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늦장대응
-이게…… 대체 뭐죠?
바이포인트 왜 제휴 업체가 갑자기 2곳으로 줄어들어요?
⌞저도 오늘 편의점에서 결제하려는데 갑자기 안 된다 하네요…….
⌞현 상황에 대해 잘 아시는 분 있나요?ㅠ
-지금 쓸 수 있는 2곳도 다 이상한 업체들이네요.
제휴 업체 이렇게 축소해도 되는 겁니까?
⌞진짜 미치겠네요. 100만 포인트 결제해 놨는데…….
-이건 명백한 사기다!
제휴 업체 이렇게 줄일 거면 가입 안 했지!
⌞이거 환불 못 받나요? 계약하고 다르잖아요.
⌞전 지인들한테 이거 엄청 홍보했는데, 졸지에 빚쟁이 됐어요. ㅠㅜ
⌞지금 바이포인트 본사 전화 먹통인데…….
-공정위에 연락해 봤는데요.
전화가 계속 먹통이에요. 소비자정책국에 연락하는 거 맞나요?
⌞저도 계속 민원 넣고 있습니다. 될 때까지 할 겁니다. 안 되면 공정위 다른 부처에 연락하세요.
⌞지금 공정위 전 번호가 먹통이던데…….
바이포인트는 마흔 개의 제휴 업체를 돌연 두 곳으로 축소해 버렸다.
전국 가맹점 20만 곳에서 쓸 수 있었던 포인트가 하루아침에 휴지 조각이 된 것이다.
가입자들이 부랴부랴 환불을 요청했으나 바인포인트 홈페이지는 이미 서버가 다운된 지 오래였다.
일부러 홈페이지를 닫은 건지, 갑자기 환불 신청자가 많아서 그런 건지 알 길이 없다.
졸지에 난민이 된 회원들이 민원 폭탄을 던지며 공정위, 금감원, 금융조사부의 홈페이지도 함께 먹통이 되었다.
“다들 일단 전화 받지 마! 한마디라도 허튼소리 해선 안 돼!”
특수거래과는 빗발치는 민원에 아예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회원수 100만 명이 어떤 규모인지 비로소 실감이 든다.
이들이 전화 한 통씩만 돌려도 공정위 전 부서가 마비될 지경이었으니.
“우 팀장. 지금 그놈들 어디 있어?”
“대표 두 명에게 계속 연락해 봤습니다만 아직…….”
“아직?”
“잠적한 것 같습니다. 다행히 아직 출국 기록은 없습니다.”
송 과장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바이포인트 대표 두 놈이 이 상태로 날라 버리면 회원들의 원성이 곧 자신들에게 향할 것이다.
“지금 그쪽 본사는 어때?”
“이미 영등포 일대가 마비될 정도라 합니다.”
“뭐?”
“홈페이지가 다운돼서 회원들이 직접 찾아가 환불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데 줄이 너무 많아 대부분 다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내일이 되면 이 줄은 더 길어질 것이다.
어쩌면 영등포에서 시작된 줄이 여의도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
“과장님. 일단 저희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둬야 할 것 같습니다.”
한 팀장이 그리 말하자 송 과장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제부턴 그간 미뤄 뒀던 얘기를 다 해야 한다.
“……이거 환불 규정 어때?”
“10%의 위약금을 제하고 돌려주도록 나와 있습니다.”
“그럼 90%는 돌려준다는 거야?”
“네. 어디까지나 약관상으론…… 하지만 환불 요청이 저렇게나 많으니 현실적으로 무립니다. 아무래도 부도 수순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부도 처리.
이젠 이 사실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었다. 제휴 업체를 갑자기 축소해 버렸으니 바이포인트는 재기도 못 한다.
문제는 과연 고객들의 돈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 하는 것인데…… 이건 안 봐도 어떨지 짐작이 간다.
“얘네…… 지금까지 누적 적자가 얼마지?”
“…….”
“부채비율 아는 사람 있나?”
