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징계위원회 (2)
청운대가 윤리위원회를 소집했단 소식은 곧 파다하게 퍼졌다.
통상 윤리위는 9명을 위임하며 이 중 4명을 외부 인사로 임명한다.
그중 1석을 학생대표(학생위원)로 선임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입장 차가 있었지만, 이번 윤리위가 사실상 한 교수 징계위라는 것엔 이견이 없었다.
대학 당국의 발 빠른 대처에 맞춰 준철도 곧바로 재소환에 돌입했다.
들러리 대학을 모두 한자리에 불렀는데, 이번엔 교수 대신 변호사들이 출석하였다. 더 이상 발뺌하긴 힘드니 이젠 처벌 수위를 협상하러 온 것이다.
“민석 씨. 여깁니다.”
그렇게 대망의 징계위 소집 당일이 왔을 때.
준철은 서류를 한가득 안고 청운대로 향했다.
느지막이 도착한 이민석은 긴장한 얼굴이었다.
“밤새 못 주무셨죠.”
“……네. 이런 자리는 처음이라서.”
“너무 긴장할 필요 없습니다. 겪은 일, 아는 사실만 말씀해 주시면 돼요.”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 심란한 마음일 것이다.
윤리위는 진상 조사를 위해 증인 두 명을 신청했는데 하나는 공정위, 다른 하나가 이민석이었다.
“그 전에 먼저 저희 수사 결과부터 말씀드릴게요.”
“네.”
“자백 나왔습니다.”
이민석의 눈동자가 커졌다.
“저, 정말요?”
“네. 영서대, 원미대 모두 입찰 담합 사실 인정했어요. 다른 두 대학도 저희랑 처벌 수위 협상 중입니다. 곧 진술서 쓸 거예요.”
“…….”
“고맙습니다. 이 모두 민석 씨가 공익 제보해 주셔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민석의 얼굴은 밝지도 어둡지도 않았다.
착잡할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는 최대 피해자일 수밖에 없으니.
“근데 이게…… 진짜 한 교수 파면으로 이어질까요?”
“장담할 순 없지만. 지난번처럼 경고로 끝나진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중징계가 떨어질 것 같지도 않네요.”
“네?”
“거절됐대요. 징계위원 중 한 명을 학생대표로 선발하는 거…….”
풀이 죽은 이유가 따로 있었구나.
징계위원은 유무죄를 판가름해 줄 배심원 같은 자리다. 당연히 누구보다 학생대표 한 명이 선임되길 바랐는데, 끝내 문턱을 넘지 못했다.
“걱정 마세요. 그래도 이번 징계위원장은 부총장이 직접 맡았다 합니다.”
“그게 의미가 있나요…… 부총장도 어차피 교수 편인데.”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부총장이 직접 참여했다는 건 교수들끼리 밀실 회의 못 하게 막겠단 뜻입니다.”
“……정말요?”
“네. 그리고 어지간해서 부총장이 직접 참여하진 않아요. 그만큼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 말하자 이민석도 시종일관 굳어 있던 얼굴을 조금 풀었다.
겪은 일, 당한 사실만 말하고 오면 되는 자리다.
그것만 생각하자.
***
한 교수 징계위원회는 한 교수의 출석 없이 이루어졌다.
보안상 징계위는 9명의 위원들만 자리했는데 그중 두 사람은 준철이 아는 얼굴이었다.
‘감사합니다. 신 교수님…… 홍 교수님…….’
그리 생각하며 슬쩍 눈인사를 건넸지만 신 교수는 이미 인사를 받아 줄 기분이 아니었다. 그는 텅 빈 자리를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대학 윤리위원회는 불필요한 법적 절차를 줄이고, 학계가 스스로 자성하는 자리라는 데 의미가 있겠습니다. 그런 만큼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들어 볼 것을
기대했는데, 안타깝게 됐군요.”
행정 처벌과 마찬가지로 윤리위의 결정엔 강제성이 없다.
당사자가 불복하면 법정 싸움까지 가야 하는 것이다.
