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교수님의 갑질 (1)
착한기업 100은 팀장들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기업들로 선정되었지만, 그중엔 예상을 벗어난 결과도 있었다.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복순 할미 국수]가 모범 사례로 등극한 것이다.
심사위는 지속적 투자, 투자비 본사 부담이란 점을 높이 평가한다며 심사평을 발표했다.
사실 이번 발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었다.
이 상은 더 이상 당연한 거 했다고 주는 상이 아니다. 본사가 미래를 위해 얼마나 연구개발에 투자하는지도 지켜보겠다, 는 의미였으니.
파격적인 발표에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할 때, 종합팀은 일찌감치 샴페인을 터트렸다.
“팀장님! 우리 추천 기업이 모범 사례까지 갔습니다.”
“이거 정책 홍보 자료로 쓸 텐데 아주 제대로 한 건 하셨네요.”
전문가인 가맹거래과 팀장들을 제치고 자신들이 모범 사례를 올리지 않았나.
모범 사례는 총 세 곳이었는데, 다른 곳은 모두 대형 프랜차이즈, 대기업 계열사 프랜차이즈였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다 평해도 무방한 결과였다.
“모두 고생하셨어요.”
준철은 덤덤한 얼굴로 반원들을 격려했다.
“괜히 저 때문에 마음 졸이셨죠. 미운털 박힐까 봐.”
“아이고 아닙니다. 우리가 이런 경우가 한두 번도 아니고.”
“……예.”
“이거 시상식엔 위원장님하고 조정위원장님까지 참석하신대요. 또 눈도장 찍으시겠군요.”
정말 기대가 되지 않는 눈도장이다.
올해의 공정인상을 탄 대가가 경주에서의 지옥훈련 아니었나.
어정쩡하게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릴 때 박 조사관이 전리품을 들고 등장했다.
“운영지원과에서 카드 내려왔습니다! 오늘 회식 마음껏 하라네요.”
박 조사관이 엉덩이를 씰룩거리자 준철이 짐을 챙기며 일어났다.
“그럼 오늘 회식하고 먼저 들어가세요.”
“엥? 팀장님은요.”
“저는 취소하기 힘든 선약이 있어서.”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죄송해요. 내일 뵙겠습니다.”
말이 더 길어지기 전에 준철은 서둘러 뛰어나왔다.
오늘은 꼭 가 봐야 할 곳이 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직접 할머니 얼굴 보며 전해 주고 싶었다.
***
식당 아주머니들은 김장 옷 바람으로 나와 준철의 설명을 들었다. 그 설명이 끝났을 때 바로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옴마- 진짠가? 우리가 모범 사례라꼬?”
“네. 아마 정책 홍보 자료로도 쓰일 겁니다. 혜택은 물론이고요.”
“이 좋은 광고를 공짜로 하게 생겼네!”
복순 할미는 더 이상 무심한 얼굴로 나오지 않았다.
감정 표현이 서툴기는 하지만 기뻐한다는 건 충분히 느껴졌다.
“거봐요. 우리 국수집은 신청만 하면 무조건 된다니까!”
“사장님. 이거 젊은 팀장님께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누구보다 기뻐하는 건 미리 모여 있던 대리점 사장들이었다.
소상공인 지원금이 막대하지 않나. 장사를 시작하며 은행에 빚만 늘었는데 이자 부담을 대폭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복순 할미는 앞치마에 손을 닦더니 준철의 손을 잡았다.
“욕봤소. 늙은이 괜한 고집 때문에.”
“별말씀을요.”
“선생 덕택에 우리 사장들 부담 좀 줄일 수 있겠구먼.”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네요. 근데 저…… 세부적으로 전달한 사항이 있는데 따로 뵐 수 있을까요.”
“그려. 다들 먼저 고깃집 가 있으소. 나는 선생이랑 얘기 좀 하고 가네.”
아주 성대한 회식을 예약해 놨나 보다.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둘만 남게 되자 할머니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전달할 얘기가 뭐당가. 안 좋은 얘기유?”
“아니요. 축하드린단 말씀을 따로 드리고 싶어서요.”
“난 또 뭐라고. 침침한 얼굴로 있어서 늙은이 놀랐잖여.”
