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2
12화
담판 (1)
-다음 소식입니다. 국내 4위 조선업체, 대성중공업에 작업 중지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고용노동부는 그간 대성에서 산업 사고를 상습적으로 은폐했다 사유를 밝혔는데요.
-주된 피해자는 대성의 하청 근로자였습니다. 발단엔 전치 50주 사고까지 덮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고용부는 현장에서 안전 수칙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 전면 조사를
예고했습니다. 금일 대성중공업 주가는 대폭 하락하며 마감했습니다.
-증시에 미치는 파장이 얼마나 될지 신은진 기자가 전합니다.
작업 중지 명령은 대성중공업의 시총을 하루 사이에 120억이나 증발시켰다.
단순한 패닉 매도가 아니었다.
노동부는 기한 없는 작중 명령을 내렸고, 공정위는 지금까지 은폐했던 모든 정황을 언론에 터트렸으니 말이다.
“……현재 저희 비상경영팀에서도 내용을 확인 중에 있습니다. 진위 여부를 떠나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 드립니다.”
나흘 뒤 대성중공업은 사죄문을 냈지만 시총은 이미 700억이나 증발한 후였다.
심지어 그 사죄문도 혐의를 인정하거나, 향후 대응에 관한 말은 일절 없었다.
?기한 없는 작업 중지 어떻게 해결할 거야? 하루 손실 40억씩 이거 어떻게 메울 거야? 작업 중지 풀리면 하청 다시 갈아 넣어서 만회할 거야?
?사내 급식 먹고 똑같이 식중독 걸렸는데, 자사 직원만 치료해 준 거 실화냐?
노동부가 현장에서 발견한 26건의 안전 수칙 위반을 발표하자, 그나마 회사 편이던 개미 투자자들까지 이성을 잃었다.
근로자의 생명줄인 족장(임시 구조물)은 짓다가 만 게 대다수였고, 밀폐 공간의 환풍 장치는 구멍 몇 개 뚫고 나중에 땜질하는 식이었다.
아직까지 사람이 안 죽은 게 기적이었다.
바닥까지 떨어진 주가가 지하로 곤두박질치는 일만 남았다.
-어쩔 수가 없어요. 원청에서 예산 삭감하면 저희는 당연히 안전 장비부터 줄여요.
-원청이 제일 잘 압니다. 그 돈 주고 작업시키면 안전장치 설치 못 한다는 거.
그리고 하청사들의 추가 폭로까지 이어지던 날.
중공업 서열 4위의 대성이 주식시장에서 매매 정지를 당했다.
***
“한 말씀만 해 주십쇼! 대성중공업의 어디까지 관여되어 있습니까?”
“다수의 하청사들이 폭로를 하고 있는데, 추가 폭로가 또 있습니까?”
“수사는 구속으로 진행되는 겁니까?”
영장 신청을 하러 온 준철은 서초역부터 장사진을 치고 있는 기자들과 마주해야 했다.
“죄송합니다. 저흰 오늘 검찰에 고발 신청을 하러 왔습니다.”
“대기업 주식이 거래정지를 당한 초유의 사태입니다. 투자자와 국민들을 위해 한 말씀만 해 주십쇼.”
준철은 뜻하지 않게 포토 라인에 섰다.
사건과 무관하게 선의의 피해자가 생긴 시점이다. 고발 부처 팀장으로서 수사 상황에 대해 보고를 해 줄 의무는 있었다.
“전치 50주짜리 사고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합니다. 언론 보도가 어디까지 사실입니까?”
“언론에 나온 내용 모두 사실입니다. 현장은 안전 수칙이 지켜지지 않는 열악한 구조였고, 피해자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대성에서 이를 은폐했단 사실도요?”
“저흰 이에 관한 증거를 수집했고 오늘 검찰에 고발할 예정입니다.”
“최종 배후에 대한 추측이 많습니다. 하청 책임자였던 임직원의 잘못입니까, 아님 최대성 회장까지 연루되어 있습니까?”
“최 회장이 직접 결재한 문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지시를 했을 가능성은 열어 놓고 있습니다. 자세한 건 관련자 소환 후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준철이 포토 라인을 벗어나자 기자들이 화들짝 놀라며 따라붙었다.
