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착한프랜차이즈 대회 (1)
“착한프랜차이즈 선정요?”
“응. 오 과장은 처음 들어 보나?”
“매년 연말에 상생 우수 기업을 선정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거 이번에 그 친구 보내. 이준철이.”
착한프랜차이즈 선정 사업.
갑질 뚜드려 잡기 바쁜 공정위의 몇 안 되는 기업 진흥 정책이다.
갑질을 적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상생 문화를 미리 정착시키자는 취지. 몇 안 되는 진흥 사업인 만큼 지휘부의 관심이 집중되는 행사기도 하다.
오 과장이 의아한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지휘부의 눈도장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자린데, 그걸 왜 상관도 없는 종합국 팀장에게…….
“왜 대답이 없어. 그 친구 안 보낼 거야?”
“아닙니다! 이 팀장한테도 좋은 경험 될 것 같습니다. 한데 왜 이런 기회를 저희한테 주시는지…….”
“한 자리가 비었거든. 원래 구현수라고 우리 국에서 똘똘하던 놈 있는데, 기회 되니까 바로 본청으로 도망가 버리지 않나.”
홍 국장은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야 일 좀 시킬 만하니까 바로 도망가 버려. 뭐 욕할 수도 없지. 지휘부 근처에서 일하는 게 승진은 더 빠르니까.”
그 섭섭함은 오 과장이야말로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종합감시국에선 빈번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실적 좋고 일 잘하기 시작하면 바로 타 부처로 보직 신청하거나 본청으로 도망가 버린다.
행시들이야 진급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지만.
“이런 기회를 덥석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국장님도 챙겨야 될 직원들이 있는데.”
“그리 말해 주면 고맙고. 그럼 나도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말씀하십쇼.”
“능력 있는 놈이야. 물론 공직 사회에서 튈 수밖에 없는 놈이지만, 그래도 키워 줘야 돼.”
뜻을 몰라 눈만 껌뻑거릴 때 그가 덧붙였다.
“나도 돌아가는 사정 다 알아. 인앱 때 그놈이 단독보고서 올려서 자네가 경고 한 번 세게 줬다면서?”
“아…… 그건.”
“탓하자는 건 아니고. 내가 자네였어도 주의 한 번 줬을 거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놈, 공직 사회에선 가장 위험한 놈이다.
때론 알면서도 넘어가야 할 일이 있고, 부당하지만 참아야 할 일도 있다.
“그래도 너무 나무라면 오히려 조직에서 한계를 느낄 거야. 그리고 딱히 출세 욕심도 없는 놈이라면서?”
“예…….”
“난 그런 놈들이 더 무섭더라. 차라리 구현수 같은 놈은 단순해서 상대하기 쉬워, 목표가 진급이고 그것만 내주면 되니까. 근데 자리 욕심도 없는 놈들은 대개 다 돈 욕심 그득한
놈이야.”
무슨 걱정인지 충분히 안다.
해마다 갑질 신고 사건은 늘어 가고 있으며 공정위 출신의 전관도 몸값이 높아지고 있다.
지금은 팀장급이라 갈 데도 없지만 5년만 지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행시 출신의 과장급 인사. 기업에서 감리 직원으로 모셔 가기 너무나 좋은 조건 아닌가.
갑질은 법리가 애매해서 변호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유무죄가 갈린다.
실력 있는 놈이 기업으로 취직하는 건 정말이지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오 과장은 딱히 돈 욕심도 없어 보이는 놈이라 생각했지만 그 말은 꺼내지 않았다.
실력 있는 놈치고 욕망 없는 놈은 없다.
“그래. 몇 안 되는 진흥 사업이니 어려움도 없을 거야. 잘 한번 해 보라고.”
오 과장은 문을 닫고 나왔고, 복잡한 생각에 잠겼다.
맡기는 사건마다 핵폭탄으로 만들어 버리는 놈이라 부담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번에만 봐도 그렇다. 일개 팀장이 국회의원을 데려올지 누가 알았겠는가?
목표한 바가 있으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이뤄 내는 놈이다.
‘…….’
