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 Trade Comission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바보처럼 살았군요 (3)
“지금 그 사람 어디 있어?!”
“301호 회의실입니다.”
“왜 과장실로 바로 안 보내고 거기다 뒀어?”
“죄송합니다…… 자백하러 온 건지 몰랐습니다.”
퇴근하다 돌아온 윤 과장은 흥분한 목소리를 감출 수 없었다.
손이 다 떨린다.
창진인베스트 대표인 임진수의 자백이라니. 현 상황은 그의 자백 없이는 수사를 아무것도 진전시킬 수 없는 상태다.
암흑 속에서 한 줄기의 빛을 확인한 윤 과장은 마음이 급해졌다.
“진짜로 이놈 자백하러 온 거 맞아?”
“예. 창진인베스트는 이미 명의신탁 다 들어갔더군요. 외국계 한 법인에 이미 주식 이전을 다 마친 상태였습니다.”
“해외 법인? 여기 조세 피난처야?”
“네. 버진아일랜드에 세운 전형적인 페이퍼 컴퍼니입니다.”
윤 과장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임진수가 해외 법인에 지분을 이전하고, 그 지분이 다시 장남에게 이전되면 상속 작업은 완전히 끝난다.
“진짜로 치밀했습니다. 임진수가 장남한테 지분을 다이렉트로 주면 의심을 살 테니, 중간에 세탁기 한 대를 더 썼어요.”
“이런 기똥찬 시나리오가 하루 이틀 만에 나왔을 린 없고.”
“네. 자료를 보니 이 짓거리를 4년이나 해 왔더군요.”
“4년이면 우리가 처음으로 대기업 지정 자료 요구했을 때네?”
“그렇습니다. 그간 속여 오면서 지분 정리를 꾸준히 해 왔습니다.”
이젠 빼도 박도 못한다.
명의신탁, 말이 좋아 신탁이지 사실상 차명 주식 아닌가.
임진수의 자백으로 이 차명 주식의 실소유주가 누군지 밝혀졌다.
윤 과장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때, 팀장은 더욱 놀랄 만한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과장님. 임 사장이 기밀 자료도 가지고 있답니다.”
“기밀?”
“명의 이전 이후의 일이요. 창진인베스트를 장남에게 넘긴 이후, 창진과 태광건설을 합병할 계획이었답니다. 합병 비율은 6 : 1로.”
“뭐 6 : 1? 이것들 진짜 미친 거 아니야?”
합병 비율 6 : 1. 당연히 태광이 6이다.
송 회장은 창진인베스트의 순이익이 높다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합병을 진행할 계획이었다.
이렇게 되면 순이익 2천억짜리 회사가 10조 원짜리 건설사를 거느릴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피눈물 나는 건 기존의 태광 주주들이다.
“진짜로 대기업 다 됐구만. 이것들 재벌 총수들이 하는 짓거릴 다 따라 했어.”
이런 놈들을 4년 동안이나 대기업 집단으로 선정 못 하고 있었다니.
“네. 진짜로 대기업 다 됐습니다.”
“근데 그 얘긴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임진수가 직접 자백했습니다. 명의 이전 끝나면 그렇게 합병할 계획이었다고. 송 회장과 나눈 대화록과 지시 서류까지 가지고 있다 합니다.”
“좋아. 그럼 그 자료 빨리 넘겨 봐. 이건 우리 힘만으론 안 돼. 국세청, 금감원까지 동원해서 빠르게 친다.”
“근데 저…… 진술만 했지 아직 그에 대한 증거는 넘기지 않았습니다.”
“뭐?”
“담당자를 직접 만난 후에 증거자료를 넘기겠다 하더군요. 아무래도 과장님께 협상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 봅니다.”
그럼 그렇지. 이런 선물을 쉽게 줄 리 있나.
자백을 했으니 자신이 챙긴 부당한 돈은 눈감아 달라 부탁할 수도 있다. 아니면 오너 일가의 형사처벌은 피하게 해 달란 부탁일 수도 있고.
뭐가 됐든 기분 나쁜 제안이 나올 게 분명하다.
들떴던 윤 과장 얼굴이 짜게 식었다.
“알겠다. 그건 내가 하지. 유 팀장은 지금 국세청에 공문 보내서 이 해외 법인 알아봐. 상속세 관련 문제니까 바로 조사4국 대동해야 될 거야.”