“그리고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신. 젊은 팀장님이 도와줘서 내가 덕 봤지.”
준철은 슬그머니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아니요. 인부들한테 좋은 반찬 써 주시고, 밥도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제가 얼마나 한심한 놈인지 다시 깨달았습니다.”
“그게 무신…….”
“제가 사실 10년 전에 할머니를 뵌 적이 있습니다. 정주대학교 공사할 때였는데, 아침에 늘 여기서 국수랑 김밥을 먹고 갔어요.”
“뭐시어? 팀장님도 우리 국수 맛본 적 있는가?”
“네. 국수 맛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더군요. 음식에 대한 사장님의 정성이 여전해서 그럴 겁니다.”
이번 일만 잘해서 타는 상이 아니다.
그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덕을 쌓았고, 그것이 이번에 보상받은 것일 뿐이다.
과거 얘기에 할머니는 크게 반가워하면서도 아리송한 표정이 되었다.
“근디 나 그띠 아침 장사 얼마 못 했는디. 웬 쌍놈 새끼가 와 지랄혀서.”
노인은 급히 말을 주워 담았다.
“에구구 내 정신 좀 봐. 좋은 얘기 하는데 또 괜히 씰 없는 얘기 했구먼. 아무튼 장하네. 고학해서 이렇게 멋진 공무원이 되셨구먼.”
“네. 사장님 덕분입니다.”
준철은 시선을 쓱 피하며 서류 가방을 들었다.
“일주일 안으로 저희 본부에서 사람이 나올 겁니다. 추후 절차에 대해 설명드릴 거예요.”
“으잉. 알아서 잘해 주시것제. 근디 온 김에 밥이나 먹구 가. 전화로 해도 되는 얘길 뭐 한다고 이렇게 와 줬나 몰람.”
“마침 갈 데가 있어서 잠시 들렀습니다.”
“그럼 들른 김에 밥이나 먹고 가.”
“괜찮습니다.”
준철은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그렇게 10분 거리에 떨어진 정주대학교 캠퍼스로 향했다.
당시 증축했던 건물은 중앙도서관으로 쓰였고, 대학캠퍼스의 낭만이 흠씬 물들어 있는 모습이었다.
준철은 그 주변을 한동안 서성이다 머릿돌을 쓰다듬었다.
열악한 처우에도 공사를 잘 마무리시켜 준…… 인부들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드는 밤이었다.
***
“어서 오십쇼 홍 이사님, 신 이사님.”
“이사는 무슨 자문관에서 은퇴한 지가 언젠데. 이젠 편히 교수라 불러 주게.”
종합감시국 김태석 국장은 홍 교수와 신 교수를 나란히 모셨다.
사실 세 사람은 불편한 관계였다.
자문관(법무보좌관)은 공정위의 작은 감사실로 불리는 곳 아닌가. 조사가 막히면 조언도 많이 구했고, 그 과정에서 쓴소리도 적지 않게 들었다.
“세월이 흐르긴 흐른 모양이야. 자네가 우리한테 커피를 다 타 주고.”
“죄송합니다. 현직에 계실 때 제가 너무 잘 못 모셨죠.”
“그런 말은 아니고. 그땐 또 서로 역할이 달랐으니.”
“두 분은 현직에 계실 때보다 얼굴이 더 좋아지신 것 같습니다.”
“그래? 대학생들하고 부대끼니 젊은 기운이 옮았나 보구먼.”
“자네도 은퇴하면 재취업하지 말고 대학으로 와. 돈은 얼마 못 벌어도 후학을 양성한다는 보람은 있네.”
한동안 옛날이야기와 덕담이 오가며 웃음꽃이 피었다.
하지만 겨우 추억이나 곱씹자고 따로 부르진 않았을 터.
“근데 김 국장이 오늘 우리를 왜 불렀을꼬.”
“눈치 보지 말고 말해. 뭔 일 터진 게야?”
두 사람이 슬쩍 운을 떼자 김 국장이 조심히 서류를 꺼냈다.
“사실 두 분께 자문을 구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만.”
“이게 뭐지?”
“저희 종합국에 들어온 익명의 투서입니다. 출처는 청운대 환경공학과 대학원생들 같습니다.”
범상치 않은 얘기에 두 교수는 바로 찻잔을 내려놨다.
