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착한프랜차이즈 대회 (2)
[사람이 원래 헐벗고 굶주렸을 때 먹은 밥맛은 죽어도 못 잊는 법이여. 혹시 알간? 대학생들이 돈 많이 벌면 우리 국시 팔아 줄지. 워렌 버푼가 하는 작자도 아침은 늘 같은식당에서 먹는다잖여. 돈이 그렇게나 많은디.]
참으로 희한한 할머니다.
상품이 아니라 사람에 집중하라, 경영 서적에 단골로 등장하는 말이지만 대기업도 실천 못 하는 격언 아닌가.
[복순 할미 국수]는 학생증만 제시하면 국수를 반값에 팔았고, 이 손해를 전부 가맹본부에서 부담하고 있었다.
‘이런 기업이 있었나.’
사실 사회적 기업을 표방하며 이름 날린 음식점은 종종 있었다. 대부분 자본주의를 못 이겨 망했을 뿐.
하지만 [복순 할미 국수]는 점진적이지만 꾸준히 매출이 성장했고, 대리점도 15개로 늘어난 음식점이었다.
“이게 신문에 난 기사라고요?”
“네. 정주 일간지에 여러 차례 났더군요. 그쪽에선 꽤 유명한 국숫집이랍니다.”
“굉장히 이질적이네요. 본사에서 할인 강요하고 그 비용 대리점에 떠넘긴 사례는 많이 봤었는데.”
준철은 묘한 찝찝함이 들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경영 방식……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처음 보는 국숫집 이름에서 계속 익숙한 기시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복순 할미 국수…… 복순 할미…….’
막상 또 기억은 안 나는데, 이 익숙함은 뭘까.
“근데 이게 끝인가요? 이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증빙할 만한 자료는요.”
“그것 때문에 따로 보고드렸습니다. 가맹본부에 연락해서 자료 좀 넘겨달라 했는데, 도통 연락이 없더군요.”
“그럼 신청은 왜 한 겁니까?”
“본사가 직접 한 게 아니라 대리점 사장들이 추천해서 올라왔습니다. 얘기 들어 보니 작년에도 증빙 미달로 떨어졌더군요.”
대리점들의 추천을 받는 가맹본부라…….
이들은 서로 이를 갈았으면 갈았지, 좋은 일에 상 타라고 등 떠밀어 주는 관계가 아닌데.
“어떻게 할까요. 사회적 기업인 것도 좋고, 가맹-대리점 관계도 돈독해 보이는데.”
착한프랜차이즈 취지의 가장 걸맞은 사례였지만 준철은 고개를 저었다.
평양 감사도 제 싫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려울 것 같네요.”
“하긴 증빙 자료 없이는 역시 무리겠죠?”
“네. 돈이 달려 있는 문제인지라.”
넉넉한 웃음으로 환대해 주던 최 팀장이 정색하며 강조한 얘기도 있다.
바로 심사의 공정성.
이런 문제에서 시비가 불거지면 지원 사업의 취지도 크게 퇴색될 수밖에 없다.
“알겠습니다. 그럼 저희 추천 기업은 이 네 개로 픽스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김 반장이 물러간 후.
준철은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서류를 뒤적거렸다.
안 된다고 결정 내렸지만 머릿속을 맴도는 찝찝함 때문이었다.
이곳은 대리점에 로열티도 거의 받지 않았고, 광고 비용도 본사가 다 자비 부담했다. 필수 재료인 멸치 육수와 김치는 다 손수 만들어 마진도 거의 떼지 않고 대리점에 넘겼다고 한다.
‘…….’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를 확인할 자료가 있어야 상을 주지.
‘미련 접자.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그렇게 서류를 파쇄기에 넣으려던 찰나.
불현듯 싸한 직감이 머리를 타고 올라왔다.
“그럼 저 다녀오겠…….”
“잠깐만요 반장님! 이 국숫집 혹시 본사가 정주에 있습니까?”
“아, 예. 아까 다 말씀드렸는데…….”
정주에 있는 복순 할미 국수.
문득 옛 생각 하나가 머릿속에 스쳤다.
계속해서 왜 이런 기시감이 드는지 알 것 같았다.
***
“축하해. 김 부장. 난 자네가 따낼 줄 알았어.”
