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28
128화
명백한 다단계 (2)
바이포인트.
젊은 사람들에게서 최근 유행하는 디지털 화폐로 일종의 문화상품권 같은 개념이다.
1만 원을 충전하면 1만 2천 포인트를 충전해 줬는데, 이 포인트는 편의점, 카페, 프랜차이즈 등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었다.
아무리 돈이 복사가 되는 시대라지만 이건 정말이지 가입 안 한 사람이 바보다.
막대한 요금을 내야 쓸 수 있는 통신사와 달리 모두가 가입할 수 있었고.
실적에 따라 혜택이 다른 카드와 달리 모두가 공평한 혜택을 받았다.
심지어 제휴 맺은 업체가 대부분 대기업 계열사다. 대한민국 전역에서 쓸 수 있어 현금과 다를 게 없었다.
편의성과 파격적인 혜택 덕에 바이포인트는 출시 4년 만에 회원 수 100만 명을 육박.
웬만한 코스닥 업체보다 큰 500억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만능 포인트네.’
사실 외연만 보면 크게 이상할 게 없는 회사다.
고객들에게 불만 사례가 접수된 것도 아니고, 회사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으니.
거래 제휴점도 늘어나고 있었고, 결제에도 문제는 없었다.
‘……응?’
그렇게 무념무상 서류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끝이야?’
내가 뭘 잘못 봤나?
준철은 자세를 고쳐 앉고 다시 첫 장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 검토가 끝났을 땐 살짝 당혹감이 들었다.
‘……왜 이게 끝이지?’
보통의 제휴 포인트는 다 수익원이 있기 마련이다.
기업은 장기 고객을 유인하기 위해 여기서 난 이익을 ‘아주 조금’ 소비자들에게 환원하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이 바이포인트는 달랐다.
고객들에게 퍼 주려면 당연히 회사도 이윤 사업을 해야 하는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수익원이 없었다.
‘……시장 선점을 위한 단기 적자.’
처음엔 그리 이해하려 애썼다.
일단 가입자부터 확보하고 그다음에 수익 사업을 할 수도 있는 문제다.
하지만 바이포인트는 가입자가 100만 명을 넘어가는 상황에서도 이렇다 할 사업 기획이 없었다.
수익 사업은커녕 수익 모델이 뭘지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뭔가 있겠지…….’
세 번째 검토가 끝났을 땐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전망도 없는 회사가 어떻게 이리 퍼 줄 수 있는지 짐작 가는 게 있었다. 바로 새 가입자다.
새 가입자가 결제한 금액으로, 기존 손해를 충당하고.
그 손해는 또다시 새 가입자 유치로 충당하는 바로 명백한 다단계인 것이다.
‘……이건 또 왜 이래.’
신고된 직원 명부를 봤을 땐 의심이 확신이 되었다.
바이포인트 대표는 김상원, 김상기라는 형제였는데 총 직원이 12명이었다. 그것도 모두 ‘김 씨’ 성을 가진.
이건 굳이 전생의 김성균 경험도 필요치 않은 문제였다. 페이퍼 컴퍼니로 비자금 만들 때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친인척 동원 아닌가.
기업에 ‘고용’ 흔적이 보이지 않는 건, 비자금을 조성하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사인이다.
회사 내부 사정을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다는 뜻이니.
그렇게 수차례 검토가 끝났을 땐, 어안이 벙벙했다.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치밀한 범행 수법이면 수긍이라도 가지…….
이렇게 단순한 범행 수법을 왜 아무도 몰랐단 말인가?
-바이포인트…… 내일 당장 부도 처리돼도 이상하지 않을 회사예요. 감시 기관이 왜 이걸 못 잡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그쯤 되니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만약 이게 정말 문제가 있는 회사라면…… 이미 글렀다.
이미 해외 계좌로 돈세탁 다 시켜 놨을 것이고, 현금화할 수 있는 돈은 모조리 다 숨겨 놨을 것이다.
땅에다 금괴라도 묻어 놨다면 그걸 어떻게 찾는단 말인가.
국정원도 못 잡는다.
이쯤 되니 현실도피를 하고픈 생각이 들었다.
그럴 리 없을 거야. 이 회사는 정상적인 회사일 거야.
그렇게 믿고 싶을 정도다.
***
특수거래과 송 과장은 불쑥 찾아온 이 젊은 놈의 따귀를 때리고 싶었다.
김민호의 돌발행동으로 이미 무능한 과장이 되어 있던 터였다.
징계위를 여네 마네. 놈이 과거에 실패한 조사까지 들먹이며 겨우 잠재웠다 생각했는데, 엉뚱한 녀석이 나타나 갑자기 기름을 붓는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가?”
“바이포인트, 아무래도 폰지사기 같습니다.”
“폰지사기가 뭔지는 알고?”
환영을 바라고 온 건 아니지만 이런 모욕적인 반응이 나올 줄이야.
“금융 다단계라 알고 있습니다.”
“알긴 아는구먼. 근데 이 팀장은 관련 사건을 한 번이라도 맡아 본 적 있나?”
“물론 경험은 없습니다만…….”
“그럼 경험 많은 내 말 들어. 이건 폰지사기 아니야.”
툭.
송 과장이 기획안을 부메랑 날리듯 던졌다.
준철은 땅바닥에 떨어진 서류를 주우며 재차 말했다.
“과장님. 소속 부처도 아닌 제가 불쑥 찾아와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 바이포인트한테 사기당했다고 소비자한테 신고 들어왔어? 아니면 바이포인트가 제휴 업체한테 결제 안 해 줬대?”
“…….”
“무슨 심각? 대관절 무슨 이유로 가만히 잘 있는 기업 들쑤시겠데!”