“알겠습니다.”
“법인 확인되면 바로 나한테 보고해.”
윤 과장은 표정을 고르며 그가 있는 장소로 향했다.
이제 더 이상 임 사장은 단순 참고인이 아니다. 이번 수사의 핵심적 증언을 해 줄 공정위 VIP다.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셨죠. 퇴근하다 돌아온 터라.”
친절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는데, 임 사장 표정이 살짝 실망한 투였다.
“과장님이 오셨군요. 그 젊은 팀장님께서 오실 줄 알았는데…….”
“젊은 분?”
“이준철 팀장님인가 하는 분요.”
“임 사장님께서 갑자기 찾아오셔 그 친구는 자리에 없습니다만…… 혹시 불편하면 그 친구를 따로 불러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제가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는 아닌 것 같네요.”
임 사장은 씁쓸한 얼굴로 서류와 한 계좌를 건넸다.
“이미 보고를 통해 들으셨을 줄로 압니다. 창진인베스트는…… 내 회사가 아니요. 송 회장이 실질적 소유주고 나는 명의만 빌려줬소. 아, 명의만 빌려준 건 아니지…… 태광건설로부터
분양 관련 업무를 모두 몰아 받았소. 여기서 챙긴 배당금 또한 불순한 돈이었소.”
윤 과장은 조금 당황했다.
최소한 자기가 챙긴 돈은 봐달라 할 줄 알았는데, 이걸 이실직고한다고?
“그리고 편법 승계 과정은…….”
“거기까지도 들었습니다. 해외 법인에 명의신탁하고 그걸 장남이 다시 받는 구조였다고요. 증거 제출해 주셨으니 국세청이 곧 법인 확인 들어갈 겁니다.”
“……그렇군요.”
“근데 그 이후의 일도 진술하셨다 들었습니다. 송 회장과 합병 비율에 관한 얘기를 하셨다고…….”
가장 민감한 얘기가 등장하자 그의 얼굴이 한층 더 굳었다.
“그 전에 먼저 제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십쇼.”
“모두 위에서 시켜서 한 일입니다. 전직 임원들은 잘못 없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공정위가 현직에 있을 때 일어난 일까지 모두 조사한다 들었습니다. 물론 저희도 떳떳한 건 없습니다. 송 회장의 지시였다 해도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뒷계열사를 엄호해 주었던
건 우리니까. 하지만 이미 은퇴한 사람들 아닙니까.”
임 사장은 텁텁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전직 임원들에게 죄를 묻지 않는다면 저도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부탁에 윤 과장은 아리송했다.
오너 일가를 보호해 달란 부탁이 아니라 전직 임원을 보호해 달라고?
“그게…… 끝입니까? 다른 사람들에 대한 부탁은.”
“송 회장 일가에 대한 부탁은 없습니다. 그건 당국의 기준대로 처벌하십쇼.”
임진수는 그리 말하며 합병 비율에 관한 증거자료를 건넸다.
윤 과장은 차가운 그의 말투를 듣고 나서야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송 회장과 이자의 관계가 이미 파탄에 이르렀다는 걸.
“그 부분은 걱정 마십쇼. 전직 임웜들은 모두 정상참작될 겁니다.”
“여기가 명의신탁해 둔 회사입니다. 대표는 변호사인데, 자료 요구하면 곧 내줄 겁니다. 그리고 이게 의사록. 합병 당시 어떻게 할지 구체적으로 계획을 짜 뒀습니다.”
슬쩍 살펴본 윤 과장은 쾌재가 나올 뻔했다.
송 회장과 나눈 대화부터, 합병을 준비하던 과정이 적나라하게 나와 있다. 법원에 당장 제출해도 손색없을 만큼 날짜와 대화 내용이 자세했다.
“저희 전직 임원들에게도 언질을 줬습니다. 송 회장의 뒷계열사와 관련한, 아는 내용은 모두 공정위에 실토하라고.”
“어려운 결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나 협조적인 태도에 도리어 의심이 드는 윤 과장이었다.
“근데 저도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갑자기 자백을 결심한 이유가 뭡니까. 임 사장님께선 얼마 전만 해도 전혀 이러시지 않았는데.”
“뭐…… 짝사랑이 끝난 거라 해 둡시다.”
