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593
593화 개똥 아냐?
순간 추굉심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진양의 말이 맞다.
대제희가 마음먹고 계속해서 군권을 쥐고 있으려 했다면 추굉심에겐 일말의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마 지금처럼 귀찮은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추 대인, 전하께서 이런 일을 벌이실 이유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저 역시 이런 일을 벌일 이유가 없습니다. 추호도 득이 될 게 없으니 말이죠. 그런데 대인께서는 이제 막 입대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은 신참의 말만 들으시고 전하와 대립하려 하시는 겁니까? 이러면 과연 누가 이득을 볼지 생각은 해 보셨습니까?
그리고 유언비어가 언제부터 퍼지기 시작한 건지 잘 알고 계시는 것 아닙니까?”
말을 마친 진양은 조용히 한걸음 물러서며 큰 소리로 말했다.
“추 대인의 뜻이 그러하다면 순순히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신다면 성실하게 답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추굉심의 머릿속은 상당히 복잡했다.
추굉심이 대제희의 자리를 빼앗은 게 아니라 그녀가 자발적으로 자리를 포기한 것이다.
그런 그녀가 왜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일을 저지르겠는가?
유언비어로 퍼진 정보는 그녀가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정보다.
그런데 왜 하필 이도에서 소식이 들려오기 무섭게 그걸 퍼뜨린단 말인가?
두 사람이 서로 대립하게 되면 이득을 보는 사람, 과연 누구일까?
그의 뒤를 봐주고 있는 태자는 이미 오래전에 대제희와의 관계가 틀어졌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정면으로 맞선다면 누가 이득을 보게 될까?
조왕? 아니면 주왕?
생각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졌다.
한참 뒤.
추굉심이 지면에 누워있는 시신을 바라보며 분노 가득한 호통을 쳤다.
“이런 개자식이! 조용히 뒈질 것이지,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전하를 물고 늘어지다니!”
그는 시신을 옆으로 차버리곤 형벌을 가한 병사들에게 호통쳤다.
“도대체 일 처리를 어떻게 하는 것이냐? 이대로 놈이 죽어버린다면 어떻게 조사를 이어나간단 말이냐?”
이어서 곧바로 가희 쪽으로 돌아서며 예를 갖추었다.
“전하, 소인이 잠시 무언가에 홀린 듯합니다. 제가 어찌 감히 전하를 의심할 수 있겠사옵니까? 전 맹세코 단 한 번도 전하를 의심해 본 적이 없사옵니다.”
“전 괜찮습니다.”
추굉심은 다시 한번 고개를 꾸벅 숙여 예를 갖춘 뒤 뒤에 있는 시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서 개 먹이로 던져줘라.”
진양이 나서며 말했다.
“추 대인, 다른 일도 많이 바쁘실 텐데 시신 처리는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이 자는 군인입니다. 군법에 따라 고향으로 보내 장사를 치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그렇게 하시게나.”
추굉심은 별말 없이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그와 그의 부하들이 돌아가고 난 뒤.
진양은 오래전에 만들었지만 지금까지 마땅히 써 볼 기회가 없던 청동관을 꺼냈다.
그리고 시신을 수습하여 관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습득 능력이 발동되지 않는다는 걸 재차 확인하고 나서야 관뚜껑을 덮고 관을 완전히 밀봉시켰다.
“진양, 혹시 이도 사람들이 이상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게 아닐까요?”
“전 그런 말 한 적 없는데요?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괜찮아요. 일단 기다리면서 상황을 좀 더 지켜보도록 하죠.”
이어서 진양은 포단을 꺼내 관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조용히 기다렸다.
아무도 신경조차 쓰지 않는 신참 졸병이지만 그는 이번 사건을 풀어나갈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진양은 누가 자신을 해치려는 것인지 진심으로 알고 싶었다.
