬영한 씬들이다.
서울의 어느 클럽.
스테이지에서 남녀가 서로 뒤엉켜서 춤을 추고 있다.
영수가 그들을 보면서 대학 동기인 기찬과 술을 마시고 있다.
기찬이 묻는다.
“여기도 마음에 드는 여자 없어?”
영수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너 혹시…… 아직도 그 요괴 여자를 못 잊는 거냐?”
기찬의 물음에 영수, 피식 웃으며 술잔을 들이킨다.
“참나, 요괴가 얼마나 예뻤길래. 나 화장실 좀 갔다 올 테니까 여기 잘 찾아봐. 이 근처에서 물 제일 좋다니까.”
기찬이 영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화장실을 간다.
영수, 스테이지에서 춤을 추는 남녀들을 멍하니 바라본다.
음악이 블루스로 바뀌면 젊은 남녀들이 서로를 끌어안고 흐느적거리며 춤을 춘다.
그리고 들려오는, 블루스에 어울리는 끈적거리는 여자의 노랫소리.
영수, 노랫소리에 이끌리듯 고개를 돌려 보면 스테이지 구석에서 어떤 여자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영수가 여자를 보곤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노래를 부르는 여자는 다름 아닌 서예인이다.
영수, 매력적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서예인을 넋을 잃고 바라본다.
기찬, 화장실에서 돌아와 자리에 앉다가 역시 서예인을 보고는 중얼거린다.
“와~ 대박. 저 여자 누구냐? 진짜 예쁘네.”
영수가 뭔가에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서 서예인에게 걸어간다.
영수가 노래하는 서예인의 앞에 서서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서예인, 노래를 하면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영수를 마주 바라보며 웃는다.
영수를 마주 바라보면서 계속 노래를 하는 서예인.
서예인의 노래가 끝나고 박수와 함께 여기저기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온다.
서예인이 서둘러 클럽을 나가면 영수가 뒤따라서 나간다.
기찬이 황당한 표정으로 그런 영수를 바라보고.
도심의 밤거리.
앞장서서 걸어가는 서예인을 졸졸 따라가는 영수.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걸어가던 서예인이 제자리에 멈춰선다.
서예인이 돌아서면 영수도 멈칫하고 그 자리에 선다.
“혹시 저한테 무슨 할 말 있으세요?”
영수가 망설이다가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묻는다.
“저기 혹시…… 저 모르시겠어요?”
서예인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영수를 바라본다.
“제가 그쪽을 알아야 해요? 알아야 할 만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영수가 서예인을 빤히 바라보다가 묻는다.
“혹시 이름이…… 서예인 씨 아닌가요?”
여자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사람을 잘못 보셨나 봐요, 제 이름은 효진인데. 김효진. 지금 이러는 거 요즘 새롭게 유행하는 남자들의 접근 방법인가? 얼떨결에 제 이름까지 알려 줬네요.”
혼란스럽던 영수의 표정에 허탈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아, 네. 제가 사람을 잘못 봤나 봐요.”
효진이 돌아서면 영수가 황급히 말한다.
“저기요…… 이것도 인연인데 혹시 시간 있으시면…… 같이 차 한잔하실래요?”
효진이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더니 돌아서서 말한다.
“이렇게 보니까…… 어딘지 모르게 낯이 좀 익긴 하네요. 좋아요, 어차피 저도 혼자니까.”
효진이 돌아서서 걸어가면 영수가 멍하니 보다가 얼른 옆으로 다가가서 함께 걸어간다.
나란히 걸어가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태수가 외쳤다.
“컷! 오케이!”
시나리오를 읽은 많은 사람들, 스태프는 물론이고 배우들까지 이 장면에서 태수에게 질문을 했다. 효진이 서예인과 동일인물인지 아닌지.
태수는 자신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강동운과 송현주도 이 마지막 장면은 모호한 느낌으로 연기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분명한 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태수는 효진이 서예인이라는 힌트를 영화 속에 숨겨 놓았고 강동운과 송현주도 답을 알고 있었다.
