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rcist and a Top Star RAW novel - Chapter 53
53
#엎어진 영화를 다시 살리다 (7)
육포와 캔 맥주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려던 손예지가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한 번 더 돌아섰다.
“경고하는데, 너 혹시라도 오 실장한테 이르면 알지?”
“언니, 그럼 내일 화보 촬영은…….”
“요즘은 뽀샵 발달해서 다 보정할 수 있어. 너나 얼른 들어가서 자.”
손예지는 침대에 앉아 들고 온 육포를 펼친 후 캔 맥주를 들이켰다.
꿀꺽…… 꿀꺽…… 꿀꺽.
맥주를 마시고 육포를 뜯으며 씹는 손예지의 두 눈이 반달로 변했다.
“크윽, 바로 이 맛이지.”
이렇게 행복한 기분을 느껴 보는 게 얼마 만인데 잠을 자라니. 오늘 하루만큼은 그 어떤 제약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싶었다.
그 하고 싶은 첫 번째 일은 바로 태수가 전해 준 시나리오를 읽는 것.
솔직히 기대보다는 걱정이 훨씬 많았다.
저예산에 공포 영화.
촬영장에 정말 귀신이 나타나서 자신과도 친한 소영희가 주연을 맡았다가 귀신한테 ‘환령’이란 걸 당했다는 무서운 얘기까지.
태수는 하나도 숨김없이 그런 얘기를 있는 그대로 전해 줬다.
‘출연을 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게다가 그게 끝이 아니다.
가장 황당했던 건 로코의 여왕이자 이제 서른두 살에 불과한 자신에게 중학생 딸을 둔 엄마 역할을 맡으라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권했다는 사실.
너무 기가 막혀서 오히려 웃음이 흘러나왔다.
영화에서 나이가 어린 역할로 출연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중학생 딸이라면 오히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것도 두 아이의 엄마? 물론 영화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내 얼굴과 이미지를 보고 엄마를 떠올릴 수가 있지?’
로맨스의 여왕이라는 말을 듣는 자신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연기를 해야 한다니.
‘엄마가 된 나를 생각하면서 시나리오를 썼다고?’
이 얘기를 하면 오 실장은 물론이고 서영욱 대표가 뭐라고 할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자신을 캐스팅하려는 어떤 제작사도 이런 황당한 조건을 들이민 적은 없었다. 보통 캐스팅 디렉터는 불리한 얘기는 숨기고 좋은 얘기만 그럴싸하게 포장하니까.
신기한 건 그런 솔직함 때문인지, 본인이 말한 신기 때문인지 불과 30분 남짓한 만남을 가졌을 뿐인데 태수가 가족처럼 가깝게 느껴진다는 것.
마치 오랫동안 헤어져 있다가 다시 만난 친동생 같은 느낌이랄까.
“모텔 파라다이스라.”
손예지는 시나리오 표지를 바라보며 제발 시나리오가 재미있기를 바랐다.
시나리오가 그렇게 재미가 없어도 기본만 갖췄다면 꼭 출연을 해 주고 싶었다. 어떻게든 태수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마음은 전혀 기대가 되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아무리 수정을 잘했다고 해도 엎어져서 제작이 무산된 영화라면 분명 한계가 있을 테니까.
게다가 태수는 시나리오 작가도 아니고 소설가라고 하지 않았던가.
거기에 두 아이의 엄마.
‘에고, 자꾸 엄마 역할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야지.’
손예지는 고개를 흔들며 시나리오의 표지를 넘겼다.
오프닝은 혜수네 가족이 덜덜거리는 스타렉스에서 내려 모텔 파라다이스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시작됐다.
손예지는 자신이 연기할 혜수의 캐릭터에 집중하면서 시나리오를 읽어 나갔다.
초반부는 전형적인 공포 영화의 전개로 이어졌다.
초중반을 넘어서면서 은근히 몰입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첫 번째 리딩임에도 손예지는 혜수의 대사를 연기 톤으로 읊조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돈이 없어 귀신이 나오는 모텔을 관리하러 온 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장애를 가진 호빈을 지키려는 혜수의 절박한 심정이 마음을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해 왔던 대부분의 역할은 예쁜 이미지의 로맨스 여주인공 아니면 거대한 사건에 휘말린 비련의 여주인공이었다.
그런 역할은 대부분 수동적이고 예쁘게 보여야만 해서 깊은 내면의 연기를 보여 주기엔 한계가 있었다.
근데 의 혜수 역할은 완전히 달랐다.
연기라기보다는 느끼는 감정 그대로 분출시키면 되는 역할이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보여 준 적이 없는 표정과 목소리, 성격을 관객들에게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놀라운 점은 평소 자신의 이미지와 전혀 다른 혜수의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아주 잘 아는 사람이 시나리오를 쓴 것처럼 아주 사소한 것들조차 자신의 성격을 반영했다는 사실이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또 다른 자신을 일깨우는 느낌이랄까.
