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40
140화
배보다 큰 배꼽 (2)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부터 잡는다더니. 송 회장이 저럴 줄 몰랐습니다.”
“회장은 염병. 건설 업계에서 누가 송태수를 회장으로 인정해 줘? 1군 건설사들 비자금 조성해 주고, 하청받아 가면서 큰 게 태광이야.”
“그렇게 궂은일 할 땐 평생 함께할 것처럼 말하더니.”
송 회장의 2세 경영 선언으로 가장 피해를 본 이는 구 임원진이었다. ‘쇄신’이란 미명하에 창립 멤버들을 대거 학살했으니.
물론 어느 조직이나 리더가 바뀌면 아랫물도 바뀌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속도라는 게 있다. 회장님의 건강이 악화되거나, 더 이상 업무를 볼 수 없을 때 서서히 넘어가는 게
경영권 아닌가?
하지만 건강이 멀쩡한 송 회장은 조바심 부리듯 2세 경영을 선언했다.
“까놓고 말해 상속세 피하려고 지금부터 승계 작업 한 거 아니야. 대기업 집단 지정되면 감시 많아지니까 지금 서두르는 거지.”
“대체 왜 우리가 왜 여기에 희생돼야 해?”
대화를 여과 없이 듣던 준철은 무릎을 탁 쳤다.
역시 대기업 집단 지정은 최종 목적이 아니었다. 진목적은 승계 작업이었구나.
“그러지 말고 우리도 확 까 버릴까요. 내가 아는 송 회장 뒷계열사만 해도 다섯 곳이 넘습니다.”
“송 회장 여기로 비자금도 마련 많이 했어요. 이거 공정위에 신고해 버리면 아주 볼만할 겁니다.”
임원들이 복수심에 불타오를 때 한 사내가 찬물을 끼얹었다.
“유 전무. 그렇게 해서 자네한테 남는 게 뭔데.”
“뭐…… 남는 건 없는 일이지만.”
“분풀이야? 그럼 속이라도 시원해져?”
“임 사장님. 그게 아니라.”
“그거 까면 자네들도 무사하지 못해. 공사할 때 기자재 빼돌린 거 없어? 하청한테 리베이트받은 거 없어? 그거 다 문제 삼으면 퇴직하고 집으로 가는 게 아니라 감방으로 가야 할
텐데.”
임진수 사장은 목소리를 높이다 잠시 숨을 골랐다.
“억울한 마음은 알아. 좀 더 일할 수 있는데, 갑자기 2세 경영 한답시고 임원 정리하니 속 터지겠지.”
“…….”
“근데 여기까지가 우리의 역할이야. 태광? 다른 대기업처럼 우호 지분 탄탄한 게 아니라 상속세 다 내면 경영권 휘청거린다. 우리가 젊음을 바쳐 만든 회사, 그 꼴 나게 할 거야?”
임원들은 숨소리도 내지 못했다.
형제간 경영권 다툼으로 진흙탕 싸움을 해 대다 사분오열된 대기업이 한둘인가. 젊음을 바쳐 이룩한 회사가 그리 무너지는 건 이들도 바라지 않았다.
이와 별개로 임진수의 말은 아무도 반박할 수 없었다.
사장 자리를 송 회장의 장남에게 물려주며 졸지에 구세력의 상징이 된 인물 아닌가. 구세력의 구심점인 그의 말은 아무도 거역할 수 없었다.
“내 말이 거칠었다면 미안하네.”
“아, 아닙니다. 저희 억울함이 어떻게 임 사장님께 비교되겠습니까.”
“그래도 회장님이 돈으로 사람 섭섭하게 하는 사람 아니야. 자네들이 못 받게 될 월급까지 포함, 퇴직금은 넉넉히 챙겨 줄 걸세.”
임 사장은 그렇게 임원들의 불만을 모두 잠재우고 돌려보냈다.
모두들 물러갔지만 옆에 남아 눈치를 살피는 이도 있었다.
“사장님. 정말 괜찮으십니까.”
“왜, 부사장은 아직 욕심이 남았어?”
“저야 뭐 형님이 물러나신다면 따라갈 겁니다. 근데 송 회장이 형님께 이래선 안 되죠. 비자금 대신 뒤집어써 준 게 몇 번인데, 이렇게 쫓아냅니까.”
옛 생각이 났는지 임 사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챙겨 주잖아. 창진인베스트.”
