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921
921화 본존이 사라진 걸 알잖아요
교룡은 한참 동안 진양을 바라보았다.
그에겐 아무런 악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돕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도 진심인 듯했다.
교룡은 이내 진양의 곁으로 날아와 복부에 난 구멍이 잘 보이도록 배를 열어주었다.
진양은 포권을 취한 뒤 곧바로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교룡의 몸 안에 오장육부나 살점은 전혀 없었다.
녀석의 육신을 이루고 있는 건 수많은 부문과 의념, 그리고 실체화된 신조의 힘이다.
진정한 신조의 힘을 이렇게 가까이서 느껴보는 건 진양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거대한 교룡의 뱃속엔 이미 곳곳에 구멍이 뚫려있었다.
무언가 물어뜯고 지나간 흔적도 사방에 즐비했다.
진양은 이수가 뚫고 지나간 통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로 끝에서 열심히 내부를 물어뜯고 있는 이수 녀석을 발견했다.
잠시 고민하던 진양은 자신의 오른발을 쳐다보았다.
‘그래. 그때 아마 실수로 오른발로 녀석의 발을 밟는 바람에 한참 동안이나 쫓기게 됐었지.’
더 이상 생각만 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물론 교룡이 죽을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이 이상 상처를 입도록 놔둬선 안 된다.
이수에게 가까이 다가간 진양은 오른발을 쭉 뻗었다.
그리고 발끝으로 녀석의 엉덩이를 툭툭 쳤다.
하지만 녀석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저 교룡을 물어뜯는 데 정신이 잔뜩 팔린 모습이었다.
“어이, 이봐.”
다시 한번 녀석을 건드렸으나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어쭈, 이 녀석 봐라?”
이번에는 잔뜩 힘을 실어 녀석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그러자 그제야 이수가 흠칫하며 멈춰 섰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진양을 바라보았다.
진양이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네. 나 기억나지?”
이수는 멍한 눈빛으로 진양을 응시하는 듯했으나, 이내 다시 교룡을 물어뜯는 데 집중했다.
진양의 표정이 잔뜩 찌푸려졌다.
‘왜 이러는 거지? 설마 그때랑 느낌이 달라서 못 알아보는 건가?’
진양은 당시에 신었던 신발을 꺼내 신은 뒤, 이번에는 녀석의 머리를 있는 힘껏 짓밟았다.
“이 몸이 인사하는 거 안 보이냐!”
묵직한 타격음과 함께 녀석은 바닥에 쓰러졌다.
녀석의 눈이 진양을 살폈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을 밟았던 발 쪽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그러자 녀석의 눈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익숙한 이 느낌!
마침내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진양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이수도 입을 쩍 벌리며 진양을 쫓기 시작했다.
녀석이 입을 다물 때마다 펑- 하며 폭발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순간 교룡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당장 눈앞에 있는 진양과 과거의 원한부터 풀고 봐야 할 듯했다.
진양은 재빨리 교룡의 몸 밖으로 빠져나왔다.
힐끔 뒤를 쳐다보니 이수 녀석은 여전히 눈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뒤쫓아오고 있었다.
‘좋았어. 이대로 잘 따라오라고.’
진양은 그대로 묘지 밖까지 달렸다.
그리고 완전히 밖으로 나오자마자 제이검군을 호출했다.
진양은 전력을 다해 도망치고 있었으나, 이수는 육신의 힘만으로도 진양의 속도를 따라잡을 듯한 모습이었다.
‘징글징글한 녀석이군.’
그때, 호출을 받은 제이검군이 나타났다.
“형님, 저 좀 도와주세요. 일단 저택으로 좀 데려다주세요.”
제이검군은 눈에 불을 켜고 진양의 뒤를 쫓고 있는 이수를 발견하고는 검을 뽑아 그를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예리한 검기가 형성되며 빠른 속도로 날아가 이수의 머리와 부딪쳤다.
하지만 이수는 입을 쩍 벌리며 그것을 물어버렸다.
