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규정 공개 (2)
-가계 부채 3천조 시대가 누군가에겐 잔치판이었습니다. 저금리로 대출을 남발하던 은행들은 국민들의 피땀으로 상여금 잔치를 벌였고, 우리들의 정당한 권리인 금리 인하엔 인색했습니다.
개탄스러운 것은 이게 겨우 시작이란 것입니다.
이제 시대는 혹독한 긴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비정하게도 금리는 오를 일만 남았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지금이라도 무능한 정책을 시인하고 금융업을 단단히 단속해야 할 것입니다.
박성택을 위시로 한 야당은 연일 비난 성명을 내며 여당을 압박했다. 금감원과 공정위를 동시에 움직일 힘이 청와대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유례없는 금리 인상 속도에 국민들의 원성은 이미 극에 달한 터였다.
-사채업자가 먼 데 있는 게 아니다.
저금리로 대출시켜 주고 고금리로 올려 버리는 게 사채업자지!
⌞ㅇ_ㅈ 금리인하권은 차주가 은행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권
⌞어차피 은행 맘대로 할 거면 법안도 폐기시켜!
세간에선 금리재앙이란 말까지 나돌았고,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차츰 커져만 갔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시정명령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금감원과 공정위원장은 부랴부랴 초안을 작성해 시정명령에 도장을 찍었다.
“팀장님. 이 팀장님!”
그렇게 시정명령 통지 당일.
김 반장이 헐레벌떡 달려와 불청객의 방문을 알렸다.
“대한은행에서 찾아왔다고요?”
“예. 최 사장이 직접 왔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받아 보고 싶어서 찾아온 것 같진 않고.
“뭐랍니까?”
“진정성 있게 대책을 논의해 보자 합니다.”
이 얘긴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제 감흥도 없다.
보나 마나 좀 봐달라고 사정하러 온 거겠지.
“그래도 혈혈단신 혼자서 왔습니다. 그쪽도 많이 내려놓은 것처럼 보였어요.”
“떼거리로 몰려왔으면 출입도 안 시켜 줬을 겁니다. 마침 오늘이 시정명령 통보하려던 날인데.”
“너무 그러지 말고 일단 만나는 봐 주세요. 진정성 있게 말하고 싶다잖아요.”
그 소릴 한두 번 들어 봅니까.
준철은 꾹꾹 그 말을 삼켰다.
“알겠습니다. 한번 가 보죠.”
***
접견실에 도착하니 익숙한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자였나?’
정체불명의 대화에서 한 번 봤던 얼굴.
시장점유율 1위 대한은행의 최 사장인 것이다.
그가 잔뜩 움츠러든 태도로 인사를 건넸지만 한 치의 동정심도 들지 않았다. 금리인하 거부하고 내부규정 핑계 대라고 한 게 다 이 입에서 나온 말들이다.
“다름 아니라 저희가 좀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뵙습니다.”
“네. 근데 대한은행의 입장을 설명하러 오신 겁니까?
“저희 은행권끼리도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 내용에 대해 전달드리고 싶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은행들을 대표해서 왔단 말에 어쩔 수 없는 기대가 들었다.
문제가 심각한 건 아나 보지?
“사실 갑작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공정위와 저희가 충분한 대화를 가졌더라면 합의점이 나오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드는군요.”
김이 팍 새 버렸다.
초반부터 신경 긁는 걸 보니 반성하러 온 놈은 아니다.
“합의점이라…….”
“네. 서로 간에 대화가 부족했습니다. 공정위에서 요구하는 몇 가지는 저희도 마침 개선하려 논의를 해 왔거든요.”
“한번 들어 봅시다. 어떤 걸 개선하려 했습니까.”
젊은 놈이 말끝마다 툴툴거렸지만 최 사장은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첫 번째 개선안은 수용률 인상입니다. 박 의원님께도 전달한 적 있는데, 금리인하 수용률을 40%까지 올리겠습니다.”
“현행에서 10%p 더 올리겠다는 겁니까?”
“뭐든 첫술에 배부를 순 없는 법이죠. 저희도 차차 수용률 높여 가며 금리 인하에 적극 매진하겠습니다.”