보통 배우들은 시나리오나 대본을 읽으며 캐릭터를 분석하고 그 분석에 의해 연기를 만들어 낸다. 근데 이 시나리오는 마치 자신의 연기를 보고 쓴 것처럼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
너무 몰입한 나머지 중반 이후부터는 무서워서 시나리오를 읽는 게 힘들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시나리오를 다 읽고 난 후에는 태수가 왜 그렇게 흥행을 장담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엎어진 영화를 왜 그토록 다시 살리려고 했는지도.
손예지는 흥분을 억누르기 위해 맥주를 벌컥거리고 마셨다.
“후우.”
연기에 대한 열정이 끓어오르는 이런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를 받아 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다시 넘겨 보던 손예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소설가라며? 소설가가 시나리오를 이렇게 잘 써?’
***
박흥식 감독과 통화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태수의 휴대폰에 카톡이 도착했다.
카톡.
카톡을 보낸 사람은 송현주.
[오빠, 지금 어디에요?]태수가 바로 답장을 했다.
[잠실에서 집으로 가는 지하철이야.] [어, 정말요? 나 지금 올림픽공원인데.] [올림픽공원? 거긴 왜?] [최고의 사랑 촬영 중이에요.] [진짜?]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촬영이 있다고 설레 하던 송현주의 모습이 떠올랐다.
[촬영장에 구경하러 올래요? 이전에는 인서트 촬영이었고 오늘이 사실상 첫 촬영인데.] [와, 긴장되겠다.] [엄청. 게다가 첫 촬영이 지난번에 오빠가 수정해 줘서 연습했던 씬이에요.]그 소리를 듣자 갑자기 송현주가 촬영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당시 자신이 수정했던 지희와 희철의 캐릭터가 어떻게 나올지도 무척 궁금하고.
[가도 돼?] [그럼요. 지금 와요. 올림픽공원 북문으로 들어와서 쭉 따라오면 촬영 팀이 보일 거예요.] [그래, 알았어.]태수는 지하철을 내려서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올림픽공원으로 향했다.
택시가 컴컴한 올림픽공원 안쪽으로 들어가자 멀리 안쪽에 촬영 팀의 조명 불빛이 보였다.
“여기서 내릴게요.”
태수는 멀찌감치 내려 걸어서 촬영 팀이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많은 스태프와 각종 장비들이 보였고 그 안쪽에서 연기를 하는 연기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촬영장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카메라 앞에 서 있는 배우의 얼굴이 보였다.
다름 아닌 태수가 좋아하는 걸 그룹 핑크레벨의 리드보컬 소현이었다.
‘대박이네. 여기서 소현을 실제로 보다니.’
그러고 보니 송현주한테 서브 주연인 윤영선 역할에 핑크레벨 소현이 캐스팅됐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났다.
극중에서 윤영선이 철없는 재벌가 아들, 민호와 결혼을 앞둔 인기 아이돌 가수라는 설정이어서 소현은 극중에서도 본인의 직업 그대로 인기 아이돌 가수로 나온다.
송현주가 맡은 지희는 바로 윤영선의 절친 역할이다. 대본상 윤영선은 재벌 약혼자가 속을 썩여서 그때마다 지희를 찾아와 하소연을 하곤 한다.
태수가 설레는 마음으로 촬영 팀을 향해 다가가는데 송현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고개를 돌린 태수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걸 본 송현주가 혀를 찼다.
“으이그, 가만히 옆에서 지켜보니까 내가 옆에 있는 것도 모르고. 소현이 보면서 걸어가는 모습이 좀비가 따로 없네. 하여간 남자들은 다 똑같다니까.”
“야, 아냐. 난 네가 촬영하는 줄 알고.”
“됐어요, 변명할 걸 해야지. 치이.”
태수가 찔끔하며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근데 넌 언제 촬영이야?”
“소현이 끝나면 내 차례예요. 이쪽으로 와요. 내가 가까이서 소현이 보게 해 줄 테니까.”
“아, 아냐. 그런 거 아니라니까.”
“참나, 입에 침이나 닦고 거짓말해요.”
송현주가 다짜고짜 태수의 팔을 잡고 스태프들 사이로 이끌었다.
스태프들 안으로 들어가자 불과 몇 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눈앞에 핑크레벨 소현이 서 있었다.
지금은 감독과 연기에 대한 상의를 하느라 잠시 촬영이 중단된 상태.
‘어? 근데 생각보다 설레진 않네?’
아마 예전 같으면 눈앞에 소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심장박동이 빠른 진자 운동을 했을 텐데, 지금은 그냥 예쁜 여자애를 보는 정도의 기분.
그러고 보니 방금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 손예지를 만나고 오는 길인 데다 어제까지 소영희와 내내 함께 지내지 않았던가.
