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35
135화
노다지 (1)
경남 사천 일대 야산.
폴리스라인을 넘어 장정 여섯 명이 산을 올랐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까마득한 새벽이었다.
농민으로 위장한 장정들은 손전등에 의지한 채 한 지점에 집결했다.
“이게 뭐 하는 건지 원.”
살다 보니 별일도 다 있다.
기업 회장들의 차명계좌는 찾아봤다만 삽질까지 하게 될 줄이야.
반원들은 작업복으로 갈아입으며 스산한 주변을 살폈다. 대대손손 조상 묘로 쓰이는 곳이라더니.
선산엔 조부모뿐 아니라 고조부 묘지까지 있었다.
“어째 으슬으슬하지 않나요…….”
“삽질은 전역한 이후 처음인데…….”
“반장님 이거 뭐 보여야 땅을 파죠. 기계라도 한 대 가져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김 반장은 몸빼 바지를 벗으며 고개를 저었다.
“폴리스 라인 못 봤어? 지금 이 선산 뒤엎겠다고 다 벼르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꿍시렁거릴 시간에 한 삽이라도 더 파. 동트면 우리도 철수해야 돼.”
현재 이 선산은 전국에서 가장 비싼 산이 되어 버렸다.
도굴꾼이 몇 차례 다녀갔는지 야산엔 벌써 나무가 뽑혀 있었고, 봉분도 성한 곳이 없었다.
“진짜 무덤까지 파는 건 아니죠. 나도 사람이 할 도리는 지키고 싶은데.”
“걱정 마라. 이 위치엔 묘지 없다.”
“안 나오면 어떡합니까. 주변 묘지까지 팔 수 있습니까.”
“……모르겠다. 일단 파자.”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발굴 작업이 이뤄질 때, 멀찍이 김민호와 준철이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어떻게 됐습니까, 팀장님.”
“일단 경찰 병력은 배치시켰는데 좀 서둘러 달랍니다.”
“언제까지요?”
“늦어도 5시까지요.”
“네? 지금이 3신데요. 두 시간 안으론 절대 못 찾습니다.”
“이것도 경찰에서 많이 양보해 준 시간이에요. 요즘 이 일대가 4시만 돼도 시끌벅적하답니다.”
한숨이 깊어지는 김 반장이다.
“근데 이거 있기는 할까요. 돈은 다른 데 숨겨 놨는데, 괜히 놈들 장단에 놀아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별수 없습니다. 이거라도 해 보는 것밖엔.”
“……알겠습니다. 작업 계속 하죠.”
김 반장이 물러가자 김민호가 말했다.
“분명히 있어. 없을 수가 없어. 만약 오늘 못 찾아내면 내일 또 올 거야. 찾을 때까지 올 거야.”
숨은 비자금을 찾느냐 못 찾느냐에 따라 회원들에게 돌려 줄 환불액이 달라진다. 그야말로 이번 사건의 마지막 퍼즐인 것이다.
김민호는 소매를 걷어붙이며 말을 이었다.
“우리도 얼른 돕자. 요즘 이 일대가 너무 흉흉해서 이틀 안으론 반드시 찾아야 돼.”
“네. 김 팀장, 몸조심하세요.”
흩어진 두 사람은 배정된 구역으로 가 하염없이 삽질을 시작했다.
야산(夜山)엔 곧 땅 파는 소리와 산 사람 신음 소리로 가득 찼다.
죽은 사람이 벌떡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기이한 밤이었다.
***
“뭐? 찾았다고?!”
당일 아침 동이 텄을 땐 공정위가 들썩거렸다.
“예. 야산 암매장지에서 찾았습니다.”
누구보다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던 이지성 국장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얼마야.”
“100억대랍니다. 80억은 해외, 차명계좌에 있었고, 나머진 현금으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돈가방에 계좌 다 들어 있었고요.”
“우리가 추정한 돈은 얼마지?”
“저희도 100억대 예상했습니다. 이러면 비는 돈은 얼추 다 맞습니다.”