처음으로 공공기관 공사를 따냈던 순간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건설사끼리 입찰 담합해 따낸 게 아니라 순수하게 실력으로 따낸 공사였으니.
“정주대학교 증축 공사. 그거 이번에 20개나 입찰했다면서?”
“비행기 그만 태워. 그래 봐야 겨우 5개월짜리 공사야.”
“5개월짜리 공사는 공사 아니냐? 그리고 이거 입찰 담합도 안 했다면서. 이사님들 입이 아주 귀에 걸렸더라.”
입찰 담합은 다른 건설사와 짜고 경매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그래서 더 머릿속에 남는 기억이었다.
다른 건설사에게 일감 안 나눠 줘도 되니 완벽한 승리다.
“고맙다. 근데 이 부장이 나 많이 도와줘야겠어. 견적을 너무 낮게 불러 이 기간에 공사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이거 어째 하청들 쥐어짜란 소리 같구먼.”
“부탁 좀 해도 되지?”
“하하. 걱정 마. 내가 공사 들어가는 부대 비용 다 줄여 줄 테니까. 그럼 오늘 술은 내가 김 부장한테 얻어먹어야겠네.”
입사 동기 이병수는 부대사업부장을 지내는 놈이었다.
마스크, 목장갑, 인부 모집 등 공사에 필요한 외적인 일을 담당하는 놈이었다.
여러모로 건설부와 호흡 맞출 일이 많았는데, 한날 놈이 잔뜩 얼어붙은 얼굴로 찾아왔다.
“김 부장…… 나 자네한테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자초지종을 들었을 땐 놈의 뺨을 올리고 싶었다.
“뭐? 함바집을 돈 받고 선정했어?”
놈이 나 몰래 함바 비리를 저지른 것이다.
치가 떨려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정주대학교 증축 공사는 내 손으로 따낸, 총책임자가 나인 나의 첫 공사였다.
회사에서 언제 접대받고 다니지 말라 했나?
하청사들 집합시키면 왕 대접해 주고, 쏠쏠하니 용돈도 챙겨 준다. 하지만 놈은 먹어도 먹어도 배부른 줄 모르는 놈이었다.
“얼마나 받았어?”
“5개월짜리 공사라서 얼마 안 되는데…….”
“묻는 말에나 대답해! 얼마나 받았냐고.”
“사, 사백 정도.”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뒷돈 받고 함바집을 선정했는데, 10분 거리에 있는 한 국숫집이 말썽을 일으킨 것이다.
그쪽도 아침 댓바람부터 장사를 시작했는데, 인부들은 공짜로 주는 함바집보다 기꺼이 돈을 내면서 그 국숫집을 이용하고 있었다.
“……인부들이 밥집 바꿔 달라고 난리야. 인력사 사장들이 내게 직접 말할 정도면 본사에 요청할 건가 봐.”
뒷돈으로 쓴 돈이 400인데 음식 상태가 정상일 리 없다.
공사와 관련한 핵심적 사업이 아니니 무리 없이 교체될 일이었다.
달리 말해 놈의 비리가 들통나는 건 시간문제였다.
“계약한 업체는?”
“본사에 날 고발하겠대.”
“그냥 그 돈 돌려줘. 너 이거 감사로 들어가면 끝장이야.”
“……그 얘기도 몇 번이나 해 봤는데 안 먹혀. 날 고발하겠대.”
상황 파악이 다 끝났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럼 그 국숫집 찾아가서 말해 봐. 거기만 문 닫게 만들면 될 거 아니야.”
“해 봤어. 근데…… 그쪽도 안 닫겠대.”
그날 나는 놈과 담배가 남아나지 않을 때까지 피워 댔다.
속으로 생각했다. 당장에 감사과로 달려가 이 사실을 알릴까? 이건 하청들한테 받는 접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문젠데.
“한 번만 도와줘…….”
“나더러 뭘.”
“김 부장이 이런 방면엔 선수잖아.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솔직히 자네가 따낸 견적은 너무 무리였어. 나도 이 단가 맞추려고 하청들 많이 후렸다.”
“이 자식이 왜 얘기 거기로 새!”