“그게 뭐 형님한테 준 회사입니까? 장남한테 다이렉트로 주기 뭐하니까 잠시 맡겨 놓은 거지. 차라리 지분을 요구하십쇼.”
“됐다. 은퇴하는 사람이 회사 지분 쥐고 있어서 뭐 해. 어차피 태광건설 분양 업무는 다 창진인베스트가 독점할 거야. 주식보다 여기서 나온 배당금이 더 쏠쏠할 거다.”
“형님 그게 아니잖습니까. 지저분한 회사 맡고 있다고 나중에 무슨 욕을 보시려고요. 우리 나이에 형살이 하면 돈도 다 소용없습니다.”
임 사장의 얼굴이 잠시 흔들렸다.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만든 위장 계열사. 목적 자체가 불순하니 당국에 들키면 형살이까지 각오해야 한다.
“걱정 마. 그렇게 허술한 회사는 아니니까.”
“에휴…… 그럼 언제까지 맡아 달랍니까.”
“대기업 집단 지정되기 전까지.”
“출자 제한 지정되기 전까지 지분 정리하려 그러는 겁니까.”
“뭐 그러겠지. 안 그래도 그 시간 벌려고 내부에서 고민이 많아.”
“그럼 공정위한테 신고도 허위로 해야겠군요.”
씁쓸한 한숨이 나왔다.
“만약 문제 생기면 공정위에 바로 이실직고하십쇼. 깊게 연루되면 형님도 무사치 못할 겁니다.”
이 모든 사달이 다 그놈의 상속세 때문이다.
“걱정 마. 회장님은 그래도 사람 챙기는 사람이야.”
하지만 임 사장은 아직 송 회장을 믿고 싶었다.
아직 자신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았다고.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뒷계열사를 맡겨 두는 것이라고.
한동안 배당금을 두둑이 받을 것이니 개인적으로 욕심이 나는 자리기도 했다.
***
왜 놓치고 있었을까.
송 회장이 임원들 명의로도 위장 계열사를 숨길 수 있다는 걸! 심지어 여긴 건설과 관계된 업종이라 아무도 문제 있는 곳이라 파악하지 못했다.
불명의 대화를 들은 준철은 바로 창진인베스트의 뒷조사에 들어갔다.
문제는 곧바로 드러났다.
건설사는 아파트를 만들고 이를 판매해 줄 분양 대행업체를 쓰는데, 태광은 거의 모든 물량을 창진인베스트에게 넘겼다.
창진의 기업 자료를 보니 심할 땐 영업이익의 99%가 다 태광이었다.
‘이거 일감 몰아주기잖아.’
만약 업계에서 믿을 만한 분양 대행사였다면 이 결과에 납득이 갔을 것이다.
하지만 창진은 겨우 4년 차 회사로 업계에서 검증이 되지 않은 회사였다.
더욱 웃긴 것은 배보다 배꼽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창진인베스트는 본격적으로 일감을 몰아 받으며 순이익이 6천억을 돌파했는데, 이는 원청인 태광건설보다 3배가량 높은 수치였다.
‘이거 완전 미친놈들이네.’
말이 안 된다. 아파트를 짓는 놈보다 어떻게 파는 놈 매출이 더 큰가.
만약 이게 정상적인 원하청 관계였다면, 원청에서 수수료를 낮추라 압박했을 것이고 어떻게든 이익을 환수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기업 자료엔 그런 과정이 나오지 않았다.
‘젠장.’
사실 실적이 큰 임원들에게 계열사를 떼 주며 독립시켜 주는 건 건설 업계에 흔한 관행이다.
하지만 그것도 시멘트 업체, 철근 업체 같은 소일거리를 넘겨주는 정도지 이렇게 일감을 몰아주는 정도는 아니다.
이런 파격적인 대우는 승계 작업 아니고서야 설명할 길이 없다.
바지사장이 잠시 맡아 두다가 이 계열사의 지분을 장남에게로 이전시킨다면 돈 한 푼 들지 않고 깔끔한 승계가 펼쳐질 것이다.
‘지독히도 준비했구만.’
그렇게 서류 검토가 끝났을 때, 준철은 묘한 자괴감이 들었다.
은퇴한 임원은 그걸 회장의 배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두둑한 배당금까지 챙겨 줬으니, 회장이 고마웠을 것이다.
하지만 제3자의 시선으로 보니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다. 정황 다 정리되면 배당금 토해 내는 건 물론 형살이까지 각오해야 할 텐데.