한 교수의 불출석은 당연히 이를 시사하는 행동이며, 이로써 대학이 지킬 수 있는 마지막 품위도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바로 안건에 들어가겠습니다. 먼저 공정위의 입장을 들어 보고 싶군요.”
중간에 앉아 있던 부총장이 준철에게 눈을 돌렸다.
“현 조사가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소상히 말씀해 주십시오.”
준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류를 건넸다.
어제 막 들러리 대학들에게 받은 따끈따끈한 진술서였다.
“담합 조사는 이미 끝났습니다. 의심되는 대학들 모두 비리를 시인했고, 저희들의 과징금에도 승복했습니다.”
“그 액수가 어느 정도인지요.”
“각 대학 1천만 원으로 낙찰사인 청운대엔 5천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계획입니다.”
부총장 입에선 침음이 흘러나왔다.
이 자리는 공정위가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지만, 수사 결과를 통보받는 자리기도 하다. 청운대는 사실상 5천만 원의 과징금을 통보받은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한명석 씨가 어떻게 비자금을 조성해 왔는지 낱낱이 밝혀졌습니다.”
“…….”
“이는 당연히 횡령 혐의로 검찰에서 따로 조사할 계획입니다.”
회의실엔 페이퍼 넘어가는 소리만 들렸다.
짜고 친 대학들이 이미 다 범죄를 자백한 마당이니 무어라 더 물을 말도 없었다.
“이민석 학생.”
“……예.”
“이 횡령 과정엔 본인이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연구비 회계 내역을 담당하셨죠?”
“예…… 그렇습니다.”
“공정위가 파악한 이 내용이, 본인이 아는 사실과 맞습니까.”
부총장의 시선이 옮겨 가자 이민석이 바짝 긴장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곧 담담하게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전부 다…… 맞아요?”
“네. 쓰지도 않은 용역 업체를 쓴 것처럼 포장해 돈세탁을 했습니다. 연구에 필요한 핵심 부품도 상당 부분 과대 비용처리시켰고요.”
“그 과정에서 대학원생들을 동원한 것도 사실입니까?”
“네. 모두 사실입니다. 저희 연구팀은 현장 실습이란 명목하에 강에서 샘플을 채취했는데, 정당한 노무비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 돈은 전부 한 교수님 뒤로 들어갔습니다.”
“근데 막판에 연구비를 정정한 내역이 있더군요. 정정 사유가 다 회계 담당인 본인의 실수였다고 나오는데.”
“그 또한 한 교수의 지시였습니다. 회계 담당인 저에게 뒤집어쓰라 했고, 이 일만 잘 끝나면 박사 논문을 통과시켜 주겠단 회유도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얘기가 시작되자 징계위원 얼굴이 굳어졌다.
“한 교수님의 비리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대학원생들을 새벽에 불러내 대리운전 시키기 일쑤였고, 딸아이의 등하교를 위해 어린이집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
“이 모두 연구와는 전혀 무관한 일로, 철저히 교수님의 개인적 용무였습니다.”
“…….”
“또한 학생들이 쓴 개인 논문을 첨삭 등의 이유로 1저자 자리를 빼앗았고, 때론 송두리째 빼앗는 등 부당 행위가 많았습니다.”
가장 예민한 주제가 나오자 신 교수가 물었다.
“해당 행위가 오래 있었습니까.”
“제가 교수님 밑에서 11년 동안 공부했는데, 지금까지 늘 있었습니다.”
“이 문제는 연구자 윤리에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만연했던 일이면 왜 그간 쉬쉬했던 겁니까.”
“모두 박사 학위만 바라보고 공부한 친구들이니까요. 저러다 말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티다 오늘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질타하려고 물은 말이 아니었다.
그 대답에 회의실은 다시 숙연해졌다.
이들은 징계위원이었지만 같은 대학의 교수로서 가해자이기도 했다. 이민석의 증언 앞에 고개를 들기 힘들 정도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알겠습니다.”