안도의 한숨보단 다리가 후들거리는 보고였다.
진짜로 아주 작정을 한 놈들이구나. 만약 이 돈을 들고 야반도주라도 했더라면……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아찔하다.
“근데 돈 찾은 시간이 7시대랍니다…… 하필 또 일대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저희가 선산 팠다는 건 알려질 것 같습니다.”
“됐어. 돈 찾았으면 장땡이지. 그 두 사람 지금 어디있나.”
“김 팀장은 허리를 다쳐 응급실에…… 이준철 팀장은 지금 올라오고 있는 중입니다.”
연좌제, 부관참시, 패륜적 만행.
언론에 기사가 어떻게 나갈진 모르겠으나 이젠 다 필요 없다. 이지성 국장은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오 과장. 이 돈 전부 추징하면 환불은 얼마나 해 줄 수 있지?”
“현재 10%대였는데, 이러면 40%까진 해 줄 수 있습니다.”
“90%엔 한참 못 미치는구만.”
“상당액은 다 적자로 나간 돈이라 더 추징하기엔 무립니다.”
소비자분쟁조정위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다.
약관에서 보장했던 90%엔 한참 못 미쳤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소기 목적은 이뤘다.
“그럼 이거 어떻게 지급할지 기획안 짜 와.”
“네.”
“그리고 다들 주목. 이제 돈 찾기는 끝났다. 지금부턴 놈들에게 얼마의 과징금을 매길지, 징역을 매길지가 문제야.”
“네.”
“희대의 폰지 사기 사건인데 솜방망이 처벌하면 욕을 더 먹겠지. 관련 판례 다 뒤져서 최대 형량 매겨 봐.”
5년 이상은 무조건 받아 내야 한다.
특가법에 나와 있는 규정이니 절대 이 이하는 안 된다.
“그리고 최 과장. 지금 국세청도 추징 시작했다고?”
“네. 기업 자료 확인해 봤는데 다 이중장부였습니다. 소득 신고도 엉터리였고요. 조사4국에서 가산세 매길 거라 했습니다.”
“비자금 찾아냈으니 당연히 놈들도 움직이겠지?”
“네. 아무래도…….”
“그거 협조 요청해서 뒤로 미루자. 일단은 소비자들 피해 보전이 먼저 아니야. 그거부터 갚자고 해.”
찾은 비자금은 무조건 회원들에게 돌려주는 데 1차적으로 써야 한다.
설사 가산세를 못 받더라도, 과징금을 못 받더라도 피해 보전보다 먼저일 수는 없다.
아마 형제 대표 두 놈은 출소하고 나와서 평생 세금만 갚다가 인생을 종칠 것이다. 희대의 사기꾼들에겐 가장 적격인 형벌이다.
“아,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팀장은 언제 온대.”
“아, 공정위에 오는 게 아니라 바로 구치소로 간답니다.”
“구치소?”
“혹시나 돈이 더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대표 형제 만나기로 했습니다.”
이 국장은 혀를 끌끌 찼다.
“그놈들 아주 독종한테 물렸구먼. 아무튼 오늘 내린 내 지시만 확실히 좀 해. 이제부턴 처벌에 집중하자.”
“네, 알겠습니다.”
***
[속보 – 공정위, 대표 형제의 비자금 100억 발견] [경남 사천에서의 수상한 행적, 공정위 파묘(破墓)했나?] [공정위, 토지 매각을 위한 실측 작업. 파묘는 있을 수 없는 일]-다음 소식입니다.
공정위가 출처를 따로 밝히지 않았지만 100억대의 비자금을 확보했다 발표했습니다. 상당수가 해외, 차명 계좌로 세탁되어 있었는데요. 이 중엔 20억 상당의 현금성 자산도
있었습니다.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이 돈을 최대한 피해자를 구제 방향으로 논의하겠다 했지만, 90%의 환불은 어려울 것이라 전망됩니다.
이미 바이포인트의 적자가 상당했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입니다. 하지만 약관에 나와 있는 90%와 괴리가 너무 커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사천 일대에서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 덕에 소식은 금방 전파를 탔다.
