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rcist and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8
38
#시나리오를 읽으면 영화가 보인다 (1)
고민석 교수가 운전하는 차가 서울을 출발한 지 2시간쯤 지났다.
차가 국도를 벗어나 울창한 숲속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좁은 길로 접어들었다.
고민석 교수도 길을 몰라 내비게이션을 확인하며 힘들게 길을 찾아갔다.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
맞은편에서 다른 차라도 만나면 낭패일 것 같았다.
고민석 교수가 흔들리는 차체 때문에 연신 돌아가는 운전대를 움켜잡으며 물었다.
“시나리오는 읽어 봤어?”
“예, 읽어 봤어요.”
“어땠어?”
시나리오에 아쉬운 부분들이 많았지만 감상을 있는 그대로 말하기가 망설여졌다.
감독이 고민석 교수의 후배인 데다 투자를 받아 촬영까지 들어간 시나리오를 영화에 대해 잘 모르는 자신이 함부로 평가를 하는 게 맞지 않을 것 같았다.
물론 고민석 교수도 진지하게 물어본 게 아니라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지나가는 말로 물었을 것 같지만.
태수는 형식적인 감상만 짧게 얘기했다.
“무섭던데요?”
“그게 다야? 무슨 감상이 그렇게 짧아? 공포 영화는 무섭기만 하면 된다는 건가?”
“아뇨. 그게 아니라 이미 촬영까지 들어간 영화의 시나리오를 제가 함부로 평가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요.”
하지만 태수의 생각과 달리 고민석 교수가 꽤나 진지하게 물었다.
“아냐,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봐. 어떤 말이든 괜찮으니까.”
솔직히 좀 의아했다.
자신이 뭐라고 교수님이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물어보는 것인지.
그런 태수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고민석 교수가 말했다.
“한정호 교수가 네 소설을 영화화하려고 했다는 건 곧 네 소설이 영화적으로 충분히 좋은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는 소리야. 그리고 어제 네가 보내 준 ≪비가 오면≫을 읽었는데, 한 교수가 왜 욕심을 냈는지 알겠더라.”
태수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비가 오면≫을 벌써 다 읽으셨어요?”
“그래.”
태수가 메일로 원고를 보낸 시각이 오늘 새벽 1시가 넘어서였다. 단행본 한 권 분량의 장편소설을 그 짧은 시간에 다 읽다니.
고민석 교수가 소설 읽는 속도가 빠르기도 했겠지만 그만큼 소설이 재미가 있었다는 반증이 아닌가.
고민석 교수가 말했다.
“솔직히 어제 ≪비가 오면≫을 읽어 보고 살짝 놀랐다. 네가 그 정도의 필력이 있을 줄은 몰랐어. 휴학한 사이에 무슨 짓을 했기에 필력이 그렇게 좋아진 거야?”
“그냥…… 저도 잘 모르겠어요.”
고민석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비가 오면≫은 미스터리 구조라서 소설적으로도 충분히 재미가 있지만, 영화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어서 각색하는 것도 별로 어렵지가 않을 것 같아.”
“그런가요? 사실 전 쓰면서도 시나리오로 각색이 된다는 생각은 못 했거든요.”
“시나리오가 뭐 별건가? 영상으로 풀어 갈 수 있는 구조면 어떤 이야기든 시나리오가 될 수 있는 거야. 내가 보기에 넌 시나리오도 꽤 잘 쓸 수 있을 것 같아.”
송현주의 대본을 보고 캐릭터를 살렸을 때만 해도 그저 우연이려니 생각했는데, 이 모든 게 우연이 아니었다.
이제는 확신할 수가 있었다. 시나리오나 대본을 보는 안목이 생긴 건 정문호 선생님의 필력 덕분이다.
정문호 선생님은 소설 못지않게 영화 시나리오에서도 뛰어난 작품을 여러 편 남기셨으니까.
거기에 귀기가 작용해서 신기라는 놀라운 능력까지 생긴 것이고.
“그러니까 빼지 말고 솔직하게 감상을 말해 봐.”
“그럼 제가 느낀 점을 말씀을 드릴게요.”
