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839
839화 이 좋은 사람을 속이다니
“어허, 진정하시라니깐요. 괜찮으니까 절 믿어주세요. 오히려 잘 된걸요. 괜히 가지고 있어봤자 조마조마하기만 하고, 그렇다고 전부 다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그냥 주자니 그건 더더욱 안 되고.
대국공 그 녀석, 이런 치사한 수를 쓰면 제가 말려들 줄 알았던 거죠. 하지만 아쉬울 건 없어요. 놈이 원하는 대로 해줘 버리면 그만이잖아요. 오히려 골칫거리가 사라져서 전 좋습니다.”
진양은 진지한 얼굴로 그녀를 말렸다.
가희는 순간 기괴한 눈빛으로 진양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내 진양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는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그녀도 모른다.
하지만 진양은 항상 눈앞의 상황에 대한 대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믿어주는 수밖에 없었다.
“알겠어요. 나름의 대책이 있는 것 같으니 믿도록 하죠.”
* * *
어느새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기다리던 손님이 찾아왔다.
비주에서 내린 건 무시무시한 얼굴을 한 중년인이었다.
그는 성큼성큼 행렬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를 맞이하기 위해 정천사의 외후가 마중 나왔다.
“전 대인을 뵙습니다. 소인…….”
“쓸데없는 소리는 됐다. 진양은?”
지금 전뇌는 한가하게 인사나 나누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때문에, 일말의 망설임 없이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
“지금쯤이면 아마도 막사 근처에서 탕을 끓이고 있을 겁니다.”
외후는 고개를 숙인 채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대답했다.
그는 정천사의 일품 외후 중 전뇌를 가장 무서워했다.
쉽게 가까이할 수 없는 불같은 성격을 지닌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과거 동해에서 적성수 언예와 정면으로 맞붙은 그는 목숨에 지장이 갈 정도로 큰 중상을 입었다.
한동안은 어디 처박혀 요양을 하는 듯했으나, 불쑥 나타난 모습을 보니 웬만큼 회복을 마친 듯한 모습이었다.
현재 이도를 지키고 있는 일품 외후는 두 사람.
그중 한 사람인 서정강은 혹여나 미움을 살 수 있는 일은 결코 벌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인 한안명은 진양과 꽤 깊은 사이다.
이 두 사람이 아닌 전뇌를 보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마중 나온 외후는 곧장 그를 진영 안쪽으로 안내했다.
입구에 세워진 두 개의 기둥을 지나자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와 전뇌의 몸을 감쌌다.
마치 이도 성문을 지날 때 영혼의 본상을 확인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자 그는 곧바로 전뇌를 진양이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진영 안으로 들어서니 일 장이나 되는 거대한 솥에 무언가를 끓이는 데 전념하고 있는 진양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적지 않은 사람이 몰려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진양이 저택을 떠나온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심심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오랜 시간 탕을 끓이지 않는다면 실력이 줄어들 것 같아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탕을 끓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진영에 공급되는 식자재와 도구를 모두 제공받게 된 진양은 탕을 끓이며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던 것.
전뇌는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가 나서서 한마디 하려는 순간.
여기까지 길을 안내한 외후가 황급히 그를 말렸다.
“대인, 진 선생께선 벌써 며칠 동안이나 밤낮없이 탕을 끓이셨습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탕이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탕은 중간에 제조를 멈추면 금세 효과가 사라져버리게 된다고 합니다. 이제 곧 완성이 될 것이니 조금만 기다리심이 좋을 듯합니다.”
전뇌는 차갑게 피식 웃었다.
그러나 일단은 충동적인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기다리기로 했다.
잠시 뒤.
진양이 사다리에서 내려왔고, 배식이 시작되었다.
외후는 기다렸다는 듯 쪼르르 진양에게 달려갔다.
“진 선생님, 여기 계신 분은 정천사 일품 외후이신 전뇌 대인이십니다.”
말을 마친 외후는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아, 전 대인이셨군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진양이 포권을 취하며 예를 갖추었다.
“내가 왜 왔는지는 알고 있을 게요.”
전뇌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잘 압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영맥 때문에 찾아오신 것 아닙니까?”
순간, 한참 배식을 받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멈춰 섰다.
그리고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다면 제대로 찾아오셨습니다. 소문대로 현경사 비밀창고에 있던 수백 개의 영맥을 전부 가지고 있거든요. 아마 지금까지 쓴 걸 제외하면 오백 개 정도 남았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양은 순순히 인정했다.
지금껏 굳은 얼굴을 하고 있던 전뇌의 표정이 바뀌었다.
적지 않게 놀란 듯했다.
옆에서 귀를 기울인 채 몰래 엿듣고 있던 사람들도 놀란 듯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전뇌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었다.
진양은 품속에서 반투명 구체를 꺼냈다.
구체 안에는 각각 마흔아홉 개의 결정체들이 들어있었다.
그곳에서는 상당한 양의 영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느 정도 봉인을 해두긴 했으나 새어 나오는 힘을 완전히 막는 건 불가능했다.
진양은 전뇌 앞에 구체를 띄워두며 말했다.
“사실 이건 전조 녀석들이 빼돌린 장물이나 다름없잖아요. 이런 걸 가지고 있으니 마음이 불안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말이죠.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불안해할 필요가 없을 듯하군요. 군말 없이 모두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챙겨가시죠.”
진양은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영맥들을 전뇌 쪽으로 밀어놓았다.