무슨 말인지 아리송했지만 윤 과장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의 얼굴엔 이미 생기가 싹 달아나 있었다.
송 회장이 한 번이라도 인간적인 대접을 해 줬더라면 얘기가 달라졌을까.
회사를 위해 수고해 준 당신들에게 미안하다, 이 문제는 내가 책임지겠다. 그 한마디였다면 기꺼이 형살이도 대신 해 줬을지 모를 텐데.
***
밤샘 작업을 마치고 느지막이 출근한 준철은, 갑자기 바빠진 사무실 분위기에 어리둥절했다.
동료 팀장에게 사정을 전해 들었을 땐, 바로 과장실로 뛰어 올라갔다.
과장실엔 이미 금감원과 국세청 직원들이 모여 있었는데, 윤 과장의 속사포 같은 지시가 이어졌다.
“해당 회사는 상속세를 피하기 위해 허위로 세운 법인이에요. 이미 지분 넘어갔으니 이거 반드시 파악해 과세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저희 조사4국이 맡아야겠군요.”
“그리고 태광건설이 창진과 합병을 준비했는데, 자신들에게 유리한 합병비율을 만들려고 태광 주식을 다 평가절하했어요. 이거 그대로 진행됐으면 기존 주주들의 피해가 막심했을 겁니다.”
“염려 마세요. 파악이 끝나는 대로 주가 공시 띄우겠습니다.”
그렇게 국세청과 금감원에게 협조 요청을 모두 끝낸 후.
윤 과장은 쓰러지듯 소파에 앉아 준철을 바라봤다.
“무슨 요술을 부린 거야?”
“……예?”
“윤 사장한테 바로 자백 넘어왔다. 창진은 송 회장 장남을 위한 회사고, 자기는 잠시 맡아 두고 있었다더군. 해외 법인에 명의신탁한 정황까지 나왔어. 그리고 합병 비율에 대한
자백도 나왔다.”
“저, 정말입니까?”
놀랄 노 자다.
합병 비율에 관한 얘기는 기대도 안 했던 자백 아닌가.
“그래. 6 : 1로 합병을 준비하고 있었더라. 이거 됐으면 송지훈이가 바로 태광건설 최대 주주가 됐다.”
특정 계열사로 일감을 몰아준 뒤, 그 계열사와 말도 안 되는 비율로 합병.
자(子)회사가 모(母)회사를 집어삼킬 수 있는 가장 싸고 빠른 방법이다.
“만약 이거 그대로 진행됐으면 기존 주주들의 피해가 막심했을 거다.”
빠르고 쉬운 만큼 그 부작용 또한 대단하다. 송 회장 입장에선 태광건설의 지분이 낮게 평가될수록 유리하니, 주식 가치가 계속 평가절하당한다.
놈들의 상속 작업에 기존 주주들만 죽어 나가는 것이다.
“금감원에 이 내용 고발했다. 중징계 떨어질 거야.”
“다행이네요. 사건 터지기 전에 막아서.”
“아무렴. 욕 한 바가지 얻어먹을 뻔했는데 구사일생했지. 오죽하면 내가 협조 공문 보내니 바로 사람 보내 주더라.”
가슴을 쓸어내린 건 비단 윤 과장뿐이 아니었다.
금감원, 국세청이 바로 수사팀을 꾸려 협조 의지를 적극 보여 줬다. 평소엔 엉덩이가 무겁기로 소문난 금융 당국인데 말이다.
준철은 그들의 엉덩이를 단숨에 들어 버린 자료들을 읽어 내려갔다.
“과장님. 전직 임원들도 진술을 하겠답니까?”
“응. 임 사장이 직접 지시를 내렸다더군. 송 회장의 뒷계열사에 대해 아는 내용은 다 말해 준다 했다.”
“그럼 현재 의심하고 있는 곳도 다 나오겠네요.”
“시간문제지. 대신 조건 있다. 전직 임원들의 죄는 묻지 않기로 했어. 다들 시켜서 한 사람들이니까.”
“하면…….”
“이 팀장이 맡고 있는 다른 계열사 파악 끝내. 그건 곧 진술 다 넘어올 거야.”
준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근데 이 팀장. 어떻게 한 거냐? 임 사장은 입에 시멘트 발랐나 싶을 정도로 진술 거부하던 놈이야. 그런 놈이 어떻게 독대 한 번 하더니 돌변해?”