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01
101화
근신…… (1)
-본사는 최근 불거진 논란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합니다. 저희에게도 경영 방식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중략…… 이제 더 이상 혁신은 가라지(garage, 창고)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좋은 기업 환경은 선발 주자들의 투자와 배려에서 나옵니다. 모든 수수료를 유예토록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대단히 송구스럽습니다.
떠들썩했던 인앱 수수료는 고글의 임원 사퇴안까지 나오고 나서야 수그러들었다.
사실상 항복 성명인데 공정위에겐 매우 거슬리는 발표였다.
“수수료를 철회하는 게 아니라 유예한다고?”
“좋은 기업 환경은 선발 주자들의 배려?”
제임스 리의 성명은 참으로 애매했다.
사과인 것 같지도 않고, 반성인 것 같지도 않고, 철회인 것 같지도 않았다.
“꼬리 내리는 척하면서 슬쩍 여지를 남겨 둔 거지.”
“두고 봐, 이놈들은 분명 또 덤빈다.”
규제안은 성공리에 통과됐지만 이건 시작이다. 놈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규제안을 없애려 들 것이다.
물론 그건 그때 가서 다시 싸워야 할 문제다.
제임스 리의 사퇴안 발표와 함께 인앱 TF팀도 해단되었다.
해단식은 거창한 모임 없이 각 부서별로 금일봉이 전달되며 마무리되었다.
비록 그 액수가 이룩한 성과에 비하면 한참 모자랐지만 불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가 안 될 거라 했던, 외신들마저 경악했던 법안이 통과되지 않았나.
이처럼 뿌듯했던 조사도 드물다.
공정위 내부에선 그 뒷얘기가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홍 국장님이 퇴짜 맞고 며칠을 더 기다렸대. FTC가 약속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재스케줄도 안 잡아 줬다니까.”
“굴욕도 이런 굴욕이 없네요. 근데 어떻게 만났답니까?”
“출국하기 하루 전. 딱 그날 약속 잡았는데 연방거래위원장이 예고도 없이 왔다는 거야.”
김 반장은 늘 소문의 중심이었다.
“그 앞에서 이 팀장님이 그러더래.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고글이 이젠 혁신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이러니까 배겨? 칸 위원장 그 양반도 태생이 규제론잔데.”
“그럼 우리 팀장님 또 한 건 한 거예요?”
“그래. 아주 홍 국장님 입이 귀에 걸렸더라. 이 얘기 전부 다 김성일 과장이 직접 푼 무용담이야.”
김성일 과장은 돌아온 그 길로 무용담을 풀고 다녔다.
어쩐지 FTC가 왜 이례적으로 지지 성명까지 내 주나 했더니. 그런 내막이 있었구먼.
“캬-!”
“퍄-!”
“햐-!”
무용담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자기들 팀장이니, 남다른 자부심이 느껴졌다.
사실 준철이 올린 단독보고서도 다 팀원들이 조사한 자료다. 그 무용담이 다 자신들의 얘기로 들렸다.
“하여간 인물이긴 인물이야. 또 거기서도 눈도장을 찍었어.”
“왜 아니래요. 거기에 팀장급 데려간 것도 이례적인 일이잖아.”
“솔직히 그건 이 팀장 당연히 데려가야지. 그 자료 조사한 게 다 우리 팀인데.”
“맞아, 맞아.”
“어, 팀장님.”
느지막이 출근한 준철은 눈을 돌렸다.
“무슨 얘길 그렇게 재밌게 하세요.”
“아주 재미난 얘기죠. 흐흐.”
“뭔데요.”
“에이. 다 알면서. 그러지 말고 이제 소감 좀 들어 봅시다.”
“소감요?”
“재밌는 썰 많더만요. 미국 가서 얼마나 공적을 세운 겁니까? 홍 국장님이 시장감시국으로 데려가네 마네 얘기까지 나오던데, 가실 겁니까?”
뭔 얘기인가 했더니, 그 얘기였구먼.
“……그런 적 없어요. 국·과장님들 가방모찌 하고 돌아왔습니다.”
“에이- 이미 김 과장님이 다 풀고 다녔어요. 막 출국 하루 전날 만나고 그랬다면서요.”