“…….”
“왜 대답들이 없어? 우리 이 회사 가지고 이미 세 번이나 회의했잖아.”
송 과장이 다그치듯 묻자 우 팀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국세청에 신고된 회계 내역이 있습니다만…… 의미 없을 겁니다. 어차피 이중장부 썼을 겁니다.”
공기관에 신고된 내역은 모두 거짓말일 것이다.
본장부가 어떤지 아무도 모른다.
“외람되지만 과장님. 우리 특수거래과에서 저 회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김민호 팀장밖에 없습니다.”
“……일단 징계 심사 뒤로 미루고 복귀시키지요.”
“김 팀장이 올렸던 추정치가 어쩌면 현실일 수도 있습니다.”
김민호는 이미 수차례 이들의 지출 내역과 경비 내역을 분석해 현 자산 상황을 분석했다.
그때는 허무맹랑한 계산이라며 면박 주기 바빴는데.
어쩌면 그게 가장 현실적인 숫자일지도 모른다.
송 과장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미 김민호가 옳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단계다. 그놈이 꾸준히 문제 제기하지 않았으면 이제 막 무슨 회산지 파악에 들어갔을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답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진전 없는 회의가 계속될 때, 한 사내가 다급한 걸음으로 회의실에 들어왔다.
“과, 과장님. 국장님께서 회의 소집하셨습니다.”
“뭐?”
“특수거래 전 팀장, 아니 소비자국 전 인력을 다 소집했습니다. 아무래도 브리핑을 요구하실 것 같은데…….”
송 과장은 머리를 움켜쥐었다.
소비자국 전 인력이 소집되는 건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업무와 무관한 인력까지 차출해야 할 만큼 상황이 급박하다.
당연히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 단순한 범행이 어떻게 회원수 100만을 모았는지, 그때까지 특수거래과는 뭘 했는지…… 여기에 뭐라 답해야 한단 말인가.
송 과장은 낙담한 얼굴로 일어서다 옆에 눈길을 돌렸다.
“우 팀장. 김민호한테 인수인계받은 거 있지? 바이포인트 자료.”
“아, 네.”
“브리핑엔 그 자료 쓴다. 10장만 복사해서 위로 따라와.”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종합팀 가서 이준철이라는 놈 데려와. 일단 그놈이 제일 많이 알고 있으니 꼭 데려와야 돼.”
송 과장 입에선 마지막까지 김민호란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그건 자신의 무능을 스스로 증명하는 일이다.
***
“부도 수순 들어간 거예요. 환불은 거의 다 안 받아 줄 겁니다.”
소비자국 전체가 비상 소집되며 아비규환이 됐지만 김민호는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결과 아니었나.
“김 팀장님. 일단 회의라도 가 보시는 게…….”
“껴 줘야 가죠. 오늘도 특수거래과 긴급회의하는데 나 안 불렀습니다.”
“아니 왜…….”
“뭐 이제 와 나 부른다고 뭐 달라지겠어요. 차라리 내가 없었으면 싶을 겁니다.”
문제 제기된 사건을 묵살한 것과, 처음부터 조사하지 않은 사건은 책임 소재가 다르다.
그것이 더 화가 났다.
송 과장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할 기미가 안 보인다. 오히려 흔적 지우기에 바쁘지.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땜에 욕보셨죠.”
“아니에요.”
“상황이야 어쨌든 난 이 팀장님한테 고마워요.”
다들 미친놈으로 보기 바빴는데 혼자만 믿어 준 사람이다.
특수거래과에 이처럼 마음 맞는 사람이 있었다면 저 사태는 하루라도 더 빨리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준철은 조심히 화제를 돌렸다.
“지금 영등포 본사는 일대가 마비될 정도로 환불 요청이 빗발친다네요.”
“네.”
“그들이 환불해 줄까요?”
“어림없는 얘기죠. 돈세탁 싹 다 해 놨을 겁니다. 피해액? 절반이라도 찾으면 다행이에요.”