전뇌는 순간 넋이 나가고 말았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한참이 지나고 다시 정신을 차린 전뇌는 영맥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부 다 챙긴 건 아니었고, 그중에 백 개 정도만 챙겼다.
“진 선생의 뜻은 잘 알겠소. 허나 아무리 그래도 신조의 입장에선 강탈을 해갈 수는 없는 법.
최근 들어 서쪽 국경지대에 영기가 희박해져 마침 영맥이 필요했는데, 백 개 정도면 충분하다니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도록 하겠소. 추후 이도로 돌아오면 폐하께서도 분명 큰 상을 내리실 것이오.
남은 건 진 선생께서 가지고 계시면 될 듯하오. 아무리 그래도 진 선생의 손에 들어간 걸 정천사가 나서서 강탈할 수는 없는 것이니 말이오.”
“전 대인, 그럴 순 없습니다. 모두 가지고 가시지요.”
진양은 때려죽여도 갖지 않겠다는 듯, 한 발짝 더 멀리 물러섰다.
그때, 가희가 다가왔다.
“진양, 이만 거둬들이도록 하세요. 전 대인께서 난처하시겠어요.”
진양은 그제서야 황급히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결코 전 대인을 난처하게 만들려는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전 대인께서 모두 가져가신다면 정천사의 명성에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점까지는 고려하지 못했습니다.”
진양은 마지못해 영맥을 모두 챙기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허나 전 대인, 추후에 또다시 필요하신 일이 생기신다면 언제든 마다하지 마시고 말씀해 주십시오.”
전뇌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마치 오랜 시간 화장실을 못 간 듯 답답한 표정이었다.
분명 맡겨진 임무는 모두 다 처리하긴 했으나, 애초에 기대했던 상황과 너무 다르게 전개되어버렸다.
임무를 마친 전뇌는 곧장 비주를 타고 다시 이도로 향했다.
진양은 멀리 사라져가는 비주를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상당히 불같은 성격을 지닌 사람이라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이제 보니 그저 소문에 불과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순 있지만, 법 집행에 있어 엄격한 것은 저 진양과 매우 닮은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이 모든 게 다 진 선생께서 협조해 주셔서 가능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곁에 있던 외후가 포권을 취하며 말했다.
그는 진심으로 진양에게 감탄했다.
이렇게 일이 간단하게 끝나버릴 줄은 그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만약 그가 진양이었다면 결코 영맥을 순순히 내어주진 않았을 것이다.
한편 감탄한 눈으로 진양을 바라보고 있는 건 비단 외후 한 사람 뿐만이 아니었다.
진양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영맥을 꺼내놓는 모습을 주변에 있던 모두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다.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진양은 소문대로 공공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의협심 강한 사람이 맞는 듯했다.
진양의 손에 수백 개나 되는 영맥이 아직 남아있다는 걸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두 눈 똑똑히 뜨고 목격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것을 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진양의 호방함에 감탄할 뿐이었다.
* * *
진양이 순순히 백 개나 되는 영맥을 정천사에 내놓았다는 사실은 금세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이도에서 소문을 접한 위흥조는 곧바로 하얗게 질려버렸다.
“누구냐! 도대체 누가 날 해하려 한단 말인가!”
위흥조는 눈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괴수처럼 마구 포효성을 내질렀다.
그의 손에 들린 보고서에는 진양이 순순히 전뇌에게 영맥을 내놓았다는 내용 외에도 일말의 힘도 들이지 않고 영맥을 회수하는 데 성공한 위흥조를 찬양하는 글도 함께 적혀있었다.
보고서에 이런 내용이 적혀있다는 건 이 내용도 함께 소문으로 퍼졌다는 뜻!
위흥조는 들고 있던 보고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이를 갈았다.
전뇌는 중상으로 인해 아직까지도 요양 중이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서 전뇌가 튀어나온단 말인가!
무엇보다 전뇌는 평소에도 적을 많이 두고 있던 자인 만큼 지금까지도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안전하게 요양을 하고 있다.
그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위흥조를 제외하면 정천사 내에는 겨우 셋이 전부다.
절대 이런 식으로 억울하게 누명을 쓸 순 없다.
설령 또다시 곤장을 맞는 일이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결코 해명해야만 한다.
“여봐라! 지금 즉시 조사를 시작하라! 누가 벌인 일인지 철저히 조사하란 말이다!”
* * *
위흥조는 곧바로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해명했다.
이 소식이 퍼지자 정천사는 모든 이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진양을 비웃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이렇게 쉽게 속아 넘어가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진양은 일품 외후라는 말에 잔뜩 쫄아 영맥을 내어준 겁쟁이가 되고 말았다.
한편, 전뇌인 줄 알고 길을 안내했던 외후는 소식을 듣자마자 다리가 풀려버리는 기분이었다.
정천사에 속한 몸이면서도 상대가 진짜인지 구분하지 못하다니!
이건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었다.
그러나 도대체 어떻게 분별해낸단 말인가?
자신 같은 일개 외후 따위는 전뇌의 얼굴을 감히 똑바로 볼 엄두조차 못 내기 때문에 아직 한 번도 만나본 적조차 없다.
무엇보다 분명 진영 입구로 들어설 때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게 확인되지 않았던가?
외후는 한쪽에 멍하게 앉아있는 진양의 눈치를 살폈다.
‘참 좋은 사람이란 말이지. 그런데, 이 좋은 사람을 속이다니! 그것도 새빨간 대낮에 쳐들어와 속이고 가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