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더 큰 힘 (1)
“사람들이 대부업에서 돈 빌렸다 하면 인생 막살았다고 보더군요.”
대부업 대출자와의 면담은 따로 진행되었다.
1금융권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이들은 목소리를 높이지도,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않았다. 냉담한 반응은 체념에서 나온 반응 같았다.
“하기사. 나도 처음엔 그런 사람들 이해가 안 갔으니까.”
“아닙니다.”
“저는 신용 등급도 1등급에 안정적인 직장도 있습니다. 대출도 주담대라 은행 골라 가면서 알아봤죠.”
예상외의 대답이었다.
그 정도 스펙이면 1금융권도 충분히 이용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근데 계약한 집이 하필 투기과열지구로 묶이지 않았겠습니까. 이사 날짜까지 잡아 놨는데 갑자기 대출 못 해 준답니다.”
남자는 그때 그 심정이 생각났는지 얼굴이 금세 굳어 버렸다.
“근데 어떡합니까. 이미 계약금 넘겼고 전세는 다 끝났는데.”
“……그래서 대부업을 찾으셨군요.”
“네. 2금융권에서 땡길 수 있는 돈 다 땡기고, 대부업에서 신용 대출까지 받았습니다. 무섭더군요. 그거 다 끝나고 나니 한순간에 5등급으로 내려가 있었어요.”
그리 말하며 그가 무심하게 서류 하나를 건넸다.
대출 계약서였는데 준철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금리 11%.
1금융권의 세 배가 넘는 이율 아닌가.
그나마 그는 이 무리에서 나은 축에 속했다. 나머지 사람들의 이율은 모두 법정금리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다.
“사실 저희들은 진짜로 숨이 턱까지 차오릅니다. 은행 상환금 갚고 나면 그야말로 숨만 쉬고 살아야 하는 돈 남아요.”
“네.”
“그래도 금리인하권 있다기에 와이프도 다시 일하고 신용도 많이 회복했습니다. 근데 이걸 한번 보십쇼.”
그가 뒷장을 넘겼고 고딕체로 강조한 한 문구가 보였다.
[금리인하권에 해당 없음]“그땐 이게 있는지도 몰랐는데, 계약서에 이 문구가 버젓이 있더군요.”
“……대부업에서 이런 문구를 넣었다고요?”
“네. 문의해 보니 그거 어차피 1금융권도 안 지킨다 하더군요. 신용불량자가 1등급이 되는 정도가 아닌 한 금리인하에 변화 없다고.”
“근데 선생님…… 저희 같은 사람들은 정말 해당 사항이 없는 겁니까? 계약서 이렇게 작성하면 끝난 겁니까?”
준철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국가에서 보장한 권리는 절대로 계약서에 포기 못 합니다.”
“근데…… 그쪽에 문의해 보니 당사자 간에 이미 알고 계약했기 때문에 문제 될 거 없다는데…….”
“거짓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법정금리 어기는 대출 계약도 합의할 수 있어요. 대부업에서 이런 계약서를 들이밀었다면 그 자체로 징계감입니다.”
징계라는 말을 듣자 이들 얼굴에도 생기가 돌았다.
“선생님. 그럼 저희도 이거 신청할 수 있습니까?”
“지금 당장은 무리겠네요. 그들 말대로 이건 1금융권도 지키지 않으니.”
“그럼 1금융권더러 빨리 지키게 할 수 없습니까?”
“맞아요. 저희는 1, 2%가 진짜 절실한 사람들이에요.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말문이 막히는 준철이었다.
애석하지만 그건 금융당국이 나선다고 해결할 수가 없는 문제네요…… 이런 말이 나와야 하는데 이번에도 용기가 나오지 않았다.
아니, 그건 사람이 할 짓이 못됐다.
공정위, 금감원, 금융위가 축구공 차듯 서로 떠넘기면 뭐 언젠간 국회로 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채인 이들은 누가 구제해 준단 말인가.
“제가 냉정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엄밀히 말해 이건 공정위가 해결할 수 없습니다. 금감원도 마찬가지고요.”
“아, 아니 은행도 금융기관은 무서워한다 들었는데…….”