준철은 그를 빤히 보다 서류를 챙겼다.
“역시나 진정성은 안 보이는군.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예, 예? 잠시만요!”
“뭘 잠시만입니까. 지금 문제는 돈을 빌려준 놈이 금리인하 심사까지 도맡는다는 겁니다. 근데 10% 더 올려 주겠다는 게 해답이 됩니까.”
“두 번째 제안도 있습니다!”
그는 다급하게 준철의 옷자락을 잡았다.
“외부 기관을 만들겠습니다.”
“외부 기관?”
“돈을 빌려준 우리가 직접 심사를 하니 문제가 된다 이 말 아닙니까. 조직 외 사람으로 이 문제를 전담할 심사팀을 꾸리겠습니다.”
한 층 더 성의 있어 보이는 제안이었지만 준철의 얼굴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그 외부 기관 인사는 누가 선임합니까?”
“당연히 각계 전문가들을 엄선하여…….”
“엄선하여 결국 은행들이 선임하는 거죠?”
하나 마나 한 얘기다.
본래 사람은 다 임명장 준 사람 입맛대로 움직인다.
“껍데기만 외부 인사지 결국 내부 인사 아닙니까?”
“저희를 한 번만 믿어 주십쇼.”
“믿다가 발등 찍혀서 이 지경에 온 겁니다.”
“…….”
“긴말 필요 없어요. 은행들이 심사한다는 금리 인하 기준, 누구나 알 수 있게 약관에 공시하고 철저히 지키세요.”
“그건 안 되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그럼 그게 왜 안 되는지 설명을 해 보세요.”
준철은 그리 말하며 따끈따끈한 시정명령서를 내밀었다.
최 사장은 반쯤 눈알이 튀어나왔다.
금감원과 공정위가 동시에 시정명령을 내리지 않았나. 그것도 일반 시정명령이 아닌 과징금까지 붙어 있는 시정명령서다.
“과, 과징금은 뭡니까?”
“내부적으로 고민이 많았습니다. 이걸 불공정 상행위로 봐야 할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갑질로 봐야 할지, 약관 명시 위반으로 봐야 할지…… 근데 생각해 보니 세 개를 다
위반하셨더군요. 80억도 정말 싸게 매긴 가격입니다.”
최 사장은 뚜껑이 열릴 것 같았다.
혹 떼러 와서 혹을 붙여 간다.
“이건 못 냅니다! 부당 과징금이요.”
“그 뒷장도 있습니다. 마저 읽어 보세요.”
“뭐?”
“인센티브 파티만 한 게 아니라 경영도 개판이더군요. 하긴 단군 이래 최대 실적인데 임원들 회식비 80억은 싼 편이지.”
“…….”
“행정소송하면 당신들 방만 경영도 문제 삼을 겁니다.”
인센티브 파티는 드러난 일 중 하나다.
실적이 든든하니 법카로 뭔들 못하겠는가.
임원들 골프도 법카로 긁었고, 초호화 회식도 법카로 긁었다. 이 모두 실적이 좋아 적당히 넘길 수 있는 문제지만 이 중엔 절대로 넘어갈 수 없는 내역도 있었다.
“법카로 유흥업소 간 사람 있으면 미리 사표 받아 두세요. 우리가 뭐 망신 줄 방법이 없겠습니까.”
최 사장 머릿속엔 지옥이 펼쳐졌다.
지금처럼 예민한 시국에 그런 내역이 공개되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것이다. 그간의 행보로 봤을 때 이 젊은 놈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었다.
“그럼 시정명령 불복하신 줄 알고 저는 이만 소송 준비하러 가겠습니다.”
그렇게 서류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설 때, 불쑥 그의 손이 덮쳤다.
“공개…… 하겠습니다.”
그는 축 늘어진 손으로 시정명령서를 꼿꼿하게 잡았다.
“금리 인하 기준 모두 발표하고 시정명령에 따르겠습니다. 다만 저희 위신을 생각해 과징금이라도 어떻게…….”
