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늦장대응 (2)
-다음 소식입니다.
포인트 제휴 업체인 바이포인트가 갑자기 가맹점을 축소하며 업계에 파란이 일었습니다.
고객들은 즉각 반발하며 환불 요청에 나섰는데요. 인파가 몰려들며 본사 영등포 일대는 한동안 마비가 되었습니다.
김성현 기자가 전합니다.
-원스톱 서비스를 표방했던 바이포인트.
각종 제휴 할인을 하나로 묶어 편의성을 극대화하겠다는 게 이 서비스의 취지였습니다.
고객들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출시 4년 만에 100만 회원을 모으며, 알뜰족 필수템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하지만 사업이 성숙기에 이르자 이들은 곧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말이 안 돼요, 말이! 자기들 마음대로 갑자기 가맹점을 축소하는 게 어디 있어요? 그럼 내가 산 포인트는 어디에 쓰라고?”
“환불받으려고 춘천에서까지 왔는데, 관계자 만나 보지도 못했습니다. 난 내일 또 올 겁니다!”
-가맹점 축소 발표 당일엔 새벽부터 긴 줄이 이어졌습니다.
약관 규정에 따르면 90%를 환불하기로 되어 있으나, 사실상 부도 수순에 가까운 조치라 이것마저 요원해 보입니다.
대표 두 사람이 출근하지 않았단 사실이 알려지자 회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대표가 잠적하면 우리 돈은 대체 어떻게 되는 건가요?!”
“21세기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게 믿기지가 않습니다!”
“솔직히 다 대기업들과 제휴 거래를 텄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이게 문제 있는지 어떻게 알아요. 이때까지 금융 당국 뭐 했습니까?”
-그렇다면 금융 당국의 설명은 어떨까요?
-(금감원) 엄밀히 말해 포인트를 금융 상품으로 볼 순 없습니다. 만약 가맹점을 축소한 게 문제면, 약관을 담당하는 공정위에게…….
-(공정위) 엄밀히 말해 이 사건은 약관보다 상품에 문제가 있다 볼 수 있겠습니다. 금감원과 금융조사부가…….
-(검찰) 전자상거래법 위반 혐의를 검토해 볼 수 있겠습니다만, 아직 고발이 들어온 게 없습니다. 이건 사실 시장 감시의 실패라 볼 수…….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할 뿐 뚜렷한 수사 계획을 발표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중에 회사 자산을 현금화할 것이란 우려가 더해지며 회원들의 혼란은 더욱…….
뚝.
바이포인트 김상원 대표는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뉴스를 껐다.
“우리가 멍청했다.”
그는 후회하고 있었다.
“아직 회사에 20억 더 남아 있는데 그거까지 빼돌릴걸.”
기업들 저승사자라더니 오합지졸이 따로 없다.
금융 당국은 아직 자초지종도 파악 못 했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쁘다. 저렇게 무능할 줄 알았다면 회삿돈을 더 빼먹었을 텐데.
“어떻게 지금이라도 좀 더 빼돌려 볼까.”
“그만 해, 형. 늘 그러다 일 그르친 거 몰라?”
“아이고- 우리 동생은 아직도 화가 다 안 풀리셨구만.”
“가맹점 축소는 미국으로 뜬 다음에 발표해도 늦지 않았어! 이젠 어쩔 거야.”
“가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가라. 꼴을 보아하니 출국금지는 내년쯤 돼야 나올 것 같다.”
너스레나 떠는 형의 모습에 울화통이 터졌다.
“지금 나랑 말장난할 때야?”
“말장난은 지금 네가 나한테 하잖아.”
“뭐?”
“상기야. 네가 뭐 정치적 신념이 안 맞아서 망명을 가냐? 아님 난민이야? 미국으로 튀어도 어차피 곧 끌려오게 돼 있어. 가서 대체 뭐 하게?”
형이 웃음기를 거두자 김상기의 입도 다물어졌다.
사실 이 모두 각오하고 벌인 한탕이다. 처음 목표는 50억이었지만, 금융 당국의 감시가 상상초월 느슨해 사업이 10배나 더 커졌을 뿐이다.