그런데 만약 이런 놈이 기업에 취직한다면…… 불법 하청 문제도 교묘히 피해 갈 것이고, 적발돼도 과징금을 최대한 낮춰 버릴 것 같았다.
뭐라 딱 설명할 순 없지만 놈은 이런 방면에 타고난 선수다.
“후우…….”
생각이 많아지는 오 과장이었다.
***
기업거래정책국.
가맹거래과.
생각해 보니 그것도 벌써 1년 전 사건이다. 한경모비스 재판 때 뻔질나게 다녔던 곳인데.
“어서 오세요. 가맹거래과 최석춘 팀장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종합국 이준철 팀장입니다.”
사업부에 도착하니 책임자로 보이는 중년 사내가 악수를 건넸다.
“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맡아 본 사건 중 한 번의 실패도 없었다고요.”
“……과찬입니다. 많이 가르쳐 주십쇼.”
“그렇게 겸손 부리지 않아도 돼요. 한경모비스 사건 저희도 다 지켜봤습니다. 오히려 제가 배워야 할 것 같군요.”
확실히 ‘조사’하러 다닐 때와는 다른 반응이다.
최 팀장은 넉넉한 웃음으로 준철을 환대해 줬고, 낯이 뜨거울 만큼 폭풍칭찬을 해 주었다.
하긴 공정위에서 추진하는 몇 안 되는 기분 좋은 사업인데, 서로 싸울 일도 없겠지.
“혹시 따로 궁금한 거 있습니까? 이 팀장님은 제가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궁금한 거 몇 가지만 설명드리는 게 낫겠군요.”
“사실 저는 이런 프로젝트가 처음이라서…… 이게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이죠?”
“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국세청에서도 모범 납세자를 선정해서 홍보하잖아요? 우리도 기업들의 상생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모범 가맹점을 선정하고, 홍보하는 겁니다.”
바야흐로 갑질의 시대였다.
갑질 신고 건수는 해마다 폭증하여 이젠 공정위 인력이 다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안이 이런 만큼 공정위도 적발에서 벗어나 방지라는 계책에 도달했다.
갑질을 적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갑질이 없는 기업 문화를 정착시킨다는 것, 이것이 착한프랜차이즈 대회의 취지였다.
“대표적으로 로열티 후려치기, 판촉 비용 전가, 물량 밀어넣기. 이건 가맹본부의 단골 갑질이거든요.”
“네.”
“이런 나쁜 짓 안 하고, 대리점과 소통할 수 있는 상생협력부 만들면 저희가 상을 주는 겁니다.”
최 팀장은 그리 말하며 서류를 하나 꺼내 들었다.
“이게 작년에 착한프랜차이즈로 선정된 기업들이에요. 앞에 세 개가 모범 사례로 선정된 기업들입니다.”
그 결과는 무척이나 의외였다.
말만 들어봐선 소상공인들을 위한 축제인 줄 알았는데, 의외의 기업들이 너무 많다.
“이건 편의점 아닙니까?”
“네.”
“이곳들은 다 계열사가 대기업들인 걸로 아는데…….”
“우린 편견 없이 오로지 결과만 봅니다. 여기 편의점은 자체적으로 어플을 개발해 ‘라스트오더’라는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마감이 임박한 신선품을 파는 건데. 소비자들은 싼값에 물건
사서 좋고, 점주는 폐기를 줄일 수 있어 서로 윈윈이었단 평가를 받았습니다.”
설명을 들으니 감탄이 나온다.
그냥 소상공인 몇 개 띄워 주는 잔치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평가가 엄격하구나.
“그리고 이 커피점은 광고·PPL 비용을 전부 가맹본부가 부담하고, 서로 수평적으로 대화할 수 있게 상생협력부를 따로 만들었습니다.”
“그럼 저희 선정사업부가 하는 일은 뭔가요? 저희가 상생 기업 100개를 선정하는 건가요?”
“아니요. 100기업 선정하는 건 선정위가 합니다. 대학교수, 변호사, 가맹점 전문가들로 이뤄진 심사팀이죠.”
“하면 저희는…….”