송 과장의 언성이 단번에 커졌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되는 반응이었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다.
“수익원이 없는데 계속해서 고객들한테 퍼 주고 있습니다.”
“그런 건 퍼 줬다고 표현하는 게 아니라, 투자했다고 표현하는 거야. 일단 회원들 확보하고 자리 잡으면 수익 사업 시행하겠지. 배달 시장도 이렇게 컸고, 소셜커머스도 이렇게
컸다.”
“그럼 지금쯤 사업 윤곽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뭐?”
“배달 시장은 수익 모델이 뭔지 짐작이라도 됐죠. 여긴 회원수가 100만을 넘어가는데 아직도 뭐 하는 회산지 모릅니다.”
송 과장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포인트 제휴 업체가 무슨 수익 사업을 할 수 있을까?
김민호 팀장이 망아지처럼 날뛰었을 때 자신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문제다. 하지만 마땅한 모델이 보이지 않았고, 막연하게 그래도 뭔가 하겠지 싶은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지금.
서서히 그 근원적인 문제에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제휴 포인트 업체…… 이런 게 어떻게 업체가 될 수 있는 거지?
“이건 사실 비슷한 사례도 많습니다. 중고시장에서 문화상품권 1천 원씩 싸게 팔다 나른 업자들. 이건 규모만 다르지 수법이 완전 똑같습니다.”
어쩌면 그것 때문에 더 인정할 수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이 단순한 범행 수법이 회원수 100만 명을 넘을 때까지 적발되지 않았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얘기다.
“좋아. 백번 양보해서 이 업체 폰지사기라 치자.”
긴 상념에 잠겨 있던 그가 입을 뗐다.
“근데 바이포인트랑 제휴 맺은 업체들이 꽤 많거든? 편의점, 커피점, 음식점. 전부 다 이름 알 만한 대기업들이야. 자네 말대로라면 이놈들도 공범이겠네?”
이번엔 준철의 말문이 막혔다.
“……공범까진 아니지만 이들도 당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당해?”
“현재 디지털 화폐 시장이 혼잡한 건 사실이니까요.”
“내가 아는 대기업들은 그렇게 허술한 놈들 아니야. 본인이 말하고도 뭔가 부끄럽지 않아?”
무어라 할 말이 없다.
사실 이 자료를 검토할 때 가장 걸렸던 점이다. 제휴 맺은 업체들이 다 기라성 같은 대기업들 아닌가.
공범이 아니면 당했다는 뜻인데, 그 어느 쪽도 납득이 되질 않는 정황이다.
준철이 대답을 못 하자 송 과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단계 업자들이 당국을 속일 순 있어도 천하의 대기업을 속일 순 없다.
놈의 현란한 말솜씨에 잠시 이성이 흔들렸던 거다.
“이 팀장, 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김민호 과욕에 함께 놀아나지 마.”
송 과장은 다시 차가운 눈빛으로 돌아왔다.
“내 부하 직원이지만 너무 탄탄대로만 걸었던 친구야. 김 팀장도 부임 초기 때 자네처럼 실적 좋았어. 만지는 사건마다 백억 대 다단계였거든.”
“…….”
“그 영광에 아직까지 취해 있는지 최근엔 계속 허탕질이야. 천만 원짜리 다단계는 아예 사건 같지도 않나 봐. 부디 자네는 그러지 말라고.”
지금 당장 수사 실적 좋다고 자만하지 말아라. 너도 곧 허탕 치는 날이 올 거다.
그런 경고로 들린다.
“과장님. 저 그럼 한 가지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부탁?”
“국세청에 세무조사 요청 한 번만 해 주십쇼. 회계 자료 확인되면 저도 끝내겠습니다.”
“그거 봐서 뭐 하게.”
“부채비율, 누적 적자가 얼마인지는 알아야지 않겠습니까. 바이포인트가 이 내용만 소비자들에게 고지하면 저도 더 이상 문제 제기하지 않겠습니다.”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 부탁이었고, 크게 어려울 것도 없는 문제였지만 송 과장의 얼굴은 떨떠름하기만 했다.
“불순한 목적이 빤히 보이는데, 그걸 들어달라니.”
“그것만 해 주시면…….”
“이 팀장 사람이 좋은 말로 하면 왜 이렇게 못 알아먹어? 자꾸 중언부언 뭐 요구하지 말고 그냥 손 제대로 털어! 나 이 사건 이미 다른 팀장들한테 인수인계시켰고, 김민호 팀장은
안 맡는다.”
“…….”
“김민호한테 장단 맞춰 주지 마. 그만 나가 봐.”
젠장. 오 과장님이었다면 그래도 이 정도는 허락해 줬을 텐데.
확인 차 기업 회계자료 정도는 검토해 볼 만한데.
완강한 목소리 앞에 준철도 결국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송 과장은 이 사건에 이미 진력이 난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결례 많았습니다.”
그렇게 참담한 심정으로 과장실을 나가려던 찰나.
허겁지겁 달려온 두 사내와 어깨가 부딪혀 버렸다.
“죄, 죄송합니다…….”
겨우 어깨 부딪힌 게 이 정도로 사색이 될 일인가?
어쩐지 두 사람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뭐야, 난 두 사람 부른 적 없는데 왜 이리 급하게 달려와. 김민호한테 인수인계 다 받았어?”
“과, 과장님 그게 아니라 좀 큰일 난 것 같습니다.”
“큰일?”
“바이포인트가 부도 작업 시작한 것 같습니다.”
앉아 있던 송 과장이 용수철 튕기듯 일어났다.
“뭐?!”
“제휴 업체 마흔 곳을 갑자기 두 곳으로 축소해 버렸어요. 사실상 포인트가 휴지 조각이 됐습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이거 폰지사기였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