***
“처음부터 너한테 단독으로 맡겼으면 안 됐어. 성질머리 알고도 맡긴 내가 미련했지.”
시정명령서는 각 은행에 잘 전달되었고, 모든 은행에게 승복 답변을 받았지만 오 과장은 치를 떨었다.
“대화로 풀어 보긴 얼어 죽을. 너 처음부터 여의도 의원 데려올 생각이었지!”
“아닙니다. 박 의원이 냄새 맡고 달려온 겁니다.”
“네가 면전에 대고 냄새 풍기는데 안 달려올 놈 있냐.”
오 과장이 찌릿 눈짓을 보냈다.
진짜로 예측을 불허하는 놈이다.
갑자기 의원을 데려올 줄 누가 알았겠나. 그래도 덕택에 수사가 쉬워진 건 사실이었다.
만약 의원들이 붙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입씨름을 하고 있었어야 할 거다.
“됐고. 나 오늘 그 얘기 하려고 온 거 아니야. 이제 은행들이 다 백기 들었다. 근데 넌 이 칼 칼집에 도로 넣을 생각 없지?”
대답을 들어 볼 필요도 없는 질문이다.
놈은 조사 시작부터 대부업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고, 이미 실태 보고서까지 올렸다.
“이거 진짜 다 칠 거냐?”
“예. 금리인하권에 해당 없음, 이건 재고 따질 것도 없이 위법 계약입니다.”
거기까진 오 과장도 이해할 수 있는 이유였다.
“그렇다고 이 대출 계약 전부를 무효화시켜?”
“과장님.”
“내 말 먼저 들어. 법정금리 위반 같은 중대 과실이 아니고서야 대출 계약 무효는 무리야. 이번엔 네가 너무 나간 거다.”
심해도 너무 심했다.
마음은 안다만 그렇다고 어떻게 대출 계약을 모두 무효화시킨단 말인가.
정작 그렇게 되면 대부업 시장에 큰 혼란이 올 수도 있다.
“저도 진짜 대출 계약 무효를 바라는 게 아닙니다. 계약서 다시 쓰는 게 본 목적이죠.”
“뭐?”
“저희가 대출 계약 무효라 판단하면 대부업들이 직접 연락해 계약서 다시 쓸 겁니다. 위법 조항은 당연히 그때 삭제되겠죠.”
그제야 오 과장도 준철의 말뜻을 이해했다.
똥고집은 세도 선은 넘지 않는 놈이 왜 이런 무리한 주장을 하나 했더니.
“너 설마 이 계약 건 다시 알리려는 게 목적이야?”
“네. 대출 계약서 다시 쓰려면 대부업들이 먼저 고객에게 연락 돌려야 할 겁니다.”
“네가 친절한 성격도 아니고 굳이 그렇게 하는 이유가 뭐야.”
“이 사람들은 뉴스에 떠들썩하게 나가도 사안에 관심 없는 사람들입니다. 아니, 관심이 아니라 자신들이 이 법의 해당자인지도 모르죠.”
“그러니까 대부업들이 먼저 연락을 취해야 한다?”
“네. 애초에 이 계약서 들이민 건 그들입니다. 이건 잘못한 쪽이 먼저 연락해야 합니다.”
1금융권 이용자는 그나마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
금리에서 1%도 큰돈이라지만 사실 상환 능력이 다 검증된 사람들이니 체감은 크지 않을 거다.
하지만 대부업 이용자는 기본 금리가 10%대며, 인하 심사 한 번으로 수 퍼센트의 이율로 내릴 수 있다.
지금까지의 모든 작업이 이들을 위함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흠…….”
오 과장은 짧게 고민했다.
오래 고민하며 재고 따져도 준철의 생각이 나쁘지 않았다. 대출 계약 무효라는 극약처방이 있어야 놈들도 겁을 먹을 것이며, 고객에게 수정 약관을 설명해 줄 것이다.
“하여간 영악해서는.”
그는 혀를 한 번 차더니 서류를 건넸다.
“이번 주 안으로 대부 업체 다 소집해 준다. 네가 하고 싶은 얘기 한 번에 전달해.”
“예! 감사합니다 과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