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동작 그만 (3)
-다음 소식입니다.
바이포인트 논란이 벌써 일주일째 지속되고 있지만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 모양샙니다.
지난 1일까지 신고된 피해액은 200억대를 넘었지만 사내유보금은 겨우 20억이 되지 않았는데요. 대표 형제 두 사람이 상당 부분 탕진했거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공정위는 친인척 구속까지 언급하며 초강도 수사를 예고했지만, 당사자들이 완강하게 부인하는 터라 돈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사기꾼은 잡혀도 3대가 먹고살 돈이 있다는데, 이번에도 통용될까요.
최수환 기자가 전합니다.
뉴스가 보도된 지 채 2시간이 지나지 않아 구속영장 여덟 개가 신청되었다.
임직원 명부에 나와 있는 모든 일가친척이 무더기로 구속 처리된 것이다.
유례가 없는 구속수사에 연좌제 논란이 나오기도 했지만.
대표 형제들이 흥청망청 쓴 회삿돈과, 수억에 달하는 임직원 연봉이 공개되자 논란마저 분노로 뒤바뀌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 한 거야? ㅡㅡ
바이포인트는 그 흔한 세무조사도 안 당했어?
⌞이건 무능의 극치다!
⌞빼돌린 비자금 못 찾으면 금융 당국을 징계해라!
그리고 이 뉴스를 가장 뼈아프게 받아들이는 이가 있었다.
“형님! 이건 처음 얘기랑 다르잖수!”
“이름만 빌려주면 된다며! 왜 갑자기 우리한테까지 구속영장이 와.”
꼭두새벽부터 모여든 김씨 일가들은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아침 9시까지 자진 출두하랍디다! 1분이라도 늦으면 찾아와서 수갑 채워 가겠대!”
두 형제의 아버지 김영호는 형제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뭔 말이라도 좀 해 봐요!”
“미안해…… 내가 애비로서 덕이 없었어.”
“덕이고 자시고 그 두 놈 새끼 때문에 집안 다 풍비박산 날 판이야!”
“…….”
“우리야 살 만치 살았지만 조카들은 어쩔 거요. 이름만 빌려주면 된다 해서 내 자식새끼들 이름까지 다 빌려줬잖아.”
“…….”
“내 새끼 호적에 빨간 줄 그어지면 나도 가만 안 있어. 진짜 다 죽는 거야!”
뒤통수가 얼얼한 건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부에서 시행하는 중소기업 혜택이 있다, 요건을 맞추려면 직원 수가 필요하다. 이게 친척들이 두 형제에게 들은 설명이었다.
그래서 대충 위장전입 같은 일인 줄 알았는데, 희대의 사기 사건이었을 줄이야.
“피해자 몇 놈은 아예 우리 집으로 찾아와서 돈 내놓으래.”
“길게 말할 거 없수. 지금 비자금 논란 나오는데 그거 싹 다 반납하고 석고대죄합시다.”
“…….”
“아, 검찰도 돈 가져오면 정상참작해 주겠다잖아!”
“형님네가 이러면 우리 다 죽어!”
아버지 김영호는 시종일관 고개를 들지 못했지만, 돈 얘기가 나오자 미묘하게 반응이 달라졌다.
“그건 나도 몰라.”
“뭐?”
“나도 애들한테 이름만 빌려줬어. 실제로 비자금이 있는지, 아님 공정위가 괜히 우리 욕먹게 만들려고 부풀린 건지 모르겠네.”
“그게 말이 되우? 형님이 업체까지 차려서 상원이 돈세탁 도왔다며.”
“그것도 그냥 해 달라는 데서 해 준 거야.”
쾅-!
형님의 뻔뻔한 변명에 결국 동생들의 인내심이 끊어졌다.
“이딴 개x끼를 내가 형이라고 진짜.”
“뭐?”
“피붙이인 내가 봐도 비자금이 수두룩해 보이는데 뭐가 어쩌고 어째?”
“둘째 형. 그만해!”
“야이 후레자식아! 한배에서 나온 형제들까지 등을 처먹냐! 입 다물고 비자금 가져와! 너희들이 돈을 가져와야 이 사태 끝날 거 아니야.”