사실 어제 고민석 교수와 헤어진 후 새벽까지 시나리오를 읽고 또 읽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막연하게 배우들의 이미지가 떠오른 정도였다.
근데 시나리오를 여러 번 반복해서 읽다 보니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배우들의 이미지가 점점 또렷해지는 건 물론이고 그 배우들의 연기까지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졌던 것이다.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처럼 배우들이 머릿속에서 연기를 하는 게 아닌가.
보통 시나리오만 보고 영화가 재미있을지 확신하기는 어렵다.
촬영 과정에서 감독의 연출력이라든가, 배우의 연기라든가 여러 가지 요소들이 첨가되니까.
하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면 재미가 있는지 없는지,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금방 알아낼 수가 있다.
태수가 시나리오를 읽으며 느낀 게 바로 그런 감정이었다.
물론 배우들이 정말로 그렇게 연기를 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단지 기존에 그 배우들이 가진 이미지가 투영돼서 그런 영상을 떠올렸을 것이다.
엄마 역할도 현재 캐스팅 된 배우는 소영희인데 영상에서는 손예지가 연기하는 모습이 떠올랐으니까.
어쨌든 그렇게 영상으로 본 결과 의 약점은 끈끈한 가족애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시나리오에선 악귀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아들 호빈을 엄마가 구하려고 애를 쓰는 장면이 나오지만 생각만큼 엄마의 애틋함이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이유는 엄마가 호빈을 얼마나 애틋하게 생각하는지 이전에 보여 주는 장면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아빠와 엄마와의 사이에 관계에서도 좀 더 끈끈한 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관객들이 이 네 가족을 걱정할 수가 있다.
호빈에 대한 엄마의 애정이 커질수록 관객들도 좀 더 영화에 몰입할 수 있고 공포도 커질 수가 있다.
태수는 자신이 느낀 시나리오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고민석 교수에게 말했다.
얘기를 모두 들은 고민석 교수가 말했다.
“너 그러지 말고 소설 쓰면서 시나리오도 한번 써 봐.”
“예?”
“아니, ≪비가 오면≫의 각색을 네가 직접 한번 해 봐.”
“예에?”
태수가 놀라서 고민석 교수를 바라봤다.
“네가 시나리오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었어. 맞아, 그 부분이 의 가장 큰 약점이야.”
자신의 생각과 고민석 교수의 생각이 같다니 살짝 감동이 몰려왔다.
고민석 교수도 시나리오를 꽤 잘 쓴다고 알고 있다. ≪세월≫도 영화화될 뻔하지 않았던가.
“그럼 왜 감독님한테 그런 점을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만약 그랬다면 지금의 시나리오가 수정이 됐을 테니까.
고민석 교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내가 조금만 일찍 알았으면 어떻게든 수정을 하라고 했을 텐데, 내가 일이 바빠서 시나리오를 좀 늦게 읽었거든. 문제점을 알았을 때는 이미 촬영이 들어갔더라고. 그땐 내가 얘기한다고 해서 수정이 될 것 같지도 않았고.”
“늦게라도 수정하면 되지 않나요?”
“저예산 영화라서 시간이 너무 촉박하거든. 시나리오를 수정하면 제작 기간이 늘어나고 그럼 예산이 추가로 들어가야 해. 게다가 시나리오는 투자사하고 합의가 된 사항인데 그걸 멋대로 바꾸는 게 쉽지가 않지.”
짧은 대화였지만 영화에 대해 모르는 영역도 많고 여러 복잡한 사정들도 있다는 건 처음으로 알았다.
“거기 모텔에서 일어난 사건들 전부 실화인 건 아니?”
“예? 정말요?”
“인터넷에 찾아보면 나와 있어. 13년 전에 한 모텔에서 일가족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거야.”
실화라고 하니까 더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일가족이 모두 죽었다고 하니 더더욱.
“지금 촬영을 하고 있는 건물도 실제 사건이 일어났던 그 건물이라고 하던데?”
“예에?”
“저긴가 보다.”
고민석 교수의 말에 앞을 보니 색이 바랜 낡은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건물 전면에 ‘모텔 파라다이스’라는 간판이 위태롭게 걸려 있었다.