“그니까 그 집 찾아가서 잠깐만 문 닫게 해 줘. 그럼 나 딴말 안 할게. 이번에 도와주면 은혜 꼭 갚을게!”
놈은 그리 말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생각해 보면 그때 그놈 부탁을 들어주면 안 됐다.
***
놈의 부탁을 받고 찾아간 는 간판이 다 떨어져 가는 허름한 가게였다.
초로의 노인이 혼자서 운영하고 있었는데 눈빛의 총기가 남달랐다.
무거운 마음을 이기며 계산대 앞에 섰을 때, 할머니가 대뜸 쏘아붙였다.
“밥값 안 받겠으니 그냥 가시구려.”
“……예?”
“반찬만 뒤적거리는 거 보니 밥 먹으러 온 사람은 아닌 것 같고. 넥타이 맨 거 보니 공사꾼 같지도 않아 뵈고.”
“…….”
“뭐던 용건으로 남의 가게에 왔소. 택이네에서 보냈나?”
첫인상 그대로 만만치 않은 할머니였다.
나는 잔뜩 주눅이 들었다.
“한명건설에서 나왔습니다. 공사 총책임자 김성균 부장이라고 합니다.”
할머니는 내 명함에 눈길도 주지 않으며 식탁을 치웠다.
“용건만 말하소. 덕담하러 온 것 같진 않아 뵈는데.”
“……함바집 간에 사소한 다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다툼은 닌장할. 택이네 저것들이 음식 개판으로 만드니 인부들이 죄다 우리 가게로 왔지.”
“…….”
“고깃국에 고기가 없고. 된장국엔 미역이 나온다지 않소. 한날은 제육볶음이 나와서 좋다 먹었는디 점심께 배앓이를 했답디다. 부장님은 이것도 알고 계시는가.”
할 말이 없었다.
그 아낀 반찬값이 전부 이 부장 뒷돈으로 들어간 것일 테니.
“나도 밥장사하는 놈이지만 고거슨 선을 넘어도 한참을 넘었제. 을매나 부실하믄 인부들이 돈 따로 내고 우리 국시를 먹고 가겠소.”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랑 정식으로 계약한 업체는 택이네입니다. 당분간 아침 장사 하지 말아 주십쇼.”
“하이고- 난 또 뭔 소리 하나 했네.”
“어차피 저희 5개월만 공사하고 나갈 겁니다. 그에 대한 사례도 제가 넉넉히 드리겠습니다.”
100만 원짜리 수표를 내밀자 노인은 식탁을 엎어 버렸다.
“썩 끄지라이! 내가 이 돈 받을 성싶나.”
“사장님, 저희끼리 싸워 봐야 누구 손해겠습니까.”
“경찰 부르기 전에 당장 나가랑께!”
“구청에 신고하면 이 가게도 무사치 못합니다.”
“뭐시? 그려 많이 해 싸라! 나는 반찬도 재탕 안 하고 원산지도 안 속인다. 단속을 맞아도 택이네가 맞겠지.”
나는 커피 자판기에 케케묵은 먼지를 쓸어 냈다.
“대기업은 이런 먼지 찾는 데 선숩니다. 그만하시죠.”
“그니까 해 보랑게.”
“바깥에 만 원 이하는 현금 결제만 받는다 써 놓으셨죠. 이거 만약 국세청에 신고하면 어떻게 될까요.”
“……뭐?”
“하다못해 공짜로 돌리는 이 자판기 커피도 위법입니다. 저희가 문제 삼자면 이 종이컵도 단속 맞을 수 있어요.”
노인의 얼굴은 사색이 됐다.
대기업이 어떤 놈들인지 이제야 깨달은 것 같았다.
나는 다시 100만 원짜리 수표를 내밀며 말했다.
“잔돈은 안 받겠습니다. 밥값이라 생각해 주십쇼.”
그렇게 식당을 나오기 전까지, 노인은 내게 한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
그 뒤로 복순 할미 국수는 더 이상 아침에 국수를 팔지 않았다.
뒷돈을 받고 장사를 한 함바집은 음식이 조금 나아졌으며 인부들의 불만도 얼마 못 가 사그라들었다.
5개월짜리 공사는 그게 끝이었다.
사실 그 일은 내 기억에서 이미 없어졌을 만큼 사소한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