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대기업 집단 지정 (3)
“회장님…… 이번엔 공정위가 그냥 물러날 것 같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누락 계열사를 추적 중이랍니다.”
공정위의 소명장이 도착하자 태광건설엔 비상이 걸렸다.
급하게 모인 임원들은 모두 얼굴을 들지 못했다.
“4년 동안 다 잘 넘어갔던 문제야. 이제 와 왜 이러는 거야?”
“아무래도 이번엔 진짜 파악한 것 같습니다.”
“뭐?”
“소명장을 보니 다섯 개 계열사는 확실히 찾았더군요.”
“……공정위는 이미 내막을 알고 있는 듯합니다. 원하는 대답이 안 나오면 나올 때까지 파고들 것 같습니다.”
누락된 다섯 개 계열사는 송 회장 며느리의 사촌, 사돈 조카, 배우자 외삼촌의 아들 등 한 다리 건너뛴 특수관계인들의 회사였다.
사실상 남이나 다름없었기에 절대 못 찾을 줄 알았는데, 이걸 파악해 낼 줄이야.
“이걸 대체 어떻게 파악했지?”
송 회장의 날 선 눈매가 돌아가자 임원들이 기다렸다는 말을 이었다.
“회장님. 내부에서 새어 나간 정보는 절대 아닙니다.”
“그럼 공정위가 내 족보를 다 파 봤나?”
“……태광건설과 3년 이상 거래한 기업은 모두 조사를 한 것 같습니다.”
“……사실 건설과 전혀 무관한 기업들은 밝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쌍한 임원들이다.
회사 실적이 안 나와 까이는 쪼인트라면 이해라도 할 수 있다만 이건 커졌다고 눈치를 봐야 한다.
태광건설의 숨은 계열사는 총 아홉 곳이었고, 모두 송 회장 친인척의 친인척들로 이뤄진 회사였다. 이런 일을 벌인 이유는 막대한 상속세를 피하고, 개인 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지
결코 자신들을 위한 게 아니었다.
“그럼 이제 대책을 가져와. 이거 어떡할 거야.”
“다, 다섯 개 기업은 인정하시지요.”
“인정?”
“이건 건설과 전혀 무관한 업체라 변명이 안 됩니다. 아직 안 들킨 네 개를 위해서라도 이건 과감히 포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게 지금 내릴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답변이었다.
아직 파악하지 못한 네 개야말로 알짜배기였으니.
송 회장은 크게 한숨을 내쉬더니 옆으로 눈을 돌렸다.
“김 실장. 이거 다섯 개 인정하면 어떻게 돼?”
“태광건설은 자산 총액 10조가 넘어갑니다.”
“그럼 출자 제한 지정 못 피하겠네?”
“네. 계열사 간 지분 매수 금지 및 자금 지원도 안 됩니다. 근데 더 큰 문제는…….”
“지금까지 이 계열사들 통해서 마련한 비자금도 모두 들키게 되겠군? 우리가 공정위를 4년 동안 속였단 것도 함께 들키고.”
“네.”
송 회장이 다시 임원들에게 눈을 돌렸다.
“오 상무. 비단 이거뿐이겠어?”
“……”
“상진물산은 우리가 기존 거래처 갈아 치우고 일감 몰아준 곳 아니야? 이게 사실상 내 법인이었다는 거 알려지면 나 감옥 가게 생겼네.”
“아, 아닙니다. 회장님.”
“그게 아닌데 왜 마땅한 대책이 안 나올꼬.”
송 회장이 무언가를 원하는 듯한 뉘앙스로 물었지만, 임원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대책이 진짜 없어?”
재차 물었지만 침묵만 흐를 뿐이다.
“꼴도 보기 싫은 놈들. 다들 나가 봐!”
임원들이 줄행랑치자, 회의실엔 세 사람만 남았다.
“확실히 내가 재벌 총수는 아닌 모양이야. 비자금 총대 메 주겠다, 이 사태 책임지고 해결하겠다는 놈들 하나 없네.”
“아버지…… 어차피 다 제 명의의 회사들인데…….”
“쓸데없는 생각 마라. 너한테 똥물 묻힐 거면 이 짓거리 안 했어.”
김 실장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송구스럽습니다, 회장님. 근데 이미 드러난 게 많아 뒤집어쓰지도 못할 겁니다.”
“그거 가능하게 해 줄 변호사들 널렸다.”