사태가 파국으로 치닫자 김영호의 낯빛이 완전 바뀌었다.
“동생들. 나도 좀 섭섭하네.”
“뭐?”
“애들이 그 이름 공짜로 빌렸어? 수고비조로 천, 2천씩 돌린 게 몇 번인데 이제 와서. 까놓고 말해 너희들도 선물 다 받아 갔잖아. 이 돈 결국 다 너희들하고 같이 쓴 거야.”
“아니 지금!”
아버지는 대답도 듣지 않고 자리를 픽 일어났다.
“구속영장 나온 건 유감이지만 깊게 고민할 이유도 없다. 이거 지금 공정위가 연좌제 씌운 거야. 어차피 법원에서 기각될 거라고. 염치없지만 내가 부탁 하나만 하자. 그냥 조금만
견뎌 줘. 아무 일도 없이 끝날 거야.”
유유히 떠나는 형을 보며 동생들은 생각했다.
자신들도 당했다는 것을.
***
“……처음 그 얘기를 꺼낸 건 두 녀석이었습니다. 명절에 친척들 다 모였는데 갑자기 명품백, 컴퓨터 같은 선물을 돌렸습니다.”
“네.”
“그러곤 사업 얘기를 시작했는데…… 무슨 포인트 업체라더군요. 그땐 저희도 이게 이런 건지 몰랐습니다.”
“근데 이름은 왜 빌려줬습니까.”
“정부에서 주는 중소기업 혜택이 있는데, 그걸 받으려면 직원 수가 충족돼야 한다고…….”
“그렇다고 덜컥 이름을 빌려줍니까. 알지도 못하는 기업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근데 저흰 그냥 위장전입 같은 거려니 생각했습니다. 물론 위장전입도 해선 안 되지만…… 정말 가벼운 일인 줄 알았어요.”
나란히 끌려 온 형제들은 김상기, 김상원과 다른 얼굴이었다.
검사의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직원 등록하고 수억씩 월급 지급이 됐어요. 이러면 분명 막대한 세금이 붙었을 텐데, 정말 본인들은 아무것도 모르셨다고요?”
“…….”
“솔직하게 답변해 주십쇼. 정말 대가 없이 이름만 빌려줬습니까.”
“처, 천만 원. 아니 한 2천만 원. 명절날 조카들이 고맙다고 돈을 돌렸습니다.”
“결국 대가가 있었단 얘기네요.”
“근데 그게 전부입니다. 정말 녀석들의 비자금이 어디 있는지는 몰라요.”
준철은 자그마한 한숨이 나왔다.
이 얘긴 진실일 가능성이 크다. 설사 비자금을 챙겼더라도 직계가족이나 챙기지 친척들 몫까지 챙기진 않았을 거다.
남자는 한동안 눈물을 쏟아 내더니 준철에게 물었다.
“검사님.”
“팀장입니다. 공정위.”
“예…… 팀장님. 저 한 가지만 여쭤봐도…….”
“말씀하세요.”
“비록 의도는 없었다고 하나 제가 얼마나 잘못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무슨 벌이 됐든 달게 받겠습니다. 한데…….”
“한데?”
“제 아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사실 제 아들 녀석은 자기 이름이 직원으로 등록되어 있는지 몰라요. 그 녀석 이름 빌려준 건 접니다.”
준철은 마음이 흔들릴 것 같아 바로 시선을 돌렸다.
사람인지라 안쓰러운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어떻게든 잘못을 뒤집어써 주려는 모습이 여느 부모와 다를 게 없었다.
“네. 맞습니다. 제가 제 자식새끼 명의 도용한 겁니다. 저만 죽여 주십쇼.”
“그래도 혐의를 피하진 못할 겁니다.”
“……예?”
“지금 저희는 피해액의 반도 회수 못 했어요. 만약 이대로 끝나면 당연히 막대한 과징금이 붙겠죠. 이런 과징금은 파산이 안 됩니다. 아드님은 평생 신용불량자로 살 겁니다.”
평생, 신용불량.
하늘이 노래지는 단어다. 자식이 평생 달고 살아야 할 족쇄일 테니.