금속이 맞부딪힐 때처럼 청량한 충돌음이 터져 나왔고, 녀석의 눈은 더욱 새빨갛게 물들었다.
이어서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검기는 완전히 파괴되어버렸다.
“그냥 가요. 괜히 녀석을 상대할 필요 없어요.”
진양의 말에 제이검군은 곧바로 진양의 어깨를 붙잡고 자리를 벗어났다.
진양의 저택.
돌아오기 무섭게 진양은 곧바로 뒷마당에 걸어둔 솥을 챙겼다.
그 모습을 본 돼지는 기겁을 하며 진양의 다리에 매달렸다.
“대인, 전 이번엔 아무것도 안 했다고요! 갑자기 왜 이러시는 겁…….”
“형님, 이만 다시 돌아가죠.”
돼지 녀석을 상대할 시간은 없다.
진양은 곧바로 제이검군에게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다시 무덤 앞.
사라졌던 진양이 다시 나타나자 이수는 기다렸다는 듯 눈에 불을 켜고 진양에게 달려들었다.
“혹시 이 솥으로 녀석을 삶아버릴 수 있을까? 녀석은 천외의 이수인데.”
진양이 함께 딸려온 돼지에게 물었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달려오는 이수를 발견한 돼지는 한층 더 강하게 진양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곤 황급히 대답했다.
“물론이죠. 당연히 가능합니다.”
“그래? 다행이군.”
진양은 이번엔 제이검군에게 말했다.
“형님, 혹시 저 녀석을 계속해서 이 솥 안에 가둬놔 주실 순 없을까요?”
“문제없소.”
제이검군은 곧바로 솥을 들고 녀석에게 돌진했다.
그리고 그대로 녀석에게 솥을 뒤집어씌웠다.
이수는 그대로 솥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녀석은 잠시 당황한 듯했으나 이내 정신을 차리고 밖을 향해 뛰쳐나오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제이검군이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이며 다시 녀석을 안으로 처박아버렸다.
이러한 과정은 수십 번이나 반복됐다.
한 시진 후.
힘이 빠진 녀석은 마침내 완전히 멈춰버렸다.
제이검군도 완전히 멈췄다.
그가 들고 있는 솥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이 들어있을 뿐, 뼈를 제외하면 이수의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다시 솥을 건네받은 진양은 곧바로 영화를 일으켜 탕을 팔팔 끓이기 시작했다.
국물이 끓으며 남아있던 뼈도 완전히 녹아 사라졌다.
이따금 한 번씩 새까만 뱀 한 마리가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화력을 아무리 키워도 도무지 없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대윤 신조에 마지막으로 남은 국운의 씨앗.
식재료가 아니었기 때문에 솥의 힘으로도 녹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강한 녀석이라 그런 걸까?
아직 탕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무시무시한 힘이 느껴졌다.
진양은 새까만 뱀이 꿈틀대는 탕을 한 국자 퍼서 돼지 녀석에게 건넸다.
“자, 먹어봐.”
“대인, 이건 제 다리 살로 만든 탕이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 몸을 제가 먹을 순…….”
녀석은 절대 탕 속에 꿈틀거리는 검은 뱀 때문에 핑계를 대는 게 아니었다.
적어도 진양은 그렇게 믿어주길 바랐다.
“뭐, 일부러 계속 시선을 피하는 게 수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군.”
진양은 우선 탕은 나중에 해결하기로 했다.
이제 남은 건 최대한 빨리 이도로 돌아가는 것이다.
영제가 사라진 지금 대영에서 가장 큰 권한을 쥐고 있는 건 가희다.
최대한 서둘러야 했다.
비록 영제가 더 이상 신조로부터 힘을 공급받지 못하게 되긴 했으나, 그래도 확률로만 따진다면 영제에게 훨씬 더 승산이 있었다.
어쨌든 윤제는 이미 죽은 상태였으니까.
게다가 영제가 산하도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된 게 아니다.
산하도 속의 세계는 환해와도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설령 영제가 윤제를 죽였다고 해도 환해 대장로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는 알 수 없다.
