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워싱턴DC, 낭만의 도시 (2)
“위원장님…… 협조 얻어 냈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국장은 이 소식을 바로 한국에 전달했다.
-진짜야?
전화기 너머로 흥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한국 시간으론 새벽일 텐데 밤을 지새운 게 분명하다.
-더 자세히 말해 봐. 어떻게 된 거야?
국장은 한참이나 전화기를 붙잡고 그간의 일을 모두 보고했다.
베이크 국장이 약속을 파투 낸 일, 그와 칸 위원장의 신경전, 그리고 막판 타결. 한 편의 드라마 같았던 일정이다.
-다행이구먼. 진짜로 다행이야.
“네. 진짜로 하늘이 도왔습니다. 현재 여의도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투표 통과되면 끝일세. 발의는 다 끝났어.
여론 동향을 봤을 때 국회도 인준 도장을 얼른 찍을 것이다.
“그래도 국회가 도와줘서 참 다행입니다.”
-다행은 개뿔. 밥값도 못 하는 버러지들이야.
“예?”
-협상 잘 안 풀릴 것 같으니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해 대지 않나. 그냥 15% 수수료로 합의하라고. 내가 버텼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그냥 합의해 버렸을 놈들이야.
위원장은 국회에 똥물을 끼얹고 싶었다.
법안 협조가 잘 이뤄질 것 같지 않자, 고글과 합의하라고 종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삼모사 아닌가.
고글은 당연히 이 수익 모델을 확대시킬 것이다. 법안으로 막아 놓지 않으면 추후에도 스타트업들이 계속 시달릴 게 빤하다.
-살다 살다 세비가 이렇게 아까운 적은 처음이다. 아마 이거 통과시키면 또 갖은 생색은 다 낼걸.
3년 동안 계류시켰단 사실은 쏙 빼고 대대적으로 생색을 내겠지.
-말을 말자. 그놈들 욕하려면 하루론 부족하다. 나도 금배지들 씹어 댈 처지는 아니지. 자네가 고생 제일 많았어. 이거 설득하는 거 쉽지 않았을 텐데.
“고생은 무슨요. 저도 사실상 뒷짐 지고 서 있었습니다.”
-뭐?
“FTC에 넘긴 자료, 그리고 연방거래위원장을 설득한 일. 모두 우리 말단이 처리했거든요.”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이 얘기 다 드리려면 저도 시간 부족할 것 같습니다. 한국 가서 보고드리죠.”
보고를 마치니 가셨던 흥분이 다시 찾아왔다.
인앱 결제 금지법.
칸 위원장 말대로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법안이다. 고글이 수익 모델을 확장했듯 규제안도 점점 확장해 나갈 것이다. 빅테크들은 이미 글로벌 경제에서 공공의 적이다.
그때마다 한국에서 첫 시행된 이 법이 기준점이 될 것이다.
새삼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나저나 그놈은…….’
홍 국장은 준철을 떠올리며 웃음을 지었다.
이제 막 부임한 행시 출신 사무관이라고 했나?
단독보고서를 올릴 때부터 놈이 얼마나 독특한 놈인지 알고 있었다. 근데 왜 잊고 있었을까. 칸 위원장 앞에서 빅테크 규제론을 외치며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게 이놈이었다는 걸.
“웃기는 놈이군.”
서른도 안 된 풋내기한테 진한 연륜이 느껴졌다.
어려운 사람 앞에서도 주눅 든 기색 없이 할 말 다 하는 게 여간내기가 아니다. 이놈은 일반 팀장급의 수준을 한참이나 넘어서 있는 놈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
[속보 – 국회에서 법안 재발의] [세계 최초, 인앱 결제 금지법 시행되나?] [여·야 법안에 큰 이견 없어]시시각각 올라오는 기사가 축포를 터트리는 것 같다.
FTC에게 협조를 얻어 내자 국회는 바로 규제안을 본회의에 올렸다.
몸 사리기 바빴던 양당 의원들은 확성기를 들고 다니며 법안을 홍보했다.
-해당 법안은 ‘기회의 평등’이란 저희 여당의 국정 철학과 일맥상통합니다. 거대 시장을 독점한 플랫폼이 신생 기업들의 기회를 박탈하는 불행이 더 이상 반복되어선 안 됩니다. 아울러
다른 형식의 독과점은 없었는지 업계 전반을 검토하겠습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집권 여당은 무얼 했나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시장 질서는 정부가 방관한다고 지켜지지 않습니다. 다가오는 4차산업 시대는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기회의 평등을 보장해야 합니다.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자 언론사들도 기대감에 부풀어 후속 보도를 쏟아 냈다.
[장기 체류 법안이 이렇게 진행되는 건 드문 일] [막판에 부결될 가능성 아직 배제할 수 없어] [관건은 미국. 물밑에서 합의됐나?]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외신들도 들썩였다.
『해당 소식은 한국 특파원 알랭 기자가 전합니다. 알랭?』
『예. 한국 국회입니다.』
『현재 그쪽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많은 진통 끝에 한국 국회가 결국 인앱 결제 금지법을 발의했습니다. 현지 신문사들은 여야에 큰 이견이 없다 전하는데요. 사안이 사안인 만큼 오래 끌지 않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국회는 각성하라!
-스타트업들의 생존권 보장하라!
『리암 기자. 해당 법안은 우리 독일에도 없는 법안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EU에도 아직 없는 법안이죠. 평소 한국은 선제적으로 법안을 만드는 나라가 아니었기에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법안 특성상 국제사회에 미치는 영향 또한 대단할 텐데요.』
『네. 현재 한국에 발의된 인앱 금지법은 수수료 부과를 전면 금지하는 초강력 규제안입니다. 만약 통과되면 각국의 법안 발의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인앱 수수료 30%! 피해 갈 업종이 없다!