“환경공학과 한명석이라는 교수가 연구비를 착복했다더군요. 혹시 아는 교수입니까?”
“한명석이라 하면…… 그 수질연구원 아니야? 한국 수질 업계에서 꽤 권위 있는 걸로 알고 있네만.”
“네. 맞습니다. 그 사람이 연구비 카드를 개인 용무에 쓰고, 대학원생들에게도 부당한 행위를 했다고…….”
두 교수는 조심히 서류를 들었다.
익명의 제보는 김 국장 말 그대로였다.
한국 수질 업계에서 권위자로 꼽히는 한 교수가 연구비를 횡령한 사실이 내역별로 세세하게 적혀 있었던 것이다.
사실 교수들의 비리 문제는 해마다 있는 문제였고, 이 내용도 그리 특이할 건 없었다.
“근데 이걸 왜 공정위가 가지고 있나? 단순 횡령 사건 같아 보이는데 검찰에 넘겨야지.”
“……이 사람이 입찰 담합까지 한 모양입니다.”
두 교수의 눈이 번쩍 뜨였다.
“입찰 담합?”
“네. 2년 전에 환경원에서 공공 입찰을 하나 냈습니다. ‘농촌지역 비점오염원 관리’라고…… 쉽게 말해 원인 미상의 오염원을 파악하는 연구인데 10억짜리 사업이었습니다.”
“그걸 담합으로 따냈다?”
“네. 제보에 따르면 주요 대학 4곳이 여기에 들러리사로 참여했답니다. 적정 공사 가격은 8억 정도 되는데 2억을 더 불렀다네요.”
두 교수는 무너진 얼굴을 추슬렀다.
“적정 공사가가 8억이었다는 건 누구 의견이야?”
“……제보 내용이었습니다.”
“그럼 신빙성은 없네. 중립적인 기관에서 평가한 것도 아니고 고발 당사자들이 한 말이니.”
“그건 그렇습니다.”
“그럼 이게 입찰 담합이라는 증거는 어디 있어?”
“아직 결정적인 증거는 없습니다만 한 교수 밑에 있는 연구생 네 명이 입찰 담합이라 하더군요.”
신 교수는 혀를 찼다.
“그건 잘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일 세. 아닌 말로 교수한테 당한 게 억울해서 조작했을 수도 있어.”
“그래서 따로 조언을 구하고 싶었습니다. 이걸 해야 될지 말지.”
“원칙상으론 안 돼. 증거 없이 어떻게 수사기관이 함부로 움직여.”
“맞는 말씀입니다만…… 입찰 담합이란 게 증거가 쉽게 잡히는 사건이 아니지 않습니까.”
조사 기관이 작정하고 달려들어도 찾기 어려운 게 담합 증거다.
일개 대학원생한테 이 증거를 요구하는 건 사실상 하지 않겠단 얘기다.
두 교수는 김 국장이 어떤 난처함에 처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사건을 덮자니 심증이 많고, 하자니 증거가 없다. 이 말이구먼.”
“네. 그래서 두 분께 좀 청을 드리고자 합니다.”
“말해 보시게.”
“대학 내부 문제 같은데, 두 분께서 징계위를 건의해 주실 수 있을까요.”
경찰이든 검찰이든 대학은 어지간해선 직접 건드리지 않는다.
지식인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자칫 수사기관의 탄압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쓰는 방법이 대학 내 자체 기관인 징계위원회다. 교수 개인의 비리가 발견되어도 일단은 징계위에 회부시키며 그들의 결정을 존중하는 편이다.
“징계위라…… 그럴 바에야 안 하는 게 낫지. 자네도 알잖아? 징계위들 다 대학 내부 사람이라 제 식구 감싸기라는 거.”
“아, 예.”
“그리고 한 교수는 예전에도 한 번 회부된 적 있을걸?”
“아시는군요. 그때도 연구비 사적 유용으로 문제됐었습니다.”
당시에도 참다못한 대학원생 세 명이 한 교수 비리 사실을 폭로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는 흐지부지.
한 교수의 비리는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되었으나 엄중경고로 징계는 마무리가 되었다.
“……해서 말인데. 이거 저희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신 교수와 홍 교수는 말없이 서류만 뚫어져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