거기서 끝이 아니다. 과징금이 이렇게 떨어질 정도면 당연히 실형도 못 피할 터. 전과자에 신용불량자면 사실상 현대사회에서 사형선고다.
“갚겠습니다…… 집을 팔든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선산을 팔든 어떻게든 갚겠습니다! 무슨 방법이 없겠습니까.”
“죄를 면해 드릴 순 없지만 벌을 좀 가볍게 내릴 순 있습니다. 남은 비자금만 찾으면. 근데 김영호 씨가 자꾸 비자금에 대해선 모르쇠더군요.”
“그럼 그놈들 집도 압수하고,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선산도 다 압류해 주세요!”
“선산……요?”
“네. 저희 형제들이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선산 3천 평이 큰형 명의로 되어 있습니다. 물론 임야라 값은 얼마 안 나가지만 그거라도 회수해 주세요.”
그 진술 하나가 묘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사실 지금 놈들의 차명, 해외계좌를 하나도 못 찾지 않았나. 놈들의 집, 오피스텔, 사무실을 샅샅이 뒤져 봤지만 흔적은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이건 현금성 자산으로 바꿔 놓고 은닉했을 가능성이 크다.
‘선산이라…….’
그래서 더 선산이란 말이 매력적으로 들린다.
오랜 세월 감옥살이를 하고 나와도 변함없이 있어 줄 곳 아닌가.
외부인의 출입을 막을 수 있으니 이만큼 안전한 곳이 없다.
“그 선산이 어디에 있습니까?”
“겨, 경남 사천에 있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 묏자리 모신 곳인데…… 등기라도 떼다 드릴까요.”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혹시 대표 형제 두 사람이 이 선산에 들락거린 적 있습니까?”
난데없는 질문에 남자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지금 생각해 보니 몇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이게 이상한지 모르겠지만…… 지난 추석 때 갑자기 어머니 묏자리 얘길 하긴 했습니다.”
“무슨 얘기였습니까.”
“할머니 안 본 지 오래됐다고 성묘 간다는 얘길…….”
“그게 끝입니까?”
“아 그리고 이상한 게 또 있었습니다. 이 사건 터지고 나서 갑자기 형님한테 전화가 왔어요. 안팎으로 시끄러운데 부모님 뵐 면목 없다고, 당분간 방문하지 말자고.”
준철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당분간은 묘지 가지 말란 소리 같았습니다.”
“왜요?”
“그건 잘…….”
쎄한 직감이 든다.
“알겠습니다. 오늘 취조는 여기까지 하죠.”
“선생님. 제 아들놈 얘기는…….”
“돈 찾을 때까진 아무것도 얘기해 드릴 수 없어요. 그리고 조카들한테 받은 수고비는 몇 배의 이자까지 쳐서 피해액으로 환수할 겁니다.”
“그, 그건 반드시 내겠습니다. 제 아들놈 형살이만 어떻게 부탁드립니다.”
취조실을 나선 준철은 곧장 사무실로 향했다.
돌아오는 내내 찝찝함에 시달렸다.
‘안팎으로 소란스러우니 묘소에 가지 말자……?’
지은 죄가 많으니 부모님 뵐 낯이 없다는 건가?
그런 놈들이 이런 죄를 짓는 게 가당키나 할까?
‘은닉 자금 숨겨 놓기엔 너무 완벽한 장소인데…….’
자꾸만 의심이 그쪽으로 향한다. 야산에 은닉 자금을 묻어 놨다면 당연히 다른 사람들의 출입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산 3천 평을 무슨 수로 다 뒤지고 다닌단 말인가?
‘무리다…… 암매장지 자백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아무리 국민적 분노가 극에 달했다 해도 조상 묘지까지 들쑤시는 패륜은 이해받을 수 없는 행동이다.
‘젠장.’
다른 그 어떤 사건보다 무력감이 느껴지는 준철이었다.
죄를 다 입증하고 구속도 했는데, 제일 중요한 비자금을 못 찾고 있다.
사기꾼은 잡혀도 3대가 먹고살 돈이 따로 있다더니……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는 모양이다.
그렇게 서류를 덮을 때.
‘잠깐만…… 암매장지가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