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대부업 집합 (1)
-최근 제기된 금융권 불신 문제에 대해 저희 대한은행은 책임을 통감합니다.
공정위의 지적대로 저희는 금리인하 기준을 고객에게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내부기준이란 미명하에 불투명한 심사가 계속되었습니다.
아직 정착 단계의 법안이고, 저희들의 준비가 미흡했던 점도 있지만…… 더 이상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저희 미래은행은 명확한 내부기준을 만들어 이달 안으로 고객에게 고지하겠습니다.
인하심사는 철저히 발표한 내용에 따를 것입니다.
아울러 추후 대출 계약 시 대출자에게 금리인하요구권에 대해 반드시 설명토록 하겠습니다.
-……비단 금리인하에 한정하는 게 아니라 대환대출(3금융에서 1금융으로 갈아타기 대출) 심사도 더 적극 검토하여 국민들의 이자 부담을 줄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물러선 금융권] [금리인하 기준 공개]언론사는 금융권의 완벽한 패배를 재빨리 보도했다.
야당은 이번 사태를 금융권에 대한 국민들의 승리라 자평했고, 여당은 청와대의 발 빠른 대처를 높이 평가한다고 자평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공정위도 과징금 발표를 하지 않았고, 준철도 이 결과에 만족했다.
“팀장님. 대부업체 전부 소집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속이 다 시원할 순 없었다.
제도권 살짝(?) 벗어난 곳에서 신음하고 있는 더 큰 피해자들 때문이다.
“얼마나 되나요?”
“한 30명 정도 모였어요.”
“분위기는…….”
“뭐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터지기 일보 직전이죠.”
김 반장은 대부업 대표들이 모여 있는 회의장 분위기를 전했다.
듣자 하니 살벌하다. 갑자기 대출 계약 무효를 통보했으니 그들도 눈이 뒤집힐 것이다.
‘우리 쪽 요구가 무리긴 한데…… 그래도 해 볼 만해.’
그렇게 한숨을 내쉬며 엉덩이를 들 때, 불현듯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이렇게 야단법석 피면서 일하나 했더니 또 자네구먼.”
“어? 홍 국장님?”
“오랜만이야 이 팀장.”
시장감시국 홍 국장이 예고도 없이 방문한 것이다.
준철이 엉거주춤 인사하자 그가 옆에 있던 서류를 쓱 집어 들었다.
“이게 대한민국 대부업체들 총 명단인가?”
“예?”
“오 과장한테 들을 얘긴 들었어. 싹 다 소집시켰다며?”
“아, 예.”
“참 자네다운 발상이야. 이걸 이렇게 처리할 줄이야.”
발칙한 놈이다.
대출 계약에 위법 조항을 넣었으니 전부 무효화시킨다. 이걸 다시 진행시키려면 대부업들이 직접 연락해야 한다.
놈들이 직접 대출자에게 연락하게끔 판을 만든 것이다.
“그 박성택 의원인가 하는 사람 데려온 것도 이 팀장이라며?”
“하하…….”
“아깝다, 아까워. 그 일머리로 내 밑에서 일했으면 팍팍 밀어줬을 텐데.”
“한데 어인 일로…….”
“어인 일은 무슨. 원래 금융권 단속하는 게 우리 시장감시국 일이야. 자네가 우리 일 뺏어 가서 얼마나 난감한지 몰라.”
홍 국장은 핀잔 조로 말했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대견해하고 있었다.
만약 시장감시국에서 맡았다면 아직까지 은행과 입씨름했을 사건이다.
물불 안 가리고 덤비는 놈 덕택에 일사천리로 일이 해결됐을 뿐.
“근데 대출 계약 전면 무효화는 좀 무리지 않나.”
“무효가 목적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 대출자에게 연락하게 만드는 게 목적입니다.”
“놈들도 선순데 그 꿍꿍이를 모를 리 없어. 자넨 나이도 어려서 띄엄띄엄 볼걸.”
“그렇습니다만……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아주 끝까지 도와달라 소리 안 하는구먼. 됐으니까 나머지 일은 나한테 맡겨.”
