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917
917화 의형제까지 맺을 기세
대제희는 모든 일을 마치고 대제희부로 돌아왔다.
이 밤은 대제희부에서 맞는 마지막 밤이 될 것이다.
이제 내일부터는 동궁에서 지낼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가희는 편안한 옷차림으로 대제희부 뒤편에 자리한 화원에 진양과 마주 앉았다.
진양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취생몽사를 꺼내 가희와 잔을 나누었다.
“축하해요.”
진양은 잔을 들어 올린 뒤 단숨에 술을 비웠다.
가희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잔을 비웠다.
“오늘 영제에게 받은 공법 중 하나인 주도정이라는 공법이에요.”
가희가 죽간을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죽간엔 고체(古體)로 큼직하게 세 개의 글자가 쓰여 있었다.
‘아방궁(阿房宮)’
오 보마다 한 개의 누각이요, 십 보마다 한 개의 고각이 있다.
복도는 빙 돌아 이어져 있고, 처마 끝은 새가 높은 곳을 쫓는 모양이다.
이로써 도궁을 이룬다.
이는 가희의 성격과는 상성이 맞지 않다.
대명궁의 기세등등한 모습이 오히려 가희와 훨씬 더 잘 맞는다.
영제가 이것을 가희에게 주었다는 건 단순히 간판으로서 태자의 자리에 앉힌 게 아니라 진정한 태자로 인정했다는 뜻이었다.
아방궁을 건드리진 않았으나, 세 글자를 보는 순간 자연스럽게 그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예전에 대명궁을 손에 넣었을 때는 전혀 없었던 것이었다.
주도정은 첫 권부터 도궁으로 시작한다.
그보다 앞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황실의 사람이고 태자로 임명이 되었다고 해도 경지가 도궁에 이르지 못한 자는 수행에 입문할 자격조차 없다.
진양은 한참 동안 죽간을 바라보았다.
“이걸 수련하고 싶은 건가요?”
“아뇨.”
가희의 대답은 짧고 간결했지만 단호했다.
대영 신조의 힘을 기반으로 주도정을 익힌다면 경전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곧 강력한 속박과 같다.
기반이 대영 신조에 완전히 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영제가 아니기에 대황 전체를 압도할 만한 힘이 없다.
이런 기반은 오히려 불안정할 뿐이다.
한참의 고민 뒤.
진양이 돌연 입을 열었다.
“일단 살펴보기만 하고, 급하게 익힐 필욘 없어요. 조만간 제가 해결 방안을 마련해 보도록 할게요.”
* * *
진양은 다시 저택으로 돌아왔다.
돼지는 한참 탕을 끓이느라 바쁜 모습이었고, 유령 경매에 간 묵양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제 역할을 잘 해내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걱정은 되지 않았다.
절대 쉽게 죽을 녀석이 아니니까.
손바닥을 펼치니 서두가 날개를 펄럭이며 나타났다.
본래 작은 애벌레의 모습이었던 녀석은 현재 황금으로 만든 딱정벌레의 모습이 되어있었다.
녀석의 몸에는 수많은 공법들이 저장되어있다.
그리고 이 중에는 만법지서에서 삼킨 것들도 있었다.
도천결과 관련된 부분이 보였다.
당시 서두가 삼킨 뒤 수많은 잡다한 정보가 된 도천결은 어느새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되어가고 있었다.
도천결의 내용을 살펴볼 수는 없다.
그것을 익히기 위해선 반드시 그 내용을 훔쳐야만 한다.
진양은 진귀한 전승을 서두에게 먹이로 줘버렸다.
그런데 오히려 뜻밖의 결과를 낳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건이 달성되며 공법이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도천결을 익히고 이어서 주도정의 공법으로 도궁을 만들어낸다.
기반은 여전히 자기 자신이고, 이용하는 것은 공법과 신조의 힘일 뿐이다.
하지만 단점은 자신의 기반을 극도로 강화시켜야만 평범한 수도사를 훨씬 능가하는 도궁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두려울 건 없었다.
진양의 기반은 그 무엇보다도 단단했으니까.
가장 크고 위대한 대명궁 역시 충분하다.
영제의 기반은 대영 신조에 있다.
때문에, 대영 신조의 영토가 줄어들면 그만큼 기반에도 손상이 가고, 영토가 넓혀지면 그만큼 기반은 안정적으로 변한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영제처럼 기반에 큰 영향을 받지 않게 된다.
만약 도천결을 가희에게 전수해 준다면, 가희는 더 이상 주도정으로 인한 결함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대영 신조에 속하지 않게 될 테니, 대영 신조의 영토 역시 그녀에게 치명적인 단점이 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그녀의 기반은 대명궁을 감당하기엔 부족하다.
전혀 다른 성향의 아방궁은 오히려 가능하다.
이제 남은 문제는 도천결을 가희에게 전달해 주느냐 마느냐다.
이것은 도문 문주의 공법으로, 오직 문주만이 처리할 자격을 가지고 있다.
익히는 순간 문주의 자리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그녀에게 전수할지 말지를 정하는 것도 스스로의 선택에 맡겨진다.
몽의가 예전에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영제를 쓰러뜨렸으니 문주의 자격은 충분하다.
다만, 그것은 네 결정에 달려있다.
승낙을 한 이상 책임을 져야 하는 법.
이렇게 중요한 일을 그저 질질 끌며 인정하지 않을 순 없는 법이다.
밤이 지나고, 진양이 눈을 떴다.
허공진경을 선택할지, 아니면 대명궁을 선택할지는 이미 생각을 마쳤다.
아니, 애초에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둘 다 선택하면 되니까.
강한 실력을 갖추고, 일단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
허공진경을 익히지 않는다면 이후의 계획은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한다면 대명궁도 반드시 필요하다.