건물을 보는 순간 태수는 전율을 느꼈다. 건물의 모습이 시나리오를 읽을 때 머릿속에 떠올랐던 그 모텔의 모습과 너무도 완벽하게 일치했던 것이다.
‘세상에, 이럴 수가.’
물론 태수는 이곳에 와 본 적도, 인터넷에서 이런 곳을 본 적도 없다.
게다가 저 건물에서 실제로 일가족의 변사체가 발견이 됐다고 하니 왠지 모르게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고민석 교수가 모텔 앞에 차를 세웠다.
모텔 앞마당엔 스태프와 배우 들의 차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고민석 교수가 모텔의 전경 사진을 몇 장 찍는 동안 태수는 서늘하게 자신을 휘감는 정체 모를 기운을 느끼며 몸을 움츠렸다.
가만 보니 고민석 교수는 전혀 그런 기운을 느끼지 못하는 모양.
‘뭐지? 이 이상한 느낌은?’
고민석 교수가 말했다.
“지금은 실내 촬영 중인가 보네. 들어가 보자.”
고민석 교수가 먼저 모텔 안으로 들어갔고 태수가 뒤를 따라 들어갔다.
모텔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태수는 온몸을 찌르는 것 같은 따가운 기운에 저도 모르게 침음을 뱉어 냈다.
“으으으.”
뭔지 모르지만 이 건물 안에 좋지 않은 기운이 있다는 걸 알 수가 있었다.
게다가 모텔 내부의 모습도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아니, 낯설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잘 아는 공간인 것처럼 너무도 익숙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머릿속에 떠올랐던 그 모습과 완벽하게 똑같았기 때문이다.
당장 눈을 감고도 어디가 어딘지 찾아갈 수 있을 정도였다.
‘여기 뭐가 있는지 한번 확인을 해 볼까? 영혼탐색.’
화르르르륵.
허공이 흔들리며 모텔의 평면도 같은 지도가 나타났다.
만약 영이 있다면 그 지도에 붉은 점이 나타나야 할 텐데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기운이 곰팡이처럼 곳곳에 배어 있는 게 보였다.
‘저게 뭐지?’
그때 반대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형, 어서 와요. 힘들었죠?”
고개를 돌려 보니 고민석 교수와 박흥식 감독이 만나 악수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고민석 교수가 태수를 불렀다.
“태수야, 잠깐 이리로 와.”
태수가 다가가자 고민석 교수가 박흥식 감독을 소개시켜 줬다.
“인사해. 이쪽은 박흥식 감독.”
“안녕하세요, 장태수입니다.”
사전에 인터넷으로 감독에 대한 정보를 미리 살펴봤다.
나이는 34세였고 한강대학교 연영과 출신이었다.
이번 작품이 데뷔작이고, 이전에 독립 영화들도 주로 공포 영화를 작업한 감독이었다.
“이번 한국 장르문학 공모대전에서 대상 탄 친구야.”
고민석 교수의 소개에 박흥식 감독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와, 정말이요? 대박이네, 드림학교에서 한국 장르문학 공모대전 대상이 나오다니.”
“야, 너 지금 우리 학교 무시하냐?”
“에이, 그럴 리가요. 저도 한국 장르문학 공모대전에 몇 번 응모했다가 번번이 미역국 먹었거든요.”
“그게 정말이야?”
“예. 쪽팔려서 아무한테도 얘기 안 했어요.”
“그래, 잘 생각했어. 넌 소설 쪽 아니고 영화가 맞아.”
다음 촬영을 위해 스태프들이 장비를 세팅하는 동안 태수는 고민석 교수, 박흥식 감독과 함께 모텔의 1층 쉼터로 들어가서 잠시 대화를 나눴다.
모텔의 쉼터는 주방 겸 카페처럼 꾸며져 있었는데, 이 공간 역시 태수가 상상 속에서 봤던 공간이었다.
박흥식 감독이 말했다.
“그럼 앞으로 장 작가라고 부르면 되겠네. 근데 허드렛일할 친구 데려온다더니, 작가를 데려오셨어요?”
