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동작 그만 (1)
회의실의 이목은 갑작스레 일어난 두 사람에게 향했다.
김민호는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작심 발언을 계속했다.
“이미 명백해졌습니다. 금융 당국의 시장 감시 실패입니다.”
“죄송합니다 국장님. 이 친구는…….”
“이 책임엔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이젠 한 푼이라도 더 찾아내야죠. 당국이 서로 책임 떠넘기면 피해만 더 커질 겁니다.”
송 과장은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뻔했다.
누가 그걸 지금 몰라서 이러나?
기껏 돈 찾아내 봤자 피해자들에게 돌아갈 보상 액수는 미미할 것이다. 욕먹는 게 확실한 일인데 왜 이걸 독박 쓰겠다는 건지.
“아직 수습할 수 있습니다.”
“그만해 김 팀장! 자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옳은 게 뭔지 몰라서 이러는 거 아니라고.”
“송 과장. 됐다. 계급장으로 찍어 누를 거면 이 자리 열지도 않았어.”
“하지만 국장님…….”
“팀장, 자네 이름이 뭐라고?”
“특수거래과 김민호 팀장입니다.”
이 국장은 짧은 한숨을 내쉬더니 다시 물었다.
“지금이라도 수습할 수 있다는 게 무슨 말이야?”
“이놈들이 재벌 회장들처럼 스위스 비밀 계좌에 예치하진 않았을 겁니다. 고작해야 현금화, 차명계좌겠죠.”
“그렇게 은닉한 돈은 스위스 비밀계좌보다 더 찾기 어려워.”
“조력자만 찾으면 이게 더 쉽습니다.”
“그니까 그 조력자를 어떻게 찾느냔 말이야.”
“사실 제가 이 기업에 대해 몇 번 보고를 올렸는데, 그때마다 눈에 걸리는 몇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명단만 소환하게 해 주십쇼.”
이 국장의 얼굴이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굳어졌다.
“뭐?”
“막무가내처럼 들리시겠지만…….”
“그게 아니라 지금 뭐라 그랬어. 해당 기업 보고 올렸었다고?”
이 국장의 살벌한 눈빛은 곧 책임자에게 옮겨붙었다.
“송 과장. 이게 무슨 말이야?”
“그게…… 의심되는 행적이 좀 있어 저희가 관련 논의를 한 적 있습니다.”
“논의를 했는데 왜 위로는 보고가 안 됐지?”
“디지털 화폐 시장의 특수성이라 생각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국장은 분통이 터졌다. 알고서도 당했다니.
하지만 질책을 해 봤자 의미 없는 일이기도 하다. 다른 금융 당국은 아예 문제 제기도 없었던 사건이었으니.
“그럼 지금 파악한 이 기업 실체도 다 이 친구 보고서야?”
“……예.”
이 국장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럼 당사자가 설명해 봐. 조력자가 누구야?”
“부모 같습니다.”
“부모? 그 대표라는 형제들?”
“네. 사실 여기 직원 명부를 보면 전부 다 일가친척을 고용했습니다. 돌림자 쓰는 걸 보니 전부 아버지 형제들 같았습니다.”
이 국장은 서류로 고개를 돌렸다.
가관이었다.
사원, 대리, 과장, 부장, 사장 모두 김(金) 씨 일가 사람들이다. 직원 처우가 얼마나 좋은지 모두 수억대의 연봉을 받고 있었다.
“이건 직원들 월급으로 경비 처리하고 따로 빼돌렸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럼 그놈들 아버지가 여기서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거네?”
“네.”
“근데 그걸 어디로 빼돌렸는지는 얘들도 모르는 거 아니야.”
“모르면 짐작 가는 곳이라도 댈 겁니다. 그것도 모르면 자기들 돈으로 메워야죠. 이 사람들 전부 다 횡령 혐의 걸고 돈 가져오게 해야 합니다.”
무식한 방법이다.
직원 등록되어 있다고 전부 다 공범으로 몰겠다니. 법원이 겨우 이 정도 증거 가지고 일가친척을 공범으로 보진 않을 거다.
그때 함께 일어나 엉거주춤 서 있던 준철이 말했다.