클럽을 나온 서예인이 밤거리를 혼자 걸어가며 나지막하게 흥얼거리는 노래가 바로 월량대표아적심이기 때문이다.
기술 시사회는 영화의 최종 편집이 끝나고 극장에 개봉하기 전 내부 제작사와 투자사, 배우와 주요 스태프들이 모여서 처음으로 완성된 영화를 보는 자리다.
감독의 입장에서는 언론 시사회보다 오히려 기술 시사회가 더욱 긴장되는 이유고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사실상의 평가를 받는 자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촬영이 끝난 영화가 개봉을 하지 않고 1년, 2년 개봉이 뒤로 밀리면서 묵히는 경우가 바로 이 기술 시사회에서 평가가 좋지 않게 나왔기 때문이다.
다른 영화보다 의 기술 시사회가 중요한 이유는 CG가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요즘엔 현장에서 촬영을 하면서 가편집까지 하기 때문에 일반 영화는 현장에서 영화적 완성도를 대충 예측할 수 가 있다.
반면 처럼 CG가 많은 영화는 최종 편집본이 나오기 전에는 예측이 거의 어렵다. 배우의 연기뿐만 아니라 CG의 완성도에 따라서 영화의 완성도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원래 계획은 투자사인 위브라더스의 시사실에서 기술 시사를 진행하기로 했지만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면서 아예 극장을 한 관 빌리는 걸로 계획이 변경됐다.
덕분에 시사회는 새벽 1시가 가까워지는 시각에 여의도의 극장에서 진행이 됐다.
극장을 빌려서 시사를 하는 경우에는 큰 스크린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외부로 영화에 대한 정보가 새 나갈 우려가 있어서 비밀 유지가 중요했다.
게다가 의 경우 전 세계 42개국에서 동시 개봉이 확정된 데다 국내 관객들이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영화였다.
덕분에 국내 취재진은 영화의 아주 작은 정보라도 얻기 위해 전방위로 뛰어다니고 있어서 위브라더스에서는 기술 시사회에 경호 회사의 경호 인력을 지원받아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정보 유출에 대비했다.
극장 내부의 VIP룸으로 참석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참석자는 위브라더스의 한국 지사장 마틴 김과 투자 3팀의 황태식 팀장, 배급팀 박일영 과장, 홍보 대행사 영화홀릭의 송혜진 대표 등이 모두 참석했고, CG업체 대표와 창호와 조진호 대표를 비롯해서 제작진 스태프들도 다수 참석했다.
배우들 중에서는 송현주를 비롯해서 강동운과 장웅인, 김희순, 안연수 등이 설레는 표정으로 룸에 들어서서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송현주를 제외하면 다들 촬영이 끝난 후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라서 더욱 반가웠다.
마침내 참석자들이 모두 도착해서 극장으로 입장해서 각자 편한 자리에 앉아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역시나 가장 긴장되는 사람은 태수 자신이었다.
이번 영화는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귀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영화를 편집할 때도 예지 영상을 떠올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감으로 편집을 했다.
모든 영화감독이 같은 심정이겠지만 편집실에 틀어박혀서 두세 달 동안 하루 종일 같은 영화만 보면서 편집을 하다 보면 나중엔 객관적인 시선을 잃어버리곤 한다.
태수도 후반으로 갈수록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불안감이 점점 커졌다. 게다가 그동안 사용하던 귀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마침내 블랙의 화면이 열리면서 커다란 스크린에 눈이 부실 것 같은 하얀 설원이 펼쳐지면서 영화가 시작됐다.
드론이 부감으로 촬영한 화면 아래서 김찬이 눈을 헤치며 도망가는 모습이 보였다. 설녀요괴의 소름 끼치는 울음이 영화관을 울렸고 공포에 사로잡힌 김찬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화면을 바라보는 태수의 손에 저도 모르게 땀이 차올랐다.