“저…… 교수님.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사실 이제 와 터져서 그렇지. 한 교수의 만행은 정말 오래되었습니다. 함께 공부한 동기 중에 공부가 힘들어 대학원을 포기한 사람보다, 교수님의 성격을 못 이겨 중퇴한 대학원생이
더욱 많았습니다.”
“…….”
“한 교수의 범행은 연구윤리를 위반한 것뿐 아니라, 다음 세대의 가능성을 짓밟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선처 없이 한 교수의 죄를 명명백백 밝혀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민석은 지금껏 응어리진 말을 쏟아 냈다.
회의실은 완전히 정적에 휩싸였다.
***
두 증인이 나가고 회의실엔 9명의 징계위원들만 남았다.
긴 정적이 이어졌지만 누구 하나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상상 이상의 증언들이 2시간 동안 이어졌으니.
“…….”
이 자리에 모인 교수들도 사소한 갑질은 하고 사는 사람들이었다.
방학 때 조교에게 책 반납시키고, 연구비로 택시비 결제하는 것 정도는 암암리에 하고 사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연구비 횡령을 위해 유령 업체에 용역을 준 것처럼 꾸미고, 제자들의 논문까지 손대는 이 만행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다들 침통한 얼굴로 말을 잇지 못할 때 한 사내가 말을 이었다.
“사실 사안만 놓고 보면 파면도 아깝습니다. 이건 법원에서 실형이 떨어져도 이상할 게 없는 만행들이니.”
모두 동의하는 바였다.
“다만 한 교수의 의도도 확실해 보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어떤 결정이 나오든 그는 불복할 겁니다. 징계위 불출석 자체가 법정 싸움을 시사하는 것이니.”
“하면 저희도 적당한 중징계로 끝내는 게 어떨까요?”
“적당?”
“파면 해임까진 무리지만 정직 6개월 정도는 그도 납득할 거라 봅니다. 무엇보다 한 교수가 수질 업계에 공로한 기여도 있으니…….”
신중한 논의가 오갈 때 불현듯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공로는 무슨. 제자들 논문 다 슬쩍해서 자기 연구 실적으로 포장했지.”
“신 교수님. 진정하시고 우리 이성적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파면에 그칠 게 아니라, 우리 손으로 검찰에 고발까지 해야 합니다. 사안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어떻게 정직 6개월 얘기가 나옵니까.”
정직 6개월.
웃기는 소리다. 한 교수는 한 학기 안식년이라 생각할 것이다.
“게다가 공정위는 이미 입찰 담합 진술을 모두 받아 내지 않았소. 우리에게 떨어질 과징금이 5천이라 합니다.”
“…….”
“그 어떠한 집단보다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대학에 사실상 유죄가 떨어진 셈이죠. 이게 과연 정직으로 끝날 문제입니까.”
신 교수는 눈을 돌려 부총장을 바라봤다.
“아시다시피 젊은 세대는 공정과 상식에 누구보다 예민합니다. 한 교수 파면시키지 않는다면 우리조차 뒷감당할 수 없을 게요.”
“나도 신 교수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대학 집단이 폐쇄적이란 지적은 늘 있어 왔지요. 만약 오늘 또 하나 마나 한 징계가 나오면 우리 스스로 썩은 집단이란 걸 증명하는 꼴이요.”
신 교수와 홍 교수의 반박이 거칠게 이어졌지만 누구 하나 입을 떼지 못했다.
결국 징계위원장인 부총장이 말문을 열었다.
“두 분께선 파면도 그냥 파면으로 끝낼 생각이 없으시지요.
“네. 당연히 한 교수 논문 심사 다시 해야 할 겁니다. 억울하게 뺏긴 논문이 있다면 제 주인 찾아가야죠.”
그러기 위해서라도 한 교수는 반드시 교수 사회에서 제명시켜야 한다.
부총장은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꽤 긴 싸움이 되겠군. 한 교수는 절대 우리 결정에 따를 리 없으니.”
“부총장님 설마…….”
“파면합시다. 우리도 이제부턴 무너진 대학 위신을 회복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