그래도 막상 심판의 날이 다가오니 심란한 건 어쩔 수 없는 모양.
쥐죽은 듯 조용해진 동생을 보며 형이 한숨을 내쉬었다.
“잘 들어. 우린 사기를 친 게 아니라, 단지 사업에 실패했을 뿐이야. 가입자들은 우리 회사에 투자를 한 건데, 투자금을 못 받았을 뿐이고.”
“……그렇게 우겨도 실형 못 피한다며. 변호사가.”
“이게 그나마 형량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야. 길어 봐야 5년이다. 우린 떳떳하게 죗값 치르고 남은 생 떵떵거리면서 살면 돼.”
‘떳떳하게’라는 말이 그나마 심란한 마음을 달래 준다.
이들은 4년 동안 치밀하게 해외 계좌와 차명계좌에 돈세탁을 해 왔다. 일가친척을 고용해 마치 회사에 지출이 생긴 것처럼 포장했고, 막대한 경비 처리를 시켰다.
이걸로는 불안했기에 어떤 돈은 아예 금으로, 현금으로 바꿔 놔 국정원도 못 찾게 대비를 해 놨다.
그 돈이 80억.
콩밥 몇 년 먹고 여생을 편안히 보내기엔 나쁘지 않은 돈이다.
“그럼…… 이제 우린 어떻게 해야 돼?”
“내일 부턴 회사 나가자. 대표가 사나흘 연속 잠적하는 건 모양새가 안 좋아.”
“뉴스 못 봤어? 환불 요청으로 이미 영등포 일대가 마비래.”
“그럼 가서 머리채 몇 번 잡혀 줘. 오히려 그 편이 더 나아. 우리가 이런 모욕을 견디면서도 회사 정상화시키려 노력했다, 이런 걸 보여 줘야지.”
“형…… 우리 진짜 5년 안으로 받을 수 있는 거야?”
“부실 펀드 팔아먹은 놈들도 고작해야 7년 살고 나왔다. 그놈들은 몇천억대인데 우리가 그거보다 오래 살겠냐?”
계속해서 답답한 반응만 보이자 김상원이 결국 그 말을 꺼냈다.
“너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이상한 맘 먹지 마라.”
“…….”
“빼돌린 이 80억은 우리 노후 자금이야. 절대로 그 누구에게서도 한 푼도 들켜선 안 돼.”
정식 수사가 시작되면 금융 당국이 온갖 회유를 할 것이다.
자백하면 봐주겠다, 회원들에게 돈 돌려주면 형량을 깎아 주겠다.
당연하게도 절대 믿어선 안 될 소리다. 몇 년을 더 사는 한이 있더라도 이 돈은 10원 한 장 자백해선 안 된다.
“왜 대답이 없어?”
“아, 알겠어.”
용기를 짜낸 대답이 불안만 더 키운다.
김상원은 현금이 가득 담긴 검은백을 챙겼다.
“이 돈 20억은 나한테 맡겨라.”
“뭐, 뭐야. 반으로 나누기로 했잖아.”
“누가 너 안 준대? 네 꼴 보아하니까 이거 차라리 내가 맡는 게 낫겠어.”
“…….”
“안전한 곳에 숨겨 놓고 너 상태 괜찮아지면 알려 줄게.”
조금 불안하긴 했지만 우려는 크게 들지 않았다.
겨우 20억 때문에 핏줄 뒤통수를 칠 형은 아니다. 대충 어디에 숨겨 둘지도 예상이 갔고.
***
9시 뉴스가 끝나고 곧 10시가 되었지만 소비자정책국은 아무도 퇴근할 수 없었다.
비상 소집을 했던 국장님이 급히 금감원에 갔고, 이제 막 돌아오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회의가 내일로 미뤄졌겠지만, 국장님은 친히 ‘빠짐없이 자리를 지키라’고 명령까지 내렸다.
여기엔 종합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팀장님. 국장님 오셨답니다.”
시곗바늘이 11시에 가까워졌을 때, 드디어 이 국장이 도착했다.
