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더 큰 힘 (2)
전직 변호사였던 40대 의원.
비례대표 출신이어도 의원은 의원인가 보다.
“처음 뵙겠습니다. 공정위 이준철 팀장이라고 합니다.”
늘 건네는 인사지만 오늘은 사뭇 다른 긴장감이 든다.
“박성택이오.”
그는 고고한 얼굴로 앉아 준철을 쓱 훑었다.
뭐 건설업계에 근무하면서 금배지를 한두 번 만나 봤겠냐만 이 자는 보통 밥맛이 아니었다.
심드렁한 얼굴로 무슨 원숭이 구경하듯 본다.
‘초선에 비례대표면 당의 거수기구먼, 무슨…….’
준철은 본심과 달리 영업사원 미소를 지었다.
“먼저 현안에 대해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무로 바쁘신 줄은 알지만…….”
“인사치레는 그쯤 합시다. 나한테만 보낸 자료가 아니란 건 아니까. 그래도 쉬이 넘길 얘긴 아닌 것 같아서 보자 한 겁니다.”
“아, 예.”
“요점부터 들어 봅시다. 은행한테 원하는 게 뭐요.”
준철은 침을 꿀꺽 삼키고 답했다.
“금리인하 내부기준, 공개입니다.”
“그건 은행들의 대외비라 들었습니다만?”
“변명입니다. 인하 기준을 공개 안 하면 은행 마음대로 악용할 수 있습니다.”
“아직 정착 단계인 법안 아니요. 기업들에게도 적응 기간을 줘야지.”
“적응 기간이면 수용률이 차차 높아져야 하는데, 지금은 되레 역주행을 하고 있습니다.”
신중한 걸까 아니면 떠보는 걸까?
이미 다 아는 내용일 텐데 같은 얘기만 되풀이다.
이거다 하는 확신이 아직 없는 것일까?
“의원님. 혹시 제가 따로 확인시켜 드릴 내용이 있는지요.”
“나도 법조계 출신이라 잘 아는데, 지금 공정위의 요구가 무리라는 거 알지요?”
그는 뜸 들이다가 마저 말을 이었다.
“은행법엔 이런 자료를 공개하란 내용이 없소. 당신들이 나한테 이런 부탁을 한 이유도 법으론 안 될 것 같으니 힘으로 누르고 싶다 이거 아니요.”
“아닙니다. 언젠간 터질 사건 의원님이 제일 먼저 알아보신 겁니다.”
“뭐?”
“가계 부채 3천조 시대에 금리는 오를 일만 남았습니다. 곳곳에서 아우성인데 은행들은 인하에 있어선 인색합니다. 오히려 아직까지 안 터진 게 이상한 겁니다.”
가계 부채 3천조.
젊은 놈이 한 말 중 가장 구미가 당기는 말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에 빚 없는 사람이 없는데 지금껏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는 말 아닌가.
“비단 이건 1금융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대부업들은 문제가 더 심각하죠.”
“대부……업?”
“이쪽은 아예 금리인하권에 해당 없음이란 조항까지 만들었습니다. 국가에서 보장한 법을 자의대로 없앤 거죠.”
“아니 무슨 그런 경우가.”
“그만큼 이 법안이 기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 3금융은 인하 수용률이 10%대도 되지 않습니다.”
박성택은 궁둥이가 들썩거렸다.
건드려 보고 싶긴 한데 묘하게 찝찝했던 한 가지, 바로 명분이 나왔기 때문이다.
사실 금리인하권 자체가 저신용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법안이었다.
1금융권 사람들이야 고작 1-2%의 인하가 전부지만, 저신용자들은 그 몇 배나 되는 이자를 줄일 수 있다.
그들이 신용을 회복해서 금리 부담이 낮아지면 근로의욕도 향상시키고, 각종 보조금도 줄 것이라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계산이었다.
하지만 정착하기도 전에 1금융권들이 산통을 깨고 있었으니. 누가 칼을 잡은들 박수가 터져 나올 만한 일이다.