누가 봐도 선산을 파고 나온 사람들이었지만, 100억대의 비자금을 파악했단 소식에 윤리적 논란은 별로 없었다.
세간의 관심은 오로지 돈이었다.
-환불 40%는 너무한 거 아니냐.
피해자들은 그럼 가만히 있다가 60% 손해를 본 거네?
⌞누적 적자가 상당하다잖아. 현실적인 부분도 있는 법이지.
⌞그래도 저 돈 찾아낸 게 어디임? 저거 못 찾았으면 환불 10%도 못 해 줌.
성에 찬 결과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공정위의 노력엔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비자금을 찾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공정위가 입장을 밝히진 않았지만 대략 출처가 어딘지는 안다.
금융사기범의 조상묘까지 건드린 건 그야말로 할 수 있는 전부를 한 거다.
-이제 저것들 어떡하면 좋냐.
숨은 돈 더 있을 것 같은데 이대로 끝날 건 아니지?
⌞이제 과징금 때리고 형사처벌 시켜야지. 깜빵에서 나오게 하면 안 됨. 이제 감옥에서 나와도 평생 신용불량자로 살걸.
⌞역대급 사건이었다. 솜방망이 처벌하지 말아라.
⌞무기징역! 법적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니, 구형은 무조건 무기징역 불러라!
사태가 일단락되자 이젠 형량 이야기가 솔솔 나오기 시작했다.
“이젠 현실적으로 얘기해 보죠.”
구치소에 도착한 준철은 형제 대표를 보며 말했다.
“찝찝해요. 우린 이거 말고도 돈이 더 있을 것 같거든요.”
“…….”
“나머지는 어디 있습니까.”
“…….”
사실 그렇게 생각하진 않았다.
기업 자료를 몇 개나 대조하며 파악한 돈인데. 아마 이게 놈들의 전부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놈들을 마른걸레 쥐어짜듯 몰아붙였다.
“어디 있습니까.”
형제는 대답이 없었다.
사실 두 사람은 이미 취조실에 들어설 때부터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동생 김상기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개를 들지 못했고, 형 김상원은 넋이 나간 얼굴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돈 더 없습니까.”
한동안 같은 질문만 계속하던 준철이 그쯤 멈췄다.
놈들의 넋 나간 얼굴이 모든 걸 말해 준다. 더 이상의 비자금은 없고, 노후가 완전히 날아갔다는 걸.
이런 반응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나마 아버님이 현명한 선택하신 겁니다. 원래 우리 무기징역 부르려 했는데, 형량을 좀 낮춰 줄 생각이거든.”
“…….”
“그렇다고 형살이 끝나고 엉뚱한 짓할 생각 마세요. 과징금 40억. 이게 당신들이 형살이 하고 나와서 갚아야 될 돈입니다.”
“…….”
진짜로 패닉인가 보다.
취조실에서 한 시간이나 떠들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러게 왜 그랬냐. 어차피 이렇게 될 거.
그 말이 목 끝까지 나왔지만 내뱉지는 않았다. 지금 이 앞에 있는 놈들보다 더한 짓거리를 하고 산 놈이 누군가.
놈들의 모습에 짠한 기분이 느껴진다. 동병상련인가 보다.
“상기 씨, 상원 씨.”
“…….”
“저희 처벌은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허위 직원 등록하고 월급 받아 간 친척들한테도 과징금이 나갈 거예요. 아버님이 가지고 계신 선산도 압류 대상입니다.”
“…….”
“꼭 그게 아니라도 조부모님 묘지는 이장하세요. 오늘 아침에 작업 나갔는데 전국에서 다 그 묘 파겠다고 덤벼들더군요.”
“…….”
“……법정에서 봅시다. 부디 뉘우쳤길 빕니다.”
사기꾼은 잡혀도 3대가 먹고살 돈이 따로 있다는데. 이 경우엔 3대가 거의 멸족을 해 버렸다.
형제는 좌절과 절망감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