준철은 국장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눈만 끔뻑거렸다.
“팀장이 가서 한마디 하는 거랑, 국장이 가서 한마디 하는 거랑 같겠어?”
“아…….”
“왜, 설마 내가 이거 뺏어 갈까 봐?”
“아, 아닙니다. 국장님이 나서 주시면 저야 너무 감사하죠.”
“면담 몇 시야?”
“지금 다 모였다 합니다.”
천만다행인 일이다.
막상 대부업들을 다 소집시키고 나니 까마득하던 터였다. 이런 문제엔 적당한 권위도 필요한데, 팀장 나부랭이한테 그런 게 있겠나.
“대신 나도 부탁 하나만 하자. 뭐 사건 하나 맡기겠단 건 아니고.”
“말씀하십쇼.”
“뭐 그 부탁은 이거 정리하고 하자.”
***
“이준철이란 놈은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닙니까? 고작 조항 하나 때문에 대출 계약 무효라니!”
“맞습니다. 이게 뭐 법정금리 위반 같은 중대 과실도 아니고!”
“젊은 놈이 1금융권 눌렀다고 아주 기고만장하답니다.”
한자리에 모인 대부업체 대표들은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김 반장의 설명 그대로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정위의 억지가 너무 심하지 않나.
금리인하 요구는 사실상 1금융도 지키고 있지 않던 법안이다. 대출 계약에 억지 좀 부렸다고 파투를 낼 만한 과실은 아니다.
“이 자식 설마 대출 계약 무효가 부채 탕감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설마 그렇게 무식한 놈일까. 대출 계약이 무효여도 원금은 갚아야 하는데.”
“만약 그런 줄 알았다면 진짜 제 발등 찍는 거지. 우리한테 돈 빌린 놈들 다 사정 급한 사람들이야. 갑자기 원금 내놓으라 하면 오히려 원성이 공정위한테 향할걸.”
대부업 대표들은 이를 갈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젊은 놈이 기고만장해서 저지른 실수처럼 보였다.
“다 필요 없고 우리도 오늘 할 말은 합시다!”
“이 처벌은 과격해도 너무 과격해! 이건 법으로 가도 우리가 이겨요.”
-덜컥.
회의실 문이 열리고 곱상하게 생긴 남자가 등장하자 이들의 입술이 들썩거렸다.
‘한마디만 꺼내 봐라.’
‘무조건 법대로 간다!’
‘법원이 네들의 과격한 처벌을 받아 주나 보자.’
“담소 나누고 계신 모양인데 좀 늦게 왔으면 좋을 법했습니다.”
하지만 뒤이어 한 중년 남성이 등장하자 신음이 흘러 나왔다.
“오호. 다 아는 사람들이구먼.”
금감원과 더불어 저승사자라 불리는 시장감시국장 아닌가!
시장국은 금융권 전체의 불공정 약관을 감시하는 곳이며, 그런 만큼 홍 국장 얼굴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김 대표님. OK대출은 이번에 또 오셨습니까?”
“아, 예…….”
“지난번에 ‘은행’이란 상호명 쓰다 저희한테 적발된 걸로 아는데, 그 뒤엔 별일 없죠?”
“무, 물론이죠. 별일 없습니다.”
“심 대표님도 오셨네.”
“……아, 예.”
“요즘엔 9시 넘어서 독촉 전화 안 하죠? 그때 불법 추심 때문에 한 번 뵌 걸로 아는데.”
“어, 없습니다. 직원들 단속 잘하고 있습니다.”
홍 국장은 대표들 얼굴을 일일이 마주 보며 살뜰히 안부를 챙겼다.
인사를 받는 당사자들은 차례차례 얼굴이 무너지긴 했지만.
“뭐 좋은 자리가 아닌 만큼 간략히 저희 전달 사항만 말씀드리겠습니다.”
“…….”
“원칙적으로 이 대출은 다 위법 계약입니다. 이럴 경우 대출 계약 자체가 무효될 수도 있다는 건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한마디의 반박도 나오지 않았다.