바로 다음 장면에 처음으로 CG 작업을 거친 설녀요괴가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키이이이익~~!
울음소리와 함께 콘티상의 그림으로만 보던 하얀 하늘다람쥐 같은 설녀요괴가 허공으로 솟구쳐오르는 모습이 스크린에 하나 가득 나타나자 객석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날개를 닮은 하얀 비막을 펼치고 하늘을 날아가던 요괴가 김찬의 뒤쪽으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이제 한국 CG업체의 완성도는 할리우드와 경쟁을 해도 절대 뒤지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화면을 보고 있으면 설산에 정말로 저런 요괴가 살고 있지 않을까 착각이 들 정도였다.
요괴가 김찬을 공격해서 눈 속으로 끌고 가는 장면도 역시 CG로 만들어졌는데 눈 속으로 긴 고랑이 만들어지는 장면은 정말로 김찬이 눈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처럼 실감이 났다.
영화 는 제한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판타지 공포지만 끊임없이 사건이 발생하고 인물들의 심리가 계속 아슬아슬하게 긴장을 유지하면서 관객들은 거의 지루할 틈을 느낄 수가 없었다.
또한 설녀요괴가 등장할 때와 마찬가지로 서예인 역할의 송현주가 하얀 패딩을 입고 스크린에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어김없이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야말로 눈속의 요괴라는 수식어가 전혀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송현주의 차가운 미모가 눈을 시원하게 만들어 줬기 때문이다.
언제 시간이 흐른 줄도 모르게 영화가 끝이 났을 때 객석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열렬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가장 먼저 위브라더스의 마틴 김이 달려와서 태수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장 감독님, 기대 이상입니다. 지금껏 제가 봤던 그 어떤 판타지 영화보다 무섭고 아름다운 영화예요.”
다른 관계자들도 모두 태수에게 다가와서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통상적으로 영화가 잘 나왔다는 수준이 아니라 다들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적지 않은 관계자들이 여전히 영화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흥분된 얼굴을 감추질 못했다.
배우 강동운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강동운은 태수를 보자마자 다짜고짜 끌어안으며 목이 메는 음성으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고맙습니다, 감독님. 정말 고맙습니다.”
장웅인도 선뜻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태수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누군가 태수의 어깨를 두드려서 돌아보니 송현주가 눈앞에 있었다.
“어, 현주야…… 영화 잘 봤…….”
태수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송현주가 태수의 목을 끌어안았다.
송현주가 감동한 음성으로 태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사랑해요, 정말로.”
통상 시사회에서 여배우들이 감독과 포옹하는 경우는 낯선 장면이 아니다. 둘 사이의 관계를 알고 있는 창호를 제외한 다른 관계자들은 다들 그런 시선으로 둘을 바라보며 웃었다.
기술 시사회가 끝나고 위브라더스는 배급 마케팅의 P&A 비용을 처음에 계획했던 것보다 두 배 가까이 올려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역대 한국 영화 최대 스크린인 3천 개의 개봉관을 확보해 와이드 릴리즈 방식으로 개봉이 결정됐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개봉한 한국 영화 대부분은 와이드 릴리즈 방식이 아닌 10개 내외의 적은 개봉관에서 개봉을 해서 관객 반응에 따라 개봉관을 점차적으로 늘려가는 개봉 방식을 취했는데, 350개 관까지 늘렸던 봉준호 감독의 가 그나마 가장 성공한 케이스였다.
실질적인 와이드 릴리즈 방식을 취한 유일한 한국 영화는 말도 낳고 탈도 많았던 심형래 감독의 였다.
는 미국에서 약 2,200여 개 개봉관에서 개봉을 했지만 흥행에도 실패했고 평단의 반응도 좋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의 3천 개 스크린 확보는 영화에 대한 위브라더스의 자신감을 보여 주는 수치라고 할 수가 있었다.