“지금 그들은 합법적인 억지를 부리는 거거든요. 밝히라는 규정 없으니 안 밝힌다.”
“하면…… 정말 방법이 없는 겁니까.”
사정하듯 묻자 준철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딱 하나가 있긴 한데…… 솔직히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
미련했다.
희망의 여지를 남기는 게 아닌데.
안타까운 사람들의 사연을 면전에서 들은 게 화근인 것 같다.
“반장님. 오늘 면담 내용 정리해서 은행에 좀 보내 주세요.”
“소명하라 하시게요? 어차피 안 들을 텐데.”
“그래도 한번 해 봐야죠.”
“……알겠습니다. 그럼 어디부터 넣을까요.”
“1금융권부터 해 주세요.”
반원들은 곧 면담 내용을 서류로 만들었다. -요구함, -공개 바람 같은 명령어는 하나도 안 쓰고 협조해 주길 부탁한다고 간곡히 뜻을 전달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이 되었을 때.
이라는 성의도 없는 답변이 줄이어 도착했다.
은행끼리 자르고 붙인 것인지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답변들이었다.
‘오케이 이렇게 나오시겠다.’
법만 지키고 상식은 지키지 않는 놈들.
성의 없는 답변을 받아 보니 없던 투지심이 끓어오른다.
‘해 보자 그럼.’
준철은 그 길로 다시 자료 조사에 들어갔다.
송 팀장에게 한 번 여과되어 받은 자료로는 부족했다. 놈들의 대화를 들으니 업계 실태가 더욱 막장 수준일 것 같았다.
“옌장.”
애석하게 불안한 직감은 정확히 주효했다.
2금융권의 금리인하 승인률은 채 10%도 되지 않았고, 대부업들은 아예 계약서에 안 된다고 명시해 놨다.
법이 대체 얼마나 우스웠을까.
‘우습게 볼 만하지. 명확한 법이 없는데. 역시나…… 그 방법 말곤 없어.’
복사기 돌아가는 소리가 부지런히 울릴 때 반원들이 한둘 출근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아, 예. 좋은 아침입니다. 근데 팀장님. 언제 출근하신 겁니까?”
“방금 왔습니다.”
“……방금 왔는데 서류를 저렇게나 복사하셨어요?”
초가을 날씨가 무색하리만치 사무실은 후끈후끈 더웠다. 복사기를 얼마나 돌려 댔는지 아예 여름이 된 것 같았다.
“무슨 자룐데요.”
“별건 아니고요. 은행업계 실태 조사 자료예요.”
그리 말하며 준철이 한 서류를 가리켰다.
“아, 반장님. 이 자료 좀 조사해 주세요.”
“이게 뭐죠?”
“찾아봤는데 대부업들 자료는 구하기가 쉽지 않네요. 연락해서 이 양식에 맞춰 자료 제출하라 해 주십쇼.”
범상치 않은 오더에 반원들 얼굴이 굳어졌다.
“팀장님! 이거 단순히 실태 조사 아니죠. 이거 어디다 보내실 거죠?”
“맞네 맞아! 똑같은 자료를 30부나 복사했어.”
이쯤 했으니 더 이상 감출 수도 없었다.
“네. 이거 여의도에 보낼 생각입니다.”
“여의도라면…… 설마 국회요?”
“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끼리 뭐 한다고 될 것 같지 않네요.”
김 반장이 말을 더듬었다.
“구, 국회 누구한테 보내실 건데요. 설마 뭐 이거 가지고 국감이라도 열어 달라 하시게요?”
“정기국회도 끝났는데 그건 무리지 싶어요.”
“그럼요?”
“그냥 뜻 있는 의원님 찾아보자는 거죠.”
수사기관이 아무리 들러붙어도 금배지 하나의 위력을 이길 순 없다.
만약 국회에서 나서 준다면 판도가 달라질 수 있다. 그들이 입법시키겠다고 겁만 줘도 은행들의 성의 없는 태도가 조금은 바뀔 거다.
“좀…… 신중하게 생각해 보시죠.”
“우리 단독보고서 때문에 근신받은 거잖아요.”
“이런 공문 보내도 어차피 보좌진 선에서 잘려요. 귀찮은 사건에 절대 연루되고 싶지 않아 하는 놈인데.”