‘솔직히 소현이 아무리 예쁘다고 해도 손예지나 소영희 같은 여배우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
소현은 예쁘다기보다는 분위기가 상큼해서 보고 있으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느낌이다. 유독 광고 출연이 많은 이유도 그래서인 것 같고.
소현을 비추는 카메라 뒤쪽으로 테이블이 보였다.
의자에 앉아 테이블 위 모니터를 보고 있는 두 사람.
낯이 익다 했더니 오디션 때 본 정해일 감독과 양혜진 작가였다.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와 달리 드라마 작가는 감독보다 영향력이 크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촬영 현장까지 나와서 지켜보는 모습은 의외였다.
송현주가 태수의 귀에 대고 귓속말을 했다.
“지금 드라마 초반이라서 양혜진 작가가 직접 보면서 캐릭터를 잡아 주고 있는 거예요.”
태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송현주가 어깨를 감싸며 중얼거렸다.
“후우, 왜 이렇게 긴장이 되지?”
역시 첫 촬영이라 그런지 송현주는 양팔로 어깨를 감싼 채 연신 심호흡을 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제자리 뛰기도 했고.
살짝 걱정이 될 정도로 지나치게 긴장하는 모습.
예전 같으면 태수도 엄청 긴장이 됐을 텐데, 지난 이틀 동안 촬영 현장에서 엄청난 경험을 한 덕분인지 현장이 익숙했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한눈에 읽을 수가 있었다.
소현의 촬영이 끝나자 조감독이 소리쳤다.
“현주 씨! 석훈 씨!”
송현주가 태수를 돌아보며 기도해 달라는 손짓을 하고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표정으로 튀어 나갔다.
“네, 나가요.”
송현주가 먼저 카메라 앞에 섰고 희철 역을 맡은 백석훈이 송현주 앞에 섰다.
백석훈은 일전에 송현주가 떠오르는 신인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백석훈은 국내 최대 연예 기획사인 KM엔터 소속으로, 처음엔 희철 역할을 맡지 않으려 했다가 나중에 태수가 수정한 대본을 보고 출연을 결심했다는 후문.
백석훈은 배우 봉태규를 닮아서 마마보이 같은 희철 역할에는 아주 안성맞춤이었다.
송현주는 여전히 긴장한 모습이고 백석훈은 비교적 여유가 있어 보였다.
태수는 연기에 대해 상의하는 둘을 지켜보며 조금씩 긴장되는 기분을 느꼈다. 혹시라도 송현주가 너무 긴장해서 실수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던 것이다.
‘배우들은 첫 촬영에 실수를 크게 하면 트라우마가 생겨서 평생 연기를 못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하던데.’
게다가 이번 씬은 자신이 직접 대본을 수정해서 캐릭터를 바꾼 그 장면이 아니던가.
조감독이 소리쳤다.
“슛 들어갑니다!”
“카메라 돌았습니다!”
“씬 12-1!”
“레디…… 액션!”
촬영이 시작되자 송현주와 백석훈이 연기를 시작했다.
태수는 송현주가 연기하는 모습을 오늘 처음 봤다. 물론 오디션 때 보긴 했지만 수많은 스태프와 카메라 앞에서 하는 정식 연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송현주가 먼저 대사를 시작했다.
“오빠는 항상 이런 식이야. 현정이라는 여자는 누구야? 언제부터…….”
태수가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야, 대사 빼먹었잖아.”
“컷! NG!”
갑자기 소리친 감독의 컷 소리가 천둥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
송현주가 금방 사색이 됐다.
감독이 아닌 양혜진 작가가 직접 소리쳤다.
“현주 씨, 방금 대사 빼먹었어요.”
“네에?”
송현주는 자신이 무슨 대사를 빼먹은지도 몰랐는지 황급히 대본을 뒤척였다. 그만큼 긴장하고 있다는 소리다.
양혜진 작가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는 항상 이런 식이야. 현정이라는 여자는 또 누구야? 언제부터 사귄 거야?’에서 ‘또’를 빼먹었어요. ‘또’라는 단어 하나가 희철이 그동안에도 계속 바람을 피웠다는 걸 시청자들에게 암시하는 중요한 말이라는 거 몰라요?”
송현주가 헉 하는 표정으로 양혜진 작가와 감독을 향해 연신 폴더 인사를 했다.
그런 송현주를 지켜보고 있으려니 점점 걱정이 됐다. 멀리서 봐도 평소의 차분하던 모습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첫 촬영에 저렇게 대사 NG를 내면 연이어 실수하고 대사가 꼬이는 경우가 많다던데.
‘야, 정신 좀 똑바로 차리라고. 나하고 할 때처럼 편안하게 해.’
태수는 송현주가 자신이 있는 쪽을 바라보면 응원이라도 보내려고 했는데 그런 여유조차 없는 모양이었다.