일단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
뒷일은 나중에 다시 생각해도 충분하다.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뒷일도 없는 법.
일단 허공진경 수행을 시작하고 입문했다.
입문이 된 것인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있을 때, 백옥 신문으로부터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백옥 신문이 엄청나게 강화된 것.
지금 경지 기준으로 최소 천 년의 깨달음의 시간이 추가된 셈이었다.
‘결국 저질러버렸군.’
허공진경을 더욱 깊게 익히고, 거기에 다른 공법까지 더해지며 백옥 신문에 대한 깨달음의 시간은 오천 년 이상으로 폭증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더는 물러설 길이 없다.
일단 흑옥 신문을 먼저 개방하는 쪽으로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동안 진양은 얌전히 예부를 지키며 자신의 업무에 충실했다.
허공진경 수련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수월했다.
그야말로 일사천리였다.
게다가 허공진경은 예전에 익힌 능허탁보와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었다.
입문도 순조로웠고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도 그다지 어려운 건 아니었다.
입문을 마친 이상 그저 계속해서 순서대로 수행을 이어나가기만 하면 된다.
진양이 충실하게 자신의 업무를 보고 있을 때.
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예부 상서의 자리가 공석인 만큼 진양이 만년제와 관련된 대부분의 일들을 도맡아서 처리하고 있었다.
여기에 대제희가 태자의 자리에 오르며 진양의 권세는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진양이 예부 상서로 승진이라도 한 것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 것도 당연했다.
지금까지 진양은 그저 명목상으로 관직만 걸고 있던 사람에 불과했다.
기껏해야 가끔 예부에 들러 얼굴만 비추고 사라지는 게 전부였던 만큼 그 누구에게도 위협이 될 여지조차 없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대제희가 태자로 책봉되며 진양의 권력은 더욱 강해졌다.
여기에 영제의 신임까지 더해지며 앞으로 한층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는 기회가 더욱 뚜렷해진 것이다.
이는 곧 예부 좌시랑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왔다.
예규에 따르면 예부의 서열 일 위는 상서다.
그리고 그다음으로는 좌시랑과 우시랑이 동등한 서열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대영에서는 좌가 우선이다.
예규대로라면 좌시랑과 우시랑은 동등한 서열을 갖게 되지만, 실제로는 좌시랑이 우시랑보다는 조금 더 높은 서열에 올라있다.
심지어 봉급조차 좌시랑이 아주 조금 더 많다.
예부 상서 이태현은 이미 오래전에 실종되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그는 이미 사망했을 가능성이 컸다.
이대로 상서 자리를 계속해서 비워둘 수는 없는 법.
언젠간 누군가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
지금까지 상서 자리를 비워놓은 건 영제의 뜻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이유도 존재한다.
이태현은 육부의 수장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서열에 있던 사람이다.
그는 권력만으로 다른 오부의 수장들을 오랜 시간 압도해왔다.
현재는 모두가 예부 상서의 자리를 다른 오부 상서의 자리보다 더 높은 서열로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때문에 다른 오부 상서를 완전히 압도할 인물이 나오지 않는 이상 예부 상서의 자리는 비워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본래 좌시랑은 진양에겐 관심조차 주지 않았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오랜 시간 상서의 자리를 노려오고 있던 와중, 갑자기 진양이 상서로 내정될 가능성이 커지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진양을 찾아와 괴롭히기 시작했다.
상서 자리가 비어있고, 실질적으로 좌시랑이 우시랑보다 더 높은 서열이라는 핑계로 오만 일에 모두 간섭하기 시작한 것이다.
진양은 곧바로 좌시랑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참으로 교활한 인간이었다.
만년제를 한창 준비할 때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더니, 모든 것이 정해지고 순서대로 진행하기만 하면 되자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진양은 처음에는 모른 척하며 넘어갔다.
그러나 얼마 뒤 한 수하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하자, 기다렸다는 듯 모든 일을 내팽개치고 수행을 하러 가버렸다.
저택으로 돌아온 진양은 그제서야 참아왔던 웃음을 터뜨렸다.
얼마 전 한 젊은 어사가 이유 없이 진양에게 시비를 걸어왔던 적이 있었다.
당시엔 이렇게 생각했었다.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런 짓을 했을 리는 없다.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 굳이 그런 일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러나 가희가 태자로 책봉되며 진양의 권력도 그만큼 늘어났다.
그리고 그만큼 진양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도 많아진 것이다.
예부로 돌아와 업무를 재개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좌시랑이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자신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이에 진양은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사실 진양은 한시라도 자신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고 싶었다.
그러던 와중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진양은 기다렸다는 듯 전부 다 떠넘겨버렸다.
애초에 진양은 우시랑이라는 직위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직권이 필요했을 뿐이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좌시랑은 진양이 의외로 흔쾌히 손을 떼며 물러나자 오히려 느낌이 싸했다.
예부 내에는 이런 소문이 있다.
진양은 애초에 우시랑이라는 직위에 관심도 없었고, 하루 종일 묶여서 일을 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한다고.
‘보아하니 그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군.’
그 이후로도 진양은 가끔 들러 인사를 하러 오는 게 전부였다.
좌시랑의 태도는 이전에 비해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걸 느낀 탓인 듯했다.
여기에 진양은 애초에 상서 자리에는 관심조차 없었다며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우시랑이 된 것도 사제(祠祭)로서의 역할이 마음에 들어서 된 것이지, 이 외의 다른 건 일절 관심도 없었고 자신과 맞지도 않다고 했다.
‘평생 시랑으로 살아도 상관없습니다. 매일 이곳에 처박혀있지 않아도 된다면 말이죠.’
이 말을 들은 좌시랑은 곧바로 진양과 의형제까지 맺을 기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