‘옌장할- 이 좋은 걸 왜 이제 가져와?’
국감 전에 가져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민생 사건이라 카메라 받기에도 좋았을 텐데.
박성택의 경계심이 한순간에 무장해제 됐다.
“듣자 하니 이거 보통 심각한 얘기가 아니군요.”
그는 이 선물을 가져와 준 복덩이가 기특해 죽을 것 같았다.
“1금융권 문제로 시작해서 2, 3금융권 피해자들까지 드러내겠다는 건가요?”
“예. 그렇습니다.”
“젊은 팀장님이 아주 용단을 내리셨군요. 그래서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소.”
“이름만 빌려주십쇼.”
“이름?”
“저희한테 공개적으로 자료를 요청해 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저희도 공개적으로 화답하겠습니다.”
박성택이 흐흐 웃었다.
“이거 무슨 짜고 치는 고스톱 같구먼. 그러니까 공론화 한번 시켜 보자 이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여론 반응 오면 금세 다른 의원님도 가세할 겁니다.”
이건 여론 반응이 안 올 수가 없는 사건이다.
냄새 잘 맡는 놈들은 금세 숟가락 들고 덤벼들 거다.
박성택은 그 사건의 선봉장이 될 생각이 벌써 함박웃음이 나왔다.
“그럼 이렇게 한번 해 봅시다.”
“예. 말씀하십쇼.”
“내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소통 채널로 sns를 운영하고 있어요. 거기에 공개적으로 자료를 요청하면 어떨까? 굳이 기자들 불러 세워 놓고 요란 떨고 싶지 않은데.”
“굉장히 훌륭한 생각 같습니다.”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며 두 사람 얼굴에도 웃음꽃이 폈다.
“근데 이 팀장님. 내가 좀 찝찝한 것도 있는데.”
“말씀하십쇼.”
“뜬금없이 내가 공정위에 자료 요구하는 게 좀 겸연쩍어. 뭐 좀 이렇다 할 만한 건수 없을까요?”
“사실 그것도 하나 준비해 놓은 게 있습니다.”
“흐허허. 준비성이 아주 대단하시네요. 뭡니까?”
“이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해 온 단체가 있습니다. 금사모라고.”
“뭐 금리 인하 거부당한 사람들이었나?”
“예. SNS에 올리시기 전에 이분들 한번 면담하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박성택은 무릎을 탁 쳤다.
“좋네요. 국회의원이 가장 욕먹는 이유 중 하나가 선거 때만 얼굴 비춰서인데.”
“네. 평소에도 민생 사건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는 걸 어필할 수 있죠. 국민들 앞에.”
“흐허허.”
“괜찮으시면 제가 자리를 마련해 볼까요.”
“그럽시다. 당연히 피해자들 만나서 직접 얘기 들어 봐야지.”
대화가 무르익자 박성택이 준철의 어깨를 토탁였다.
“우리 한번 잘해 봅시다. 미력하지만 나도 모든 힘을 다 보태겠소.”
***
[가계 부채 3천조 시대, 그리고 은행]박성택은 금사모와의 면담이 끝나자마자 포문을 열었다.
공정위에 공개적으로 자료를 요구하고, 공정위도 여기 응한 것이다.
여기까진 별 이슈가 되지 않았지만 그가 SNS에 올린 장문의 글은 반응이 달랐다.
-여당의 무능한 경제 정책과 부동산 폭등은 온 국민을 빚쟁이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시작부터 여당의원 출입금지라고 푯말을 박았다.
사실 그는 지면의 절반 이상을 여당 공격에 할애했다. 다음에 나올 문제들이 모두 집권 여당의 무능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치솟는 금리에 밤잠을 설치는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집권 여당은 민생을 파탄시켜 놓았으면서 정작 그들의 신음은 외면합니다.
제가 얼마 전 공정위에 요구한 자료에 의하면, 현재 1금융권의 금리인하 수용률은 채 30%가 되지 않는다 합니다.