“물론 이게 부채 탕감이란 의미는 아니지요. 저희도 그런 도덕적 해이를 조장하자고 이런 결정을 내린 게 아닙니다.”
“…….”
“그러니까 고객들에게 직접 연락해서 해당 내용 삭제됐다고 설명하세요. 계도 기간은 한 달. 찝찝한 일 해결하기엔 충분한 시간일 겁니다.”
한 달 동안 차주들에게 모두 연락해야 한다.
단순히 조항만 삭제하는 게 아니라, 차주가 금리인하요구권 당사자인지도 설명해야 한다.
“아, 참고로 내부규정 공개는 대부업에도 해당하는 말입니다. 1금융처럼 인하 기준 공개하고 심사는 오직 이 기준에만 따르세요. 여기까지 질문 있습니까?”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기에 홍 국장은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있으면 따로 저희 공정위에 문의해 주십쇼. 우리 이준철 팀장이 일 하나는 확실합니다.”
그는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하고 나가 버렸다.
준철도 눈치를 보다 꾸벅 고개를 숙이고 국장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나가고 나서도 한동안 대부업 사람들은 말을 이을 수 없었다.
1금융권과 얼마나 피 터지게 싸웠는지 실시간으로 목격하지 않았나.
공정위의 독기가 온몸에 느껴졌다. 저놈들이라면 진짜로 대출 계약을 무효화시켜 버릴 수도 있다.
고객들에게 이 부당한 조항을 설명하고 계약서를 다시 쓰는 수밖에…….
***
“감사합니다,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금사모 회원들을 다시 만난 건 그로부터 일주일 뒤의 일이었다.
“일은 다 해결되셨나요?”
“네. 은행들한테 바로 연락이 오더군요. 금리인하 심사를 재신청했는데, 일주일 만에 승인이 났습니다.”
“다행이네요.”
“이게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별말씀을요. 박 의원님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그리 말하자 그들이 눈을 흘겼다.
“솔직히 도와준 건 고마운데 부담도 컸습니다.”
“왜 자꾸 이 문제를 당쟁으로 끌고 가는지 원.”
“우리랑 면담할 때도 거의 사진만 30분을 찍었습니다.”
박 의원 입장에서야 여당 흠집 내기가 목적이었을 테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과정이다.
사실 이편이 깔끔하고 좋았다. 서로의 목적에 부합하니 박 의원도 제 일처럼 발 벗고 나서 주지 않았나.
“이런. 얘기하고 보니 우리가 너무 불평만 하는 것 같네. 네,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죠.”
“하하.”
“아무튼 선생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1금융권 이용자들과의 작별 인사가 끝날 때.
“선생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부업에서 돈을 빌린 사람들이 격하게 준철의 손을 잡았다.
내심 가장 걱정하고 있었던 부류들인데 잘됐을까?
“그쪽은 어떻게 됐습니까?”
“뭔 일인지는 몰라도 갑자기 대출 계약서를 다시 쓰자 하더군요. 그래서 문제 조항 없애고 다시 썼습니다.”
“금리인하 신청도 하셨습니까?”
“네. 저희는 4%까지 인하가 됐어요!”
원체 고금리이니 인하율도 높을 수밖에 없다.
그들의 말에 준철도 함께 기뻐해 주었다.
“잘됐네요. 축하드립니다.”
“다 선생님 덕입니다. 솔직히 저희 같은 사람 신경 써 주는 사람 얼마 없는데.”
“아닙니다. 그리고 자료 하나 드리고 싶어서 준비했는데…….”
준철은 서류를 건네고 말했다.
“이번 발표 때 은행권들이 대환대출도 더 적극 활성화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대환대출이면…… 갈아타기요?”
“네. 신용 등급이 향상됐거나 가계 수입이 크게 증가했을 시, 3금융 대출을 1금융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대환대출 승인되면 금리인하요구완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이율이 낮아질
겁니다.”
덥석.
“감사합니다. 이런 세심한 배려까지 해 주시다니…… 이거 뭐라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이게 제 일인데요. 나중에 꼭 대환대출 신청하세요.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준철은 그들과 손을 맞잡으며 할 수 있는 마지막까지 조언을 해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