그리 성화를 부려봤지만 준철은 이미 눈이 돌아간 상태였다.
“국회에서 말 안 들으면 그쪽도 재미없을 겁니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이 자료 그대로 언론에 뿌릴 거거든요. 우린 해결할 의지가 있으나 이 모든 원흉인 국회가 나서지 않는다. 그럼 서로 볼 만할 겁니다.”
반원들은 할 말을 잃었다.
이 젊은 팀장은 국회의원까지도 협박할 생각인가 보다.
***
명절이 끝난 여의도는 1년에 며칠 안 되는 휴식기였다.
여야 최대 매치인 국감이 끝났으니 당분간 싸울 일도 없었다.
국민들 관심이 잠깐 멀어지는 달콤한 휴가였지만 초선의원 박성택에게는 분통 터지는 시월이었다.
“…….”
존재감 한번 뽐내 보지 못하고 국감이 끝나 버리지 않았나.
그가 꿈꾸던 의원은 집권 여당을 몰아붙이고, 기업 총수들에게 호통치는 멋진 열사였다. 하지만 초선의원의 현실은 자료 배달이나 하는 보좌관에 지나지 않았다.
이슈가 될 만한 질문들은 모두 중진들이 독점했으며, 자신은 이따금 물컵 옮길 때나 카메라를 받을 수 있었다.
“이거…… 출처가 어디라고요?”
그러던 차에 도착한 공정위의 러브레터는 전율을 일으켰다.
“공정위입니다. 이준철 팀장이란 사람인데 전화해 보니 초임 같았습니다.”
은행들의 금리인하권 묵살.
제목만 들어도 헤드라인이 쓱 그려지는 그림이다.
논란 끝에 통과된 금리인하요구권이 현실에서 잘 기능하지 못한단다. 법만 통과되고 구체적인 규정이 없어서 은행이 자의대로 심사를 탈락시킨다 한다.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는 눈에 보일 정도였다.
시행 초기만 해도 금리인하 승인률은 60%를 넘었는데, 잠잠해지니 곧 반 토막이 나 버렸다.
“이 단체는 뭐라는 겁니까. 금사모?”
“은행에서 금리 인하 거부당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 같습니다.”
자료를 검토할수록 전율이 더욱 거세게 일었다.
중진들이 가끔 ‘각본 좋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바로 이런 케이스구나!
세상에 빚이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고 언론사만 붙어 주면 일약 스타덤에 오를 것 같았다.
비례대표 출신이라는 자신의 약점을 한 방에 상쇄시켜 줄 만한 소스다.
“이걸 왜 나한테 보냈을까요.”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자면 우리한테만 보낸 게 아닐 겁니다. 아마 야당 초선들에게는 전부 다 보냈을 겁니다.”
보좌관 눈에는 러브레터가 아니라 행운의 편지로 보였다.
수사기관들이 즐겨 쓰는 악질수법 아닌가.
아마 언론에는 ‘xx의원이 공정위에 요구한 자료에 의하면……’이라고 나갈 것이다. ‘xx’에는 얻어걸린 놈이 들어갈 것이고 박성택은 그들 중 하나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는 박성택의 귀에 다르게 들렸다.
“그러니까 먼저 먹는 게 임자다?”
“박 의원님. 이거 설마 해 보실 생각입니까.”
“안 될 이유가 있습니까. 기획과 내용 모두 좋던데.”
“아무리 그래도 겨우 신입 사무관이 보낸 보고서입니다. 이건 누가 봐도 우릴 이용하겠다는 거죠.”
“그런 부분을 떠나 내용 자체는 상당히 공익적이네요. 뭐 이런 일에는 기꺼이 이용당해 줘야죠.”
보좌관은 박성택을 흘겨봤다.
공익은 얼어 죽을. 이슈가 될 만한 사건이니 군침이 도는 거겠지.
하지만 더 이상 만류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비례대표 꼬리표를 떼고 싶어 하는 그의 강렬한 욕망을 늘 옆에서 지켜봐 왔던 터였다.
“일단 공정위를 한번 만나는 보겠습니다. 자리 잡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