“그럼 제가 물색 한번 해 볼까요.”
“됐어. 저것들 꼬라지 보니 내부고발이나 안 하면 다행이야.”
송 회장은 끌끌 혀를 차더니 서류를 들었다.
“김 실장. 우리 지금 지분 작업 얼마나 됐어?”
“딱 절반 정도 끝냈습니다. 근데 출자 제한 걸리면 더 이상은 무립니다.”
“만약 이거 정석대로 물려주면 어떻게 될까?”
“아무리 많이 줄여도 최소 1천억 이상은 상속세로 나가야 합니다.”
상속세 1천억.
욕지거리가 튀어나오는 말이다.
송 회장은 일평생 변방 건설사로 있던 사람이었지만 상속세의 무서움은 잘 알았다. 대기업 총수도 상속세를 내기 위해 신용 대출을 받고, 미술품을 팔고, 계열사를 정리한다.
그나마 우호 지분이 탄탄한 대기업이 이 정도였지, 한참 못 미치는 태광이라면 회사가 갈가리 찢어질 게 뻔했다.
“지금부터 나 죽을 때까지 버는 돈은 다 세금 내기 위해서 벌어야 할 돈이군.”
송 회장이 담배를 물자 김 실장이 말을 이었다.
“회장님. 그래도 임원들이 낸 방안이 최선입니다.”
“계열사 다섯 개 인정하라는 거?”
“네. 파악해 보니 이건 제가 생각해도 못 빠져나갈 것 같습니다.”
“거기에 붙은 똥물은?”
“비자금이야 메꾸면 그만 아닙니까. 공정위도 과거에 일어난 죄에 대해선 적당히 눈감아 줄 겁니다. 하지만 저희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아직 안 들킨 네 개 계열사도 위험합니다.”
안 들킨 네 개의 계열사.
그중엔 절대 드러나지 않아야 할 기업, 창진인베스트가 있다.
이곳은 태광건설의 분양 대행사로 오로지 승계 목적을 위해 설립된 회사다. 오직 그 목적으로 설립한 회사이기에 일감 몰아주기, 내부거래 등 온갖 추잡한 정황이 다 나와 있다.
“근데 이것까지 파악할 수 있을까? 은퇴한 임원들 이름으로 되어 있는 회산데.”
“지금 공정위는 사돈의 8촌까지 다 뒤지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건 제 생각에도 그냥 자백하는 게 낫겠습니다. 본격적으로 파고들면 곧 들통날 겁니다.”
창진인베스트는 건설과 관련된 업종이라 당국이 의심하기 힘들 것이다.
전직 임원들, 즉 진짜로 생판 남인 사람으로 세운 기업이라 추적하기 힘들 것이다.
……이런 가능성이 눈에 보였지만, 송 회장은 가까스로 자제심을 발휘했다.
“……그래, 인정하자.”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을 순 없는 법이니까.
“소명장에 밝혀. 우리 회사 맞다고. 단 이 다섯 개 회사에서 그쳐야 해.”
“물론입니다. 임원들의 착오로 누락되었다고 꾸며 놓겠습니다. 고작해야 과징금이 전부일 겁니다.”
“그건 김 실장이 알아서 잘할 거고. 그리고 선물 좀 준비 해 봐. 전직 임원들한테 줄 거.”
“알겠습니다. 근데 혹시…… 만나실 계획입니까?”
“왜 안 되나?”
“안팎으로 어수선한데 조심하는 게 어떨까 싶어서요.”
“걱정 마. 그거 만난다고 잡아가면 공정위가 이미 나 노리고 있었던 거지. 오랜만에 옛날 사람들 생각 많이 나는구만.”
김 실장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전직 임원들 다 등 떠밀어서 쫓아낸 사람들 아닌가.
하지만 내부 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 놈들이라 불만은 잠재워야 했다. 해서 계열사 몇 개를 맡기고 배당금을 챙겨 주며 돈으로 입을 막았다.
이번에도 그리움 때문이 아니라 입단속을 위해 만나는 만남이다.
***
“신수가 훤해졌군.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
“은퇴한 임원이 뭐 별일 있겠습니까. 봄에는 꽃놀이, 여름엔 물놀이죠. 이번엔 오사카까지 가서 벚꽃 구경하다 다녀왔습니다.”
“제수씨가 아주 좋아했겠군.”