준철은 머리를 긁적였다.
낯간지러워서 얘기 꺼내려 하지 않았는데. 그새를 못 참고 김성일 과장이 무용담을 늘어놨나 보다.
“그게 자랑이냐?”
하지만 뿌듯한 기분도 잠시.
오경철 과장이 등장하며 산통을 깼다.
“과, 과장님.”
“뭐 해? 일들 끝났으면 얼른 서류 작업해야지. 법 통과됐다고 보고서 안 만들 거야?”
“아닙니다. 마침 하려 했습니다.”
“오늘까지 올려. 그리고 이 팀장은 나 좀 보자.”
오 과장은 날 선 목소리로 준철을 불러냈다. 과장실로 가는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과장실에 도착했을 때, 그가 불호령을 쳤다.
“이 팀장. 너 나한테 할 말 있지?”
“죄송합니다.”
“뭐가?”
“단독보고서요…… TF팀에서 제가 해선 안 될 돌발 행동을 했습니다.”
오 과장은 거칠게 책상을 치며 다시 호통쳤다.
“그게 얼마나 잘못된 행동인지 알긴 알아?”
목적이 좋다곤 하나 조직 사회에서는 용인되어선 안 될 일이다.
“일이 잘 풀렸으니 망정이지, 안 됐으면 너 혼자 독박 쓰는 거야. 어쩌자고 위험한 보고서를 덜컥덜컥 올려?”
“그게 사실 사정이 좀 있긴 했는데.”
“뭐? 구현수 팀장이 너 왕따시킨 거? 업무 배제하고 잡무만 시킨 거?”
아이고.
과장님도 사정은 다 알고 계셨구나.
“그러면 나한테 와서 하소연을 해야지! 욱한다고 거기서 단독으로 보고서를 올려 버려?”
“…….”
“칭찬받을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 너 일 이런 식으로 하면 앞으로 다 너랑 일 안 하려 해. 자기 공적 세우려고 보고 체계 무시했다, 이게 조직 세계야. 알아?”
“알고 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사실 이런 꾸짖음은 준철도 각오한 일이었다.
누구보다 보고 체계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으니까.
이런 돌발 행동을 비호해 준다면 앞으로 TF팀은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공적 한번 세워 보겠다고 실무진 눈이 돌아갈 것이다.
“정말 반성하겠습니다.”
“나가 봐. 당분간 너한텐 큰 사건 안 줄 거야. 제보 올라오는 거 검토하고, 큰 건이다 싶으면 전부 나한테 가져와. 이거 휴가가 아니라 근신이다.”
“예, 알겠습니다.”
준철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가자 오 과장이 다시 불렀다.
“그건 그거고. 고생은 많았다.”
“……예?”
“이번 인앱 결제 통과의 주역은 너야. 홍 국장님이 입이 닳도록 칭찬하시더라. 시장감시국에 보내면 키워 준다 뭐라나.”
“흐흐.”
“웃지 마 인마. 당분간은 국물도 없으니까.”
“넵,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놈이 나가자 오 과장은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속이 없는 거야 욕심이 없는 거야. 쯧쯧-.”
웃기는 놈이다. 서운할 법도 한데 전혀 티를 안 낸다. 애초에 이런 각오까지 다 하고 단독보고서를 올린 건가?
그럼 자신한테 남는 게 없을 텐데.
“이러면 안 되지.”
오 과장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지 안 풀렸으면 독박 쓸 뻔한 사건이다. 공직 생활 하는 내내 운이 좋을 순 없다. 저 버릇은 지금 고치는 게 맞다.
생각을 정리하며 오 과장은 전화기를 들었다.
“어, 난데. 당분간 이준철 팀장한테 큰 사건 주지 마. 소액 사건이나 민원 들어온 거 있으면 그것만 넘겨. 아니, 내가 별도의 지시 내리기 전까지.”
***
기분이 묘하다.
이게 진정한 공무원일까?
근신임을 강조한 오 과장 말대로 종합팀은 한동안 큰 사건을 구경할 수 없었다.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제보는 시시콜콜한 일상 얘기들이었다.
-원청 관계자가 자꾸 반말을 합니다. 제 아들뻘인데.