다시 시작된 연기.
송현주가 대사를 시작했다.
“오빠는 항상 이런 식이야. 현정이라는 여자는 또 누구야? 언제부터 사귄 거야?”
백석훈도 그에 뒤질세라 어수룩한 표정으로 대사를 했다.
“그거 당신이 오해한 거야. 사귀긴 무슨, 그냥 거래처 직원이야.”
태수가 저도 모르게 입으로 다음 대사를 중얼거렸다.
“거래처 직원하고 휴일 날 왜 등산을 가? 그것도 단둘이서?”
벌써 한 달은 지난 것 같은데 대사가 그대로 떠올랐다.
하지만 송현주는 거기서도 NG를 냈다. 긴장해서 대사가 꼬인 것이다.
“거리처 직원하고…… 앗, 죄송합니다. 거래처 직원인데.”
“컷, NG.”
송현주가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작가와 감독은 물론 스태프들에게도 연이어 폴더 인사를 했다.
‘후우, 미치겠네. 왜 그러니 현주야? 너 차분하게 잘하잖아.’
태수는 안타까운 마음에 달려가서 어깨라도 토닥거려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세 번째 촬영이 시작됐다.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이번에도 NG가 났다. 연습 때 그렇게 잘하던 대사를 송현주는 마치 뭔가에 홀린 것처럼 연속으로 NG를 냈다.
송현주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었고, 감독과 작가는 물론 스태프들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정해일 감독이 피곤한 듯 소리쳤다.
“5분만 쉬고 합시다.”
스태프들이 웅성거리며 흩어졌고 송현주는 도망치듯 어딘가로 달려갔다.
태수는 재빨리 송현주가 달려간 곳으로 자신도 뛰어갔다.
주차장 안쪽 어두컴컴한 후미진 공간.
“어디로 갔지?”
송현주를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옆쪽 주차된 차량 너머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차량 뒤쪽으로 돌아가자 웅크린 채 울고 있는 송현주가 보였다.
“현주야…….”
태수의 부름에 송현주가 돌아보더니 얼른 눈물을 닦았다.
“괜찮아, 울고 싶으면 울어.”
“아니에요. 이런 바보 같은 모습 보이기 싫어요.”
“그게 왜 바보 같은 거야. 누구라도 네 입장이면 참기 어려웠을 거야.”
송현주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나 너무 한심하죠? 배우를 하겠다면서 연기는커녕 대사조차 제대로 못 하고.”
“아냐, 운이 나빴던 거야. 첫 대사만 잘했어도 모든 게 잘 풀렸을 텐데.”
송현주가 필사적으로 참고 있던 울음을 다시 터뜨렸다.
“바보같이 ‘또’를 왜 빼먹었냐고. 오빠하고 얼마나 많이 연습한 대산데. 난 정말 연기자 재능이 없는 사람인가 봐.”
“힘들 땐 누구나 절망적인 생각이 드는 거야. 지금 유명 배우들도 다 그런 시간을 거쳤고. 너 연습할 때 얼마나 잘했는데? 너 재능 있어. 분명히 잘할 수 있을 거야.”
송현주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나 자신이 없어요. 다시 카메라 앞에 서면 눈물부터 나올 것 같아. 어떡해요, 오빠?”
“…….”
흐느끼던 송현주가 가까스로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괜찮아요, 오빠. 저 잘할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송현주가 애써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어떡해? 오늘 오빠 괜히 불렀나 봐. 미안한데 그냥 내 연기하는 거 보지 말고 오늘은 그냥 가면 안 돼요?”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다시 촬영에 들어가면 제대로 연기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물론 결국엔 스스로 이겨 내겠지만, 감독과 작가한테 찍히면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현주야, 나 봐 봐.”
태수가 저도 모르게 양손을 들어 올려 송현주의 뺨을 감싸 안았다.
“……!”
눈물이 그렁거리는 송현주의 동공이 놀란 듯 부풀어 올랐다.
태수가 그런 송현주의 두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속삭였다.
“눈 감아 봐.”
“네?”
“어서.”
당황한 송현주가 의미를 알려는 듯 태수를 바라보다가 어색하게 눈을 감았다.
눈물 한 방울이 아름다운 송현주의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태수가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생기탐랑의 능.’
허공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제1성인 탐랑성의 생기탐랑의 능이 작동합니다.]화르르르륵.
순간 공기가 흔들리며 송현주의 뺨을 감싼 태수의 양손에 푸르스름한 기운이 서렸다.
푸르스름한 기운이 태수의 손바닥을 타고 송현주의 뺨으로 옮아갔다.
송현주의 뺨을 푸르스름하게 물들인 생기탐랑의 기운이 그녀의 피부로 스며들었다.
태수가 뺨에서 손을 떼자 송현주가 천천히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