“그럼 최대성 회장까지 소환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주식 매매 정지는 언제 풀립니까?”
“처벌 수위는요?”
준철은 무덤덤한 얼굴로 카메라를 비켜 걸었다.
대답하면 할수록 논란만 더 커질 문제다.
제발 법원이 현명하게 판단했기를.
***
“아니 이거 무슨 진짜 정치권에 줄 댄 거 있습니까?! 사태가 이 지경인데 불구속이요?”
준철의 평정심은 담당 검사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사실 오늘 이 자리는 고발하려고 온 자리가 아니었다. 구속 심사 결과를 들으러 온 자리였다.
민감한 문제니 만큼 기자들에게도 함구했는데, 이럴 거면 차라리 폭로를 해 버릴 걸 그랬다.
“검사님. 이게 말이나 됩니까?”
“죄송합니다. 근데 이건 저희가 아니라 법원이 결정한다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그럼 재심사 넣죠. 이건 말이 안 됩니다. 증거 인멸의 가능성이 저렇게 큰 사람을 어떻게 불구속 수사합니까?”
“도주의 우려가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하청들까지 자진해서 대성중공업 고발하고 있습니다. 증거 인멸도 불가능한 수준이에요.”
사실 불구속 수사가 원칙이고, 신석준이 도주 가능성도 없다는 것쯤은 잘 안다.
하지만 구속 심사는 법원에서 이를 얼마나 심각하게 인지하는지 판가름하는 척도다.
판사가 직접 판단하는 거라 미리 보는 1차 판결이나 다름없다.
“너무 그렇게 극단적으로만 생각하지 마세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정도로 증거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검사님. 유죄 입증 못 할까 봐 그러는 게 아닙니다. 저희 이 수사한 지 3개월이 넘었는데, 신석준 상무 얼굴을 한 번도 못 봤습니다.”
“그건…….”
“법이 얼마나 우스우면 저렇게 오만방자하겠습니까?”
구속이 기각돼서 화가 나는 이유는 또 있었다.
신석준이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다.
“제가 증거 인멸을 강조하는 건 또 엄한 사람 대타로 세우고 뒤로 숨을 가능성도 고려해서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제 풍산용접 장지환 씨가 진술 바꿨습니다. 대성에서 일감 가지고 협박했단 사실 모두요.”
“신석준 상무도 이를 인정하던가요?”
“오늘이 첫 취조입니다.”
“제가 직접 만나 봐도 됩니까?”
“안 될 거 없죠. 먼저 시간 드릴 테니 독대하세요.”
따지고 싶은 게 많았지만 그쯤 하기로 했다.
지금은 검찰과 호흡을 맞출 때 아닌가?
‘홍대현 판사…… 이 처 죽일 놈.’
준철은 영장기각서를 보며 판사 이름을 곱씹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은퇴하고 대성중공업에서 거하게 모셔 갈 놈이다.
전생에서 아닌 놈을 못 봤다.
***
처음 만난 신석준 얼굴엔 곤두박질친 주가의 그늘이 그대로 드러났다.
수척해진 얼굴을 감추려는 듯 눈을 부릅뜨고 있었는데, 도리어 그 모습이 더 초라해 보였다.
“드디어 뵙네요, 신석준 씨. 한 번도 저희 소환에 응하시지 않더니.”
슬쩍 성질을 한번 긁자 그가 대뜸 언성을 높였다.
“작업 중지는 행정명령 남용 아니요?”
“어떤 부분이요?”
“인명 사고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극단 처벌이 내려지지?”
“사유서 드렸잖아요. 사망에 준하는 사고, 상습적인 산재 은폐라고.”
“그거야 핑계고! 재판 유리하게 끌려고 여론에 불 지핀 거 아니야?! 죄라 해 봤자 고작 경영 과실인데, 그 하나로 몇십억이 날아갔어! 이래도 권력 남용이 아니야?”
‘이거 완전 여우 새끼네.’
확실히 영악한 놈이다.