“네. 은퇴하고 나니 집사람한테 아주 꼼짝을 못 하겠습니다. 밥 세 끼 얻어먹으려면 운전이라도 잘해야 돼요.”
“제수씨 볼 면목이 없네. 이렇게 가정적인 사람을 매일 퇴근도 안 시키고 부려 먹었으니.”
“아이고. 회장님께서 보살펴 주신 덕에 말년에 이런 팔자 누려 봅니다. 늘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4년 전에 은퇴한 임진수 사장은 밝은 얼굴로 인사를 나눴지만 긴장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태광건설의 개국공신이나 다름없는 그다.
송 회장이 갑자기 약속을 잡았을 때부터 큰 사건이 터졌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회장님께선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하루하루가 전쟁이지. 이거 수습하면 저거 터지고, 저거 수습하면 다음 거 터지고. 끝이 없네 아주.”
“하면 이제 부담을 나누시지요. 송 사장도 이제 4년 차 아닙니까.”
“지훈이? 아직 멀었어. 이제 겨우 일만 할 줄 알지, 위기 대처 능력이 제로야. 이럴 줄 알았으면 그놈을 부사장으로 진급시키고 자네 밑에서 더 배우게 했어야 하는데.”
임 사장이 퇴직한 자리는 송 회장의 장남인 송지훈에게로 넘어갔다.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송지훈의 발령을 두고 내부에선 많은 우려가 속출했다. 불만을 잠재우는 과정에서 피도 많이 봤지만, 송 회장의 경영 승계 의지는 꺾을 수 없었다.
임진수는 다 지나간 얘기가 다시 등장하자 회사가 난처한 상황이란 걸 확신할 수 있었다.
“회장님. 혹시 무슨 일 있습니까?”
“자네는 못 속이겠군.”
“무슨 일인데요.”
“대기업 집단 지정, 이번엔 못 넘어갈 것 같아. 공정위에서 소명 요구가 왔네.”
“네? 아니 이걸 어떻게…….”
“4년이면 많이 속였지. 누락된 계열사 몇 곳을 파악한 모양이야.”
임진수의 얼굴이 덩달아 굳었다.
그게 어떤 회사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 심지어 그중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창진인베스트는 현재 그의 지분이 100%인 회사였다.
“공정위가 어디까지 파악한 겁니까?”
“다섯 곳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아. 일단 이것만 인정해도 우리 자산 총액은 10조가 넘어.”
10조면 출자 제한 집단.
각 계열사의 지분 거래가 막힌다.
눈치 빠른 임 사장은 오늘 왜 회장이 자신을 불렀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혹시…… 인정하시기로 한 겁니까.”
“백방으로 알아봤는데 별수가 없군. 이젠 회사가 커져서 대기업 지정 피할 수도 없겠네.”
“그럼 좋은 일 아닙니까. 하하. 잘 생각하셨습니다. 제가 곁에 있었다면 꼭 그렇게 하시라 말씀드렸을 겁니다.”
임 사장은 미련 없이 말을 꺼냈다.
“그럼 이제 제가 창진인베스트를 맡고 있을 이유가 없군요.”
“신세 많이 졌네.”
“아닙니다. 회장님께서 배당금을 두둑이 챙겨 주신 덕에 오히려 저야말로 늘 감사했습니다.”
임 사장은 명함 하나를 송 회장에게 건넸다.
“제 지분은 모두 이쪽으로 해 놓겠습니다. 이번 일 정리되면 송 사장에게 지분 넘겨주세요.”
“고맙네. 내가 내일 미팅이 있어서 오래는 못 마시는데, 반주라도 한잔할까.”
“아닙니다, 회장님. 심란하실 텐데 일찍 들어가십쇼.”
그렇게 자리를 나온 임 사장은 헛헛한 기분에 잠겼다.
송 회장이 2세 경영을 선언하고 많은 창립 멤버들이 물갈이를 당했다. 송지훈이 사장 자리를 꿰차고 왔으니, 졸지에 자신은 구세력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그 과정에서 섭섭함도 많고, 불만도 많았지만 자신은 송 회장을 욕할 자격이 없다 생각했다. 송 회장이 창진인베스트의 지분을 주며 4년 동안 자신을 챙겨 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곧 자신은 여기에서도 손을 떼게 된다.
이제야말로 진짜 은퇴란 생각이 들며, 지난 회사 생활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