-사이버 인플레이션!
『진짜로 통과될 가능성이 있는 겁니까?』
『다만 한국에선 입법 논의만 활발하다 결국 무산된 사례가 무척 많았습니다. 관건은 미국이죠. 자국 기업의 피해가 분명한 사안에 미국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아직 미지숩니다.』
『만약 미국이 비토(거부권) 할 경우엔?』
『한국은 외교 통상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미국과 밀접한 관계입니다. 미국에서 반대 의사를 표하면 한국에서 한발 물러설 가능성이 더 큽니다.』
하지만 그 우려를 단숨에 불식시키는 발표가 나왔다.
-세계 각국의 의사결정을 존중한다. 이제 더 이상 시장 질서는 정부의 방관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한국에서 발의된 규제안은 여러 의미에서 시사점이 있는 법안이다.
연방거래위원회가 이례적으로 지지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오 마이 갓! 그럼 한국이 미국도 설득했다는 거야?
FTC의 성명 발표 이후 외신들은 여의도 상황을 매일 속보로 방영했다.
한국에서 이 법이 통과된다면 이젠 자국에서도 통과될 것이다.
***
“얘기를…… 좀 나누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대세가 기울었다는 건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엉덩이 무겁기로 소문난 지사장이 임원단을 이끌고 공정위에 방문한 것이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위원장이 직접 나와 이들을 맞았다.
“말씀하시죠.”
“저희의 욕심이 조금 과했던 부분이 있는 것 같군요. 서로 건설적인 얘기를 하며 합의점을 찾고 싶습니다.”
물에 빠진 생쥐처럼 수척해진 얼굴들이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미국도 손절했으니 절망스러울 것이다.
“나는 추상적인 말 잘 못 알아듣습니다. 구체적으로 원하는 걸 말씀하시죠.”
“……일전에 발표한 인앱 수수료. 모두 철회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모습에 속아 넘어가선 안 된다.
틈을 보여 주면 또다시 비수를 꽂을 놈들 아닌가.
“아무래도 한국에서 첫 사례를 쓴다는 게 많이 걸리는 모양이죠?”
“…….”
“외신들이 주목하고 있는 법안인 만큼 국제사회에 미칠 파장이 크니까.”
“그런 걸 계산해서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저희 내부에서 너무 급진적으로 진행했고, 착오도 많았어요. 국민들께 사죄 성명 내고 이에 대한 책임도 묻겠습니다.”
위원장은 헛웃음이 나왔다.
모든 원흉은 자긴데 누구한테 책임을 묻겠다는 건가. 또다시 욕받이 대표에게 뒤집어씌우겠다는 뜻 아닌가.
“당연히 대표 및 사장단의 일괄 사태까지 발표할 겁니다. 아무쪼록 송구하게 됐습니다.”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멘트다.
“이준철 팀장.”
“예.”
“스타트업 대표들이 고글 김현석 대표님을 뭐라 부른다고?”
“예?”
“말해 봐. 자네가 직접 면담 다녔잖아.”
“……바지사장, 욕받이 사장이요.”
“왜 그렇게 부르지?”
“권한은 없으면서 책임만 있는 자리라 들었습니다. 이번 수수료 문제도 모두 지사장의 지시일 것이라는 게 업계 공통된 진술이었습니다.”
위원장님도 참 고약하시다.
자기가 직접 하고 싶은 말을 밑에 사람더러 시키다니.
하긴 이쪽은 체면을 유지해야 하는 자리지.
“그럼 옷 벗어야 할 사람은 따로 있겠구먼.”
지사장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바지사장 김 대표는 아예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국장님은 슬며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무얼 한 줄 아쇼? 미국까지 찾아가서 위원장을 설득하고 왔습니다. 근데 우리가 왜 그랬겠습니까.”
“…….”
“지금 우리가 법안 통과 안 시키면 결국 당신들은 나중에 수수료 올릴 테니까. 그래서 아예 법안으로 못 박아 둔 거요.”
“아닙니다. 그건 약속드립니다.”
“우린 더 이상 고글의 배려에 속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국회에서 논의되는 얘기는 못 막아요. 이거 다 입법조사처에서 만든 일인데.”
위원장님이 일어나자 그도 냉큼 따라 일어났다.
“시장 생태계 하나만 생각해 주십쇼. 이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앱 마켓 활성화를 막는 과한 규젭니다.”
“글쎄요. 장기적으로 봐도 좋은 법안 같군요. 스타트업 대표들이 더 구속받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으니. 별개로 당신들이 말한 임원 사퇴는 지키시길 바랍니다.”
“그, 그게 무슨!”
“당신들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이런 건 우리도 좀 본보기를 만들어야겠습니다.”
독과점 규제에 대한 훌륭한 본보기가 될 것이다.
나중에 행시 문제에 출제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타협은? 당연히 없다. 놈들의 야욕을 다 확인했는데, 약속이 무슨 소용인가.
피도 눈물도 없어야 한다. 놈들이 그랬듯.
위원장은 자리를 뜨다 슬며시 말했다.
“아, 그리고 앞으로 지사장님께선 엉덩이가 좀 가벼워야 할게요.”
“…….”
“한국 사람들도 물론 국회의원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국정감사까지 아무나 내밀어도 되는 건 아니요. 그건 국민들을 대표해 나가는 자리 아닙니까? 한국에서 사업하고 싶으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은 보여 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