기술 시사회에서 부족한 점을 일부 수정하는 동안 의 예고편이 공개됐다. 예고편에는 설녀요괴가 잠깐 등장했음에도 사람들의 반응과 기대는 폭발적이었다.
기존에 한국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비주얼과 소재인 데다 CG의 완성도가 놀라웠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에서 한국 영화 역대 최다인 3천 개 개봉관에서 개봉을 하고 세계 42개국에 이미 영화가 판매되어 국내에서 150만 관객만 돌파해도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어서게 된다는 보도가 국내 영화 팬들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언론 시사회 현장.
위브라더스는 를 국내보다 미국에서 먼저 시사회를 진행했다. 그야말로 영화에 대한 역대급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화에 대한 반응만 좋다면 할리우드 영화처럼 미국에서 먼저 반응이 나오고 국내 언론사가 그 반응을 받아서 전하기 때문에 웬만한 마케팅보다 훨씬 파급력이 클 수가 있다.
미국에서 시사회가 끝난 후 반응들이 속속 트위터에 올라오기 시작했고 반응은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동양의 신비로운 판타지 공포에 매료되었다는 반응이 가장 많았고, 공포물임에도 설원에서 펼쳐지는 영상미가 아름다웠다는 칭찬의 글들이 이어졌다.
소년 같은 강동운의 연기에 대한 칭찬도 많았지만 설희 역을 맡은 송현주의 아름다움에 대한 역대급 반응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물론 그 모든 호평의 중심에는 영화의 연출과 제작을 맡은 태수에 대한 극찬이 빠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언론 매체에서 의 미국 개봉 주말 박스 오피스 1위를 예측했고 로튼토마토의 신선도도 역대급으로 96퍼센트에 달했다.
몇몇 언론은 할리우드에서 기획 중인 몇몇 블록버스터 영화의 연출을 태수에게 맡겨야만 한다는 성급한 조언까지도 쏟아 냈다.
미국에서 날아온 호평 덕분에 국내 언론 시사회장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취재진이 밀려들었다.
태수는 시사회가 열리는 상영관 가장 구석 자리에 앉아서 기자들의 반응을 지켜봤다.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를 봐도 반응을 잘 드러내지 않는 언론 시사회에서 연신 탄성이 흘러나왔고, 시사회가 끝난 다음에는 에 대한 기사로 포털이 도배가 될 정도였다.
그런 역대급 반응 덕분일까.
개방 첫 주 가 확보한 상영관 수는 무려 2천 개를 넘었다. 그런데도 많은 극장들이 를 상영하고 싶다고 요청을 하는 바람에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논란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개봉 첫 주에만 국내 관객 수가 300만 명을 넘어섰고 북미에서는 주말 수익이 $51,117,379, 월드 와이드 누적 수익은 $93,217,379로 개봉 첫 주에만 이미 제작비의 몇 배가 넘는 수익을 벌어들였다.
국내 그 어떤 영화도 상상하기 힘든 액수를 ‘설녀’가 개봉 첫 주에 벌어들인 것이다.
태수는 고스트라인 대표실에 앉아 사람들이 북적이는 강남거리를 내려다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오전부터 인터뷰와 여러 행사에 참석하느라 이렇게 혼자만 있는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게 느껴졌다.
책상 위에는 고스트라인의 선택을 기다리는 수많은 시나리오가 쌓여 있었다. 그중에는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보내온 시나리오도 있었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한 청년의 모습이 유독 태수의 시야에 들어왔다. 나이는 20대 초반 정도였고 청년은 전단지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청년은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일일이 인사를 건네며 전단지를 건넸다.
왜 유독 저 청년에게 자꾸 눈길이 가는지 태수도 알 수가 없었다.
그때 오랜만에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때가 온 것 같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칠성문 퇴마사의 업을 전수해 줄 후보를 찾았다는 말이네.]태수는 노인이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바로 깨달았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계속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은 요즘 귀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귀기를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귀기 없이도 원하는 모든 걸 이룰 수가 있으니까.