은행이 내부규정을 이유로 인하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관인 것은 이 내부규정이 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만약 상식적인 대출 계약이었다면 은행도 인하 기준을 고지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 공정거래법은 이를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갑질 계약이라 말합니다.
(……중략……)
사실 이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이의제기를 해 온 단체가 있습니다. 금리인하권을 거부당한 사람들의 모임, 금사모 회원들입니다.
얼마 전 저는 이분들과 면담을 갖고 그 고충에 대해 전해 들었습니다. 고리대금에 시달리는 한 저신용자의 사연을 들었을 땐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습니다.
금리인하권이 업계에서 작용하지 못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하여 저는 이들을 대표해 금융권에 엄숙히 요청합니다.
금리인하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해당 내용을 고지하십시오.
박성택은 금사모와의 면담 사진까지 올리며 요란법석을 다 떨어 주었다.
팔로우 수천 명도 안 되며, 제목도 촌스러운 이 트윗글은 들판에 불 지핀 것마냥 널리 퍼져 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말이 절반은 사실이었다.
계약한 집이 투기과열지구로 묶이며 2, 3금융권을 이용했던 국민들이 폭증했던 터였다.
법안 홍보도 부족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금리인하권이 있는 줄도 몰랐고.
알고 있던 사람들도 은행들의 심사 문턱을 넘지 못했다.
-나만 거부당한 게 아니야?
-그럼 대체 기준이 뭐야?
커뮤니티에서 슬슬 화제가 되어 가자 준철은 기름을 퍼부었다.
은행권의 만행과 대부업들의 실태를 여과 없이 모두 발표한 것이다.
공론화에 힘입어 숨어 있던 피해 사례가 속출했고, 언론들은 이 반응을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국민들은 분노했다.
법은 만들어졌는데 이를 보완할 제도적 장치가 전무했다.
금리를 인하하면 손해를 보는 건 은행들이다. 한데 이 인하 심사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은행들이다.
-이거 무슨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고 있었네!
-저도 금리인하 거부당한 사람입니다.
신용 등급 향상됐고, 가계 수입 증가했는데 절대 안 들어 주더군요.
?내 담당자는 신용 1등급 찍지 않는 한 원래 변화 없는 거라던데.
?은행마다 들쑥날쑥임. 나도 안 됨.
?나 아는 사람은 악다구니 쓰니까 됐다고 하던데.
?아니, 이게 뭐야?
그중에서도 피해 사례가 속출한 건 대부업체 이용자들이었다.
-저는 대출 계약이 좀 이상합니다.
이게 문제돼서 다시 봤는데…… 제가 계약할 때 금리인하요구 안 하겠다고 서명을 했네요? ㅠ 이럼 전 해당 사안 없나요.
?아이고. 그러니까 대출 계약할 때 약관 잘 읽어 봐야지.
?계약서에 해당 사안 아니라고 표기했으면 현실적으로 무리겠네요.
?뭔 헛소리야! 이건 계약서에 표기한다고 포기 안 됨.
?진짜요……?
?당연한 소리! 국가에서 보장한 권리를 어떻게 포기함? 신용 등급 올랐으면 무조건 신청할 수 있음.
?근데 제 담당자는 대부업체에 해당 안 된다 하는데……
?막장이구먼ㅋㅋㅋ 위법 계약이란 걸 아주 계약서에 명시까지 했어?
?혹시 그 대부업체가 법정금리는 지켰나요?ㅋㅋ 이것도 당사자끼리 합의해 버리면 얼마든 어길 수 있는 법인데.
-금리인하권 내부 기준 반드시 공개해라!
은행들이 이해 당사자인데 이걸 왜 스스로 심사하냐? 규정 안 밝히면 마음대로 악용하는지 누가 알아?
?동감. 공개해라
?공개해!
?이건 차주들 절박한 심정 이용하는 명백한 갑질이다.
본격적으로 공론화되니 피해 사례도 속출했다. 100명이었던 금사모 회원은 보도 이후 2천 명을 돌파했고, 맘카페는 아예 초토화가 되었다.
이는 곧 국민청원으로 이어졌고, 삽시간에 20만을 돌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