과거에 많이 봤던 모습이라, 마음이 이중으로 괴로웠다.
***
태광건설의 대기업 선정은 순조롭게 이어지며 사건은 마무리된 듯 보였다.
공정위는 곧 태광건설을 출자 제한 집단으로 발표했고, 10억대 정도의 과징금 발표만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느닷없는 보고가 올라왔을 때 윤 과장을 포함한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승계 작업입니다. 창진인베스트도 사실상 송 회장 회삽니다.”
준철이 날밤 새워 가며 준비한 자료를 검토했을 땐 곳곳에서 탄식이 나왔다.
건설업과 관련한 업종은 수사 범위에 두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너무나 이상한 회사다.
윤 과장은 표정을 추스르며 되물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파악한 다섯 개 계열사가 끝이 아니었단 거네?”
“네. 중요한 계열사는 임원들 명의로 세워 뒀습니다. 저희는 계속해서 송 회장 혈연만 파서 이걸 놓친 것 같습니다. 근데 임원도 핵심 측근입니다.”
준철이 숨도 쉬지 않고 보고를 이어 대자 팀장들이 달려들었다.
“과장님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이건 엄밀히 말해 송 회장 회사가 아니에요. 퇴직한 임원은 사실상 남 아닙니까.”
준철이 되받아쳤다.
“며느리의 조카, 사위의 삼촌의 아들도 사실상 남이죠.”
“그 남이랑 이 남은 달라요. 그리고 이건 이 팀장이 건설업에 대해 잘 몰라서 하는 소리예요. 원래 건설사들은 퇴직한 임원들한테 작은 계열사 하나 정도는 넘겨준다고.”
“맞습니다. 이 분양업체도 그냥 송 회장이 퇴직한 임원들 챙겨 주려고 세운 회사 아닐까요.”
준철은 쓴웃음을 지었다.
“보통 그런 계열사는 아주 작은 걸로 넘겨주죠. 시멘트나 철근 같은 거. 근데 이건 다릅니다. 분양 대행사의 순이익이 태광건설보다 3배나 많아요.”
그 얘기엔 아무도 반박할 수 없었다.
“만약 이게 자기 사업이라면 납득이 되죠.”
“그럼 이놈들 시나리오가 뭐야?”
“지금 창진인베스트의 지분은 임진수 전 사장이 100%인데. 이걸 장남 송지훈에게 넘기면 완벽한 승계입니다.”
“상속세 한 푼 안 내고?”
“네.”
굳어 가는 팀장들과 달리 윤 과장 얼굴엔 희미한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이제야 좀 납득이 된다.
큰 싸움을 피하기 위해 이번 사건을 여기서 끝내려 했지만, 근원적인 의문이 풀린 게 아니었다.
놈들은 왜 대기업 집단 선정을 피하려 했을까?
왜 4년이나 공정위를 속여 왔을까?
준철의 보고서는 그 의문을 단박에 해결해 주었다. 상속세를 내지 않기 위해 그간 뒷계열사를 숨겨 왔던 것이고 기업 자료를 보니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많다.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팀장들이 또 산통을 깨 버렸다.
“과장님. 엄밀히 말해 상속세는 국세청 소관 아닙니까…….”
“저희가 다루기엔 좀 애매한 부분이 있습니다.”
“의심되면 일단 조사4국에 협조 요청해 보시지요.”
윤 과장은 이들을 물끄러미 보다 말했다.
“협조? 짬 때리자는 게 아니고?”
“과, 과장님.”
“일감 몰아주기는 우리 업무지, 국세청 업무 아니야.”
“하지만 이건 몰아주기였다고 보기 힘듭니다. 표면적으로 창진인베스트는 태광건설과 관계가 없습니다.”
“그럼 설명들을 해 봐. 아파트 지어서 번 돈보다, 분양 대행사가 돈을 더 많이 벌었네?”
“…….”
“이게 무슨 특허라도 있는 하청이면 이해라도 되지. 건설 업체보다 더 많은 게 분양 대행사다. 송 회장은 왜 이 비싼 대행사 쓴 거야?”
어차피 내 회사니까.
그 한마디면 모든 게 설명이 되는 정황이다.
“하자.”
윤 과장은 곧 지시를 내렸다.
“이대로 덮는 건 나도 찝찝했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정황이 나왔는데 난 이대로 못 덮겠다.”
“…….”
“이 팀장. 그 창진인베스트 대표라는 놈 소환해 봐.”
“예!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