준철이 조바심 난 얼굴로 물었다.
“방법이 없을까요?”
“피해를 막을 순 없어도 줄일 수는 있죠.”
“줄여요?”
“지금이라도 당장 이 대표 형제들 구속하고 자산 찾아야 돼요. 현금화한 자산, 해외로 빼돌린 자산 전부 찾아야 합니다.”
“이미 쓴 돈이 더 많을 텐데.”
“어쩔 수 없어요. 이제부턴 얼마나 건지느냐 싸움입니다.”
업무 얘기로 돌아가자 그의 목소리가 점점 격앙되어 갔다.
이젠 뭐 재고 따질 거 없이 문제 있는 기업이란 게 확인되지 않았나.
당장 출국 금지 걸고, 영장 치고, 자산 찾으러 다녀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놈들은 돈세탁을 계속할 것이다.
한데.
이틀이 지나도 아직까지 윗선에서 이렇다 할 지시가 없다.
“솔직히 이런 놈들이 뭐 징역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몇 년 살다 나오면 꽁쳐 놓은 돈으로 평생 떵떵거리고 살 텐데.”
“그건 그렇죠.”
“주가조작, 다단계로 끌려 온 놈들은 다 똑같아요. 깜빵보다 돈을 더 무서워합니다.”
금융 범죄 다룰 때 제일 무서운 게 이처럼 잃을 게 없는 족속들이다.
남들에겐 집행유예네, 실형이네 뭐네 협상할 수 있지만 이들에겐 협상이 안 통한다. 설사 징역 10년이 떨어져도 기꺼이 살다 나올 것이다.
“이 팀장님. 이 팀장님!”
두 사람이 한숨만 쉬며 있을 때. 최 팀장이 급하게 달려와 준철을 찾았다.
“여기 계셨군요. 잠깐 얘기 좀.”
그는 옆에 있던 김민호 팀장의 따가운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자리를 피했다.
“무슨 일입니까.”
“저희 국장님께서 소비자국 전체 비상 회의를 소집하셨어요.”
“전 종합국인데요.”
“종합국에도 인력 차출해야 할 만큼 상황이 긴박합니다. 종합국 국장님도 오케이하셨습니다.”
확실히 사고가 크게 터지긴 했구나.
“알겠습니다. 그럼 전 저희 과장님과 가죠.”
“아니…… 먼저 좀 와 주셔야 할 것 같은데.”
“네?”
“국장님께선 브리핑을 요구할 모양이에요. 그래도 이 팀장님이 보충 조사하시고, 우리보단 아는 게 많을 테니 도와주십쇼.”
준철은 기가 찼다.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 왜 이쪽은 투명인간 취급하는 건지.
“그 부탁은 제가 아니라 김 팀장님께 하셔야죠.”
“……예?”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 아닙니까.”
“그것도 그렇지만 김 팀장은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서…….”
“무슨 사정요. 문제 제기가 누차례 있었다는 사정요?”
“이보세요, 이 팀장님. 꼭 이 마당에 우리랑 싸워야겠습니까. 일단 사태 수습부터 먼저 해야 할 거 아녜요.”
“사태를 수습할 마음이 없어 보여 드리는 말입니다. 가장 전문가가 코앞에 있는데 안 찾으시는 거 보면.”
준철은 고개를 저으며 자리를 피했다.
“알아서 하세요. 난 따로 가겠습니다.”
이놈들은 김민호가 미울 것이다.
이미 문제 있다는 걸 알려 줬는데, 그걸 귓등으로 들은 게 이들이었으니.
그래서 더 가기가 싫었다. 사태를 수습하려면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대책을 논의해야 할 게 아닌가.
이딴 브리핑은 하나 마나 한 얘기만 되풀이한다. 자기들 잘못 아니라고 변명만 하다가 끝날 것이다.
사색이 된 최 팀장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김 팀장과 함께 오십쇼. 지금 빨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