작업 중지 명령은 사실상 공론화의 목적이 더 컸다. 모든 범죄는 공론화가 되어야 수사처에 유리해지니까.
여기엔 공정위의 약점도 있었다. 사망 사고가 아니었는데도 사망에 준하는 사고라 주장해 관철시키지 않았나?
하지만 신석준이 왜 대뜸 이런 공격을 하는지 그 이유가 빤히 보였다.
“변호사가 그렇게 컨설팅해 줬나 보죠?”
“뭐?”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하청들 산재 은폐한 건 어차피 못 덮는다. 그럴 바엔 수사 당국의 절차적 문제를 거론해 이걸로 법정 다툼하자. 이런 의도로 보이는데.”
변호사가 해 줬던 말을 준철이 그대로 읊자 그의 눈길이 취조실 카메라로 향했다.
“오해는 마세요. 피해자가 변호사랑 대화 나눌 땐 저거 끕니다. 녹음도 안 하고.”
“뭐야 당신?”
“근데 행정명령에 위법 판결 떨어져도 우리한테 손배 청구 못 합니다. 이런 문제엔 형법보다 국민정서법이 더 우선 적용되거든. 아니 애초에 위법 판결도 못 받을걸?”
“뭐냐고 너!”
“경험자. 당신 같은 놈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준철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를 해 대자 신석준은 더 이상 입을 뗄 수 없었다.
“헛소리는 서로 그쯤 합시다. 하도 얼굴 안 비치셔서 우리 할 얘기가 산더미예요.”
얼굴이 굳어진 그와 달리 준철은 외려 화색이 돌았다.
서류를 만졌을 때 들려온 불명의 대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로 지금 이 자리에서 확인했다.
이놈이 최종 배후자다.
“좋소. 그럼 긴말 안 하지. 나를 구속하든, 조리돌림하든 상관 안 할 테니 당장 작업 중지 명령은 푸는 게 좋을 거요.”
“그거 풀고 싶으면 하나만 대답하세요. 하청 근로자들 산업재해 은폐. 그거 당신이 지시했습니까?”
“난 모르는 문제요.”
“이 사건의 발단인 전치 50주 사고 아시죠. 당시 피해자가 원청, 신석준 상무의 지시로 이 일을 무마했다 했습니다.”
“사실무근이요. 그건 하청 사장과 하청 근로자의 문제요.”
“그리고 어제, 하청 사장 장지환 씨가 진술을 번복했습니다. 원청 담당자의 청탁이 있었고, 죄를 뒤집어써 달라는 위증 교사도 있었다.”
신석준도 여기까진 예상 못 했는지 얼굴이 곧 굳어졌다.
“인정하세요. 본인이 은폐해 왔잖아요.”
“…….”
“대성에서 천만 원, 하청에서 천만 원 주고 나머지 피해는 근로자한테 전가시킨 거. 여기 빼도 박도 못 하게 나와 있습니다.”
증거까지 들이밀어 주자 놈이 갑자기 엉뚱한 말을 꺼냈다.
“……그건 실무 선에서 오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실무 선?”
“당시 하청 담당자였던 김 부장이 위로금으로 준 건데, 이제 와 이상한 돈이 됐어요. 해서 해당 관계자에겐 징계 처분을 내렸습니다.”
준철이 피식 웃었다.
“난 또 뭔 소린가 했네. 본인 잘못이 아니라 또 부장급에게 전가하겠다는 겁니까?”
“믿지 않겠지만, 그게 사실입니다.”
“설사 그게 사실이라 해도, 최종 책임자는 당신이에요.”
“책임은 인정합니다…… 근데 자세한 건 나도 몰랐어요.”
“어떻게 몰라요. 여기 당신이 사인한 서류가 덩그러니 있는데.”
“정말 몰랐습니다.”
코앞에 증거를 내놔도, 모른다.
피해자가 직접 지목했다 해도, 모른다.
놈의 막무가내식 변명이 계속되자 준철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재판 전략이 너무 구닥다리 아니에요? 싸구려 변호사 쓰신 거 같은데.”
변호사가 뒤에서 뭔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눈에 훤히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