“국장님…… 이건 합법적으로 연좌제 씌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횝니다.”
“뭐?”
“일가친척이 전부 범행에 가담하지 않았습니까. 만약 차명계좌가 있다면 아주 모르는 사람한테 부탁하진 않았을 겁니다. 분명 가까운 사람한테 부탁했을 겁니다.”
친척.
직계가족은 아니면서도 묘하게 엮여 있는 관계.
직계가족은 수사할 때 특수관계인으로 분류되어 함께 조사 받지만, 이들은 한 발자국 멀리 있다.
이 국장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합법적인 연좌제라…….’
구미가 당기는 말이다.
돈세탁도 어차피 믿을 만한 사람 중에 골랐겠고, 그러면 피붙이한테 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현실적인 고민은 떨쳐 내지 못했다.
만약 이걸 맡겠다고 하면 공정위는 독박을 쓰게 된다.
하지만 이걸 용인하면, 그래서 더 큰 돈이 새어 나가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피해자들에게 전가된다.
욕먹더라도 피해를 줄일 것인가. 아니면 무난히 묻어 갈 것인가.
이 국장은 긴 고민을 했고, 그 고민이 끝났을 땐 무서운 지시가 떨어졌다.
“약관심사과.”
“네.”
“이놈들한테 혐의 적용한다면 뭐가 좋을까.”
“……예고도 없이 가맹점을 축소했으니 전자상거래법 위반 혐의는 적용됩니다.”
“그럼 관련 사례 조사해 봐. 이놈들 분명 법정 싸움까지 갈 거야. 이겨야 돼.”
그리 말하곤 눈을 돌렸다.
“안전정보과.”
“예.”
“업계에 바이포인트가 하나만 있을까?”
“아니요. 비슷한 업체가 많습니다. 커뮤니티 사이에 입소문도 많이 나는 편이고요.”
“그럼 현재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사례 싹 다 조사한다. 어쩌면 이놈들도 작은 놈일 수 있다. 더 큰 놈이 있을 수 있어. 지금이라도 2차 피해 막는다.”
국장님의 의지가 확실해지는 순간이다.
관련 사건 처벌은 물론 업계 물갈이도 단행하겠다는 뜻이다.
“다들 잘 들어. 내일 부로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가 출범할 거야. 피해자들 민원 접수해서 피해 규모부터 확인한다.”
“네.”
“물론 분쟁 조정이 안 되겠지. 놈들은 지급 능력을 상실한지 오래니까. 법적 절차를 진행하기 직전 마지막 요식 행위라 생각해라.”
“네.”
국장님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김민호와 준철에게 눈을 돌렸다.
“합법적인 연좌제…… 재밌는 발상이지만 이건 내가 좀 생각해 봐야겠다. 사태 해결도 중요하지만 사법적인 논란이 있어선 안 돼.”
“네.”
“두 사람한테 부탁하지. 되도록 이 형제 두 놈만 어떻게 해 봐. 만약 이걸로 해결이 안 되면…….”
이 국장은 뜸을 들이다 말했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자.”
“예.”
“김 팀장, 분쟁위 총 팀장은 자네가 맡도록 해.”
***
-먼저 고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저희 바이포인트는 분산되어 있는 제휴 포인트를 일원화하여, 고객들의 이익을 증대화하자는 목표하에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희 취지에 공감하셨고, 저희 또한 의욕적으로 가입자들을 늘려 간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의욕이 앞선 나머지 내실을 다지지 못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최근 저희 바이포인트는 경영 실적이 악화하여 여러 실망을 안겨 드린 발표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희 경영진은 회사를 정상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환불과 관련한 몇몇 우려에 대해 반드시 철두철미하게 해결하겠습니다.
김상원, 김상기 대표는 사태 사흘 만에 출근해 기자들 앞에서 입장문을 발표했다.
얼굴만 나라 잃은 표정이다.
구체적인 방법도 없이 경영 정상화만 외치자 기자들의 질문이 빗발쳤다.
“그래서 환불은 어떻게 한다는 겁니까?”
“현재 저희 바이포인트에는 충분한 사내유보금이 있습니다. 순차적으로 환불해 드릴 계획입니다.”