“너, 미스터리 공포 하고 싶다고 했지? 태수 잘 꼬셔서 ≪비가 오면≫ 각색해서 연출해 봐. 아주 죽인다.”
“와, 정말이에요? 형이 그렇게 말할 정도면 진짜 재밌다는 건데. 촬영 끝나면 꼭 읽어 봐야겠네요.”
박흥식 감독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나저나 걱정이에요.”
“왜?”
“이상하게 크고 작은 사고가 자꾸 터지네요. 스태프들도 다치고. 그러니까 배우들도 예민해지는 것 같고. 공포 영화 촬영장에 원래 사고가 많긴 하지만, 이번엔 좀 심한 것 같아요.”
“저예산인데 그렇게 되면 제작비도 늘어나는 거 아냐?”
“그러니까요. 잘 마무리해야 할 텐데.”
박흥식 감독이 태수를 돌아보고 물었다.
“공포 영화는 좋아하는지 모르겠네요?”
“제일 좋아하는 게 공포 영화예요. 그리고 편하게 말 놓으세요. 영화 배우러 온 거니까.”
고민석 교수가 거들었다.
“그래, 편하게 막 부려 먹어. 그래야 일을 배우지.”
그때 조감독이 쉼터로 들어와서 말했다.
“감독님, 준비됐습니다.”
고민석 교수가 일어나며 말했다.
“그럼 난 이만 갈 테니까 촬영 잘하라고.”
“왜요? 이따가 저녁에 술 한잔하고 가요.”
“술 마시면 오늘 못 가지. 나 내일 강의 있어. 촬영 다 끝나면 그때 한잔하자. 태수는 열심히 배워라.”
“그럼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고민석 교수가 모텔을 나가자 박흥식 감독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더니 태수를 돌아보고 물었다.
“나이가 어떻게 돼?”
“스물넷이에요.”
“학교를 늦게 들어간 거야, 아니면 군대를 갔다 온 거야? 민석이 형 얘기 들으니까 1학년 복학이라고 하던데?”
“제가 검정고시 출신이라서 학교를 늦게 들어갔습니다.”
“아, 검정고시? 그럼 어떡할까, 배우고 싶은 게 뭐야?”
그렇게 물으니까 딱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연출부에서 허드렛일하면서 눈치껏 배우겠습니다.”
박흥식 감독이 고개를 흔들었다.
“허드렛일해 봐야 별로 배울 것도 없어. 그냥 편하게 구경한다 생각하고 내 옆에 붙어 있어. 아마 그게 제일 도움이 될 거야.”
“제가 감독님 옆에요?”
“장 작가도 어차피 연출 생각하는 거 아닌가?”
아직은 그렇게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진 않았다. 하지만 막상 박흥식 감독이 그렇게 물어보자 굳이 부정하고 싶진 않았다.
“예, 최종적으로는 그렇게 되고 싶은데, 그냥 바람이죠.”
“음, 시나리오는 읽어 봤어?”
“어제 고민석 교수님이 읽어 보라고 주셔서 새벽에 읽고 왔습니다.”
“어제 시나리오 받았으면 제대로 읽지도 못했겠네. 일단 이번에 촬영할 씬의 시나리오부터 먼저 읽어 봐. 지금 촬영할 분량은 7씬이니까…….”
“모텔 2층에서 영신이가 호빈이 찾아다니는 씬인가요?”
박흥식 감독이 의아해하며 돌아봤다.
“어? 설마 시나리오를 다 외운 거야?”
“그냥 재미있어서 어제 새벽까지 서너 번 정도 읽었더니 저절로 머릿속에 남더라고요.”
박흥식 감독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태수를 바라보고는 말했다.
“시나리오를 그 짧은 시간에 세 번이나 반복해서 봤다고? 와, 이 친구 만만치가 않네? 좋았어, 그 정도 열정이면 도전해 볼 만하지.”
박흥식 감독의 칭찬에도 태수의 마음은 온통 7씬을 촬영하는 모텔 2층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시나리오를 그저 외우기만 한 게 아니라 배우들의 연기까지 머릿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태수는 얼른 촬영장으로 가서 자신이 머릿속에 떠올렸던 장면과 실제 배우의 연기가 얼마나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조바심이 날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