영제를 돕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영제가 충분한 보상을 약속한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를 도와줄 확률이 오히려 높았다.
어쨌든 최대한 서둘러서 움직여야 했다.
진양은 우선 다시 묘지로 돌아왔다.
묘지 대문은 아직도 활짝 열려져 있었다.
어쩌면 영제가 다시 이곳에 나타날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직 문을 닫지 않은 것이었다.
이어서 진양은 구름 높은 곳에서 똬리를 틀고 앉아있는 상처투성이의 교룡을 발견했다.
교룡은 자신의 연신 자신의 상처를 핥아대고 있었다.
수많은 빛이 모여들며 부문을 이루었고 그의 육신을 조금씩 회복시켰다.
그러나 꽤 깊은 상처인 만큼 회복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는 대영 신조의 국운으로 비롯된 생명체다.
때문에, 그가 가진 살점은 결코 진짜 살점이 아니었다.
하지만 녀석은 독립적인 의지를 가진 생명체다.
그의 모든 것은 대영 신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교룡이야말로 진정으로 대영을 대표하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신조의 힘이 약해지면 녀석도 약해지고, 신조의 힘이 강해지면 녀석도 강해지고, 신조의 영토가 넓어지면 녀석도 한 단계 더 진화하게 된다.
영제는 그저 자신의 뿌리를 대영 신조에 둔 게 전부일 뿐, 진정으로 대영 신조로부터 비롯된 건 교룡뿐이었다.
교룡은 진양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는 이수로부터 자신을 구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몸에서 순수한 진룡의 기운을 내뿜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실 교룡은 언젠간 대영 신조라는 족쇄를 벗어던지고 진룡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그가 바라는 날은 아직도 먼 훗날의 얘기인 듯했다.
한편, 가까이 다가온 진양은 교룡을 응시하며 머릿속으론 수백 번도 넘게 시연을 해 보았다.
영제 법신을 죽이지 않고도 계획을 무사히 진행시킬 수 있는 희망.
그게 바로 눈앞에 있는 교룡이었다.
그는 대영 신조의 의지를 대변하면서도 독립적인 의지를 가진 녀석이었다.
한참의 고민 끝에 진양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보기로 했다.
녀석은 국운을 통해 만들어진 존재인 만큼 수많은 신비로운 힘을 지니고 있다.
그만큼 녀석을 말로 속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혹시 진룡이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진양은 말을 마치기 무섭게 해안에 있던 진룡의 기운을 꺼내 주위로 발산했다.
교룡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의 눈앞에 보인 진양의 모습은 두 개의 거대한 날개가 달린 진룡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놀란 녀석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진양이 손을 뻗자 응룡의 정혈이 흘러나와 교룡에게 날아갔다.
“이건 응룡 대신(大神)의 정혈입니다. 그분께서 제게 직접 주신 거죠. 기회를 잘 노려본다면 이걸 통해 진룡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예전에 응룡에게 받은 정혈.
당시 진양은 꽤 많은 양의 정혈을 받았었다.
응룡에겐 겨우 한 방울에 불과한 양이었으나, 이 정도만으로도 진양이 소화시킬 수 있는 최대치를 한참 넘긴 수준이었다.
용혈보술을 강화시키고, 육신의 기반에 난 상처를 치료하고, 이 외에도 여러 용도로 사용했으나 사용한 양은 겨우 백분지 일에 불과했다.
사용하고 남은 정혈의 힘은 전부 해안에 보관해두었다.
그리고 지금 이것을 다시 꺼내 협상의 보루로 사용하려는 것이다.
교룡은 도무지 응룡의 정혈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하며 시선을 다시 진양 쪽으로 옮겼다.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난 아무것도 줄 수가 없다.”
“대영 신조의 국운으로 이루어진 존재니까 잘 알 텐데요. 영제의 본존이 이미 완전히 사라졌다는 걸 말이죠.”
진양이 차갑게 한마디 던졌다.
교룡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녀석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날카로운 눈빛으로 진양을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