“근데 회의엔 팀과장만 참석하라네요.”
“갑자기요? 전직원 다 자리 지키라 하셨는데…….”
“아무래도 민감한 전달 사항이 있는 모양이에요. 나머진 퇴근하랍니다.”
“……알겠습니다. 모두 먼저 퇴근하세요.”
이 상황에서 민감한 전달 사항은 하나밖에 없다.
아직 어떤 금융 당국의 잘못인지 모르니 함부로 나서지 말자. 이런 현실적인 얘기가 나올 것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회의장에 도착하니, 이지성 국장이 이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오래 기다렸지?”
“아, 아닙니다.”
“미안하네. 갑자기 금감원에 불려 갔어. 근데 내일 되면 청와대에 불려 가야 할 것 같아.”
청와대라.
이 한마디가 오늘 있었던 모든 일을 말해 준다.
금감원에 가서 서로 책임만 떠넘기다 끝났다는 걸.
“특수거래과. 이거 대체 뭐야?”
“예. 바이포인트라고 일종의 포인트 가맹점 같은 곳입니다. 4년 전에 설립해서…….”
“누가 지금 그거 물어? 이놈들 이렇게 커질 때까지 왜 보고가 하나도 안 올라왔느냐고.”
송 과장은 바로 사색이 됐다.
“죄송합니다. 저흰 이걸 금융 상품으로 분류해서 당연히 금감원에서 나설 줄 알았습니다.”
“현재 이 기업 어디까지 파악됐어?”
“수법은 대강 나왔습니다. 다단계 폰지사깁니다. 그간 새 가입자들이 결제한 돈으로 기존 손해를 충당했습니다.”
“그래서 누적 적자가 얼만데?”
송 과장은 머뭇거리다 답했다.
“약 100억대일 것으로…….”
모두가 이 액수에 한숨만 내쉴 때, 이 액수에 분노하는 이도 있었다.
김민호는 주먹을 부르르 떨며 송 과장을 지켜봤다.
저 액수를 파악해 보고한 게 자신이었다.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결국 국장 앞에선 그 액수를 보고한다.
“그럼 빼돌린 돈이 최소 100억대란 거네?”
“……예. 그렇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진 이견이 없는 기업 보고였지만 이젠 현실적인 부분을 논의해야 했다.
이지성 국장이 눈을 돌리자 송 과장이 바로 말을 이었다.
“외람되지만 국장님. 저희도 신중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신중?”
“……아직 어떤 곳의 책임인지도 불분명한데 덜컥 나서면 위험합니다.”
“그건 송 과장 말이 맞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나서면 이 사건 독박 씁니다.”
날카롭게 쏘아붙이던 이 국장도 이 말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 이 문제 때문에 온종일 금감원과 싸우지 않았나.
“사실 이건 좀 애매합니다. 가맹점을 갑자기 축소하긴 했지만 이게 딱히 약관을 위반한 건 아니거든요.”
“이건 약관보다 상품이 이상했던 겁니다.”
“사실상 책임은 금융위와 금감원에 있죠.”
돈을 찾을 방법이 마땅치 않은데 어떡하겠나. 국민들 원성이라도 피해 가야지.
정부 고위직들이 연루된 부동산이나 펀드 사태였다면 비난의 화살이라도 돌릴 수 있다. 하지만 이건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다단계다.
이 단순한 범죄에 당했다는 걸 알면 공정위가 다 뒤집힐 것이다.
‘이 미친놈들이. 돈 찾으러 다닐 생각은 안 하고…….’
“일단 반응 먼저 보시죠. 금감원이 조사 시작하면 저희가 지원사격해도 됩니다.”
“사태 보니 검찰이 먼저 기소할 것 같습니다. 그때 묻어 가는 것도 나쁘지…….”
준철은 벌떡 일어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돈세탁을 해 대고 있을 텐데, 이걸 기다리자고?
그렇게 외칠 마음으로 일어났지만, 먼저 일어난 놈 때문에 말할 기회를 잃었다.
“이건 명백한 공정위 잘못입니다. 더 이상 책임 회피해선 안 돼요.”
김민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