하지만 앞으로 언제 또 악귀들이 날뛰는 때가 닥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따라서 자신을 대신해서 악귀를 퇴치하고 세상의 귀기를 흡수해 사용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노인이 말했다.
[저 청년의 기운이라면 자네를 이어서 칠성문 퇴마사의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을 것 같아.]‘그럼 어르신께서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나야 뭐…… 어쩔 수 없이 저 청년에게로 넘어가야 하지 않겠나? 왜, 날 보내기가 싫은가?]‘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동안 늘 어르신이 뒤에 계시다는 생각을 하면 든든했는데.’
[걱정하지 말게. 자네라면 내가 없어도 모든 걸 알아서 잘할 수 있을 테니까. 세상에 칠성문의 업을 이어받은 퇴마사가 한 명이라도 더 생기면 좋은 일 아닌가, 허허.]태수가 전단지를 돌리는 청년을 내려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수가 사무실을 나와서 거리로 나서자 갑자기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울렸고 휴대폰을 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태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청년을 향해 다가갔다. 노인의 말대로 청년의 눈빛은 맑았고 좋은 기운을 품고 있다는 걸 직감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청년 앞에 선 태수가 말했다.
“전단지 한 장만 주세요.”
“네? 아, 예.”
전단지를 내미는 청년의 손과 태수의 손이 닿았고 순간 몸에서 뭔가가 빠져나가는 서늘한 기분이 느껴졌다. 더불어 늘 느껴지던 노인의 존재감도 사라졌다.
청년이 뭔가에 감전된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태수를 바라봤다.
태수가 명함을 건네주며 말했다.
“갑자기 마음속에서 어떤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오더라도 너무 놀라지 말아요, 좋은 분이니까. 그리고 혹시라도 궁금한 게 있으면 연락해요.”
태수의 말에 청년의 눈이 더욱 커졌다.
청년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지만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노인이 어련히 알아서 잘 선택을 했을까 싶었다.
태수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바라보는 청년을 뒤로하고 돌아섰다. 아마도 머지않아 청년한테서 전화가 오리라는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막상 퇴마사의 능력이 빠져나가자 홀가분하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함께 들었다.
‘이젠 영능력도 사라졌겠지?’
자신을 찍고 있는 수많은 사람과 휴대전화 사이를 지나가는데 서늘한 한기가 느껴지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태수 님…… 저 보이시죠? 저 좀 도와주세요.]태수가 돌아보니 온몸이 피투성이인 여자가 서 있었다. 여자는 주변의 다른 사람들하고 확연하게 구분이 되도록 몸이 투명했다.
태수가 눈을 비비고 다시 쳐다봤지만 여자는 틀림없는 영혼이었다.
‘이상하다? 분명히 칠성문 퇴마사의 업을 청년에게 물려줬는데?’
그때 문득 노인이 마지막 순간에 했던 묘한 얘기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걱정하지 말게. 자네라면 내가 없어도 모든 걸 알아서 잘할 수 있을 테니까. 세상에 칠성문의 업을 이어받은 퇴마사가 한 명이라도 더 생기면 좋은 일 아닌가, 허허.
그제야 태수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노인은 한 번 칠성문 퇴마사의 업을 수행했던 사람은 그 업을 다른 사람에게 물려줘도 기본적인 영능력은 계속 보유할 수 있다는 얘기를 했던 것이다.
다만 귀기만 흡수할 수 없을 뿐.
게다가 예전에는 영혼을 보려면 항상 주문을 외워야 했지만 지금은 저절로 보였다. 오히려 더 완벽한 영능력자가 된 것이다.
태수가 돌아서서 길 건너편 청년을 바라봤다.
청년이 전단지를 돌리다 말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이 보였다. 태수는 청년이 왜 저러는지 알 것 같았다.
태수가 청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감사합니다, 영감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