만약 추굉심이 끝까지 의심을 거두지 않고 고집만 부렸다면 결과는 가희와 추굉심의 관계가 크게 틀어지거나 혹은 진양이 붙잡혀가거나, 이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누가 배후에 있는지는 몰라도 분명 진양은 계속해서 큰일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 * *
진양은 사흘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관 앞을 지켰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습득 능력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는 오직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죽은 뒤 오랜 시간이 흘러 시신이 썩어버렸을 때,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생기가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상태일 때다.
가장 큰 예로 장정의를 들 수가 있다.
그는 죽어도 또다시 부활할 수 있기 때문에 부활을 기다리는 동안은 생기가 여전히 남아있으므로 습득 능력을 사용할 수가 없다.
어쨌든 지금 진양의 눈앞에 누워있는 졸병은 누가 봐도 후자의 경우였다.
그래서 진양은 두 눈 부릅뜨고 그를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상대는 생각 이상으로 근성 있는 사람이었다.
사흘이나 자리를 지키며 감시를 했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을 줄은 몰랐다.
그때, 관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관에 걸어둔 금제가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서 묵양이 조용히 다가와 물었다.
“진양, 이 사람 정말 아직 안 죽은 거 맞아?”
“나도 몰라.”
진양은 고개를 가로저은 뒤 묵양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묵양은 반구형의 나무껍질을 꺼내 이곳을 감쌌다.
위쪽을 감싸기 무섭게 남은 반쪽이 생겨나며 공간 자체를 완전히 밀폐시켰다.
그렇게 두 사람은 조용히 관을 지켜보았다.
반 시진쯤 지났을 무렵.
관에 걸어두었던 금제가 또다시 반응했다.
누군가 금제를 건드리거나 힘으로 강제로 금제를 돌파하려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빛은 금세 또다시 사그라들었다.
다음 반응은 무려 세 시진이 지나고 나서 일어났다.
이전과는 달리 격한 반응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아 금제를 뚫고 관 밖으로 나오기 위해 미친 듯이 힘을 방출하고 있는 듯했다.
푸른빛 사이로 붉은빛이 일어나며 빠르게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금제의 힘은 극한으로 발휘되었고, 푸른 쇠사슬은 관을 더욱 강하게 조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관뚜껑 틈으로 흘러나온 붉은빛은 손톱만 한 크기의 입으로 변하더니 쇠사슬을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했다.
잠시 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푸른 쇠사슬은 산산조각이 나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관은 또다시 잠잠해졌다.
“금제마저 부쉈으니 이제 슬슬 나올 때가 됐군.”
진양은 관이 스스로 열릴 때까지 기다릴 작정이었다.
잠시 뒤.
관 내부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육중한 힘이 실린 관뚜껑이 진양을 향해 날아들었다.
묵양은 재빨리 손을 뻗어 관뚜껑을 쳐냈다.
콰지직-!
관뚜껑은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그때, 관 내에 머물고 있던 붉은빛이 팟- 하고 튀어나오며 곧바로 발아래의 대지로 파고들었다.
진양은 관 가까이 다가가 살폈다.
시신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시신의 머리에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있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손을 얹어보니 습득 능력이 사용 가능한 상태가 되어있었다.
진양은 그에게 얻은 백색 광구를 머릿속에 집어넣고 나서야 지금까지 습득 능력을 사용할 수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확실히 죽었지만 그의 몸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 붙어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아직 죽지 않은 것으로 판정되어 습득 능력을 사용할 수 없었던 것.
진양은 씨익 웃으며 붉은빛이 파고든 자리를 쳐다보았다.
‘사방이 막혔는데. 어디 어디로 도망치나 보자.’
* * *
지하.
붉은빛은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퍽-!
그러다 무언가에 부딪쳐 튕겨 나왔다.
붉은빛은 다시 방향을 바꿔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무언가에 의해 튕겨 나왔다.