“예심을 맡게 되는 거죠. 저희가 추천한 기업 중에 선정 대상이 나옵니다. 그중에서도 우수한 사례는 모범 기업으로 따로 홍보도 될 거고요.”
그리 말하며 그가 슬쩍 귀띔했다.
“이게 사실 굉장히 중요한 거죠. 선정 기업 100여 개 중에서도 모범 사례 3개.”
모범 사례 세 곳은 웹튜브를 통해 착한 기업으로 홍보까지 해 준단다.
가맹점 입장에선 브랜드 인지도를 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이를 추천한 팀장들에겐 안목과 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긴 수상식은 공정위원장이 직접 수상하니…….’
보이지 않는 경쟁이 치열하리라.
“근데…… 이런 사업에 참여자가 많나요? 모범 납세자는 거의 국세청에서 강제로 주는 상이던데.”
“아이고. 그렇게 명예만 주는 상이랑 이건 차원이 달라요. 착한프랜차이즈에 선정되면 소상공인진흥공단에서 대출받을 때 금리 우대 0.6%. 신용보증기금도 0.2% 인하.”
“아, 실질적인 혜택도 있습니까?”
“당연한 말씀. 작년에 800여 가맹본부가 신청했는데, 이번엔 1천 건도 훌쩍 넘었어요. 이거 예심 통과도 쉽지 않습니다.”
소상공인들은 정부 기금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다.
대출 단위가 수십, 수백억대인 기업 입장에서 0.8%는 너무나 큰돈이다.
더불어 이 사업에 선정되면 공정위가 보장하는 ‘상생’ 마크도 1년간 내걸 수 있다. 인지도 낮은 브랜드에게는 착한 기업으로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생각보다 많이 치열하군요.”
“네. 돈이 달려 있는 문제니까. 흐흐. 2주간 심사하고 저희 추천 목록에 따라 선정위에서 최종 결정 날 겁니다. 이 팀장님도 좋은 기업 많이 추천해 주세요.”
***
“야, 박 조사관. 넌 또 뭘 그리 얻어 왔어?”
“반장님도 이거 하나 드셔 보세요. 제주도에서 없어서 못 파는 로얄 한라봉이랍니다.”
“로얄은 얼어 죽을. 마트에도 널려 있는 귤이구먼. 그만 좀 얻어먹고 다녀, 보는 내가 다 눈치 보인다.”
“제가 뭐 동냥하고 다니나요. 흐흐. 확실히 사람은 곳간에서 인심 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사업 진행해서 그런지 다들 얼굴에 웃음이 만연해요.”
평화로운 나날이었다.
얼굴 붉힐 일 없으니 타 부처 사람들과 간식도 나눠 먹고 좋다.
“그만 좀 놀러 다녀라. 내일모레가 추천 목록 올리는 날이야.”
“에이 정리 다 끝내고 놀러 다니죠. 추천 기업 다 정리했습니다.”
서류를 본 김 반장이 눈을 흘겼다.
“다섯 개 기업, 이게 끝이야?”
“네. 대리점한테 판촉 비용 안 떠넘기고, 상생협력부도 만든 착한 기업들입니다. 그중엔 배달비 아껴 보겠다고 직접 배달 어플을 개발하는 곳도 있어요.”
그리 말하다 박 조사관이 말했다.
“근데 반장님. 여기 음식점 하나는 좀 애매하던데…… 어떡할까요.”
“어딘데.”
“[복순 할미 국수]라고. 전국에 매장이 15개밖에 안 되는 국숫집이에요.”
김 반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작아도 너무 작네. 이런 건 뭐 하려고 올렸냐? 브랜드 인지도도 평가 요소라던데.”
“근데 이 할머니 경영 방식이 진짜 퍼 주지 뭡니까.”
“뭐?”
“대리점한테 넘기는 물품이 멸치 육수랑 김치 딱 이 두 가진데 제값도 안 받는 거 같아요. 그리고 대학생들이 학생증 제시하면 국수를 50%나 할인해 준대요.”
“아니, 그럼 대리점들은 뭐 먹고 살아?”
“그 손해 비용을 본사에서 전액 지원하고 있어요. 정주에선 꽤 유명한 할머니라 신문 인터뷰도 했던데, 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