-핸드폰 개통할 때마다 자꾸 이상한 앱을 의무적으로 쓰래요.
-요즘 배달비가 너무 올랐어요. 이거 독과점 아닙니까?
라디오 사연처럼 접수된 제보는 하루에 2천 건이 넘었다.
준철은 모든 사연을 읽고 하나하나 답변을 해 줘야 하는 ‘국민지킴E’로 활동하고 있었다.
“반장님. 이거 원청에서 잔금 결제를 안 해 준다고 신고가 들어왔는데 어떻게 할까요.”
“얼마짜린데?”
“800요. 벌써 신고가 한 네 번 올라온 것 같습니다.”
“800이면 그냥 민사로 처리하라 그래. 아무리 우리가 널널해도 어떻게 잔금 받는 것까지 도와주냐.”
“그건 그렇죠.”
반원들도 곧 이 업무에 적응했고, 여유로운 일상을 누렸다.
“벌써 점심이구먼. 나 짜장면.”
“또요?”
“일이 심심하니 자극적인 맛이 땡기네. 내가 쏜다. 박 조사관은 곱빼기?”
“전 그냥 백반 먹을래요.”
하루에 가장 큰 고민은 점심 메뉴뿐이었다.
“팀장님은 뭐 드실래요?”
김 반장이 묻자 준철이 답했다.
“저는 오늘 선약이 있어서.”
“점심에요?”
“네. 잠깐 만나고 오겠습니다.”
“혹시 뭐 청춘사업 이런 거 아닙니까. 흐흐. 요즘 소문이 많던데.”
“……무슨 소문요.”
“왜 있잖아요. 시장감시국 신소희 팀장님. 이 팀장님이랑 스타트업 면담 다니면서 가까워졌다고 아주 난리도 아니던데요.”
이럴 때 보면 공무원이나 샐러리맨이나 똑같다.
젊은 애들만 보면 로맨스 소설 한 편이 막 떠오르나 보다.
“그런 거 아니에요. 관계 부처 사람하고 점심 미팅이 잡혔어요.”
“지금 딱히 일도 없는데 무슨 관계 부처요?”
“다녀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준철은 그리 말하고 잰걸음으로 도망쳤다.
***
“이 팀장님!”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신소희 팀장이 소리를 지르며 반겼다.
준철은 얼굴을 붉히며 자리로 갔다.
“일찍 오셨네요. 근데 굳이 점심까지 안 해도 되는데.”
“아이고- 내가 할 소리. 저녁 사겠다는데 왜 꼭 점심을 먹재요?”
“……제가 요즘 업무가 많이 바빠서.”
“아- 국민지킴E? 그거 많이 바쁘긴 하죠.”
살짝 짓는 미소가 꼭 비웃음처럼 들린다.
“얘기 들었어요. 단독보고서 때문에 근신 같은 휴가를 받으셨다면서요?”
“네…… 뭐.”
“그래도 너무하다. 이번 인앱 규제안 전부 이 팀장님이 공 세운 건데.”
“괜찮아요. 덕분에 일도 편하고 좋아요.”
“진짜? 내가 아는 이 팀장님은 지금쯤 몸이 막 근질근질할 사람인데.”
준철은 웃음이 났다.
그것도 혈기왕성할 때 얘기지.
50 넘어서 이런 휴가를 받으니 오 과장이 이토록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저희 좀 조심해야 할 것 같아요.”
“조심이라뇨. 무슨?”
“회사에서 조금 이상한 소문이 돈다는군요. 제가 신 팀장님하고 스타트업 면담 같이 다녀서.”
그녀가 푸흡 웃었다.
“아이참. 동료들끼리 밥 한 끼 먹는 게 뭐 어떻다고. 나 그렇게 빡빡한 사람 아니에요. 그리고 뭐 또 소문 좀 나면 어때요?”
어떻긴 이 사람아.
그게 평생을 따라다니는 족쇄인데!
“앉으세요. 뭐 드시겠어요.”
“전 그냥 대충 이거 먹겠습니다.”
메뉴 선정이 다 끝나자 준철이 물었다.
“근데 왜 저를 따로 보자 하신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