사방이 막혔다는 걸 알아차린 붉은빛은 곧바로 지상에 있는 묵양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묵양은 멍하게 제자리에 선 채 붉은빛이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날아오는 걸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어서 붉은빛이 묵양의 머리에 닿는 순간.
탱-!
붉은빛은 또다시 엄청난 속도로 튕겨 나갔다.
놈은 잠시 당황한 듯했으나 이번에는 진양을 향해 날아갔다.
놈은 진양의 몸을 뒤덮고 있는 진원을 가볍게 뚫고 진양의 머릿속으로 파고들려 했다.
묵양이 손을 뻗어 막아주려는 순간 진양은 괜찮다는 듯 손짓했다.
그리곤 입을 벌려 녀석을 아예 삼켜버렸다.
그다음 마수의 힘을 사용하여 곧장 해안으로 가는 통로를 만들어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붉은빛은 해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보랏빛으로 빛나는 별의 바다, 허공을 가르고 있는 번개의 강, 사방을 자욱하게 뒤덮은 하얀 안개까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붉은빛은 크게 당황했다.
분명 진양의 몸속으로 들어왔는데 어째서 이런 풍경이 펼쳐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어서 거대한 종이 높게 매달려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위로 황금빛으로 불타오르고 있는 한 마리의 거대한 새가 깃털을 정리하며 자신을 곁눈질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 외에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관의 모습도 보였다.
관에서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력한 힘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는 검은 기운을 내뿜고 있는 괴상한 모양의 손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무시무시한 힘을 내뿜고 있었다.
순간 괴상한 손에서 누군가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는 종 위에 앉아 있는 새와 마찬가지로 미간을 찌푸린 채 붉은빛을 쳐다보았다.
그때, 진양의 모습이 나타났다.
“진양, 또 어디서 이런 걸 주워온 거야? 길 가던 똥개가 푸짐하게 싸놓은 개똥처럼 생겼잖아.”
검둥이가 물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일단 놈을 붙잡아줘. 그렇다고 죽이진 말고.”
“뭐…….”
마수에서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며 그물의 형태를 이루었다.
날아간 그물이 붉은빛을 감싸는 순간, 놈은 본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검둥이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소리쳤다.
“이건 또 뭐야? 이거 진짜 개똥 아냐?”
진양의 미간 역시 찌푸려졌다.
요괴의 본모습이 상당히 기괴했기 때문이다.
굵직한 무언가 빙빙 감겨있는 모습, 거기에 일렁이는 붉은빛까지.
누가 봐도 이제 막 푸짐하게 싼 개똥의 모습이었다.
“너무 강하게 압박하진 마. 아직 죽이면 안 돼.”
검둥이가 압박을 살짝 풀자 붉은빛은 세 뼘 정도 되는 작은 사람의 형상으로 변했다.
등에 달린 날개 한 쌍, 눈은 세 개, 커다란 뿔 하나, 손과 발에 달린 날카로운 발톱, 거기에 길고 뾰족한 턱까지.
일반적인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다.
“사람의 몸에 붙어있지만 아무런 흔적도 느낄 수 없고, 도망칠 때는 사람의 머리를 부수고 도망친다. 역시 이럴 줄 알았어. 이건 요국의 삼안요모(三眼妖母)잖아. 게다가 이건 삼안의 화신 같은데. 녀석들, 이간질 한번 하려고 아주 피를 쏟아부었구나.”
삼안요괴가 진양을 노려보며 차갑게 웃었다.
“흥, 어차피 목적은 달성했으니 네 녀석에게 들켜도 상관은 없다. 단지 영제 곁에 이런 똑똑한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군. 허나 내가 화신이란 걸 알면서도 붙잡아두는 건 의미가 없을 텐데?”
“뭐? 그럼 죽여줘?”
“마음대로 해라. 화신 따위. 잃어도 손해 볼 건 없지.”
“그렇다면 더더욱 죽일 수 없지.”
진양이 씨익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