“그 유보금이 얼만데요.”
“물론 한 번에 다 지급하기엔 부족할 겁니다. 저희도 재원 마련을 위해 최선을 기하는 중입니다.”
“그럼 현재 바이포인트의 누적 적자는 얼맙니까?”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디지털 화폐 시장에서 단기 적자는 그리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적 적자가 얼맙니까?”
“현재 저희는 여러 카드사와 PLCC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단기간 내에 850~1,200억 원가량 부가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자꾸 동문서답하지 마십쇼! 현재 바이포인트의 사내유보금과 누적 적자가 얼맙니까?”
“언론에도 당부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추측성 보도로 회원들의 불안을 가중시키지 말아 주십쇼. 저희 경영진은 최선을 다해 경영 정상화에 앞장서고…….”
김상원은 동생을 기자들에게 던져 주고 먼저 자리를 떴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대번에 낯빛이 바뀌었다.
“왜 이렇게 꼬치꼬치 캐물어. 날파리 새끼처럼.”
“오셨습니까, 대표님.”
“홍 실장. 상기 들어오면 문 다 잠가 버려. 기자 놈들 곱게 물러갈 기미가 아니네.”
홍 실장이 불리는 사내는 정식 직원으로 등록되지 않은 김상원의 개인 비서였다.
“알겠습니다. 근데 대표님. 방금 기자회견 사실입니까?”
“뭐가?”
“환불 말입니다. 저희 유보금이 겨우 20억밖에 되지 않습니다. 다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합니다.”
“급한 불 끄려고 한 소리야. 홍 실장은 척하니 알아들어야지.”
“하면…… 이미 다 생각을 정리 하신 겁니까?”
“응. 몇 년 살다 나와야지 별수 있겠어? 지금은 최대한 경영 실패처럼 보이게 만드는 게 관건이야. 기회 봐서 나중에 부도 신청할 거야.”
김상원은 홍 실장의 어깨를 툭툭 쳤다.
“너무 염려는 말고. 우리 홍 실장 퇴직금은 다 마련해 뒀으니.”
“흐흐. 섭섭할 뻔했습니다.”
“그러니까 홍 실장도 잘해. 나 이 돈 토해 내면 같이 죽는 거 알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몇몇 가입자들은 20%만 환불받고 합의하기로 했습니다.”
“오, 그래?”
“네. 그래서 일단 소액 환불 건부터 처리하려고요. 물론 합의한다는 전제하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회원들 중에는 일찌감치 단념한 사람들도 있었다.
바이포인트는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돈을 지급했다. 서로 합의서를 쓴다는 전제하에.
피해 액수를 줄이는 건 법정에서도 유리한 일이다.
“역시. 나 생각해 주는 건 홍 실장밖에 없네.”
“별말씀을요. 근데 대표님. 이거 20억도 다 지급하기엔 좀 아까운데요.”
“응?”
“생각보다 환불에 단념한 사람들이 많더군요. 충전금의 10-20%만이라도 주면 합의해 주겠단 사람이 널렸습니다. 이러면 우리 좀 더 챙겨도 되는 거 아닙니까.”
김상원은 갑자기 구미가 확 돌았다.
100억 도둑이나 105억 도둑이나 거기서 거기다.
창창한 젊은 날에 콩밥 먹을 생각을 하니 10원 한 장도 아쉽게 느껴진다. 이 억울함을 달래려면 노후 자금은 더 든든해야 한다.
“그 생각 좀 괜찮네. 그럼 홍 실장이 한번 기획 좀 가져 와 봐.”
그렇게 낄낄대며 대화를 나눌 때.
급작스레 회사 문이 벌컥 열리며 정장 입은 사내들이 들어왔다.
“여기가 김상원 씨?”
“뭡니까?”
“공정위 김민호 팀장이라고 합니다. 특수거래과.”
“아니 공정위에서 왜 여길?”
“이 사건 분쟁조정위원회에 회부됐거든요. 제가 총책임자고.”
김민호가 눈짓을 보내자 준철이 영장을 내밀었다.
“협조는 당연히 안 할 테니 미리 받아 왔습니다. 회사 자료 좀 한번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